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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09시 41분 등록

 

율리시스 (Ulysses)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1. 저자에 대하여

제임스 조이스 1882~1941.jpg 

 제임스 조이스 1882~1941

 

<젊은 예술가 조이스의 어린시절>


 조이스는 1882년 존 스태니슬로스 조이스(John Stanislaus Joyce)와 결혼 전의 성이 머리(Murr ay)였던 메리 조이스(Mary Joyce)사이에서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형제가 아주 많았는데 조이스보다 먼저 태어났던 형 존은 태어나자 마자 죽었고, 그밖에 17명의 형제 중 7명도 존과 마찬가지로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17명에 형이 포함된 숫자인지 빠진 숫자인지 정확하지 않다.)


 조이스 가족은 잠시 해변도시인 브레이에서 살긴 했지만 대부분은 더블린 남쪽 근교에서 안락한 중산층의 생활을 즐겼다. 조이스는 어린시절 가정교사(코크 출신의 ‘단테’ 헌 콘웨이(Hearn Conway)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예수회 학교로 유명한 클롱고스우드 칼리지에 입학했다. 리처드 앨먼의 연구에 따르면, 만일 조이스가 예수회 학교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회 교사들의 기술에 대한 신념이었으며, 이는 그가 그들의 가르침을 거부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


 클롱고스우드에서 조이스의 시작은 힘들었다. 하지만 곧 두각을 나타냈다. 학급 수석을 하며 콘미 신부의 격려를 받으며 공부했다. 제임스의 기억력은 확실히 좋았다. 운문이나 산문을 빨리 기억했고 시각적 장면 전체를 한 부분도 빠짐없이 머리 속에 간직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우수한 운동 선수이기도 했다. 장애물 경주와 도보 경기에서 따낸 다양한 우승컵을 클롱고즈에서 집으로 가져왔고 다른 소년들보다 어리고 체격이 작았음에도 크리켓 역시 굉장히 흥미 있어 했다. 조이스는 여러 가지 일에 뛰어났다. 스필리킨즈(짚인형)라는 게임에서는 그를 따를 아이가 없었다. 연극, 노래, 피아노 연주 등 못하는 것이 없었다.


 이 시절 조이스 집 건너편에 살았던 친구 아이린 반스의 아버지가 발렌타인 데이에 조이스에게 아이린이 보내는 것이라며 선물을 보낸 적이 있다. 그 선물엔 사무엘 러버(Samuel Lover)의 시를 변형해서 이렇게 써놓았다.


 오, 지미 조이스 당신은 나의 사랑이에요

 당신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나의 거울이죠

 나는 차라리 돈 한푼 없는 당신을 택하겠어요

 당나귀와 정원이 있는 해리 뉴월보다는.


 이 사건 이후로 아이린과 같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조이스는 이 시를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율리시스>>에 삽입했다.

 규율이 엄격하고 남자 아이들로 가득 찬 학교에서 그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혼자서 몇몇 어려운 과목을 공부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그려져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이스가 받았던 학교 수업은 집안 사정 때문에 곧 중단되었다. 조이스의 가족들은 그때까지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해왔었다. 그의 집안이 기본적으로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존 조이스가 1880년부터 지방정부의 세금징수원으로 근무하면서 상당한 급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891년 다니던 직장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존은 직장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수입이 끊기게 되었고, 그 후 가세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기울었다. 조이스는 3학년 때 클롱고스우드를 자퇴하였고, 가족들은 브레이에서 다시 더블린으로 이사를 왔다. 이때 가세가 기울어감은 파멸을 겨우 피할 정도였다. 항상 위기가 감돌았던 이 집의 가정 생활에 대한 관념은 제임스 조이스의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다. 그는 그러한 일들에 대한 무관심을 조심스럽게 연마했으며 열두 살의 나이에 이미 가정의 폐허 사이를 마치 고고학자처럼 민첩하게 빠져나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가정의 혼란과 불확실성, 난무하는 폭력의 와중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강력한 성적 욕망과 싸워야 했다. 열두 살 무렵 그는 성적 욕망이 내면에서 생겨나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열네 살이 되던 1896년에 처음으로 사창가를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그 후 해방감과 죄의식 사이에서 심하게 갈등했다. 비록 묵상하고 성적 타락에 대해 고해성사를 했지만 그의 신앙심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교회에 발을 끊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와 어머니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그는 벨베디어 시절에 여러가지 책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에르크만과 샤트리앙의 향수에 젖은 소설을 읽었으나 학창 시절이 끝날 무렵에는 입센의 냉소적인 희곡을 읽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그가 말했듯이 그의 영혼은 그것을 감싸고 있던 수의를 벗어버리고 소년 시절의 무덤에서 벗어났다. 그의 수의는 조이스가 즐겨 사용했던 기독교 이미지의 기묘한 재평가에 의해 교회에 대한 그의 충성을 의미했다. 그리고 조이스의 부활은 소생한 신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부활인 셈이었다. 그는 격렬한 변화를 겪으면서 음울함과 초연함을 지니게 되었지만 몇몇 친구들에게는 자신의 즐거움, 솔직함, 넘치는 듯한 젊음을 보여주었다.


<1902년 작가들과의 만남_조이스 인생에서 인상 깊었던 사건/리처드 앨먼의 책 <<제임스 조이스-언어의 연금술사>> p179~198 참고 및 인용>


 1902년 여름에 그는 더블린 문학 서클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먼저 가까이 하기 쉽고 관대하며 예이츠와는 달리 항상 더블린에 있었던 조지 러셀을 만나러 갔다. 러셀은 당시 서른다섯으로 문예부흥의 원로 중 가장 나이가 어렸고, 예이츠는 서른일곱이었으며 무어는 그레고리 부인과 나이가 같았다. 러셀의 신비주의와 용감하게 맞서는 장황한 요설 때문에 의심 많은 사람들은 그를 바보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는 영리했다. 그가 쓴 시는 최상은 아니었다 해도 재능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안목도 갖고 있었고, 비평에서도 비상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조이스는 아마 충동적으로 그랬겠지만 8월 초 어느 날 밤 열 시에 러셀을 방문했다. 노크를 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러셀이 돌아올 때까지 거리를 서성거렸다. 자정이 되어서도 조이스는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러셀은 그를 흔쾌히 안으로 들어오게 했고 조이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했다. 뜸을 들이다 조이스는 수줍게 말했다. 아일랜드에서 한 화신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아마도 조이스는 자신을 가리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때 러셀은 조이스에게 조이스의 시를 읽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조이시는 자신의 시들을 몇 편 읽어주었다. 러셀은 그 시들이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후에 아주 유쾌하게 기억하기를) “당신은 한 세계를 만들어낼 만큼 혼돈스럽지 않아요”라고 결론지으며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형식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러셀은 의식의 몇 가지 단계에서 조이스의 계획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동양 철학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많이 지니고 있었고, 아울러 이것은 다른 작가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러셀은 조이스와의 만남 이후 사라 퍼서, 토머스 모셔, 무어, 예이츠 등에게 편지를 쓰며 그의 존재를 알렸다. 이것은 조이스가 원한대로 된 것이었다. 


 조이스는 예이츠를 국립도서관 근처의 길에서 좀더 사적으로 우연히 만나기 원했다. 그래서 러셀이 일러준 대로 하지 않고 국립도서관 근처에서 만나 카페로 갔다. 이들의 만남은 하이네와 괴테의 만남처럼 현대 문학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불완전한 신교도와 불완전한 카톨릭교도의 대면이었고, 토지 없는 지주와 융통성 없는 소작인의 만남이기도 했다. 런던에서 갓 돌아온 예이츠는 조이스가 알지 못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반면 조이스는 예이츠가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이 도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율리시즈>>의 세계이자 조이스의 성장 배경이기도 한 소시민의 세계는 예이츠에게는 버려야 할 세계였다. 조이스 또한 예이츠가 이상화한 무지한 소작인과 속물적인 귀족 모두를 경멸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교육과 기호에서 서로 거리가 있었다.


 예이츠는 확신에 차있고, 자신이 했던 모든 일에 대해 반대 의견을 말한 조이스의 말을 선의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극장에서 공연할 극을 하나 쓰도록 권했다. 조이스는 5년 만에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5년을 이내 10년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이츠는 조이스의 작품 몇 가지를 가지고 간 후 읽어보고 칭찬했다. 예이츠가 조이스를 칭찬한 글을 보면 조이스의 작품과 개성이 얼마나 강력하고 즉각적인 인상을 유발해냈는가를 알 수 있다.


 예이츠와 러셀의 소개로 조이스는 그레고리를 찾아갔는데 그녀는 시를 읽는 그의 방식에 매혹되었으며 그의 무례한 태도를 대체로 묵인했다.


 이렇게 아일랜드의 유명 문인들과 접촉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조이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902년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하고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그리고 생계는 영어로 가르치면서 해결하기로 하고 파리로 향했다. 파리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레고리 부인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며 파리로 갈 준비를 끝내고 갔다.


 하지만 이내 1903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왔다. 조이스는 그 다음 해까지 더블린에 머물렀다. 그는 계속해서 여러 편의 서평을 썼으며, 나중에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된 자전적인 소설 <<스티븐 히어로(Stephen Hero)>>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조이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르면서 더블린 거리를 활보했다. 이들 중에는 올리버 고거티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훗날 한동안 마텔로 탑에서 그와 함께 기거하기도 했다. 고거티는 <<율리시스>> 속에서 벅 멀리건이란 인물로 등장한다. 1904년 노라 바너클을 만나면서 조이스의 인생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변하게 되었다. 조이스는 그녀와 함께 여생을 보냈다.



<노라 바너클과 사랑/리처드 앨먼의 책 <<제임스 조이스-언어의 연금술사>> 제17장 참고 p516~p528>


 노라 바너클이 조이스를 처음 만난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그녀는 골웨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사실상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집에서 도망쳐 나온 후 더블린에 있는 핀 호텔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었다. 노라는 약속했던 첫 번째 데이트에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조이스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은 그 후 1904년 6월 16일 다시 만나게 되었고 함께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처음 조이스가 노라 바너클을 만났을 때,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조이스는 노라가 그의 여왕, 그의 여신까지라도 되어야 했었다. 노라의 사랑을 송두리째 얻어내고 그녀의 완전성을 증대시키려면 그는 자기의 최악의 상태까지도 그녀가 받아주리라는 것을 확신해야 했다. 두 사람 사이의 연분에 대한 법적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그녀를 아내라고 부르지 않고 아내로 삼음으로써 그녀를 시험했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에게 여러가지 점에서 불효를 하면서도 자신이 자식이라는 것을 인정케 하려는 것과 가았다. 노라 바너클은 두 사람의 유대가 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것임을 확실히 인식함으로써 이 시험에 쉽게 합격했다. 그녀는 그의 모든 충동을, 설령 그것이 해괴한 것일지라도 인정하고, 그녀 자신 안에서 찾아낸 모든 생각, 특히 가장 당혹스러운 생각을 그에게 털어놓음으로써 그의 솔직함에 어울려야 했었다. 조이스는 1909년 마지막 시험을 그녀에게 치르게 했고 그녀는 그 시험에 무사 통과했다.


 훗날 조이스는 이 시기를 떠올리며 노라 조이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당신이 나를 남자로 만들었소.”라고 썼다. 이날은 <<율리시스>>에서 블룸이 더블린에서 스티븐 디덜러스를 만나는 날인 ‘블룸즈데이(Bloomsday)’로 문학사에 영원히 남았다.


 1905년 노라와 조이스의 아들 조지오가 태어났다. 일 년 후에는 <<더블린의 사람들>>이 완성되었고 <<스티브 히어로>>를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개작하기 시작했다. 조이스의 설득으로 스태니슬로스(조이스의 동생)가 트리에스테로 건너와 조이스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다. 조이스는 버는 돈을 모두 술값으로 탕진했지만 그들의 재정 상태는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1907년에는 노라가 딸 루시아를 낳았다.


 1909년과 1914년 사이에 조이스 가족은 여러 가지 목적으로 더블린을 방문했다. 친척도 방문하고, 돈도 벌고, 과거에 성공하지 못했던 사업도 시작하고, 그리고 그의 작품이 출판되는 것을 보기위해서였다. 그러나 <<더블린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작품 속에서 그 도시와 시민들에 대해 좋게 그린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에 사용된 몇몇 주제는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빗발치는 삭제 요구와 소송건 때문에 조이스는 두려움을 느꼈다. 191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출판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에고이스트>>에 연재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조이스의 옹호자이자 후원자였던 <<에고이스트>>의 편집자 헤리엇 쇼 위버는 그에 대한 관대한 마음을 그가 죽는 날까지 계속 유지했다.  1915년 조이스 가족은 아일랜드를 떠나 취리히로 옮겨 갔고, 그 후 다시는 아일랜드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작의 탄생과 마지막으로 향하는 인생>


 조이스의 대작인 <<율리시스>>는 1914년에 씌여지기 시작했으나, 1918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에즈라 파운드와 헤리엇 쇼 위버의 도움으로 <<리틀 리뷰>>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다시 그 일은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1921년 법원에서는 음란하다는 이유로 그 작품의 연재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922년 실비아 비치가 소유한 서점인 ‘셰익스피어&컴퍼니’에 의해 조이스 가족이 살고 있던 파리에서 최초로 완성본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1934년, 영국에서는 1936년이 되어서야 출판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조이스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조이스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수술을 했지만 녹내장이 악화되어 눈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관절염에 의치까지 그의 육체는 점점 약해져갔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환경 속에서 <<피네간의 경야>>를 계속 집필했고, 1927년 <<한 푼짜리 시들>>을 출판했다.


 1931년 조이스와 노라는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따.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 기간에 아버지 존 조이스가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죽은 후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출판하고 그에게 돈을 부치지 않은 데 대해 깊은 죄책감과 슬픔에 빠졌다.


 1932년에 그에게 더 슬픈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바로 그의 딸 루시아에게 정신분열증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조이스는 루시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융의 심리학 강의도 듣고, 관심과 치료를 기울였지만 딸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1932년 노샘프턴 병원에서 그의 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1939년에는 <<피네간의 경야>>가 런던과 뉴욕에서 출간되었지만 독자들은 무관심했고 작품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1941년 1월 7일부터 나타난 위경련 증상으로 고생하던 조이스는 1941년 1월 13일 2시 15분에 십이지장 수술 후에 생긴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리처드 앨먼이 연구한 제임스 조이스>


 리처드 앨먼은 제임스 조이스의 문장이 대단히 순차적이고 내재성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내재성의 원칙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조이스의 작품을 읽을 때 조이스의 내재율에 얼마나 빨리 젖어 드는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하는데 나는 과연 <<율리시스>>의 4장, 13장, 18장을 읽으면서 그의 내재율에 빨리 젖어 들었을까? 부분 부분 젖어 들었던 것 같긴 하지만 아직 완벽히 젖지는 못한 것 같다. 처음 접했기 때문에 자책하지는 않는다.


 리처드 엘먼의 저작 <<제임스 조이스-언어의 연금술>>는 이른바 제임스 조이스 평전으로는 결정판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조이스 연구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조이스를 연구하는 데 비켜갈 수 없는 유명 저작이기도 하다. 저자 엘먼은 미국 예일대에서 문학사를 전공한 뒤, 하버드·예일·옥스퍼드 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일했다. 엘먼을 조이스 연구의 선두에 올려놓은 저작이 바로 이 <<제임스 조이스-언어의 연금술사>>다. 1959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1982년에 그간의 연구와 자료를 추가한 개정판이 나왔다.


 조이스 문학이 왜 그리 시시껄렁할 수도 있는 입담과 선병질적인 심리의 흐름을 좇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조이스의 삶을 토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의 중요함·정당함’을 최초로 적어낸 조이스 문학이 작가의 삶과 어떻게 관련 맺는가를 실증적인 방법으로 밝혀낸 데 있다. 저자는 1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조이스의 대표작 ‘젊은 예술가의 초상’ ‘피네건스 웨이크’ 등이 조이스의 실제 체험과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다양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밝혀내고 있다.


 핵심은 삶과 문학의 관련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삶’에 눈돌린 첫 문학인 조이스의 글쓰기가 자신의 삶 중에서 어떤 부분을 글쓰기의 중요한 부분으로 옮겨가고 있는가이다. 하찮은 도시인에게 영웅의 무게를 실어준 것은 조이스가 처음이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평범한 것의 정당화’를 그리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다. 그러나 조이스가 쓰기 전까지는 아무도 평범이란 것이 진정 무엇인지 몰랐다. (리처드 앨먼의 말)


 이를테면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등을 장악하고 있는 아일랜드 뒷골목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과 그들의 심리에 대한 세세한 추적이 조이스의 소설에 주요 구성요소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조이스의 언어는 이미 선체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물의 모습을 세세한 일상들여다보기를 통해 일궈내고 있다. 일상의 모습, 이를 세세하게 추적하는 시선, 시선을 좇아가는 언어를 통해 조이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주요한 문학적 주제로 부상시키는데 성공했다.


 조이스가 보통 사람의 인생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예술가의 인생, 특히 조이스 인생은, 나날의 사건이 그의 현재의 관심을 지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예술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다. 그는 흘러가는 나날들을 기억의 저편에서 소멸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형성했던 체험을 다시 한번 재구성한다. 그는 포로인 동시에 해방자이다. 체험을 재형성하는 과정은 그의 인생의 일부이자 일어나고 잠드는 것과 같은 되풀이되는 사건들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나쁘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조이스만큼 천재로 인정받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불만과 비난을 불러일으킨 작가도 흔치 않다. 그는 그의 동포인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외설적이고 거의 미친 작가였다. <<율리시즈>>의 판금을 가장 마지막에 푼 것도 아일랜드였다. 영국 사람들에게 그는 괴짜이자 ‘아일랜드적인’ 작가였다. 그러나 이 ‘아일랜드적’이라는 수식어는 지난 70년 동안 아일랜드인들이 생산해낸 문학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위험스러울 정도로 ‘영국적’으로 들린다. 가장 호의적으로 그를 받아들였던 미국 사람들에게 (하지만 조이스는 이 나라를 싫어했다.) 그는 대단한 실험자이자 대도시인이지만 너무나 냉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한편 조이스는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았고, 프랑스인들에게 문인이라고 불리기에는 세련된 합리주의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는 분명 그에게 못 미치는 작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현대 시라면 엘리엇, 현대 예술이라면 피카소를 생각하는 것처럼 조이스의 이름은 현대 산문과 불가분하게 관련되지만 세평의 풍향은 바뀔 수도 있다. 오늘날 피카소가 유행하고 있듯이 훗날 조이스가 그렇게 될 것이다.


<<율리시즈>>나 <<피네건스 웨이크>>가 무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인류의 미래가 덜 불길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낙천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조이스는 시대의 변두리에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그는 중심에 있었다. 홀로 떨어져서 그는 아담과 이브에서 대디 브라우닝과 피치 브라우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썼다.


<<율리시즈>>의 블룸의 배후에는 호메로스의 신화가 떠돌면서 작품의 흐름을 끊임없이 바꾸어놓고 있다. 조이스는 때때로 라블레만큼이나 대담하기도 했지만 대담함을 그의 현저한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코엔 J.M. Cohen이 시사하듯이 좀 더 기본적인 유사점은 사물을 통해서 언어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사물에 이르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마도 단테였을 것이다. 그는 단테와 마찬가지로 지방적이며 용의주도한 통찰력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테의 천국과 지옥, 죄와 벌을 제쳐놓고, 발자크처럼 자신의 희극을 인간적인 것으로 유지해나가고 단테가 벌을 주거나 무시했을 세속의 무질서한 삶을 사랑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주요 작품 3편 분석을 통해 그를 더 알아보자>


 <<더블린 사람들>>


 <<더블린 사람들>>은 1904년과 1907년 사이에 씌여진 열다섯 편의 작품을 모은 단편소설집이다. 열다섯 편 중 세 편은 1904년 <<아이리시 홈스테드>>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머지 작품은 1914년이 되어서야 열다섯 편을 묶은 하나의 단편집으로 출판될 수 있었다.


 1906년 그랜트 리처드가 그 작품들을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작품 속의 몇몇 표현과 이미지 때문에 출판업자들은 신성모독과 명예훼손을 두려워했고, 이 때문에 8년간이나 출판 여부를 놓고 고심해야만 했다. 출판업자들은 작품을 부분적으로 수정해 달라고 했지만 조이스는 거절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속된 요구에 조이스는 결국 동의했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이 책에는 조이스가 심혈을 기울였던 구두점까지 그대로 나타나 있다. 조이스는 대사를 삽입하는 부분에서 인용부호 대신 대시 부호(-)를 사용했는데, 조이스 자신은 이것을 ‘변형된 콤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더블린 사람들>>이 우여곡절을 겪은 이유는 작품에 나타나는 도시의 지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시의 지형이 아주 정확하면서도 세밀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도시와 시민들에 대한 묘사도 실제와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이스는 그가 본 도시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마비를 있는 그대로 그려 내려 했다. 그의 작품 속에 더블린은 침체된 곳이요 사람들은 그 안에 갇혀 있었다. 희망도 없고 시민들의 야심도 좌절됐다. 특히 이런 모습은 <이블린>이라는 단편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블린은 가게에서 주로 힘든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인데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두 명의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 그녀는 그녀의 미래를 생각한다. 결혼을 하여 집을 떠나는 것이 그녀의 미래 모습이고, 이블린은 결혼을 하기만 하면 그동안 자신이 갈망해 왔던 인간적인 존중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더블린 사람들>>에서는 의존적이고 책임을 떠맡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결혼 생활에서도 그대로 되풀이 되어 나타난다.


 이런 요소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더블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가르침과 사회적인 기대 때문에 억압되어 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조이스가 이 작품을 쓴 의도는 바로 다음과 같다.


 “자신이 잘 닦아 놓은 거울을 통해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더블린 사람들>>의 구성은 유년시절에서 시작된 연대기적인 전개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도덕적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를 그린 단편들을 통해 우리는 등장인물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다. 조이스는 등장인물들이 경험했던 유년기의 경험에서부터 이들이 중년기에 접어들어 느끼게 되는 인생의 절망과 좌절을 표현하고 있다. 단편 작품마다 반복해서 환멸감을 드러냈다. 이것은 <<더블린 사람들>>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주제이다. 유년기의 내적 경험을 다룬 세 편의 이야기에 이어 <이블린>으로 시작되는 청소년기를 다룬 네 편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뒤에는 장년기의 삶에 초점을 맞춘 네 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다음 세 편의 작품은 개인보다는 공동체 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공적인 관심사를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에 나오는 <죽은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


 현현, 혹은 계시를 뜻하는 에피파니는 ‘어떤 것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왔으며, 기독교에서는 동방 박사 매기의 방문으로 상징되는 구세주의 발견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피파니_이 단어는 조이스가 어떤 경험이 그것의 내적 의미를 드러내는 순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였다.)조이스는 어떤 순간에, 하나의 동작 속에서, 한마디 말 속에서, 하나의 생각 속에서 갑작스럽게 진실을 깨닫거다 자각이 일어난다는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조이스는 독자들에게 도덕을 설교하거나 어떤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에게 문학의 목적은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가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독자는 관찰하고 추론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은 철학 논문이나 도덕적 입장의 진술서가 아니었다. <<더블린 사람들>>에서는 작가의 일관된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되며, 독자들은 다른 관점에서 그 사건을 보게 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1904년에 접어들면서 조이스는 글을 써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더블린 사람들>> 중 세 편의 단편이 출판되었으며, 조이스는 <<스티븐 히어로>>라는 자서전적인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1906년에 중단되었고, 그 후 지금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씌어졌다.


 <<스티븐 히어로>>는 좀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쓰인 작품이라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분량이 짧을 뿐만 아니라 경험한 것의 정수만 뽑아 담고 있기 때문에 좀더 압축되어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스티블 다이달로스(Stephen Daedalus)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스티븐’은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 이름이다. 그는 교회의 권위보다 그리스도의 권위가 더 위대하다고 주장하다가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은 사람으로, 그 어떤 시련이나 감금에도 굴하지 않았다.


 다이달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스 왕의 명을 받아 미노타를 감금하기 위한 미로를 비롯해 크레타 섬에 궁전을 지은 기능공이자 대장장이다.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크레타 섬에 감금된 다이달로스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갔기 때문에 깃털을 붙이는 데 사용했던 밀랍이 녹아내려 결국 바다로 떨어져 죽었따.


 반대 세력에 의해 박해받은 기독교 순교자의 이름과 미로를 만들고도 그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도망가야만 했떤 사람의 이름, 이 둘을 결합하여 조이스는 적절한 상징성을 띠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각각 번호가 붙어 있는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장을 이루는 단락에는 스티븐이 살면서 겪에 되는 사건과 경험을 시간 순으로 연속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각 단락은 스티븐이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보여주고, 그를 예술가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 전환점으로 끝을 맺는다.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말투를 점점 성숙시킨다. 그가 경험하는 생각과 반성과 통찰은 작품의 결말에서 그의 결심을 확고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의 경험과 그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를 주변 세계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더욱더 빠져들어간다. 부모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듯이, 교회와 같은 권위나 권력에 대한 그의 관점도 바뀐다. 그는 각 장에 정치적, 종교적 신념에 반대하고 어머니이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신중하게 이단적인 견해와 입장을 취한다.


 스티븐은 모든 권위를 배척했다. 적어도 그는 배척했다고 생각했다. 새로이 발견한 경건한 신앙심이 최고조에 달한 4장에 이르면, 그는 성직이 자신의 천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자신의 경험을 의식적으로 자신의 미래와 연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부분과 결말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여러 길 중에서 예술가의 비전을 지닌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분명하게 자각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는 아이러니가 곳곳에 스며있다. 스티븐은 스스로 수많은 극적 요소들을 보여 준다. 여자들과의 관계-사실 현실 세계의 엠마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와 아날 신부의 설교에 대한 반응, 그리고 스스로 자초한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이 작품은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조이스는 스티븐을 따뜻하면서도 동정심이 풍부한 인물로 묘사하고, 어떤 충동이 그를 이끌어 가는지 서술하면서 독자들이 그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날 수 있게 한다. 작가는 돈강법-우스꽝스런 효과를 내기 위해서 점강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클라이맥스로 향해 가지만 기대 이하의 것에 의해서 그 효과가 반감되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을 사용하여 과장되고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드러나는 스티븐의 겉치레를 벗겨 내려고 한다. 돈강법은 <<율리시스>>에서 다시 보게 된다.



<<율리시스>>


  <<율리시스>>가 우리 손에 오기까지 힘든 여정이 있었다. 작가가 한 권의 책을 완성하여 출판해 내는 것을 어머니가 되는 과정에 많이 비유하기도 하는데 <<율리시스>>는 태어나자 마자 너무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은 작품이다. 1918년 <<리틀 리뷰>>에 연재를 시작으로 <<율리시스>>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1921년 2월 검열에 걸렸고, 뉴욕에서의 재판 결과 음란 출판물로 판결 받았다. 이 때문에 연재는 중단되었는데 이 금지령은 1933년이 되어서야 해제되었다.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조이스는 1921년에 친구 프랭크 버젠에게 보낸 편지에서 <<율리시스>>가 완성되었다고 적었다. 1922년 2월 22일 그 작품의 초판이 실비아 비치의 ‘셰익스피어&컴퍼니’ 파리 매장에서 출판되었으며, 영국에서도 2000부가 추가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2판으로 찍은 500부는 1923년 포크스톤 풍속협회에 의해 압수되었으며, 그 후 출판이 금지되었다.


 이런 상황은 1936년까지 계속되었다. 보들리헤드 출판사에서 한정판으로 1000부를 찍는 것을 시작으로 1937년 무제한판으로 출판 될 수 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가 되어서야 영국 공공도서관에 그것도 일반 서가에는 비치되지 않은 채 <<율리시스>>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갔다. 30년 남짓 계속된 <<율리시스>>에 대한 논란은 주로 작품의 음란성과 신성모독에 관한 것이었고, 그 외에 논란이 있었다면 주로 작품에 대한 정확성과 해석에 대한 것이었다.


 조이스는 기포드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 작품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 같은 말과 퀴즈들을 감추어 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많은 교수들은 내가 의미한 바를 알아내기 위해 논의하느라고 바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나 자신의 불멸성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보다 더한 관심과 현상들이 나타났다. 매년 블룸즈데이인 6월 16일에 열성 팬들이 레오폴드 블룸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더블린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관광객의 관심도 끌었다. 또 <<율리시스>>에서 특별 고안된 메뉴에 나오는 음식을 먹고, <<율리시스>>에 언급된 음악들로 이루어진 음악회에서 음악을 듣는 일이 벌어졌다. 나도 언젠가 더블린에 가서 그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듣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러한 재미있는 축제와 더불어, 1960년대 이후 국제 제임스 조이스 심포지엄이 파리와 더블리, 취리히, 트리에스테 같은 세계적인 도시에서 개최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 계간지가 출판되기도 했다.


 <<율리시스>>는 호머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주인공 오디세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지난 주에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었는데 호머의 <<오디세이>>와 같은 내용인 것으로 알고 있다. <<율리시스>>는 6월 16일 하루 동안 일어난 이야기다. 그날 레오폴드 블룸이 한 일련의 행동과 예술가로 성장하기 전의 스티븐 디덜러스와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율리시스>>는 3권 전 1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과 제3권은 각각 3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져 있으면 제12장이 가장 중심이라고 한다. 각 에피소드는 <<오디세이>>와 대응되게 묘사하고 있다. 제1권은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것과 대응되며 제2권은 율리시스의 방랑과 대응된다. 그리고 제3권은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 이들의 귀환, 그리고 이타카의 질서 회복에 대응된다.


 <<율리시스>>를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큰 즐거움은 작품 속에서 블룸을 만난다는 것과 주어진 사실로부터 그의 성격과 삶을 상세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아주 상세히) 레오폴드 블룸은 몰디(그의 아내)에 의해서 폴디라고 불리고 있으며, 서른여덟 살이다. 유대인이며 이클레스가 7번지에 살고 있따. 광고 외판원인 그는 그날 키스 집안의 알렉산더 키즈를 대신해 신문에 낼 광고에 대한 협상을 하고 있었다. 블룸 부부에게는 사진학을 공부하는 열다섯 살 된 딸 밀리가 있다. 그녀는 멀린가에서 따로 산다. 11년 전에 태어났던 아들 루디는 생후 11일 만에 죽는다. 그 일이 있은 후 블룸 부부는 성생활을 완전히 중단했다.


 소프라노 가수인 몰리는 매니저 휴 ‘블레이지즈’ 보일런의 간리하에 순회 콘서트를 가지려고 한다. (현재 몰리의 애인) 6월 16일 오후 블룸이 외출한 사이 보일런은 이클레스 가 7번지를 방문하여 표면적으로는 순회 콘서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블룸 부인과 사랑을 나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율리시스>>는 <<오디세이>>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각 장이 어떻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4장, 13장, 18장만 다루도록 한다. (내가 읽었기 때문이다.)


 4장은 오디세이에서 ‘칼립소’와 연결된다. 블룸이 몰리에 의해 집에 잡혀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율리시스가 칼립소의 요정에 의해 잡혀 있었던 7년과 대칭을 이룬다.


 블룸이 아내 몰디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블름의 딸 밀리에게 온 엽서와 보일런에게서 온 편지가 읽혀지고 블룸이 출근 하기 전 정육점에 다녀오면서 겪은 심리 변화들을 아주 자세히 묘사해주고 있다.


 13장은 오디세이에서 ‘나우시카’와 연결된다. 시간은 저녁 8시이고 이 장면에서 블룸이 ‘시민’의 공격으로부터 도망쳐 나와서, 바위에 앉아 있는 소녀 거티 맥도웰을 바라보면서 한숨돌리고 있는 부분이다. 호우드의 한 교회에서 진행중인 미사와 해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불꽃놀이가 절정에 달했을 때 거티 맥도웰을 바라보며 자위행위를 하고 있던 블룸도 절정에 달하는 장면을 낭만적으로 묘사된 진부한 모습으로 연출한다.


 <<율리시스>>의 마지막 부분인 18장은 오디세이에서 페넬로페와 대응된다. 페넬로페의 침실을 연상케 하는 이 부분은 스티븐이 떠나고 블룸은 침대로 가서 아내 옆에 눕는다. 그녀는 그에게 하루가 어땠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가 잠이 들었을 때 독자들으니 그녀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마침표가 없는 여덟 문장 속에서 빠르면서도 음란하고, 유쾌하면서도 감각적인 몰리의 잠재의식이 그녀의 하루, 인생, 희망, 과거, 결혼생활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문학사상 가장 훌륭한 부분으로 끝맺었다. 그녀의 의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이전 두 에피소드가 무미건조한 스타일로 씌어진 데 대해 생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흐름은 소변과 월경이라는 신체적인 흐름에 의해 중간에 두 번 중단된다.


 <<율리시스>>에서 조이스는 작가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리고 우리는 스티븐이나 몰리, 블룸의 머릿속으로, 즉 그들의 의식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이런 문학 기법을 의식의 흐림이라고 한다.


 작품을 읽을 때 주의할 사항이 많은데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우리가 단서나 언급들, 비유를 찾아 가면서, 그리고 레오폴드와 몰리에게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면서 작품을 읽는다면 작품 속에서 많은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레오폴드와 몰리의 삶이 진부하면서도 직선적이고 전기적인 스타일로 씌어졌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 여러 요소들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울 뿐 아니라, 조이스의 예술가적인 비전과 작품의 전반적인 구조에 있어서도 놀라움을 준다.




 <개인적 평가>


 구본형 작가의 <<깊은 인생>>에 보면 조셉 캠벨이 좋아하는 작가 중 ‘제임스 조이스’가 언급된다. 조셉 캠벨이 우드스턱에서 5년 동안 있으면서 위대한 스승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중 제임스 조이스도 한 부분을 차지했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제임스 조이스’는 낯설지 않았으며 이번 과제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료는, 그의 책 <<율리시스-김종건 옮김,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백과사전과 같은 모양을 취한 것처럼, 방대했다. 10페이지 내외로 정리할 수 있는 삶이 아니었다. 리처드 앨먼이 1500페이지를 할애하면서까지 그의 삶과 작품을 열결시켜 연구한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제임스 조이스를 잘 모른다. 그에 관한 자료를 들춰보고 발췌하면서 알게 된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를 모두 알았다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는 인간의 의식, 내면을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선수였다는 점이다. 나는 <<율리시스>>의 18장을 읽으면서 그가 내 뇌 속에 들어 왔다가 나간 기분을 느꼈다. 몰리의 의식흐름을 마침표 하나 없이 써내려간 것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의식을 따라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인데 사실 같다. 제임스 조이스는 남자인데 여자가 쓴 것 같다. 읽기 시작하고 나니 계속 읽혀졌고 다 읽었다. 하지만 몰리의 의식 속에 있는 ‘그’가 여러 명이어서 정확히 ‘그’를 파악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모든 의식을 따라 잡을 수 없듯이 흘러가게 하고 나니 뭔가 다 이해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제임스 조이스에 대한 연구를 깊이 들어가지 못했을 때 (지금도 깊진 않지만) 한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딱 두 가지 삶 밖에 없다. 제임스 조이스처럼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가? 땡전 한 푼 없이, 아니면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알아주지 않지만 재벌의 삶을 살 것인가?”


 나는 그때 조금 생각해보고는 “제임스 조이스!”라고 선택했다. 섣불렀던 선택이었다. 물론 내가 제임스 조이스처럼 살 수 있을지, 재벌처럼 살 수 있을지 이도저도 아닐지는 살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삶을 들여다보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삶인 것 같다. 물론 삶과 인생이 내 선택에 딱 맞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 알아가면서 권위에 대한 저항 보다는 순응이 새로운 기법을 창안하여 비난을 받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부응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넘쳐난다는 것을 느꼈다.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제임스 조이스는 정말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 가장 정직하게 인간을 드러내 보이며 살고 싶었던 것일까? 그에게 주어지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고 싶었던 것일까? 내 앞에 그의 생은 다른 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해방감’을 줬다. 어렴풋이 나는 작가가 표현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보고야 만 기분이 든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제4장 이클레스가 7번지 [칼립소 에피소드] p 147~171


p150  그는 고양이가 혀끝을 세 번 갖다 대며 가볍게 핥자 희미한 햇빛 속에 수염이 철사처럼 번쩍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수염을 잘라 버리면 고양이는 쥐를 잡을 수 없다는 게 사실인지 몰라. 왜? 수염은 어둠 속에서도 비치는 모양이지, 아마. 그 끝이. 아니면 어둠 속에는 일종의 촉수(觸鬚)가, 필경.


p151 하얀 한 조각의 종이 (블룸이 자신의 펜팔 상대인 마사로부터 받은 카드. ‘헨리 플라우어’란 블룸의 가명이 찍힘. 하루 종일 블룸의 의식을 적시는 중요한 모티프 중의 하나.


p152 그가 행복한 온기 속을 걸어가자 눈꺼풀이 자주 조용히 갈아 앉았다.


동방의 어느 곳 : 이름 아침 : 새벽에 출발한다. 해를 정면에 안고 여행을 하면, 하루 동안에 그 행진이 끝난다. 그것을 영원히 계속하면 이론적으로 하루 이상 걸리지 않는다.


p153 그들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단지 8시 조반 먹기에 불과할 테죠. (러시아와 일본의 공격적인 팽창주의는 만주와 한국을 넘어 1904년 2월부터 1905년 12월에 걸친 노일전쟁을 발발케 함. 여기서는 당시 원활한 보급로와 해군 및 육군의 양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군의 파죽지세를 암시함)


p154 어디서 저 사람들은 저렇게 돈을 벌까?

나의 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질문과 같다.


p156 무시하려는 통증이 그의 가슴속에 가냘픈 기쁨을 불질렀다.


p157 잠깐 인사 나눌 정도로 알고 있는 녀석은 약간 귀찮은 존재야.


p158 바다는 지금도 거기에 놓여 있다. 이제 아무것도 더 낳을 수 없지. 죽은 거야: 늙은 여인의 그것처럼: 움푹 꺼진 세계의 회색 음부(陰部).

황폐.

 냉랭한 기름이 그의 혈관을 따라 미끄러지듯 흘렀다.


p160 “오, 밀리, 블룸, 너는 내 사랑.

      너는 밤부터 아침까지 나의 거울이란다.

      당나귀며 정원을 가진 케이티 키오보다

      나는 돈 한 푼 없는 네가 더 좋더라.”


(각주) 아일랜드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화가, 작곡가인 새무얼 러버 노래의 인유. (이것은 어린시절 아이린 반스의 아버지가 발렌타인 데이에 조이스에게 자신이 딸이 보낸 것처럼 선물을 보냈을 때 준 편지 속에 있는 시이기도 하다.)


p163 머템써보우시스(Metempsychosis) [윤회(輪廻)]?

우리가 사후에도 산다는 것. 우리들의 영혼. 죽은 다음의 인간의 영혼, 디그넘의 영혼...


p164 재생: 바로 그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기를, 그는 말했다, 우리가 사후에 또 다른 육체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이전에도 살았었다는 거요. 사람들은 그걸 재생이라 부르지. 우리들 모두가 수천 년 전에 지구상에 아니면 어떤 다른 행성에 살았다는 거요. 사람들 말은 우리들이 그걸 잊어버렸다는 거지.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의 생활을 기억하기도 한다는 군.

맹렬한 연기가 프라이팬 옆구리에서 노기(怒氣)를 띤 듯 분사식으로 솟아올랐다.


p166 오, 글쎄: 그녀는 제 앞가림을 할 줄 알지. 그러나 혹시 그렇지 못하면? 아니야, 여태까지 별일 없었어. 물론 그런 일이 있을 수도. 그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는 어떤 경우에든 그저 잠자코 기다려야. 제 멋대로 하는 녀석. 계단을 달려 올라가는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 숙명. 이제 성숙해 가고 있지. 헛된 일: 아주.


p167 한 가닥 가벼운 현기증이, 후회가, 그의 등뼈를 타고 흘러내렸다.


p169 조용히 그는 읽어 나갔다. 스스로 힘을 주면서, 첫째 단을, 그리고 굴복하면서 그러나 버티면서, 둘째 단을 읽기 시작했다. 반쯤 와서, 그의 최후의 저항에 버티며, 어제 있었던 약간의 변비증이 완전히 가시도록 계속 끈기 있게 읽으면서, 그가 읽자, 그의 창자가 조용히 후련하게 되었다.


p170 그래. 아하! 변비증. 카스카라 사그라다 한 알을. 인생도 이랬으면.

뭔가 격언을 위해 한가지 이야기를 창찬 하는 거다. 어느 걸?


제13장 샌디마운트 해변 (나우시카 에피소드) p627~676


p627 여름의 해거름은 그 신비스런 포옹으로 세계를 감싸기 시작했다. 저 멀리 서쪽으로 해가 지면서 어느덧 지나가는 하루의 마지막 석양이 바다와 개펄 위에, 만의 물결을 예나 다름없이 지켜보는 정다운 오랜 호우드 언덕의 뽐내는 곶위에, 샌디마운트 해안을 따라 해초 자란 바위 위에, 그리고 마지막이기는 하나 결코 덜 하지 않게, 폭풍으로 동요된 인간의 마음에 그의 순수한 광휘로 언제나 등대가 되고 있는 성모를 향한 기도의 목소리를 정적 위로 수시로 흘러내고 있는 고요한 성당, 바다의 별, 마리아 위에, 애정이 넘치듯 머뭇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저녁 8시, 나는 샌디마운트 해변에 서있다. 이 글을 읽고도 그곳에 서 있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율리시스>> 중 제 13장 나우시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나는 13장을 읽는 내내 애간장이 녹았다. 이 짧은 시간 속에 있는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다 드러내 보일 수 있단 말인가? 하루에 있었던 일을 1000페이지가 넘게 쓴 것 부터가 혀를 내두를 일이었는데, 하루 중 저녁 이 몇 시간의 묘사 또한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녹아내리게 했다. 한 여인의 완전한 노출 대신 불투명한 베일을 한 겹 덮어 놓고는, 다 보여주는데 구석구석 다 볼 수는 없게, 하지만 보는 것 이상으로 다 느낄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다.


p630 천만에. 명예는 응당 명예가 있는 곳에 있는 지라. 거티에게는 타고날 때부터의 우아함, 일종의 표정 어린 여왕다운 ‘오뙤르(오만)’가 몸에 서려 있었으니, 그것은 그녀의 섬세한 손과 높은 아치를 이룬 발등에서 틀림없이 증명되고 있었다. 만일 친절한 운명의 여신이 그녀에게 뜻을 품어 그녀 자신의 권리로서 상류 사회의 훌륭한 숙녀로 태어나게 했더라면 그리고 만일 그녀가 단지 훌륭한 교육의 혜택을 보았더라면, 거티 맥도웰은 나라 안의 어떠한 숙녀와 비교해도 그녀자신의 위치를 쉽사리 확보할 것이요 그녀의 이마를 보석으로 절묘하게 장식할 수 있으리니 그리하여 귀족의 구혼자들이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그녀의 발꿈치를 뒤따랐으리라.


p631 마음은 그녀에게 말을 토하도록 재촉했다: 위신이 그녀에게 말하지 말도록 명령했다.

그는 아마도 그녀가 느꼈던 것, 때때로 그녀의 마음속, 골수에까지 사무치는, 저 무디게 쑤시는 공허함을 거의 개의치 않으리라.


p633 그는 여성의 생득권인, 사랑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p635 그러나 토미는 공이 갖고 싶다고 말하자 에디는 아기가 공을 갖고 놀고 있는지라 안 된다고 말하고 만일 그가 공을 뺏으면 격렬한 싸움판이 벌어질 판이라 그러나 토미는 공이 자기 것이라 우기며 공이 갖고 싶다고 말하면서, 어이없게도, 땅에 발을 마구 구르는 것이었다. 그 녀석 성깔하고는!

음, 이 부분은 친숙한 장면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늘 벌어지는 상황. 나에게도 종종 벌어졌던 유년 시절 이었던 것 같다.


p636 그러나 그녀는 성실 그 자체였으며, 하늘이 여태껏 만든 가장 용감하고 가장 참된 사람들 중의 하나로, 두 얼굴의 인간들과는 달리, 지나치게 깔끔한 나머지 버릇이 없었다.


바닷가의 저 소박한 성당 안에, 지겨운 속세의 풍파를 겪은 뒤, 순결한 자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로레토의 성모 마리아의 연도를, 그들을 위해 중재하도록 그녀에게 간청하며, 어느 때나 정다운 말들, 성스러운 마리아, 동정녀 중의 성스러운 동정녀를 암송했다.


p637 그녀는, 두 개의 불을 싫어했는지라 램프 없이 갈색 서재 안에 사그라져 가는 여진 곁에 혹은, 생각하면서, 창밖으로 녹슨 버킷 위에 떨어지는 비를 꿈에 어린 듯 이따금 유심히 시간제로 바라볼 때, 그것을 혼자 거듭 거듭 말했다.

 아니야, 그녀는 폭주에 의해 야기되는 난폭한 해우이를 과거에 심지어 가정사회에서 목격했는지라, 만취의 독기의 재물인, 그녀 자신의 부친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망각한 것을 보아 왔으니 왜냐하면 만일 거티가 알고 있는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의 행위로서 이외에 여자에게 손을 드는 사내야말로 천인 중의 가장 천인으로 낙인 찍혀져야 마땅할것이기 때문이다. 


p640 그것은 물론 순수한 질투로서, 맞은편 신사가 보도록 주의를 끌기 위한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 그때까지 그녀와 신사는 가장 우연한 시선만을 단지 교환할 뿐이었으나 이제 그녀는 자신의 새 모자 테두리 밑으로 그를 대담하게 쳐다보았는바, 거기 황혼에 그녀의 시선과 마주친 얼굴은, 창백하고 이상하게도 찡그린 채, 그녀가 여태 보아 온 가장 슬픈 얼굴처럼 보였다.


쌍둥이들은 이제 다시 참으로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유년 시절의 다툼이란 급히 지나가는 여름철의 소나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p641 그의 눈은 마치 그녀를 뚫고, 뚫고 탐색하며 그녀의 혼 자체를 읽는 듯 그녀 속으로 타고 들었다.


p642 그녀는, 그가 여태 알아왔던 다른 비여성적 들뜬 소녀들, 그들이 갖지도 않은 것을 보여 주려는 저 자전거 타는 소녀들과는 딴판인, 여자다운 여자였는지라 그리고 그녀는 모든 것을 알기를, 만일 그녀가 그로 하여금 자기와 사랑에 빠지도록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을 잊기를 바로 열망했다.


p644 얼마나 엄청난 생각을 가진 놈들인데! 그래서 시시는 이제 이놈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은 정말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p645 그는 뱀이 그의 먹이를 노려보듯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여성의 본능이 그녀가 그이 속에 악마를 불러냈음을 그녀에게 일러주었는지라 그 생각에 한 점 타는 듯한 홍조가 목구멍으로부터 이마까지 엄습하자 마침내 그녀의 얼굴의 고운 빛깔이 한 송이 찬란한 장미가 되었다.


p647 그의 검은 눈이 그녀에게 다시 고정된 채, 그녀의 모든 몸의 윤곽을 들이마시면서, 그녀의 제단에 문자 그대로 참배하고 있었다. 만일 여태껏 한 사나이의 정열적 응시 속에 비가식적 모정이 있었다면 바로 저 남자의 얼굴에 그것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었으리라. 그것은 너를 위한 거야. 거트루드 맥도웰이여, 그리고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


p648 그녀는 그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그를 사랑했었다. 다른 모든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마음 가벼운 사기꾼이요 변덕쟁이로서, 그도 그녀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하자 순간 그녀의 푸른 눈에 한줄기 빠르고 매운 눈물이 솟구쳤다.


p650 “나의 사랑이여, 그대는 실재하나이까? (루이스 J. 윌쉬의 시에서 인용됨- “나의 이상적인 인물이여, 그대는 실재하나이까?/나에게 가까이 오리까, /부드럽고 온후한 해거름에/ 무릎 위에 당신의 아이를 태우고?” 조이스는 <<스티븐 히어로>>에서도 이 시를 인용함)


그것은 마게라펠트의 루이스 J 윌쉬의 작시로서, 그리고 그 뒤로 “황혼이여, 그대는 언제나?”에 관한 무슨 구절이 있었는바 그리하여 그것의 무상의 순결 속에 너무나 슬픈, 시의 아름다움이, 말없는 눈물로서 그녀의 눈을 안개처럼 흐리게 했는지라 왜냐하면 그녀는 세월이 그녀에게, 하나하나, 덧없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도록 했기 때문이요, 그리하여 그 한가지 결점만 없었더라면 그녀는 어떠한 경쟁자도 겁낼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었으니 그것은 달키 언덕을 내려올 때의 한갓 우연한 사고요 그녀는 그것을 언제나 감추려고 했도다. (거티는 절름발이임)

사랑은 자물쇠 장수를 조소하니까.(콜먼 작의 희목 제목으로, 그 후 격언이 됨.)


p651 그녀는 그의 꿈의 애인, 그는 온통 그녀의 것, 전세계에서 그녀를 위한 단 하나의 남자라고 그녀에게 말하는 자신의 마음의 명령을 따를 지니 왜냐하면 사랑은 최대의 안내자이니까. 그밖에 문제될 것이 뭐 있담. 어떤 일이 닥쳐오든 그녀는 야생의, 속박 없는, 자유롤운 몸이 되리라.


p651 그녀에게 매달린 신사의 눈이 그녀의 맥박을 팔딱팔딱 뛰게 했다.

 그의 두 손과 얼굴이 움직이자 한 가닥 전율이 그녀의 온몸을 덮쳤다.


p659 당신 버섯 좋아하세요 그녀는 묻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걸 좋아하는 신사를 한때 알고 있었으니까.

최초의 생각이 최고야.


p660 맑은. 그걸 들어내는 것은 눈동자이기 보다 오히려 눈의 흰자위 때문이야.

 남자들을 끄는 거다, 그와 같은 작은 일이. 피가 붉을 때 도로 그걸 흘러내리도록, 손을 추켜들고, 흔드는 것이다. 넌 누구한테 그런 걸 배웠니? 아무한테서도. 간호원이 뭔가를 저한테 가르쳐 줬어요. 오, 그네들이 모를 리가!

p662 총알에 맞고 안 맞고는 다 팔자 소관.

대자연. 아이를 씻는 것, 시체를 씻는 것. 디그넘. 언제나 아기들한테 둘러싸여. 야자 열매 같은 두개골, 원숭이, 처음에는 굳기조차 하지 않아, 포대기에는 신 우유와 썩은 응유. 아기에게 빈 우유 병 꼭지를 빨려서는 않데요. 바람으로 그걸 채워줘야. 뷰포이 부인, 퓨어포이. 병원에 가봐야 할 텐데. 간호원 콜런이 아직 거기 있는지 몰라. 몰리가 커피 팰러스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 그녀가 몇 칠 밤을 돌봐주러 오곤 했지.

 하지만 거기에는, 사랑에 빠지는, 숙명이란게 있지. 부부 사이에는 그들만이 아는 비밀이 있어요. 어떤 여인이 붙들어 주지 않으면 타락해 버리는 사내들.

 5월에 결혼하고 12월에 후회하지.


p663 모든 물건의 배후에는 자력이. 예를 들면 지구는 이것을 잡아당기는가 하면 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운동을 야기하지. 그리고 시간, 글쎄 그것은 운동이 요하는 시간이야. 그래서 만일 한 개의 물건이 정지하면 전체가 조금씩 정지하는 거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짝지어져 있으니까. 자침은 태양과 별들 속에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해 주지. 조그마한 강철 조각. 포크를 내밀면 와요. 와요. 찔끔. 그것이 바로 여자와 남자인 거다. 포크와 강철. 몰리. 그이. 꾸미고 쳐다보고 암시하고 봐요 좀 더 봐요 그리고 당신이 남자라면 그걸 볼 테면 봐요, 그리고 재채기가 나올 듯이, 양다리를, 봐요, 봐, 만일 베짱이 있으면, 찔끔. 쏘아 버려야 한다.

수치는 모두 제 삼자 앞에서 일어나지.


p664 무도회 밤에 그녀는 그를 만났지, 시간의 무도. 더위가 그걸 풍기게 했지. 그녀는 검정 색 옷을 입고 있었고 전회의 향기가 남아 있었어. 검은 것은 양도체, 그런가? 아니면 불량도체? 빛도 역시.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 예를 들면 어두운 지하실에로 들어가면. 역시 신비스런 일이야. 왜 나는 이제 와서 그걸 냄새 맡았을까? 그녀 자신처럼, 반응을 일으키는데 시간이 걸리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상상컨대 냄새는 수백 만개의 작은 알갱이가 불어오는 걸 거야. 맞아.


p665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듯 자기 자신을 보라.


p666 사람들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 불빛은 일종의 안도감인거다.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지. / 시골길. 별것도 아닌 것이 창자를 뜨끔하게 스친다.


p667 인생, 사랑, 그대 자신의 작은 세계를 도는 항해인 거다. 그런데 지금?

호메로스도 인간의 인생을 ‘바다’, ‘여행’으로 표현했다고 했던가? 항해라는 단어에서 오디세이와 대응되는 점을 발견해 본다.


꼭 같은 옛날은 돌아오지 않아. / 나는 새것이 갖고 싶어.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 / 돌아가는 최장 길이 집으로 가는 최단 길. 그리고 바로 그 시각에 그와 그녀가. 원형으로 돌고 있는 서커스의 말.


p668 만사가 바뀌고 말았다. 잊혀진 채. 젊은이들은 늙고. 그의 총은 이슬로 녹이 쓴 채.

반복은 좋은 착상(着想)이야.


p669 그것이 저 이름이 뭐라나 그 현자(아르키메데스를 가리킴)가 볼록렌즈를 가지고 하는 식이지.


p670 모진 생을 위해 한 조각 널빤지에 매달리거나 혹은 배의 들보에 올라타고, 몸둘레에는 구명대, 소금물을 꿀꺽꿀꺽 삼키며, 그리고 상어들이 그를 붙들 때까지 그게 그의 두목(보스)의 최후인 거다. 물고기들도 언젠가 뱃멀미를 할까?


한 자루 마지막 외로운 양초 같은 불꽃이 머서 병원의 자금(資金) 탐색을 위한 마이러스 바자로부터 하늘로 솟아올랐다, 깨졌다, 시들면서, 그리고 한 송이 자줏빛 별들과 유달리 하얀 별 한개를 쏟았다. 그들은 부동했다, 떨어졌다: 모두 사라졌다. 목양자의 시간: 포옹의 시간: 밀회의 시간. 집에서 집으로, 밤 9시의 우편배달부, 그의 항시 반가운 이중 노크를 하면서, 혁대에 매단 반딧불 같은 램프를 여기저기 깜빡이며 월계수 울타리를 통해 지나갔다. 그리고 다섯 그루의 어린 나무 사이에, 들어올린 도화간이 리히의 테라스 램프에 불을 댕겼다.


p671 여자들은 뭘 사랑할까? 또 다른 자신들?


p673 추녀: 어떤 여자도 자신이 못생겼다고는 생각지는 않아. 사랑하고, 자리에 눕고 그리고 사이좋게 지내요 왜냐하면 내일이면 우린 죽기 때문에, 몹쓸 장난을 한 자를 애써 찾으며 그가 돌아다는 걸 때때로 본단 말이야. U.p: 이제 끝장. 그건 운명이지. 내가 아니고, 그이야. 또한 상점이 자주 눈에 띄지. 재앙은 어디나 미행하는 모양. 간밤에 꿈을 꾸었던가?


p674 똑같은 것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아.


p676 왜냐하면 맥도웰 거티는 조그마한 집에서 나와 시간을 알려준 것은 한 마리 조그마한 카나리아였음을 그녀가 거기 갔을 때 알아챘기 때문이나니 왜냐하면 그녀는 그와 같은 일에 대하여 참으로 예민했는지라, 거티 맥도웰, 그리하여 그녀는 이내 눈치 챘나니 아까 바위 위에 앉아 쳐다보고 있던 저 낯선 신사가


제18장 침실(페넬로페 에피소드) p1217~p1283


p1218 나이 먹고 건들거리는 바보보다 더한 자는 없어


p1220 사랑을 비쳐주는 오월의 초승달을 노래하면서.


p1225 여자란 남자가 있을 때는 언제나 이야기를 그런 면으로 슬쩍 돌리며 친밀한 체하지


p1226 무식쟁이는 언제나 그대로 이전처럼 내버려두란 말씀이지


p1231 남편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애인에게는 속일 수가 없지

재밌다. ㅋ


p1234 어차피 세상이 두 꼴로 동강난 것을 목격하고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될 바에야 나도 우선 고급 속바지를 두 벌쯤 더 갖고 싶어.


p1236 나는 이제 몸에 걸칠 옷가지마저 아무 것도 없어 갈색 양복과 스커트 그리고 재킷과 세탁소에 맡겨 둔 것을 합해서 모두 세 벌뿐이니 세상에 이런 여자도 있을까 낡은 모자에서 오려내어 다른 모자에다 덧댈 판이니 남자들은 쳐다보려고 하지 않고 여자들은 애인도 없는 줄 알고 마구 짓밟으려고 애를 쓰지 그리고 온갖 물가는 나날이 올라가기만 하고 4년만 더 있으면 나는 서른 다섯 살이 되지 아니야 도대체 나는 몇 살이더라 9월이면 서른 세살이 돼 글쎄 상관할 게 뭐람


와, 이 부분은 내 뇌 속을 조이스가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읽는 내내 줄을 벅벅 그으면서 내가 왜 내 생각을 읽고 있지? 라는 의문을 가졌다. ‘의식 흐름’ 기법이란 이런 것?


p1236 남자들이란 모두 마찬가지예요


p1238 나야 그이를 어떻게든 움직일 수가 없어

그러고도 정말이지 블룸 부인이라니 나는 제비 꼬리의 납 단추도 다 떨어져 나가고 마름질마저 찾아볼 수 없는 누더기 같은 헌옷을 입은 자신이 단지 비참하게 느껴질 뿐이었어.

그렇지만 무엇을 입든지 간에 나에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은 옷은 없으니까

이중적인 모습


p1240 여자는 물론 아름다워 그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야

그이는 무엇이고 누구나 쉽사리 이해할 수 있도록 결코 간단히 설명할 줄 몰라요


p1242 내가 초저녁잠이 든 직후 내린 비는 참으로 긱분을 상쾌하고 하고 신선하게 하는 것이었지


p1243 두 사람 다 오래 전에 죽었을 거야 마치 안개를 통해서 보듯 희미해졌어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아주 나이가 먹은 듯한 느낌을 주지


p1244 나는 처음에 교회를 쳐다 봤다가 그 다음에 창문을 쳐다보고 그리고 밑을 내려다봤지 그러자 우리들의 눈이 서로 마주치고 말았어 내 몸속을 뭔가 바늘 같은 것이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내 눈이 마구 춤을 추고 있었어 지금도 생각나지만 나중에 내가 거울을 들여다봤을 때 거의 내 꼴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어 그렇게도 변하다니 그는 약간 대머리가 졌어도 한 소녀에게는 매력적이었어 지적이요 낙담하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경쾌하고 마치 애시리다애트의 그림자 속에 나오는 토머스를 닮았었지 나는 볕에 타서 아주 탐스러운 피부를 하고 있었는데 다가 장미처럼 흥분해 있었어


p1245 어디로 가든지 편안한 곳은 결코 없어 아버지든 아주머니든 또는 결혼이든 기다리며 언제나 기다리며 그이를 나에에에에에게로 끌어어어어들이려고 기다려도 나는 그이의 빠른 발길을 더 이상 재촉촉촉할 길이 없었다오


p1246 나는 그이가 분마성 음주 때문에 오래 전에 죽었을 것으로 생각해 하루하루가 몇 년 같았어

그네들의 위대한 지혜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p1247 난 정말 싫어 언제나 우는 소릴 하는 사람들 말이야 누구든지 근심은 있기 마련인데도 저 불쌍한 낸시 블레이크는 한 달 전에 급성 폐렴으로 죽었지

사랑이란 당신의 하루 종일과 인생을 가득 채워서 언제나 뭔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고 당신의 주위를 신세계처럼 보이도록 하지


p1248 그때 나는 그녀에게 몇 마디만 간단하게 쓰라고 일러주었지 상대방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게 말이야 당돌함에서가 아니고 솔직한 정직성으로 행동하는 거지 세상의 가장 위대한 행복을 얻기 위해 신사의 프로포즈는 그저 받아들여야만 해

신사의 프로포즈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행복을 얻기 위해? 그저 받아들여야만?

몰리의 의식을 따라가다 이 부분에서 막혔다. 소변과 월경이 시작 된 부분보다 나는 여기서 멈칫했다.


그녀의 얼굴이라니 주름살 투정이지 신앙심을 온통 한 몸에 지닌 채 정말 횡포가 대단했어

이 부분은 내 마음을 더 후벼 팠다. 신앙심이 다른 이에게 결코 횡포가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오류를 범한다.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p1249 그이가 나에게 키스해 준 최초의 남자였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자주 진담이 되지 그래서 한 송이 꽃이 핀답니다. (윌리스 작의 오페라 제 3막에 나오는 노래 제목.)


p1251 그잉게서 억지로 생명을 짜냈던 거야

저 아침의 기분처럼


p1252 그이는 무엇으로 내 기분을 맞출 수 있을지 알지 못했어

음, 난 왜 이 부분에서 공감이 갈까? 가끔 다툼이 벌어질 때, 갈등이 일어날 때 내가 주로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내 기분,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거야? 왜 아직도 모르냐고!” 영원히 모르는 걸까? 반대로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하느님 저이에게 지각을 그리고 저에게 더 많은 돈을 주옵소서

씁쓸한 대목이다


그런데 내가 그이와 결혼한 뒤로 조시는 이따금 말하곤 했지. M 블룸 너는 꽃처럼 아름답게(Blooming)보여 라고 글쎄 브린보다야 낫지 또는 브리그즈가 브리그(가두다)한다나 아니면 저 지긋지긋한 이름들 램즈보텀이라나 뭐라나 하는 궁둥이(bottom)가 딸린 것들 말이야.


p1253 그이는 나에게 행운을 뜻하는 저 모양 없는 클라다 반지를 주었지


p1254 프르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프롱 다시 저 놈의 기차가 우는 기적 소리 불러도 대답 없는 정든 그 옛 시절 다시 한 번 나의 눈을 감고 숨을 쉰다

나의 번쩍이는 눈도 젖가슴도 정열도 그들은 갖지 않았어

나도 그들이 쉰 살일 때보다 내가 열 다섯 살일 때 오히려 인간과 생을 더 많이 알았어


p1258 그이가 대단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아 하지만 없는 것보다 낫지

그래서 그이는 셔츠 바람으로 손에 양초와 부지깽이를 들고 내려갔었지 마치 생쥐라도 찾고 있는 듯이 놀라서 제정신을 잃고 침대보처럼 하얗게 질려서 말이야


p1259 아마 그인 나를 쓸모없는 폐물이라 생각할거야 글쎄 나는 그렇잖아요 절대로 전혀 그렇잖아 글쎄 보란 말이야 글쎄 봐 이제 그 애는 잘돼가지요 또 톰 데번즈의 두 아이놈들과 희롱대기기도 하지 내 흉내를 내면서 그애를 꾀어내는 머레이의 말광량이 소녀들과 휘파람을 불면서 말이야 밀리 나와 그 애는 인기가 대단해 모두들 그 애한테서 정보를 수집하려고 말이야 넬슨가를 밤이면 빙글빙글 해리 데번즈의 자전거를 타고 그이가 현재 그 애가 있는 곳으로 보낸 게 다행이야


p1260 봐 생각대로 돼 버렸잖아

냄비가 솥더러 시커멓구나 하는 격이지

물론 누더기 옷이라도 그러한 나이에는 잘 어울려

물론 그 애는 무엇이든지 깊이 느낄 줄 몰라 하지만 나도 스물 둘이 될 때까지는 전혀 느끼지 못했어

보통 꼬마 아가씨들의 쓸데없는 장난이나 킥킥거리며 웃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 애는 커튼이 내리면 손뼉을 쳤어 왠고하니 그 남자 배우가 아주 미남이었기 때문이야


p1261 나중에 혼자 생각한 일이지만 남자가 여자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데 그의 생을 포기할 지경이면 그것은 진실한 사랑임에 틀림없어 그런 남자란 요즘엔 드물거야 그리고 그런 일은 좀처럼 믿기 어려워 만일 그것이 정령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한 대다수의 남자들이란 그들의 천성에 있어서 한 조각의 사랑도 없어


그 애가 나를 성나게 했지만 물론 내가 골을 낸 것은 나 또한 성질이 고약했기 때문이야 왜 그랬을까  차 속에 지푸라기가 들어갔다든지 아니면 전날 밤 내가 먹은 치즈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해서일까 그리고 나이프를 그처럼 십자로 겹쳐 놓으면 못쓴다고 되풀이하여 여러 번 말해 주었지 왜냐하면 그 애 스스로가 말했듯이


p1262 언제나 새로운 무엇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하느님 맙소사 글쎄 내가 죽어서 무덤 속에 몸을 쭉 뻗고 들어 누우면 난 정말 편안해질지도 모르지


p1263 남자란 언제나 침대 위에서 얼룩을 보고 싶어 하지 상대방이 처녀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지

음,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처음 ‘역겹다’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다. 근데 이내 이게 왜 내게 역겨운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조금 유치한 발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그 심리가 궁금하다. 처녀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 그것이 남자에게 그리 중요한 것인가? 지금은 어떤가? 남자들이 아닌 척 속으론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까? 남자가 총각인지 알기 위해서 여자들은 무엇을 봐야 할까? 몰리의 의식의 흐름 따르다 내 의식으로 들어오니 내 의식도 뒤죽박죽이다. 근데 재밌다.


p1265 나는 될 수 있는 한 깊이 변기 속에 꼭 끼어 앉아 체인을 잡아당기자 손발이 몹시 저리고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어 하지만 변에는 그래도 뭔가 귀중한 게 함유되어 있을거야 상상컨대 나는 밀리의 것을 가지고 항시 그걸 알곤 했지 그 애가 어린애였을 때 회충이 있는지 없는지를 진찰하려고 할 때에도 언제나 그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다니


p1266 오 내가 그이의 모든 쫑알거리는 허풍을 믿다니 어쩌면 그렇게도 타고난 바보였을까


p1267 오 이렇게도 성가시다니 저 세상에서는 우리들을 위해 좀더 나은 것을 마련해 주지 않으려나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려고 할 때면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긴단 말이야


p1268 그들의 거짓말을 다 넣으려면 호주머니가 20개나 있어도 모자랄 지경이지


p1271 그에게 내 사진을 보이다니 잘 찍힌 것도 아닌데 절대로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 했을 것을


p1272 사랑의 아련한 한숨 경쾌한 기타 소리 시가 공중에 넘치는 곳 푸른 바다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답게 비치는 달 타리파에서 밤의 보트를 타고 되돌아올 때 유로파 곶의 등대 저 녀석이 치고 있던 기타는 정말 표정이 풍부한 것이었지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까 모두 새로운 얼굴들 창틀 뒤에 숨은 두 빛나는 눈 나는 그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야지 그들은 나의 눈이지 만일 그에게 조금이라도 시인다운 데가 있다면 사랑 자체의 별처럼 까맣게 반짝이는 두 개의 눈 사랑의 젊은 별이라니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말이 아닐까


p1273 고수머리와 그의 어깨 귀를 기울여요라는 듯이 그대를 위해 쳐든 그의 손가락 그거야말로 진짜 미(美)요 시(詩)란 말이야


p1275 그 밖의 무엇 때문에 저따위 모든 욕망이 우리들에게 주어졌는지 알고 싶어 어쩔 도리가 없어

그이는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니까


p1276 남자들이란 그들의 뒤를 봐주는 여자를 쓰레기 취급하듯 한단 말이야

세상을 여자들이 지배하는 게 훨씬 나을 거야

그래 왠고하니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든 언제 그걸 그만 둬야 할는지를 알고 있찌


p1277 하지만 나는 다시는 결코 아이를 갖기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지 그것 또 우리 집안의 최초의 죽음이었어

그래도 이 밤은 참 좋은 시간이야 너무나도 고요하니 무도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가 좋았어

혹은 어떤 여자는 상대에게 원한을 품으려고 하지 나는 여자들의 그런 것이 싫어

우리들이 그토록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온갖 고뇌 때문일 거야


p1278 맙소사 어쩜 때때로 미치광이 같은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오르다니


p1279 지적이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어


p1280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잖아 다만 모두들 그걸 감출 뿐이지


p1281 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그들의 학문이 어떤 것이든 지간에 한푼 어치 가치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왜 그들은 뭔가 가서 창조하지 않나 말이야


p1282 그들은 스스로의 양심의 가책 때문에 지옥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지

아 아 그래 나는 그들을 잘 알고 있어 사람이 있기 전에 이 우주상의 모든 것을 만든 최초의 사람은 누구일까

당신을 위해 태양이 비추고 있소

오늘은 태양이 당신을 위해 비친다고 말이야

왜냐하면 그이는 여자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거나 느끼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았거니와 그이 같으면 언제나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p1283 그의 심장이 미칠 듯이 팔딱 거렸어 그리하여 그렇지 나는 그러세요 하고 말했어 그렇게 하겠어요 네(yes)


3. 내가 저자라면

 <<율리시스>>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기


<<율리시스>>는 크게 3권으로 나눠져 있다. 1권은 텔레마키아드(1장~3장), 2권은 오디세우스의 방랑(4장~15장), 3권은 귀환(16장~18장)으로 분류된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병행되는 구조이다. 호메로스의 장들의 순서에 엄격하게 대응하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일정 부분들은 일치한다.


 또한 이 소설의 창작상 뼈대와 관련된 다른 요소들도 존재한다. 모더니스트 전통 속에서 시작하여 포스트구조주의 비평가들이 칭하는 이른바 불확정성을 가지고 서술되었다. 처음에는 단일 등장인물의 의식을 따르나, 그것은 곧 이러한 원형, 즉 조이스가 <<초상>>에서 수립했던 것을 초월한다. 서술적 초점이 점차 복수적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변전하고 다양한 서술적 목소리를 여러 가지 시각을 사용하여 표현된다. 서술 속에서 상반되는 사건들을 출현하게 하는 것으로, 전통적 단일 견해의 우선권을 치환시키는 기법을 썼다.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낮과 저녁을 통하여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목욕하고, 미사에 참가하고, 죽은 자를 매장하고, 일하고, 괴로워하고, 다투고, 선행을 베풀고, 배회하고, 서로 인사하고, 노래하고, 편지를 쓰고, 술집을 드나들고, 술에 취하고, 책을 읽고, 성적 행위에 몰두하고, 간음을 저지르고, 출산하고, 사창가를 방문하고, 그리하여 지친 채, 그들의 침대로 돌아간다. 여기서 조이스는 더블린의 일상의 하루를 예술로 그리고, 더블린 사람인 리오폴드 블룸을 매인(每人)으로 변형한다.


 다른 조망에서 보면 1904년 6월 16일 하루는 단순히 더블린의 또 다른 하루, 혹은 블룸, 몰리와 데덜러스의 인생에서 일상의 하루가 아니다. 또 소설은 아일랜드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및 지리적 특성에 대한 수많은 인유를 함유하고 있다. 조이스는 만일 더블린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날, 작품의 서술에 따라 그것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러한 서술은 소설이 성취해 낸 비상함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세기 전환기의 아일랜드 문화를 거의 백과사전적으로 표현한 조이스의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성격들을 형성하는 요소들에 충분히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 <<율리시스>>는 전통적 서사를 포함한, 여러 층위에서 작동할 수 있다. 작품은 이야기 줄거리, 배경, 인물 묘사와 연대기 상의 충분한 인습적 요소들을 마련하고 있거니와, 그런 식으로 작품이 읽혀지도록 한다. <<율리시스>>는 다양한 학구적 비평이 가능하고 이것을 둘러싼 비평들은 보조문학으로 셰익스피어의 그것에 육박한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의 개방성은 소설의 탄생 초기부터 분명히 예견된 것이었다.


 * 내가 저자라면

 사실 책을 읽는 것과 저자를 조사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가장 잘 해내야 할 부분인 이 부분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매번 당혹스러운 파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충분히 저자와 내용이 숙지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늘 아쉽고, 이렇게 보내다간 내게 많은 것이 남지 않을까 겁이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율리시스>>를 다 읽지 않았지만 구조는 <<오디세이>>와 대응하여 쓰였다는 것은 안다. 나는 읽어야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 대응구조를 발견해 내기 위해 노력해봤다. 하지만 내용에 빨려 들어가 내용과 내 생각 사이에 거리감을 두긴 힘들었다. 특히 13장 나우시카에 대응된 거티의 이야기는 내게 침잠하여 나의 토요일 오후를 샌디마운트 해변으로 보내줬다. 마지막 페넬로페에 대응되는 몰리의 침실에서의 의식은 마침표 하나 없이 쓰인 것이 나를 더 압도했다. 끊어내며 읽다가 후에는 끊지 않고 그 흐름에 나를 맡겨 보기도 했다. 내가 죽기 전에 제임스 조이스처럼 글을 쓰고 남길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시도와 그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큰 행운으로 느껴졌다. 보완점을 말하라고? 글쎄, 내가 보완점을 말한다면 나를 비난하는 안티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은 작품들 마다 연결성이 아주 진한데, 내가 조사한 3개의 책은 읽어보고 싶다. 그러면 더 전체적인 뼈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 북리뷰 후기

 제임스 조이스를 연구한다는 것은 내게 흥미롭고 나의 가치를 상승시켜주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제임스 조이스를 소개하고 인용문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나를 작아지게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레포트를 쓰면서 어떻게 할바를 몰랐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아, 좌절. 하지만 그래도 나름 조이스의 삶에서 매력적인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되고 내가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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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6 16:40:43 *.154.223.199

세린신^^

세린신이 사부님께 질문해준 덕분에 우리가 율리시스를 더 즐겁게 읽게 되었어요. 과제를 하는데도 더 도움이 되었고요. 열심히 하시는 모습 멋져요. 감사합니다. 저 사진 그 검정 백과사전의 표지지요? 저 사진 속의 제임스 조이스는 눈이 나빠보이지 않는데 다른 사진에서는 눈나쁘다는 선입견을 갖고 봐서인지 정말 눈이 나빠보였어요. 그런데 다들 앨먼의 책을 직접 읽으셨군요. 대단하시네요. 대학교 리포트 쓸 때의 좌절감, 막연함 느낌 저도 느꼈어요. 호메로스의 24권이 제임스 조이스의 18장으로 변신했다는데 어디어디 에피소드라고 하는데 저는 절반은 기억이 안나더라구요. 제임스 조이스가 일상 속에서 신화를 탐구했다고 하니 오딧세이아를 더, 율리시스를 더 읽어보고 싶어졌구요. 그가 운명의 여인 노라를 만난 1904년 6월 16일을 율리시스의 그날로 삼다니 아, 노라가 부러워요. 세린신 우리도 그런 운명적인 사랑 해보면 좋겠지요? 그런데 만약 제임스 조이스가 내 아이들의 아버지이면서 법적 남편은 아니면서 동거인이면서 여러 군데를 떠돌면서 다니고, 글만 쓰고 나머지 생활의 모든 부분이 내 책임에다 글 안 풀리면 똑똑하고 예민한 남자가 술에 취해 있기만 하는 걸  생각해보면 음...-_- 노라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내가 무슨 길을 가도 옆에 있어줄 아내가 필요한 듯 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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