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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04시 26분 등록

일주일만에 제임스 조이스를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 김이준

 

저자에 대하여

 

제임스 조이스(1882~1941)

 

제임스 조이스를 정리하며.

 

제임스 조이스. 성과 이름의 음절 3개씩, 지읒, 이응, 시옷의 정확한 라임. 그래서 그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은 꽤나 낭만적인 행위였다. 그 세련된 풍미 때문에 나는 학창 시절, 그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도서관 서가에서 꺼내들었었다. 그를 어렴풋이라도 알아내어 사람들에게 아는 체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상한대로 가냘프고 순진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복잡했다. 글자들의 낯선 개진법에 내심 당황한 나는 성급히 해설서를 뒤적거렸다. <의식의 흐름 기법>, 그리고 아직 구성면에서 미흡하다.’는 기만적 평가. 나는 그를 읽을만한 책못 읽을 책의 경계에 얹어놓고는 미래를 기약하며 다시는 그를 펴보지 않았다.

그러나 동색의 영혼은 만나기 마련인가.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을 알고 난 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해답은 인문학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캠벨 역시 닥치는대로 읽으며 자신의 지향을 찾아 사상을 스캔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제임스 조이스를 잡아낸 후 그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 작가를 소화하여 자신의 몸으로 만들었다. 나는 대학 시절의 나를 난독증에 빠뜨렸던 조이스를 생각했다. 당시 나와 같은 20대에 못 읽을책을 집필했던 천재 작가. 그 때 뒤적거리던 책들은 이제 10년의 세월에 묵혀지고 익었을 것이다. 약간의 패배감과 함께, 어쩌면 지금은 그를 읽어도 될지 모른다고 희망해본다. 그를 이해하게 된다면.

제임스 조이스는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작가다. 제임스 조이스의 국제 심포지엄은 한 번에 약 400 여편의 논문이 다루어지며 참여 인원은 1000여명이 넘는 대규모이다. 그에 관한 종적 연구는 리처드 엘먼 등에 의해 애정어린 집념 하에 샅샅이 밝혀져 있다. 이번 정리에도 엘먼의 책은 매우 중대한 참고 자료가 되어주었다. 나는 이들 자료와 달리, 조이스의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단면 연구를 시행해보았다. 최근 제임스 조이스의 아버지 <존 스태니슬로스 조이스> 및 아내였던 <노라 조이스>의 전기가 나올 정도로 조이스의 주변 인물 역시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천재 작가의 주변 인물 연구가 중요한 결정적 이유는, 조이스가 자신이 알던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하는 대표작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조이스의 작품은 사설의 형식을 띈 산문시로서 작가 본인이 예견했듯이 수많은 수수께기로 점철되어 있다. 이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후대의 연구가들은 FBI나 국가정보원을 방불케할만큼 연구라는 이름으로 조이스의 주변을 케내었던 것이다. 조이스의 작품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1.     아버지

 

존 스태니슬로스 조이스는 분명 전형적인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는 자식이 10명이었고 평생 저당 잡힌 인생을 살았다. 그의 아들 제임스 조이스는 아버지에 대한 회고의 첫마디로 그는 파산가였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를 단지 전형적인 파산가의 이미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발적 파산가였다. 그리고 그 기질은 아들 제임스 조이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그의 첫 아들은 1881년에 태어났으나 살지 못했다. 제임스 조이스는 바로 다음 해인 1882 2 2일에 태어나 존 조이스의 맏아들이 되었다. 그는 아들 넷, 딸 여섯을 가졌으며 그 때까지 총 11번의 저당을 잡혔다.

존 조이스는 성 콜먼 대학의 최연소 학생이었다. 다양한 재능의 소유자였으며 삶에 대해 겁이 없었다. 그의 불안에 대한 무감각은 유산 받은 재산을 거덜나게 했다. 그러나 본인은 스스로를 환경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였으며 말을 잘하였고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 그는 에너지의 화신이었고 제임스에게 자신의 아버지는 생명력을 의미했다. 제임스 조이스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울리시즈>에 나오는 유머는 모두 그의 유머이고, 그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의 친구들이죠. 그 책은 아버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피네건스 웨이크>를 돌아가신 아버지가 읽는다면 아마 글쎄, 그 애는 나만큼 그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군!”이라고 평할 것입니다.”

 

존 조이스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장남인 제임스와 사이가 좋았다. 그는 영특한 아들에게 아일랜드 최고의 교육을 시키겠다는 그 다운 결심을 한다. 1888 9 1일 존은 당시 6살 반이었던 제임스를 40마일 떨어진 킬데어 주의 클론고즈우드 학교에 보냈다. 이 학교는 가톨릭 예수회 계열이었고 조이스는 크리스천 브라더스 스쿨을 다니던 2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톨릭 예수회의 학교를 다녔다. 그는 중학교 시절까지 종교 규율을 온전히 지키도록 노력하는 모범생이었다. 제임스는 교장실을 따라 통하는 복도를 따라 걸려 있는 예수회 교단의 성인과 위인의 초상을 좋아했다. 그러나 동시에 회의감 역시 느꼈다. 그의 아버지 존 조이스의 반교권주의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와 정치적 견해도 같이 하였다. 1888년부터 1891년까지 클론고즈 시절 동안 제임스가 집에 오면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 존 켈리는 오로지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가 파넬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파넬은 어린 조이스에게 실존하는 영웅 판타지였다. 파넬은 정치적 시련과 개인사의 오명 때문에 결국 당이 해체된 지 1년 만에 죽었다. 1891년의 크리스마스 만찬은 조이스에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와 켈리는 파넬 배신과 기구한 죽음에 분노하며 눈물을 흘렸다. 존 조이스는 영웅의 죽음에 분노하였고, 파넬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따르던 9살의 제임스 조이스 역시 크게 슬퍼하였다. 그는 파넬의 배반자 힐리를 비난하는 시 <힐리, 너마저도>를 썼고 그의 아버지는 이를 자랑스러워하였다.

영웅의 죽음은 가족의 위기와 겹쳐 아버지의 얼굴에 더욱 깊은 명암을 드리웠다. 같은 해인 1891년 존 조이스는 더블린의 세금 징수원 자리를 잃었다. 가세가 기울면서 존은 1891 6월 아들을 클론고즈에서 자퇴시켰다. 지방세 사무소가 시의 정책에 따라 인계되면서 직원들은 연금제로 전환되었다. 무능한 사람으로 알려졌던 존 조이스는 연금 수령 대상에서 제외되었는데, 아내가 당국에 간청한 덕에 겨우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때 존 조이스의 나이는 41세였다.

가세가 기울자, 조이스 가족은 1892년 연말에 집을 처분하고 블랙록에서 더블린으로 이사했다. 존 조이스는 아이들을 노스 리치몬드가의 크리스천 브라더스 스쿨로 보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유일하게 예수회 교육과 결별한 시기였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 곳에서 2년을 보냈지만 이 시기에 대한 언급을 꺼렸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는주인공이 공상에 잠겨 보낸시기로  처리되었다. 전기 작가 허버트 고먼에게도 조이스는 침묵의 2년을 지켰다. 조이스의 유년기 중 가장 어두운 시기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그러나 이 때의 경험은 <더블린 사람들> 중의 애러비Araby” 이야기의 근원을 형성했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 존 조이스는 아이들의 교육에 무심하지 않았다. 희망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오기 바련이다. 존 조이스는 우연히 마운트 조이 스퀘어를 걷다가 존 콘미 신부를 만났다. 콘미 신부는 제임스 조이스가 클론고즈우드 학교를 다닐 때, 반에서 수석을 하던 제임스를 예뻐하던 교장 선생님이었다. 그는 이제 클론고즈 교장을 그만두고 벨베디어 대학의 학감이 되어 있었다. 존 조이스에게는 자기 자식들의 교육에 대해 기회를 타진해 볼 절호의 기회였다. 아버지는 망설이지 않았다. 콘미 신부는 부성에 답하여 제임스와 그의 남동생들까지 훌륭한 예수회 주간 학교인 벨베디어 대학에 수업료를 내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그리하여 제임스 조이스는 1983 4 6일 벨베디어 중등부 3학년에 들어갔다. 2년이 뒤쳐진 제임스는 그 반에서 가장 나이 든 소년이었지만, 그는 학교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다행히 장남의 학업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이미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존에게 남은 것은 빈곤한 여생이었다. 그는 부양할 가족 때문에 술도 마음껏 못마신다며 가족을 원망했지만, 스스로는 결코 가난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시간을 과거로 끝없이 소추시켜 자신이 불운을 당한 부자라고 생각했다.

존 조이스에게 경제적 압박감은 자식의 탄생과 맞물려 절정에 달했다. 그녀의 아내는 항상 임신 중이었다. 아들 프레디가 태어났고, 생후 몇 주 안돼 죽어버렸다. 아들이 태어나면 또 다른 부양 가족이 생긴다는 중압감, 그런데 그 아들이 죽어버렸을 때 느꼈을 안도감과 뒤따라오는 자괴감, 그리고 그 아들의 죽음이 집의 빈곤한 재정 상태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존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절망으로 술을 거하게 마신 그는 산후 회복을 채 하지 못한 아내의 목을 조르려 했다. 그는 여인의 목을 잡고 , 이제 끝장을 낼거야!”라고 고함을 질렀다. 자녀들은 경악하여 아버지에게 달려갔고 장남이었던 제임스는 아버지의 뒤로 몸을 날렸다. 조이스 부인은 황망한 가운데 어린 것들을 챙겨 이웃집으로 달아났다. 영웅이 태어나기에 손색이 없는 극적 장면이다. 이로서 제임스 조이스는 영웅의 두 종류 중, 반영웅에 가까운 역사를 가졌음을 알게 된다.

1894 2월에 조이스는 그의 부친과 함께 가족의 남은 재산을 팔기 위하여 아일랜드의 남부 항구 도시 코크Cork까지 밤 기차를 타고 여행했다. 여행의 목적은 우울하였지만 제임스는 그 여행을 꽤 즐겼다. 그는 아버지와 묵었던 임패리얼 호텔과 마다이크의 훌륭한 산책로라든지, 코크 지방의 특별 요리인 드리신에 대해 호기심을 보였다. 그때쯤 존은 아들과 함께 크로스헤이븐에 있는 프리젠테이션 수녀원도 찾아갔다. 두 딸을 수업료 면제로 그곳에 입학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만다. 기가 막힌 것은 이 부자가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날 저녁 오코넬 사촌이 부르는 노래 <어부의 밤 인사>를 들으면서 그 노래에 대한 전문가적 평을 하는 등, 위기의 벼랑 끝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행동했다.

아버지의 행동 방식을 그대로 닮은 제임스는 자신의 돈에 대해서도 아버지처럼 행동했다. 그는 1894년 좀에 치렀던 중간고사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20파운드의 장학금과 함께 최우수상을 받았다. 제임스는 가족에게 이 돈을 두루 베풀었다. 돈에 대한 거만한 허세와 함께. 그는 비록 빈곤하였으나 마음이 빈곤하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 돈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것인 체 행동했다.

1894년 말, 그의 가족은 다시 이사할 준비를 했다. 가족들은 짐을 제대로 풀러보기도 전에 이사할 채비를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존 조이스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날 방도를 찾아냈고 이에 대한 태평스런 확신이 있었다. 그 방도란 것은 전당포라든지, 우애로운 친구, 그리고 운 좋게 얻게 된 사소한 일거리 등이었다. 그는 영원히 파멸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 제임스 조이스에게는 소멸에서 부활로 옮겨다니는 메뚜기 같은 삶이 유년기의 전부였다. 그는 늘 보도블럭의 끝단을 걸었다. 위태로웠지만 약간의 경각심만 깨워두면 사는 것이 그리 힘겹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전수한 생의 관념을 조이스는 철저히 체득해두었다. 그리고 이내 사소한 걱정에는 무관심해져 버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조이스에게는 그리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는 무의 상태를 지나치게 잘 학습하였기 때문이다.

존 조이스는 아들의 재능을 자랑스러워 했고, 분명 그에 대한 인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존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처럼 굴지 않았다. 아들의 학업을 위해 최선의 뒷받침을 해주고자 했지만 강요하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세계적 대문호가 되기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듯하다. 그는 자신의 장남이 다른 장남들이 으레 하듯이 집안을 일으켜주기만을 바랐다. 존은 제임스에게 기네스 주조장의 사무원이 되라고 설득했다. 여러 일자리를 탐색하며 전전하던 존에게는 주조원에서 일하던 경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주조장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일이었다. 제임스 조이스에게 이는 지나치게 낮은 기대치였다. 조이스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지만 분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하였듯이, 친구인 번과 함께 1902 4월 세실리아 가에 있는 로열 유니버시티 의과대학에 등록했다. 존은 자금이 없어 굶는 아들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쥐어짜내어 돈을 조달하였다. 그렇게 아버지가 보내 준 1, 2파운드를 받아 제임스는 끼니를 해결하였다.

어머니가 암투병 끝에 죽은 후, 아버지는 더욱 절망에 빠졌다. 그는 가정에 돌아오면 슬픈 폭군이 되었다. 제임스 조이스는 그 우울한 둥지에서 애써 초연하였으며 영웅으로 웅비하기 위한 날개를 준비해나갔다.

 

2.     어머니

 

메리 제인을 만날 당시 존 조이스는 연봉이 500파운드인 세금 징수원이었다. 그는 꽤나 잘 나가고 있었다. 메리 제인 머리는 당시 스물한 살이 채 되지 않은 금발의 미녀였다. 그녀는 롱포드 출신으로 주류 중개 상인인 존 머리의 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된 존 조이스보다 10살이 어렸다. 그녀는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났고 남편은 노래를 잘 불렀다. 이 덕에 아들인 제임스 조이스 역시 노래에 소질이 있었으며 한 때 프로 테너 가수로 돈을 벌어볼 준비까지 했었다.

존 조이스가 판도라의 상자 같은 혼란이었다면 메리 제인은 바다의 수평선 같은 질서였다. 조이스는 자신이 어떤 광란의 괴물이 되어도 이를 수용할 바다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인내심이 뛰어났고 남편에게 충실하였다. 메리 제인의 이미지는 제임스 조이스가 자신의 아내, 노라 바너클을 찾을 때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노라 바너클 역시, 제임스의 어머니처럼 바다를 닮은 여인이었다. 존 조이스는 아들이 여자를 데려왔을 때 그녀의 성이 바너클(조개의 종류)임을 알고 절대 (너를 꽉 붙들고) 떨어지지 않겠구먼.”이라고 말했다. 존과 제임스 이 두 부자는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여성상이 어떤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세상을 향해 거침없는 시험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떨어져도 좋을 넓은 여자의 가슴이 전제되어야 했다.

메리 제인은 또한 자상한 어머니였다. 제임스 조이스는 의과 대학 재학 시절 돈이 매우 궁하였다.

그는 친구 번처럼 개인 교사 일을 하고자 했지만 학교에서는 그에게 줄만한 일이 없었다. 이를 두고 제임스는 학교가 자신에게 고의적 악의를 표출한다고 생각하고 분노하였다. 그리곤 엉뚱하게도 더욱 상황이 어렵기 마련인 타국의 의과 대학으로 옮겨갈 것을 결심한다. 그는 파리로 갔다. 그리고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견뎌내야 했다. 이 시기 동안, 더블린이 그리웠던 제임스는 항상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항상 수신자를 어머니로 하였다. 한 번은 그가 어머니의 답장을 받고 자신의 어려움을 투사시켜 하찮은 짜증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어머니는 지극히 따뜻한 답장을 다시 보냈다.

 

, 만약 네가 내 편지에 실망하고 평소처럼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러고자 하는 갈망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렴. 하지만 너도 곧잘 말하는 것처럼 나는 아둔해서 내가 바라는 것만큼 훌륭한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단다. 눈물로 네 영혼을 소모시키지 말고 평소처럼 용감하게 앞날을 낙천적으로 바라보거라.

 

이토록 따뜻한 편지에서 제임스는 큰 위안을 얻었다. 그의 편지는 자신이 지금 돈이 없어서 42시간이나 20시간 동안 굶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비단 돈을 요청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더블린 집의 사정을 잘 알았고 부모로부터 큰 기대를 걸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동정을 받아줄 정서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환원했다. 그는 20시간 마다 두 끼를 먹는 원칙을 고수하고 세탁비를 아끼기 위해 셔츠의 얼룩을 넓은 넥타이로 가리고 다녔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가진 야망과 꿈을 지켜내기 위해 그는 자신이 내디딘 지반을 계속 확인했다. 날기 위해서는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아이러니는 그래서 성립한다. 만약 그의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제임스는 끈기있게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끊임없이 괴로워했다. 제임스가 타국에서 연명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작은 시를 써붙인 엽서를 보내오면 메리 제인은 눈물을 흐느꼈다. 그는 마음이 병이 된 탓인지 어느 날 담즙을 토해내었다. 의사는 아내가 아닌 남편이 걸릴법한 병, 즉 간경변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녀는 암을 앓고 있었다.

1903년 제임스는 어머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아버지의 메시지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올 돈이 없었던 그는 고민하다가 새벽녘에 착한 후배의 잠을 깨워 전보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제임스는 더블린으로 일시 귀국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녹색이 된 어머니를 만났다.

메리제인은 죽음이 다가오자 마음의 불 역시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쇠약해진 정신으로 맏아들의 불신앙을 염려하였다. 그녀는 임종이 임박한 침대에서 아들에게 고해성사를 치르고 성찬을 받으라고 눈물로 설득하였다. 그러나 제임스는 어머니의 유언 같은 간청을 곧이 듣지 않았다. 보다 못한 주변인들이 제임스에게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라 요구해보았지만 그는 나는 절대적인 것을 믿어요.” 정도만 언급하는 선에 그쳤다. 이 곤란한 상황에 대해 작가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스티븐의 입을 빌려 말한다. “배후에 20세기 동안의 권위와 숭배가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한 상징에 대한 거짓된 충성의 맹세였던 것이다. 어머니가 죽음을 두려워한 만큼 제임스에게도 이 거짓된 충성의 맹세가 자신의 영혼에 좀비 같은 화학 작용을 일으킬까 두려웠던 것이다.

 

3.     동생 스태니슬로스

 

조이스의 남동생 스태니슬로스 역시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철학서를 끄적여도 보았으나 천재 형의 재능에 눌려 곧 그것을 파기해버렸다. 그는 형에게 인정받고 싶어했고 그만큼 형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원망하였다. 그가 형에게 느꼈을 감정을 알게 하는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조이스에게는 절친한 친구 번이 있었는데 사소한 오해가 발단이 되어 절연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스태니슬로스는 제임스를 독차지하고 있던 형의 친구 번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미묘한 희열에 휩싸였다. 스태니슬로스는 친구와의 불화에 씁쓸해하는 형을 향해 모자를 벗고 엄숙하게 <테 데옴>(Te Deum, 우리는 그대를 찬양한다)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형은 이미 경쟁 상대가 아니었으며, 그가 모자를 벗어 추종자로서 인정받는 편이 그에게는 속 편한 것이었다.

보다 적나라하게는, 그의 일기에서 동생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스태니슬로스가 1903 3월에 쓴 일기

나보다 똑똑한 형이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차라리 천재 작가가 먼 발치에 있어서 매일 매일 인식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면, 스태니슬로스도 마음 편히 작가가 될 수 있었으리라. 그는 형과 있는 자리에서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써야 했으며, 그의 재치있는 발언이 제임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였다.

우리가 스태니슬로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제임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재라기 보다는 천재를 바라보는 입장에 서있으며 그의 재주를 보고 감탄하고 책을 산다.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는 것에 반항하는 사람들은 제 삼의 입장을 만들어 비판자가 되거나 아니면 잉여의 무관심의 영역을 고수한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지 스태니슬로스는 천재가 아니며 천재가 아닌 삶은 매력이 없다. 그러면 그저 천재로부터 등을 돌린 채 두 눈에서 가려버리면 될까? 마치 닭이 모래속으로 머리를 숨기듯이.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이 지식인층이 아닌, “평범함을 가장보통사람들을 지향한다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제임스는 자신의 재능을 익히 알고 있었고 천재에게 허락된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미학으로 표상되는 지도계층을 배반하고 진실이란 이름으로 평범한 이들을 글로 승화시키고 있을 때, 스태니슬로스는 형의 그림자 뒤에서 우두커니 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스태니슬로스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자료가 방대하게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동생 스태니슬로스의 공이 크다. 그는 일기로, 글로 형 제임스에 관한 이야기를 남겼으며 자료들도 잘 보관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제임스 조이스를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하였다. 씨앗이 떨어진 자리를 탓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 안에서 묵묵히 가능성을 실현시켜 나갔다.

 

4.     여자, 그리고 노라 버나클

 

제임스 조이스는 열 네살이 되었을 때 성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어린 하녀와 연애하였다. 동생 스태니슬로스는 이를 일종의 자유형 레슬링으로 묘사했다. 그의 동생은 이 사실을 교장에게 이실직고하였고 이내 후회하였다. 동생은 이 사실을 어머니와 형에게 말하였고 제임스는 그냥 웃으면서 그를 얼간이라고 불렀다. 조이스는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성을 거리끼는모범생으로 자신을 인식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그런 의식을 인식하고 열등하게 여긴 탓인지 자신의 성적 실험에 과감했다. 그는 <달콤한 들장미>라는 공연을 보고 극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운하의 제방을 따라 걷다가 창녀를 만났다. 아마도 조이스는 그 제방에 창녀가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서툰 데뷔를 치렀고 그 경험은 처음이라는 의미 이외에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자존심 강한 어린 천재에게 서투른 기억은 수치심으로 변했다. 그는 이 기억을 억압하였으나 결코 자유로워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이스가 여성과 성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조이스의 화신인 스티븐 데덜러스는 학창 시절이 끝나갈 무렵 북쪽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예븐 소녀가 치마를 추켜올리고 물 속에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그 장면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한다. 더 나아가 아름다움의 보편성을 근거로 조이스는 삶과 예술을 긍정하게 된다. 비록 삶이 혼란스러움을, 에술은 고통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사건은 가톨릭 예수교의 학교에 다니던 조이스에게 방향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에게 천상의 사제는 비쩍 마른 첨탑 같았지만 소녀의 다리는 그 자체로 아름답게 땅을 딛고 있었다. 조이는 인류의 세속적인 완성에 대한 상징을 소녀의 다리와 강물의 햇살 조금에서 찾았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1094 6 16일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 소설로, 이 날 조이스는 노라 버나클과 사랑에 빠졌다. 조이스에게 사랑은 변신과 부활의 촉매제였다. 조이스의 생애의 여러 국면들은 6 16일을 기점으로 한 자리로 수렴하였다가 다시 빅뱅처럼 폭발하였다. 이 날, 리처드 앨먼은 조이스가 스티븐 데덜러스에서 레오폴드 블룸이 된다고 했다. 블룸은 꽃이 핀다는 의미로 드디어 완전함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 6 16일은 <율리시스>의 주인공인 블룸의 이름을 따서 블룸의 날(Bloosday)이라 불리며 이제 인류가 그 의미를 기리는 문학사의 날이 되었다.

노라 바너클은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겨우 초등 교육만을 받았다. 그녀는 문학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때문에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성찰 능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기회가 없었으므로 문학에 대한 관심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조이스를 만나던 날 밝은 기운으로 넘쳤고 위트를 구사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 조이스는 아마 한 눈에 그녀가 자신의 배필임을 알아본 것 같다. 어머니 메리 제인이 죽은 후, 조이스는 그녀와 닮은 성품의 노라 바너클에서 자신의 쉴 곳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노라가 무지에서 파생한 우직함으로 조이스를 떠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천성이 따뜻하고 착했다. 노라의 친구들이 노라와의 우정을 회상한 기록에는 그녀들이 노라를 그리워하며 울곤 했다고 쓰여 있다. 소녀로서 시절 천진난만한 가운데 생의 디딤돌을 조심스레 하나 하나 디뎌온 그녀는, 조이스가 강물에서 만난 세속적 아름다움의 그녀 그대로였다. 그녀는 어찌하지?”를 연발하며 아름다운 발로 디딜 돌을 고른다. 그는 남편과 함께 손을 맞잡고 강물을 건널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정신력을 가졌다. 조이스는 아내를 이렇게 회상했다.

 

한번은 우리 둘 다 극도로 우울한 저녁을 지내고 있을 때 그녀가 , 연인이여. 그대의 연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게나로 시작하는 나의 시를 인용했지. 나는 아홉 달 만에 처음으로 내가 진정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부부는 1905년에 트리에스테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아들 조르지오가 태어났다. 불과 2년만인 1907년에 그들은 다시 로마로 이사했고, 조이스는 이 곳 은행에서 서기로 잠깐 일하다가 같은 해 트리에스테로 되돌아와 영어 가정 교사가 되었다. 그의 딸 루시아가 1907 7 26일 태어났다. 가난한 부부가 전전하며 살았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버지로서의 의무가 조이스를 압박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존 조이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책임을 갈망했다. 그러나 결코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았다. 조이스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그 애(맏이 조르지오)가 태어나기 전에는 나는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노트에 썼다. 이제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그는 처음 느끼는 삶의 중압감으로 폭음을 해댔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방탕함이 야기할 한 가족의 불운을 생각하며 떨치고 일어나곤 했다. 이제 그는 진정으로 생계형 작가로 거듭날 필요성을 느꼈다. 생의 조건이 조여오는 가운데 예술의 바다로 더욱 깊게 뛰어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 해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의 마지막 이야기인 죽은 사람들을 썼으며, 9월에 <주인공 스티븐> 26개 장들을 <젊은 예술가의 초상> 5개의 기다란 장들로 개작하기 시작했다.

1931 7 4일 조이스와 노라는 정식 결혼을 했다. 결혼이란 제도는 조이스를 옥죄는 제도였기에 그는 동반자를 인정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지내왔던 것이다. 노라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해주었다. 그녀의 인내와 이해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부친 존 조이스는 동년 12 29일 사망했다. 1932년 조이스는 <보라, 저 아이를 Ecce Puer>라는 단편시를 썼다. 이는 그의 부친의 죽음과 때를 같이하여 태어난 손자 스테판 조이스의 탄생을 함께 읊은 희비의 감정을 소재로 하고 있다.

 

5.     친구

 

존 프랜시스 번은 조이스의 소설에서 크랜리로 등장한다. 조이스는 번을 벨베디어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번은 지나치게 시골스러운 옷과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고 조이스 이상으로 공부를 등한시했다. 이를 두고 조이스의 동생 스태니슬로스가 천재형의 친구가 너무 평범하다는 불평을 하였다. 이에 대한 조이스의 대답이 걸작이다.

 

번의 생각은 파격적으로 평범하다.”

 

번이 아무 의도 없이 평범함 것을 두고 조이스는 평범함의 용기를 읽었다. 번은 또한 매우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남의 비밀을 알아도 발설하거나 무기로 삼는 유치함을 몰랐다. 그는 조이스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는 조이스의 죄에 대해 섣부른 옹호나 비판도 가하지 않앗다. 조이스는 번의 그런 점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였다.

이 둘은 자신들의 우정을 배타독점적인 단계까지 끌어올렸는데 이에 대해 조이스보다는 번이 더욱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번은 조이스가 자신에게만 흉금을 털어놓기를 원했으나 조이스는 금기를 어겨버렸다. 번은 조이스가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에게 적나라한 속내가 담긴 엽서를 준 것을 깨닫고 조이스와 절연해버렸다. 이 상황을 두고 조이스는 꽤나 당황하였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조이스는 크랜리의 동기가 동성애에 있다고 허구를 좀 더 발전시켜 나갔을 정도다. 그러나 조이스에게 번은 우정의 상징이었고 번을 잃는다는 것은 조이스에게 큰 상실이었다. 조이스는 자신의 자존심을 굽혀가며 번을 되찾아오기 위한 노력을 다했고, 조이스의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이 둘은 화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임종 후인 1904년에 그는 샌디코브 해안에 위치한 마텔로탑(지금의 조이스 박물관)에서 그의 익살스러운 친구 고거티와 함께 살았다. 조이스는 돈없는 식객이었지만 그가 차지하는 공간은 아주 작았고 돈이 있던 고거티에게 조이스는 그리 큰 불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거티는 조이스가 영원한 철거머리가 될까 두려워했다. 다만 조이스가 위대한 작가가 되어 훗날 자신의 이야기를 악의적으로 써낼까봐 두려워하였다. 둘은 성에서 있었던 사소한 해프닝으로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스산한 소리를 침입자로 오해한 고거티가 잠을 자고 있던 조이스 쪽으로 총을 발사했고, 조이스는 이를 퇴거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조이스는 아무 말없이 마텔로탑을 나왔다. 이 곳에 머문 경험은 <율리시즈>의 첫 장인 텔레마코스 장의 소재를 형성한다.

 

6.     스승

 

콘미 신부는 조이스가 클론고즈 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그가 당한 부당한 처사를 인정해주었던 자애로운 교장이었다. 그는 반에서 수석을 하는 조이스를 인상깊게 지켜보았다. 훗날, 조이스의 가세가 기울어 조이스가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어 자퇴를 하였을 때 콘미 신부는 조이스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제임스의 아버지 존 조이스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콘미 신부는 자신의 재량을 이용해 조이스 가문의 아들들이 무료로 유서 깊은 벨베디어 대학에 다닐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조이스는 벨베디어 대학에서 우수한 작문 솜씨를 보이며 학업에 즐거움을 느꼈다.. 만약 콘미 신부가 조이스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후원자 역할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제임스 조이스는 대문호가 아닌, 삶에 찌든 꿈 많던 무명남으로 사라졌을지 모른다.

제임스 조이스의 전기 작가인 허버트 고먼이 콘미 신부에 대해 아주 점잖은 사람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제안하자, 조이스는 이를 온화하며 품위 있는 휴머니스트라고 수정해주었다. 조이스가 콘미 신부에게 느꼈을 감사함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7.     그의 영웅, 파넬

 

파넬이 죽던 당시, 제임스 조이스는 9살이었다. 파넬은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가로 아버지 존 조이스를 따라 제임스 역시 파넬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는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자신의 영웅을 응원하고 숭배하였다. 그는 자신을 파넬로 상상했다.

그러나 파넬은 1882년에 일어나 피닉스 파크 살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쓰기도 하는 등, 반영웅적 행적을 보였다. 비록 이 혐의는 거짓으로 판명되었고 파넬의 위세는 전화위복으로 회생되었으나 그는 다시 오쉬아 대위의 아내 키티와 간통했다는 이유로 곤혹을 치렀다. 오쉬아 대위는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는 불륜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아내에게 이혼 소송을 낸 것이다. 이혼 3주만에 파넬을 중심으로 뭉쳤던 당은 해산되었고 1년 뒤 파넬은 죽었다. 1891 10 6, 파넬이 죽은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만큼이나 분노한 아홉살의 제임스 조이스는 파넬의 배반자, 힐리를 비난하는 시 <힐리, 너마저도>를 썼다. 이 시는, 조이스의 동생 스태니슬로스에 의하면 세기의 잡음이 더 이상 그를 괴롭힐 수 없는 시간의 바위 위에 기묘하게 자리잡은 그의 둥지에서 넙죽 엎드린 아일랜드 정치가 무리를 독수리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것으로 끝난다. 9살의 작품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천재성을 조이스는 이미 보이고 있었다.

 

조이스는 자라면서 자신의 처지가 파넬의 처지와 점점 더 비슷해짐을 깨달았다. 그 처지란, 처음에는 자신의 지지자들이었던 오쉬아, 주교들, 힐리와 같은 사람들이 종국에는 파멸의 원인이 된다는 점, 그리고 영웅의 면모가 아닌 세속적 특성 가령 불륜과 같은 때문에 비판받고 종식을 강제당한다는 점이다. 1912년에 조이스는 <버너의 가스>에서 자신과 파넬을 직접 비교했다.

조이스는 이따금씩 미래의 자신에 대한 암시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 예로 내가 좋아하는 영웅이라는 과제가 나오면, 그는 램Charles Lamb <율리시즈의 모험>에서 읽었던 율리시즈 장군을 선택하였다. 그는 헥토르나 아킬레스와 같은 응당 어린 소년들이 좋아할법한 강한 남성들은 무시했다. 그에게 영웅이란 루시퍼, 파멜, 율리시즈와 같은 이들이었다. 이들 영웅들이 가진 공통 분모 안에서 조이스 자신도 그들과 상징을 같이 하는 영웅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였다.

 

8.     제임스 조이스의 성격

 

조이스는 의외로 유년기에 그의 온건한 기질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서니 짐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자라나면서 그는 서서히 반골 기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이스는 상스러운 말을 해서 손바닥을 네 대 맞았다. 벨베디어 대학 재학 당시 작문 교사였던 뎀프시는 조이스가 머리에 생각이 너무 많은 소년이라고 했다.

1898 9월 조이스는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대학 입학시험 준비 과정에 들어갔다. 열여섯 반. 존 조이스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대학에서 장학금을 계속 타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어떤 분야로 진출할 것을 계획하는지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가족의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조이스는 아버지보다도 더 태평하였다.

그는 한 때 의사나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가졌었고 실제로 의과 대학에 진학하여 고학생 생활을 어렵게 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의과대학생 시절의 경험을 살려 사회 상황을 표현하곤 했다. 조이스는 전유럽이 그가 매독성이라고 부른, 언젠가는 널리 알려지게 될 치유불능의 감염을 앓고 있다는 추론하에 더블린은 의지의 반신마비에 걸려 있다고 설명하곤 했다.

스태니슬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조이스는 5월에 매주 평균 3.97일 꼴로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매우 불규칙한 생활을 한 반면, 글쓰기에는 열정을 다하는 양면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한 예로 2 22일 제임스와 스태니슬로스는 오후 네 시경까지 잠을 잤고, 그들의 게으름에 아버지인 존 조이스는 화를 미친듯이 내었다. 그에 반해 조이스는 3 4일에는 온종일 글만 썼는데 스태니슬로스에게 문장을 노래하는 것처럼 쉽게 쓸 수 있을 정도로 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3 13일 그는 밤새 밖에 있었으며 얼마 후 옥스퍼드에 가 있는 고거티에게 편지를 써야 했는데, 그것은 사창가에서 얻어온 작은 병을 치료해줄 의사를 가르쳐달라는 내용이었다.

 

9.     제임스 조이스의 공부법

 

그는 자신과 입장을 같이 하는 입센의 <우리 죽은 자가 눈뜰 때>에 대해 서평을 써서 <포트나이틀리 리뷰>에 개재하는 데 성공했다. 대작가 입센은 이 서평을 매우 고마워하며 무명의 18세 소년이었던 조이스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입센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된 조이스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조이스는 언어와 문학 공부에 착수했고 매우 광범위하게 책을 읽었다. 19세기 말에 출간된 중요한 작품들은 거의 다 읽었다. 그의 독서는 다양했다. 그는 사실주의적 세부에도 서정적인 이미지만큼이나 흥미를 느꼈다. 읽은 후에는 자신의 계획된 작품들을 하나 하나 써보기 시작했다.

조이스는 파리에 도착한 후 자신의 삶에 대한 실험을 해나가기 위해 잔뜩 고무된 상태였다. 낮 시간에는 국립도서관에서 보내고, 밤 시간은 생 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보냈다. 자신의 기법을 향상시키기 위해 희곡과 시를 함께 읽었다. 그는 존슨을 하루 읽은 후 커즌의 번역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 <형이상학>, <시학>을 읽었다. 공책에 자신의 경구를 기록했고, 저자를 밝히고 그 중요성을 보증하려는 듯 이 각 경구에 자신의 으름을 서명하고 날짜를 기록했다.

 

10.   제임스 조이스의 생각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조이스는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는 예술가의 훈련된 무관심에 대한 토론에서는 가로등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만일 내가 저 가로등 기둥에 도달하기 전에 쓰러져 죽을 것임을 알고 있다 해도 나에게 그저 가로등을 지나가는 것과 똑같은 의미밖에 없습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밝혔듯이, 그는 진정한 적은 가련한 늙은 악마가 아니라 억압의 영혼, 곧 신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절대적인 것, 삶의 의미, 이상이 현실의 삶을 좀먹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술에 취해 들어오면서 자시을 타박하는 스태니슬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문제는 사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거야. 너와 나 같은 사람들은. 이 도시는 의지의 반신불수로 신음하고 있어. 나는 사는 것이 두렵지 않아.” 스태니슬로스가 그럼 형은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거야?”라고 묻자 조이스는 내가 한 줄도 쓰지 못한다 해도 난 개의치 않아. 나는 살고 싶어. 내가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나를 부양해야 하는 것이지. 글쓰기에 대한 문제라면 정신이 말짱할 때 서투른 천재들 중에서 더 무식한 이들의 문법적 오류를 고쳐주는 일이나 하게 되겠지라고 대답했다. 스태니슬로스가 저 술 취한 야후 같은 의학생들에게는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묻자 조이스는 적어도 그들은 너처럼 나를 지루하게 하지는 않아라고 대답했다.

 

1899 10 9일 그는 문학역사학외에서 <극과 삶>이라는 논문을 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이스의 예술에 대한 생각과 방법론을 직접 들을 수 있다.

(10페이 넘었으니 아래 논문 인용구는 4줄이 넘어가기는 하지만 그냥 싣겠습니다.;;)

 

……우리는 삶 진실된 삶 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가? 속물들은 아니오라고 말한다. 단지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얼마나 패배적인 관점과 독선적인 상업주의의 혼합인가? 시단과 시중 은행은 행상인들의 영혼을 분열시킨다. 실로 요즈음 삶은 자주 애처롭고 따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처럼 너무도 늙은 세상에 너무도 늦게 태어났다고 느끼며, 그들의 힘없는 희망과 무기력한 비영웅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격하게 최후의 무, 광대한 무익함, 그리고 한편으로는 짊어져야 할 무겅누 짐을 가리키고 있다. 서사적 야성은 빈틈없는 감시에 의해 불가능해지고, 기사도 정신은 대로의 화사한 신탁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제 철갑옷의 절걱거림도, 용감한 행위에 대한 영예도, 모자를 흔드는 것도, 환락도 없다. 로맨스의 전통은 오직 보헤미아에서만 유지된다. 그러나 나는 암울하고 단조로운 존재에서 어느 정도의 극적인 삶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단. 살아 있는 것 중 가장 진부한 것. 가장 죽어 있는 자라도 훌륭한 극에서 한 가지 역할은 할 것이다.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한숨짓고, 우리 중 굶주린 자에게 과거가 제공하는 차가운 돌덩어리를 먹이는 것은 죄받을 우행이다. 우리는 보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요정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만나는 그대로의 남녀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거대한 인간 희극은 오늘도 어제와 같이, 지나간 세월과 같이 진실한 예술가에게 무한한 영역을 제공한다. 지반처럼 사물의 형태도 변화한다. 다시 배를 이루는 목재는 산산조각 나거나 변덕스러운 바다에 먹혀버린다. 시간은 강자의 강인함에도 침투해 들어간다. 아르미다의 정원도 나무 하나 없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 표현되었던 불사의 정열, 인간의 진실은 영웅적 순환이나 과학의 시대에서 진실로 불멸하고, 격리된 무대에서 어슴푸레한 조명 속에 펼쳐지는 극 <로엔그린>은 안트르펜의 전설이 아니라 세계의 극이다. 평범한 거실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유령>은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 희곡으로,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높이 달린 나뭇잎들 사이로 하늘의 별들이 빛나며 요동치는 아그드라실의 가장 강한 가지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와는 무관하고 그들에게 익숙한 음식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산 위에 올라서서 앞뒤를 바라보며 저 멀리 펼쳐진 하늘의 구름의 파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갈망한다. 돌출한 나뭇가지들이 위협하고 길에는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는데 우리 손에 등산용 지팡이 대신 구름 무늬의 지팡이가 주어진들, 강한 고원의 바람에게서 우리를 지켜줄 값비싼 비단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처한 진정한 상황을 좀더 빨리 파악할수록 좋다. 그리고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는 일어서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예술, 주로 희곡은 우리가 조금 더 위대한 통찰과 조금 더 위대한 예지로 우리의 휴식처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돌들은 훌륭하게 쌓아올려지고 창문들은 멋지고 아름다울 것이다. “이 사회에서 당신을 무엇을 하겠습니가, 헤셀 양?” 하고 뢰를룬트가 묻자, 로나는 신선한 공기를 들여오겠습니다, 목사님이라고 대답했다.

 

바그너식 신화에 대한 흥미, 인습에 대한 혐오, 그리고 삶의 법칙은 언제 어디서나 같다는 그의 주장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즈>, <피네건스 웨이크>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현실 사람을 신화적 인물과 융합하고 모든 시대를 하나로 보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1.   조이스의 작풍

 

조이스는 젊은 시절 <빛나는 생애>라는 희곡을 하나 써서 윌리엄 아처에게 보냈다. 윌리엄 아처는 몇 가지 결점을 지적하였다. 그 결점들은 작품의 결말에서 남녀의 단독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 크고 소란스러운 장면을 축적해나가는 것이 희곡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훗날 이 방법은 조이스의 작품 <사자들> <율리시즈>, <티네건스 웨이크>에서 사용되어 그 장점을 발휘하였다. 희곡에서 쓰인 비극의 방향에서 일시적으로 고조되어 온 삶의 암울한 무질서를 바로잡음으로써 결론짓는 방식 <더블린 사람들>의 기법이다.

그는 자존감으 드셌지만 시작에 있어서는 예이츠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예이츠의 서정시집 <갈대숲 사이로 부는 바람> 1899년에 나왔을 대 조이스는 경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산문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1900년부터 1903년까지 자신의 강점인 산문시 비슷한 장르의 글을 썼다. 그는 이 시들에 대해 에피파니epiphany’라는 기술 용어를 생각해냈다. 그 것은 그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한 상징(메타포)이다. 에피파니는 급작스럽게 나타나는 사물의 본질의 현현으로 가장 비속한 것의 혼이 우리에게 빛나 보이는순간을 가리킨다. 그의 생각에 예술가란 그러한 현현에 책임이 있으며 그것을 신이 아닌 인간 속에서, 우연하고 소박하고, 심지어는 불쾌한 순간에서 구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정신적 현현비속한 말이나 몸짓또는 정신 그 자체의 잊혀지지 않는 상속에서 나타난다. 곧 충만과 열정의 순간들이다. 때때로 에피파니들은 불쾌한 체험의 정취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조이스의 독특한 주장대로 정신은 두 가지 차원 모두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에피파니는 의미를 명백하게 하기 위한 모든 기법을 거부하는 대담성에 있다.

때문에 조이스는 작가 해설이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은 예리한 묘사를 시도한다. 제임스는 독자에게 매우 불친절하다. 결코 독자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의도되어 있지만 털어놓지 않은 의미를 놓칠 경우 독자가 불안해하고 죄를 지은 것처럼 느끼게 한다. 작가는 자기 자신과 독자를 소재에 내맡겨버린다.” 제임스 조이스는 에피파니를 통해 자신의 예술가적 소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적 독백 기법에 대해서는 조이스는 뒤자르댕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는 파리 밖으로의 여행을 두 번 할 수 있었다. 그는 투르에 가는 도중에 기차역 매장에서 조지 무어의 친구로 알고 있던 에두아르 뒤자르댕의 책을 한 권 샀다. 그것은 <월계수는 잘렸다>라는 책으로, 훗날 비평가들이 조이스가 내적 독백을 프로이트에게서 빌려왔다고 아무리 증명하려고 애써도 조이스는 뒤자르댕에게서 빌려왔다는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12.   율리시즈

 

1918년 뉴욕의 리틀 리뷰지는 <율리시즈>를 연재 형식으로 출판하기 시작했으나, 1920년에 죄악 금지회(he society for the prevetion of vice)’의 고소에 의하여 출판이 중단되었다. 또한 1920년에 조이스는 당대의 미국 망명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만났으며, 그의 권유로 파리로 그의 가족과 함께 이사했다. 1922년 파리에서 율리시즈가 조이스의 4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실비아 비치의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출판사에 의하여 출간되었다. 그러나 <율리시즈>는 미국에서 저작권 침해를 당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인 즉 정부가 이 소설을 외설물로 간주했으며, 조이스에게 판권 소유의 특권을 허락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33년 뉴욕 지방 법원의 존 울시 판사는 <율리시즈>가 외설이 아님을 판정했는데, 이는 미국의 문학 사상 가장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리하여 1934년 이 소설은 랜덤 하우스 사에 의하여 정식 출판되었다.

 

 

그가 매주 써냈던 작문 숙제 중 하나.

 

<외양을 믿지 말라.>

 

그럴싸한 외양만큼 기만적이고 그러면서도 유혹적인 것은 없다. 여름날 따스한 태양빛 속에서 본 바다, 가을 태양의 엷은 황갈색 빛 속의 푸른 하늘은 눈에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자연의 거친 분노가 다시 한 번 혼돈의 불협화음을 개울 때 그 광경은 얼마나 달라지는가. 거품과 포말로 질식하는 대양은 태양 아래 즐겁게 반짝이며 잔물결이 일고 있는 고요하고 평온한 바다와 얼마나 다른가. 그러나 외양의 변덕스러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인간과 운명이다. 아첨하는 비굴한 표정, 콧대 높고 오만한 태도 양쪽 모두 무가치한 품성을 감추고 있다. 오만한 자나 가난한 자 모두를 유혹하고 희롱하는 값싸고 야하게 반짝이는 운명의 화려한 빛은 바람처럼 흔들린다. 그러나 인간의 인격을 말해주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눈이다. 잔인한 악한의 가장 완고한 의지로도 정복할 수 없는 유일한 반역자다. 유죄, 무죄, 혼의 악덕, 미덕을 드러내는 것도 눈이다. 눈은 외양을 믿지 말라라는 격언의 유일한 예외이다. 그 외의 모든 경우에는 진정한 가치는 탐구되어야 한다. 왕권이나 민주주의의 외관은 인간이 자신 뒤에 남기는 그림자일 뿐이다. “! 왕후의 자비에 매달려 있는 저 가난한 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끊임없이 변하는 운명의 변덕스러운 조수는 선과 악을 가져온다. 행운의 전조로서의 운명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불운의 사자로서의 운명은 얼마나 잔인한가! 왕의 성질을 시중드는 자는 그 거대한 대양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외양의 허무함을 보게 된다. 위선자는 가장 사악한 악한이며 미덕의 외양 아래 가장 사악한 악덕을 숨긴다. 운명의 신전에 불과한 친구는 부의 발치에서 아첨하고 엎드린다. 그러나 만족감 말고는 야심도 부도 사치스러움도 없는 자는 떳떳한 양심과 편안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의 기쁨을 감출 수 없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4] 칼립소

 

124 리오폴드 블룸씨는 짐승과 새들의 내장을 맛있게 먹었다.

è 내가 제임스 조이스를 읽은 첫 문장이다.

 

124 부엌 속을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때도 콩팥 생각이 그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다.

è 잘 먹지 않는 내장의 맛을 탐닉하는 한 사내. 잔인성의 복선인 듯?

 

125 고양이는 호소하듯 길게 야웅거리며, 우유빛 하얀 이빨을 그에게 보이면서, 배고프고 수치스러운 듯 감은 눈을 다시 치떴다.

è 어떤 폭력도 오고 가지 않았는데 이 상황이 거북스럽다.

 

126 그때 아내가 몸을 뒤치자 침대 뼈대에 달린 늘어진 구리쇠 고리들이 징글징글 울리면서,

è 나는 평소 번역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는데, 김종건의 번역의 저 징글징글이라는 표현 때문에 번역이 또 다른 창조이자 문학임을 깨달았다. “징글징글은 구리쇠에 매우 적합한 표현이다. 동시에 징글징글이라니! 이 말이 뜻하는 한국어 뜻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언어의 감칠맛이 느껴진다. 나는 김성숙의 해석본도 보았는데, 김성숙은 침대의 느슨해진 놋쇠 고리가 삐걱 소리를 냈을 때라고 표현했다. “삐걱이라니. 이 얼마나 성의없는 표현인가! 이 부분만큼은 김종건의 완승이다.

è 폐병 앓는 사내가 생각난다. 이상. 그는 날아야 하지. 날자 날자꾸나.

 

130 어디서 저 사람들은 저렇게 돈을 벌까? … 흑맥주의 한 달 총이득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è 이런 생각은 돈에 쪼달려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사진을 찍던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고 묻자, “저 자가 나에게 돈 5실링을 빌려줄까 에 대해 생각했소.”라고 대답했다. 진심일 것이다.

è 그러니 이런 글만 읽어도 나는 격해진다. 제임스 조이스가 좋아진다.

 

불쾌함을 느끼며

è 숫자 계산이 잘 안되어 불쾌함을 느낀다. 누구라도 느껴볼만한 부분이지만 의식으로 떠오르지 않는 부분이다. 무의식의 뜻밖의 부분을 의식으로 건져올릴 때, 그 쾌감이란! 마치 점이라도 봐서 나도 놓치고 있던 나의 새로운 부분을 간파당한 기분이랄까?

 

134 살수차다. 비를 부르기 위해. 하늘에 있어서와 같이 땅에서도.

è 에피퍼니의 한 장면일까?

 

138 저 따위 향수도 다음날이면 오히려 케케묵은 냄새를 풍기다니.

è 에피파니다.

 

139 머템써코우시스(Metempsychosis)?

è 왜 윤회를 말하는 것일까?

è 141 윤회란, 하고 그는 말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렇게 불렀던 거요. 그들은 예를 들어, 사람들이 동물이나 나무로 변할 수 있는 거라고 믿곤 했지.

è 블룸은 윤회를 말한 후, 자신의 딸 밀리의 편지를 읽으며 그녀를 떠올린다. 의미가 있을까?

è 블룸은 똥을 누러 가는 길에 화단을 본다. 그리곤 똥이 가장 좋은 비료라고 말한다. 지나친 해석일까?

 

147 단편 각본 정도는 쓸 수 있을지 몰라.

è 오뒷세우스는 칼륍소를 떠나고 싶어 한다.

è 폐병 환자 이상은 날개를 펴고 싶어한다.

 

148 헤이호! 헤이호!

è 비탄, 실망 따위를 나타내는 감탄사. 교회의 시계는 15분마다 울리므로 지금은 8:45분이라는데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13] 나우시카

 

576 그리고 에디 보드먼도 어린 동생의 귀여운 옹알거림을 들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è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간혹 아이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여성들을 보면 그들이 자신의 여성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감정을 오버해서 보여준고 생각될 때가 있다.

è 제임스 조이스는 나우시카의 처음 부분에서 일부러 여성형 문체를 쓰고 있다고 해석한다.

 

578 밀랍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상아처럼 순수하고, 어떤 영적인 기품까지 느껴짖게 하는 데 비해, 장미꽃 봉오리를 연상시키는 입술은 고대 그리스적인 완벽함을 지닌 큐피드의 활과 같다.

è 민태운, 제임스 조이스 http://altair.chonnam.ac.kr/~taeun/joyce3.htm

무엇보다도, 4장의 유명한 에피퍼니 장면에서 보이는 바닷가의 소녀에게 성모 마리아 같은 요소가 보이는가 하면 동시에 정반대 되는 창녀의 이미지도 보인다. 예를 들면, 그녀를 묘사하고 있는 단어 중에 "상아" "청색" 은 마리아를 나타내는 것이고, "순결"한 다리는 처녀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비둘기"는 성령을 나타내므로 그녀의 종교적 분위기를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순결한 다리에 붙어있는 해초는 타락을 암시하며 엉덩이까지 대담하게 걷어올린 치마는 그 시대의 풍속을 고려해 볼 때 놀랄 정도로 대담하며 세속적이다. 이처럼 조이스의 작품에서 여성들은 흔히 양면성을 가진 존재로 나온다. 예를 들면, 에마도 스티븐에게 성적 환상 속의 창녀로도 시적 영감을 주는 요정으로도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è 나는 김기덕의 영화를 매우 싫어했었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은 성녀와 창녀 두 갈래 밖에 없으며 이 둘을 한 몸에서 다룬다. 그의 영화 중에는 아름다운 창녀를 이해하게 되는 창녀의 친구가 나온다. 이 영화는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è 김기덕은 스스로 에피퍼니를 깨달은 것일까?

 

582 그녀는 거울 앞에서 귀엽게 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è 예전 한 사진전의 주제가 <소녀>였던 적이 있다. 소녀들에게 가장 소녀다운 포즈를 취해달라고 주문한다. 소녀들은 교복이나 그 밖의 청순하면서 섹시한 로리타룩의 옷들을 소화한다. 그리고 양 다리를 오자로 모은 채 손을 앙증맞게 늘어뜨리곤 지그시 한쪽 입술을 깨물었다. 그 사진전은 소녀다움의 문법, 실체, 그리고 그 역겨움에 관한 전시였다. 사진작가는 그 소녀들에게 죄를 지은 것이다. 소녀들을 조롱하기 위해 소녀답기를 주문하다니

 

583 그의 약속된 아내가 되기를 바란다.

è 누구나 해내는 과업인데, 가장 어려운 과업인 이유는 무엇일까? 비단 절름발이가 아니더라도. 이 세계에는 다양한 절름발이의 형태가 존재하니까.

 

584 왜 인간은 제비꽃이나 장미꽃 같은 시적인 것을 먹을 수 없을까 생각할 때도 있었다.

è 훌륭한 발상이다.

è 생각해보면 가축들이 건초만 먹고 사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591 하지만 믿어도 되는 걸까? 요즘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è 알고 보면 시시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차피 찰나적 만남이라면 상상에서 머무는 것이 낫다.

 

592 죄인들의 피난처, 고뇌하는 사람들의 위로가 되는 성모여.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è 성적 죄인이 마악 되려는 접점에서 드리는 기도.

è 죄인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피난을 가나? 피난을 가는 이유가 죄를 지은 후 면죄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죄를 짓기 위해서인가?

è 죄가 저질러서 죄인가, 아니면 죄 지을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죄인인가?

è 예전에 알던 사람이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장애인 봉사를 다녔어요. 그 장애인들은 주말 밤마다 함께 모여서 포르노를 봅니다. 그게 다예요. 그들에게 성은 그게 다입니다. 북유럽에는 섹스 봉사가 있어요. 장애인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à 이런 곳이 바로 피난처 아닌가?

 

595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맞춰볼까?

è 소녀들은 무리를 형성한다. 남자들은 목표라는 사물을 두고 서로 경쟁하지만, 여성들은 조직 내 서열을 두고 경쟁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들은 서로가 없이 존재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에디는 자신의 최대 경쟁자인 거티에게 각다귀처럼 달라붙는다. 그리곤 사사건건 그녀의 가능성을 블로킹한다.

 

596 왜 그녀는 그 순간에 달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일까?

è 머피의 법칙?

 

600 또 에디가 널 버린 그 애 때문에 마음이 아프냐고 물었을 때는

è 에디는 나쁜 년이다.

è 이런 애랑 놀면 안 된다.

 

나 그렇게 가볍게 무시당할 여자 아니야, 라고 말하는 어떤 것이 묻어났다.

è 거티에게 감정 이입이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다.

è 다만 거티는 자신의 환상이 고매한 것에 반해 역치값, 또는 검증의 시스템이 매우 허술하다. 이것은 그녀에게 축복일까 아닐까?

è 어리석어서 용감하거나, 너무 알아서 비관주의자가 되거나.

 

599 나의 이상적인 사람이여, 그대는 실존하는가?

è 나도 궁금하다.

è 있겠지만 나를 좋아하지는 않겠지. 그건 다른 문제니까. 그렇다면 그 역시 이상의 조건에 어긋나므로. 어렵구나.

 

600 폭죽이야, 시시 캐프리가 말했다.

è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배경으로 쓰이는 폭죽의 예.

è 영화 <꽃섬>에서 설암을 진단받은 뮤지컬 가수는 자살을 결심하며 돌아오는 길에 폭죽 놀이를 본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폭죽 놀이를 감상한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폭죽이 열락의 꽃을 피우며 피었다가 사그라든다.

è 폭죽은 주로 생의 환희를 의미한다. 그 황홀한 순간. 거티는 이제 성적 체험을 앞에 두고 있다. 폭죽은 주변 경계를 해제하는 역할도 한다. 이미 시시 캐프리 등은 시선을 옮겨가는 중이다.

 

602 그녀는 흐느낄 듯이, 그 하얀 가는 팔을 내밀며, 외치고 싶었다, 이리 와서 그 입술을 내 이마에 대어 달라고, 그녀는 갈구했다.

è 너무 안타깝다.

 

603 ! 그녀는 재빨리 앞으로 몸을 일으켜서 그를 흘끗 바라보았다. 정을 담고, 머뭇거리듯 비난하면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흘끗 쳐다보자 그는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604 아니, 그녀는 절름발이다! !

è 이 세상 모든 절름발이들의 공분을 살 부분. 블룸에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앞에 놀라워야 하는 그 사실이 싫은 것. 연민 따위는 필요 없어. 대부분의 절름발이들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가능성을 차단한 삶을 살아간다. 뇌의 두정엽은 손상받으면 반대쪽 몸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와 같이 인식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면 좌절에서 오는 고통 역시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605 나는 아주 깨끗해요. , 저를 더럽혀 주세요.

è 깨끗해야 더럽힐 가치가 있다. 하얗게 내린 눈밭을 내지르고 싶은 것처럼.

 

609 최초의 생각들만큼 강력한 건 없다. 그것을 그녀들은 죽는 날까지 기억하고 있다.

 

610 폭죽처럼 올라갔다 막대처럼 내려온다.

 

612 하지만 불과 몇 년 뒤에는 저런 아가씨가 가정을 이루어 냄비나 닦는 신세가 된다고 생각하면 참 슬퍼진다.

è 여성에게도 이는 큰 변환이지만, 이런 변화를 감내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남성들이다. 남성들은 여신에서 식모로 변하는 여성의 에피퍼니를 감당하지 못한다. 여성은 원래 변신의 동물이다. 여성은 달거리를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늑대 인간처럼 변신을 일상으로 행하여 온 이들이다.

 

616 예를 들어 어떤 여자들은 달거리 하는 동안엔 곁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고약한 냄새 때문에 코를 틀어쥐게 될 걸. 냄새가 어떠냐고? 삭힌 청어 냄새랄까,

아마 여자들도 우리에게서 남자 냄새를 맡을 것이다. 어떤? 키다리 존이 저번에 책상 위에 놓아 둔 담배 냄새 지들은 그 장갑.

 

623 술을 깨려고 갑판으로 나오는 주정뱅이들. 속엣 것을 바다에 토해낸다. 그걸 주워 먹으려 처어들이 몰려든다. 구역질.

 

626 ! 그 아가씨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나도 이제 그리 젊지가 않아.

è 블룸이 거티의 생각을 하기까지, 엄청나게 쓸데없는 잡념의 바다를 헤집고 왔다. 마치 고향에 남겨둔 아내에게 무심한 선원처럼.

è 거티가 블룸의 머릿속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627 또 박쥐다. 뭐 괜찮아. 그냥잠시 동안만

è 박쥐의 상징성. 날개 달린 쥐. 이는 뱀에 날개가 달린 용과 같은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용이 뱀과 날개 이상의 의미를 가지듯이 박쥐의 에피파니는 신성해지나? 박쥐는 그냥 박쥐일 뿐인데 그래서 그 의미의 무의미함이 대범한 것인지도.

è 뭔 소리지?

 

소녀여 너의 소녀다운 하얀 다리 안쪽 더러운 코르셋 끈을 보고 난 사랑을 하고 끈적끈적해졌다

è 더러워서 더욱 흥분되는

è 에피파니는 어떤 면에서는 변태성이다. 이 변태성을 정의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è 예전에 자신의 여신처럼 아름다운 아내에게 고전 그림 속 여신에게는 없는음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8년 동안 그녀와 관계를 하지 않다가 파혼 당한 귀족의 이야기가 있는데 자세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18 페넬로페

 

è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항상 궁금했었다. 왜 페넬로페는 정절을 지켰던 것일까?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그녀는 정말로 오뒷세우스를 사랑해서 정절을 지켰을까? 아닐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남은 자신의 인생을 버릴 이유는 없다. 그녀가 정절을 지킴으로서 얻을 수 있었던 이차 이득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하게 한다.

è 페넬로페는 심지어 오뒷세우스가 돌아왔을 때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1131 그녀의 개가 내 음모 냄새를 맡고 노상 내 속치마 밑으로 들어가려고 했었지 달거리가 있을 때에는 특히 그랬어

è 개는 순진하니까 개를 내버려두면 그 생명체는 무엇을 하고 싶어할까?

 

133 여자들이 나만큼이라도 그이를 알아야 하는데

è 한 남자의 정액의 냄새까지 알고 있는 여자

 

1134 가터벨트가 있는 곳까지 보여 주고 그 소년의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게 해 주어야지 물그러미 쳐다보면서 유혹하는 거야 뺨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몇 시간이고 손장난만 할 그런 소년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나는 알아

è , 이 여자는 개시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다 큰 여자의 증거.

 

1135 세상에서 뭐라 하든 중요한 것은 처음 뿐이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어서 그런 일은 생각지도 않아

è 사랑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그녀의 지나치게 간결한 결론에 울고 싶어진다. 나만 억울한 것도 아닌데.

 

1139 나는 손과 팔이 가루투성이어서 기분이 언짢은 체하고 있었지

è 매우 사소한 부분이지만 기가 막힌 눈치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 핑계를 알았단 말인가?

 

1141 결국 못 찾았는데 어떤 도둑년이 가져갔을거야.

è 조이스는 100% 여자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1143 비에 젖은 그가 정말 커다란 바보처럼 보였어 그이의 멋진 치열을 보고 있자니까 나는 배가 고팠어 그리고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니 내가 입고 있는 방사형으로 주름이 잡힌 오렌지색 속치마를 걷어올려달라고 했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고 그이는 말했지

è 왜 그의 고른 치열을 보니 배가 고팠을까?

è 이미 익숙한 전개에 마리온은 긴장이 풀린다. 그래서 배가 고프다?

è 더 적절한 해석은 마리온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 역시 성적으로 흥분으로 달려간다. 성의 중추는 식욕과 매우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그녀는 동시에 식욕을 느낀다.

 

1148 세상 사람들은 가와 내가 결혼한 사이라고 생각할 거야 아 모두 죽어버리라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는 부자지만 결혼할 상대는 아냐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를 빼앗아도 좋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쩐지를 알면 좋지만 분을 바르면서 손거울을 보니 내 얼굴색이 약간 별로였어 하지만 거울로는 표정을 알 수가 없지

è 왜 마리온은 보일런과 바람을 피면서도 그를 거부할까? 심지어 그는 부자지만 남편에게서 그로 갈아탈 생각은 별로 없다.

è 마리온의 가치는 세속적인 것과 다르다. 그는 그저 보일런이 결혼할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보일런은 처음 시작할 때의 중요성 정도의 중요성만 가진다.

è 소설 <권태>에서는 주인공 남자인 디노에게 접근하는 17살의 체칠리아가 나온다. 체칠리아는 디노에게 처음 접근할 때는 그의 몸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디노에게 무엇을 원한는가는 정확하지 않다. 결국 디노는 자신의 부자인 것을 어필하며 체칠리아에게 매달리지만 체칠리아는 끝내 디노의 것이 되지 않는다.

è 아 왜지?

 

1151 깜둥이 것을 시험해 보고 싶어.

è 이 성적 욕망을 공유하는 여성이 의외로 많다.

 

그럴 때는 그 여자의 a-e 라고 쓰는데 바보가 아닌 바에야 누가 그걸 모르겠어 나는 그런 고리타분하고 젠체하는 태도는 싫어 상스런 얼굴을 하고 말야

è 조이스의 견해 그대로다.

 

1155 결국 그이가 브레이디 박사를 찾아가서 아트로핀을 처방받아 왓지 나느 그이에게 젖을 빨게 해야만 했어 아주 딱딱해져서 그이는 우유보다도 맛있고 진하다고 말했지 그러고 나서 나에게 그것을 짜서 차에 타 달라고 했어 정말 황당하지

è 이것도 생의 경험일까?

 

1155 개중에는 그것을 할 때 여자가 얌전하게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è 나도 이 편이 편할 것 같다

 

1159 그분들이 가 버리고 나서는 죽을 만큼 따분했지 나는 미치광이처럼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어 하지만 어디든 안락하겠어

è 페넬로페는 수절을 한 대표적인 여성인데, 어째서 마리온은 페넬로페에게 대입되는 것일까?

è 따분해 미치는 것 때문에?

è 혹 페넬로페는 결혼을 오뒷세우스와 하였을 뿐, 자신의 집에 있는 구혼자들을 내쫓지는 않았던 남성편력가였을까? 하긴 나도, 그토록 재력가의 집안이었던 페넬로페가 왜 구혼자들을 자신의 집에서 내쫓을 힘조차 없었는지 늘 궁금했었다. 조이스도 역시 이 것을 의심한 것일까?

è 마리온은 남성편력가였는가? 그녀는 여러 남자와 관계를 했으니 그렇게 불릴만도 하다. 그러나 매력적인 여성에게 이 정도의 남성 역사는 그리 드물지 않다. 마리온이 단지 육체까지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와 다른 매력적인 여성을 구별해야 하나?

 

1163 나는 키스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몇 번이나 내 무릎을 그이에게 밀어붙였지.

è 마리온은 용감한 여성이다. 그녀가 만약 남자로 태어났고 그녀의 상대들이 여성들이었다면, 마리온은 남성들의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è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런 경험을 자신의 순결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한다.

 

1167 어머 미안해요 4륜마차인 줄 알았는데 손수레였군요

è 그러나 마리온은 개의치 않는다.

è 어쩌면 마리온이야말로 나의 영웅이 아닐까?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1169 어디에 있더라도 방귀를 뀌면 늘 기분이 좋아

è 솔직함의 결정체. 방귀는 배설의 일부.

è 아이들은 배설 동화를 매우 좋아한다. 항문기의 특성. 처음 아이들은 자신이 눈 대변을 인식하면 매우 즐겁고 신기해한다. 그리고 배변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대변 보기를 참았다가 한 번에 보기도 한다.

 

1174 남자가 그런 식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이 아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임에 틀림없다고 하지만 요즈음 그런 남자는 드물어

è 어느 세대에나 그런 남자나 그런 여자는 드문 법인 듯

 

1177 그런데도 남자들이란 침대 위의 얼룩을 찾으려 하니 내 참 상대가 처녀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지 사내들은 모두 그런 것에나 신경을 쓴단 말야 남자는 참 바보들이야 과부라도 아니면 40번도 더 이혼한 여자라도 붉은 잉크만 조금 바르면 돼

 

1177 이 털을 몽땅 깎아버릴까 거기가 얼얼하니 말야 그러면 아마 나이 어린 소녀처럼 보일거야

è여성판 페넬로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새벽에 이 글을 읽을 때 잠이 확 달아나겠지?

 

1183 그런데 그이는 하는 방법이 서툴러 자기 즐거움만 생각하고

è 이런 남자가 최악이다.

 

1186 어째서 시인들은 그런 식으로 살까

è 간만에 큰 웃음. 제임스 조이스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 제임스 조이스 식의 농담인가?

 

1188 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고 내 엉덩이를 그토록 철썩 때리다니 시와 양배추도 구별 못해 무식한 남자 너무 감싸주면 이런 꼴을 당하는 거야

è 왠지 두 사람 다 이해가 되지만 마리온을 응원해주고 싶다.

 

남자들은 어디서나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를 고를 수 있어 남편이 있는 여자건 바람난 미망인이건 숫처녀건 간에 아이리시거리 뒷골목에서 처럼 입맛에 맞는 여자를 골라 평생 사슬에다 묶어 두려고 해 나는 사슬 따위에 묶이지 않으니까 조금도 무서울 것 없어 일단 시작하고 나면 바보 같은 남편들의 질투 따위가 뭐가 무섭겠어

è 나는 제임스 조이스가 마리온의 입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è 조이스는 바람을 피우지 않았을까? 그는 심지어 법적 결혼도 아주 늦게 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1190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은 바로 자기 아내에게로 돌아가는 거야

è 아하! 여기에서 왜 마리온이 페넬로페인 줄 알 수 있다. 우리는 페넬로페의 정절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왜 페넬로페는 10년 동안 정절을 지켜야 했을까? 그 이유는 10년 동안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칼륍소와 함께 있었다. 남자의 모험이 정당화될 때 페넬로페는 그의 여정을 집에서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

è 페넬로페는 돌아온 오뒷세우스를 보며 이 인간을 죽여, 살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미 구혼자들은 다 죽은 상태였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190 그들은 여자이가 어머니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떻게 그것을 알 수가 있겠어

 

1194 우리 여자들이 이 눈물의 계곡에서 저지르는 죄악이 그것뿐이라면 그것이 대단찮은 일이라는 걸 하느님은 아셔 누구나 다 하고 있잖아 다만 그 사람들은 그것을 감추고 있을 뿐이야

 

1197 그이가 내 향기로운 유방에 닿을 수 있도록 그래 그이의 심장은 미칠 것처럼 뛰었지 그리고 그래 나는 네라고 말했어 좋다고 말야

è 하도 에이퍼니다운 연꽃의 진흙탕에서 뒹굴다보니, 마지막의 이 라는 단어가 극적으로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대비의 효과일 테다.

è 마르케스와 무엇이 다른가? 마르케스는 신화의 시점을 현재로 옮겨놓은 것이고, 조이스는 현재 그대로에서 신화를 본다.

è 어째서 그는 상징과 수수께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나? 아마 조이스는 수수께끼를 만드는 비기를 깨달았던 것.

è 있는 그대로 쓰기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은 모든 상징을 내포한다. 만약 내가 머리를 쥐어뜯는다고 하자. 그것은 변화를 참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è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의 일부를 묘사하는 것. 예술가와 비평가. 예술가는 문제를 내지만 반드시 답을 알고 있지 않아도 된다. 답을 찾아내는 것은 비평가의 몫.

è 우리는 조이스의 눈을 통해 삶을 탐구하는 중. 조이스는 언어의 연금술사인가?

è 우리는 왜 조이스가 보던 것을 보지 못하지?

 

 

 

 

 

 

 

 

 

 

 

 

 

 

 

 

 

내가 저자라면

 

 

 

 

제임스 조이스가 원래 알아먹기 쉬운 책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안심시켰다. 연구원 중 한 사람은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그냥 죽죽 읽어 나가야 합니다.” 나는 마음 편히 그의 책을 읽었다. 생의 경험이 조이스보다 조금 늦은 탓이었을까? 나이 20살과 30살에 읽는 조이스는 이해의 깊이가 달랐다. 어쩌면 신화들을 탐독한 이후 조이스를 만났기 때문이리라. 나는 연구원 프로그램의 유기적인 종적 횡보가 꽤나 흡족하였다.

 

내가 저자라면.

 

내가 제임스 조이스라면 좋을 것이다. 그는 천재성을 타고났다. 내가 9살 때, 나 역시 꽤나 똑똑한 축이었다. 5살에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웠는데 그것은 내가 평소 생각하던 방법 그대로였으므로 신이 났다. 8살에는 구구단을 등차수열의 원리를 이용하여 외우지 않고 바로 낭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조이스와 같은 수준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초등 학교 시절, 시짓기 대회에 나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꽤나 진지했었고 동심을 끌어올려 내 나름의 라임대로 시를 써냈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나의 시를 공개하자, 부모님은 그 유치한 시작에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는 영 버린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제임스 조이스를 보니, 세상에 이토록 위대한 자가 있었다니! 정말 나는 빨리 접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내가 천재의 작품에서 무엇을 지적할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함을 느낀다. 글쎄, 알아듣기 쉽게 좀 더 쉽게 써달라고?

제임스 조이스의 문체를 두고 반문체라고 하는 것을 읽었다. “의 말장난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쿤은 자신의 사상이 비과학적이라는 말에 당황하며 차라리 반과학적이라는 말이 더욱 타당하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과학이 아닌 것이 아니라 과학이기를 거부하는 반과학, 그리고 독자에게 이해받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수수께끼를 남기는 반문체.

그래서일까?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명품백처럼, 아니면 아리송한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정보가 증폭되는 곳에는 가치가 폭등하기 마련이다. 학자들은 제임스 조이스 앞에 모여들었다. 저기 뭔가 천재가 싸놓고 간 엄청난 배설물이 있어. 우리는 이것을 빨리 해체시켜야만 해. 그래야 직성이 풀리니까.

제임스 조이스. 아직 그의 작품을 읽는 방법보다는 그의 삶의 방식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중이다. 가로등 아래로 기어들어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 가로등은 그냥 가로등일 뿐 이라고 말할 줄이야. 그나마 제임스 조이스가 기거하던 마텔로탑은 평범한 집은 아니었으니 그냥 탑으로서의 가치로도 충분한 것이겠지. 나는 더블린을 걸으며, 아 참, 여기가 조이스가 살던 곳이지 라며 의미없이 서성인다든지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이 죽음을 맞이한 전화박스에서 굳이 옛 애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지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적 습관에 매몰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 메리제인이 그에게 보냈던 답장처럼 하소연한다.

, 만약 네가 내 편지에 실망하고 평소처럼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러고자 하는 갈망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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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6 13:50:27 *.154.223.199

레몬 ^^

민태운씨의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더블린사람들>에 대한 글 잘 읽었어요. 아일랜드가 영국 식민지에 카톨릭이었군요. 어떻게 저런 걸 찾아냈을까요? 잘 읽었어요. 더블린 사람들이 단편모음집이었군요. 오호. 제임스 조이스가 천재였군요. 몰랐어요. 유치원 때 한글을 떼고 등차수열로 구구단을 외운 아이도 엄청 똑똑한데요. 저는 예비소집 때 이름 묻는 말에 대답 못해서 초등학교 한 해 꿇고 들어갔어요.-_-

 

저런 자세하고 고급스런 저자조사에, 더 골치아픈 <율리시스>를 읽어낸 이 마당에 20살 때는 읽지 못할 책이었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즈음은 너끈히 읽어낼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선택했듯 그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아내를 선택한 게 인상 깊어요. 아이를 벌어먹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해산한 지 얼마 안된 아내에게 그러던 아버지의 에피스드가 마음 아프네요. 14명을 낳아서 10명만 살아남았다 했던가요. 조이스도 책임지지 않으려 했던가요.   

 

저도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2권짜리 제임스 조이스 평전을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오긴 했는데요, 독한 그 분량에 겁 먹고 직접 읽지는 못했어요. 읽어볼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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