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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7일 11시 06분 등록

트로이 여인들의 비극과 나의 이야기

 

"네 뭐라구요? 잘 안들려요?

어제 밤 사망하셨습니다. 빨리 가족되시는 분들은 내려오셔야겠습니다.“

 

그것은 나의 인생에 빨간불이 켜지는 신호였다.

2001년 2월 13일

 

수요일 아침 교회의 구역예배 구역장 공부가 있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서둘러 아이들을 보내고 교회로 가려는데 자꾸 나를 잡아 끄는 뭔가가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향군회관 사우나. 이상하게 그날 따라 목욕을 가고 싶어진 것이다.

난 에라 모르겠다 목욕이나 하러 가자 하고 난 사우나로 향했다.

그 날은 아들 성빈이의 급식 당번 날이라 화장품을 몽땅 챙겨 갔다.

빨리 마치고 화장을 하고 학교로 향할 요량으로...

 

그런데 그날 따라 빨리 목욕을 하는 바람에 집에 들렀다 가게 되었다.

집에 오니 자동음성 전화기에 빨간 불이 깜박깜박 거렸다.

그 불빛은 얼른 나를 좀 눌러 주세요 하는 것 같았다.

그냥 나가려다 난 그 단추를 누르고, 어이 없는 음성을 들었다.

 

도대체 다 죽어 가는 사람 목소리로 최사장님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답답하고 불길한 마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난 얼른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음성은 남편이 아니라 어느 낯선 목소리, 경찰이었다.

 

난 정신을 차리고 친정, 시댁으로 전화를 한 뒤 아주버님과 장계 (남편은 장계에서 와사비 농장을 하며 혼자 지내고 있었다.)로 향했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잠시 멈춘 차 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니 꿈은 아니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고 남편의 마지막을 보러 간 셈이 되었다.

 

난 이런 기도를 하며 남편에게 향하고 있었다.

“ 하나님, 장계에 도착하면 : ” 놀랬지? 성희야? 하고 빙그레 웃으며 반기는 남편이 있게 해 주세요.

내 인생의 마지막 기적에 운명을 맡기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 그런데 나의 바램과는 정반대로 그냥 차갑게 식어 있는 남편을 보았다.

남편의 주검을 대하는 나를 보며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

어쩌면 그렇게 눈물이 나오질 않는지? .....

 

그 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아마도 아주 어렸을적 서울에 눈이 많이 온 후로 10Cm넘게 쌓인 눈은 처음이었으니까.

우리 가족은 서울로 운구하는 것을 포기한 채  전북대학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2박 3일의 장례를 치렀는지?

난 토요일 아이들을 학교로 보냈다.

주일에도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교회에 나갔다.

목사님은 나를 보시더니 “ 어떻게 나왔냐고 반색을 하며 맞으셨다.”

 

난 크면서 아주 오랫동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본 적이 없다.

아직 친정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생존하시니 그렇게 가까운 친족의 죽음을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막내를 가지던 해 1993년 그 해 막내 동생 성우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상복을 입은 채 장사를 치르진 않았다.

난 그 이후로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곤 했다.

‘난 누구의 장례를 치르며 처음 상복을 입게 될까? ’

아! 그런데 그 상복이 남편을 보내며 입게 될 상복일 줄은 .......

 

2001년이니까 벌써 만 10년을 지냈다.

누가 나에게 "어떻게 살았니? "하고 물으면

3년은 내 감정을 냉동시켜서 느끼지 않으며 살았고,

(난 늘 남편이 시골에 있다고 믿으며 살았다.- 아니 그런 착각을 만들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일게다.)

그 다음은 그냥 흘러 흘러 살아왔다고 이야기 할 것 같다.

 

이번에 읽은 그리스 비극의 가장 최고의 비극은 ‘트로이의 여인들’이다.

여기서 헤카베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 운명이 바뀌는대로 참고 견디어라.

운명이 물결치는대로 흘러가거라.

변천되는 숙명에 생명의 배를 맡기고, 격랑에 거스르질랑 아예 말아라.

 

아무 걱정 없이 살던 나와 우리 아이들의 운명이 바뀌는 해 2001년이었다.

참고 견디며 살았고, 물결 치는대로 흘러갈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격랑에 내 몸을 맡기며 사는 방법도 나름 터득했다.

 

트로이 여인들은 오늘날 전해지는 그리스 비극 30여편 가운데 이처럼 구원이 없는 처절한 비극적인 작품은 없다고 서두에 서술하고 있었다.

난 읽으면서 왜 이 작품이 가장 비극적인 작품일까를 생각하며 읽었다. 다른 작품에 비해 비참한 인물이 많이 나와서일까?

전쟁을 치르면 예나 지금이나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여자와 아이들이다.

10년 전쟁 트로이 전쟁을 치르면서 이제 패전국으로 전락한 트로이 여인들은 왕비, 왕녀, 그리고 평민 할 것 없이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더욱이 여인네들이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이제 고향땅을 떠나야 하는 정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트로이 여인들은 무서운 소리와 함께 성이 타서 무너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코러스는 조국을 등지는 여인들의 비참함으로 끝난다.

 

그러나 책 서문에서 트로이 여인들은 이렇게 소개한다.

“읽는 이에게 거의 육체적인 고통마저 느끼게 할 만큼 암담한 이 비극이 그 전편에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또 어떤 유명한 비평가의 말을 빌리자면 ‘가능한 모든 불행의 두려움이 모두 사라진 뒤에 찾아오는 일종의 평화, 아니 영광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이 괴상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다.

 

난 2001년 이후 나의 운명을 바꾼 - 남편을 통해 잠시 죽음을 경험한 -

모든 불행의 두려움은 이제 평화, 영광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괴상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는 곳을 향해 항해 하고 있다.

IP *.118.2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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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3:43:53 *.51.145.193

이 글을 아무런 대가없이 화면으로 읽어 내려도 되는건지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하게 살아내고 계시는 걸 보면 말씀하신 평화, 영광은 이미

누님께 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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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5:34:55 *.120.78.130

재용아 ~ 늘 따뜻한 댓글이 오늘도 힘이되는구나.

벙개할때마다 걸리누만...

이번주 볼 수 있으니..며칠만 참아야지 ...

토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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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6:21:31 *.36.72.193

알고 있었으면서도,

언니의 글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나는 또 몸둘바를 모르겠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고맙기도 하고, 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괴상한 아름다움이라...!

 

트로이 여인들을 읽으면서도 뼈저리게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 글을 통해 느껴본다.

 

고마워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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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23:40:28 *.118.21.186

그치..괴상한 아름다움이 먼지 갑자기 원전이 보고싶다.

오늘 벙개 하면서 잠시 얘기했지만...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단다.

아 ~ 내가 남편과의 감정이 잘 정리 됐구나...

마음 속에서 잘 떠나 보냈구나 ...!!!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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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5.08 02:30:21 *.85.249.182

시간이 흘러 흘러 많이 차분해진, 많이 정화되어 쓰여진 글이지만

한줄 한줄 조심스레 읽어나갔어요.

올리브님은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구나 ' 이런 생각도 하면서 읽었어요.

그러면서도 이런 좋은 구절이 어디 숨어있었지 이런 생각도 하면서요.

올리브님의 앞날에 주님의 영광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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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10:35:43 *.118.21.186

ㅎㅎ 언니두요 ~ 어제 넘 멋있었어요

역시 깔리여신 답게...

고맙습니다. 힘이되네요

토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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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09:17:32 *.114.49.161

성희언니, 남다른 여정을 많이 넘어오신 듯 합니다. 처음 사부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많이 가슴으로 안아주세요' 당부하셨을 때 저는 궁금했더랬어요. 고생모르고 산 듯한 공주님 같은 인상이셔서요. 그런데 여러 아이를 기르신 엄마시고, 저런 여정을 잘 넘어오신 분이시라 안아줄 품이 너르시겠구나 생각해봅니다.

 

글 중에서는 '3년은 나를 냉동시키며 보냈다. 그 토요일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일요일에 교회에 나갔다. 시골에 그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 부분이 저한테 철컥 붙어있습니다.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던 말씀의 깊은 뜻이 언니의 글을 읽으며 더 분명히 새겨집니다.

 

어제 벙개는 잘 하셨어요? 이번 주 오프수업 장소도 보셨겠지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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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10:38:39 *.118.21.186

벙개때 마다  보고싶은 콩두!

어제 똥쟁이님이 문경갔다왔다고 할때고 콩두 생각이 나고...

그치~ 내 인생에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일들을

만난거지요..ㅎ 한치 앞을 못보는 우리네 인생이니까.

 

산을  마니마니 넘어 온 느낌?

그런데 가끔 내가 참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는 버릇이 언제부턴가 생겼어...

후후후...토욜 보는거지? 보구시프다! 콩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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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19:03:06 *.166.160.151

이럴때 나는 아무 말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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