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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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은 지금 온통 초록입니다. 멀리 있는 저 숲은 아까시 꽃 색 뒤섞이며 차라리 절제된 초록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초록이라고 모두 한 색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홍이었다가
상아빛이었다가 다시 연두였다가 초록이었다가… 그 모든 색들이 모나지 않게 늘 뒤섞이는 숲. 그러고 보면 숲을 만든 신은 가장 위대한 화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숲에 가만히 서 있어 보세요. 그 초록의 깊은 빛깔만으로도 작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위로를 받는지 어렵지 않게 느낄 것입니다. 눈을 감아보세요. 향기는 또 어떤지요? 뺨과 손을 스치는 바람은 또 어떤지요? 무엇보다 귀로 들어와 가슴과
머리를 채우며 어지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들려오는 이 즈음의 새소리는 어떤지요? 정말이지 이 즈음 새들의
노래 소리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유혹적입니다.
왜 이 즈음의 새소리가 저토록 고울까요? 텃새에 철새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애벌레들 때문입니다. 애벌레가 많아지고 곤충들이 활력을 갖는 시간임을 새들 역시 아는 것이지요. 먹이가
풍부해진 숲의 이 즈음이 바로 그들이 사랑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데 최적의 시기라는 것을 아는 때문입니다.
결국 새들이 품은 사랑에 대한 욕망 때문에 숲이 온통 노랫소리로 가득 차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운 소리들 속에서 철새의 노래가 더 고울까요? 아니면 텃새의 그것이 더 고울까요? 조금 깊이 생각해 보세요. 맞습니다. 철새들의 노래 소리가 단연 백미입니다. 딱새나 박새, 오목눈이들 짧은 파장으로 노래하고, 묏비둘기 구욱- 구욱- 낮은
주파수로 간간히 울지만 그것은 그저 배경을 이루는 화음처럼 들릴 뿐입니다. 소쩍새가 소쩍- 소쩍- 몇 번 노랫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텃새들의 소리는 가깝지만
멀어집니다. 검은등뻐꾸기 같은 새 뽀- 뽀- 뽀- 뽀- 몇 번만 울어도
청각기관의 모든 세포들이 그 소리를 향해 열리는 느낌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철새들의 노랫소리가 저토록 더 고운 것일까요? 맞습니다. 철새들은
바로 시간의 유한성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먹이가 풍부해진 지금의 숲에서 그들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 철이라는 것, 딱 그 주어진 시간 동안 짝을 만나고 사랑하고 새끼를 얻어 부양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기 때문입니다. 떠나야 할 시간, 다시 긴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겨울을 견딜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자신들의 삶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사랑을 완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철새들이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유한함을 안다는 것은 자각 중에 아주 큰 자각입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가장 고운 노랫소리를 내며 살게 하는 가장 훌륭한 자각인 것입니다. 그러니 꼭 이 즈음의 숲에 꼭 서보세요. 눈을 초록의 향연으로 채우다가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이 살갗을 희롱하도록 맡겨두세요. 이윽고 귀와 가슴을 열어 소리를 만나보세요. 그 유한함에 대한 자각이 빚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화음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세요. 철새처럼 살기, 내 삶에도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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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숲이 그 특별한 경험을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주말(5월 19일) 사진 작가 윤광준 선생과 함께 하는 ‘사진 숲과 철학을 만나다 : 생명사진워크숍’, 다음 주말(5월 26일) 제가 준비하고 있는 특강 ‘5월의 숲이 전하는 삶의 지혜’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문의는 답신 메일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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