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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3일 16시 26분 등록

왜 쉬어야 하지? 처음에는 이 질문에 답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재충전을 통해 일을 더 많이, 더 잘 하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이 책은 휴식이 아니라 일을 권하는 책인가? 그런 고민들이 무르익자 자연스럽게 답이 나왔다. 쉬어야 하는 이유는 혼자가 아닌 함께 행복한 인생을 일구고, 결과뿐이 아닌 과정도 즐기기 위해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노동과 휴식, 그리고 직업과 삶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인구의 날을 맞아 미래 국가인구전략을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이상으로 유지되는 향후 10년 사이에 출산율을 1.8명 선으로 올려야 인구 감소를 최소화하면서 사회, 경제, 국방 등 각 분야에서 국가 역량을 지켜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보사연은 그 해결책으로 산전 산후 휴가와 육아 휴직을 보장하기 위한 제3의보험의 도입, 셋째 아이 이상의 대학입시 정원 외 입학, 육아휴직 급여를 평상 급여의 40%에서 80%이상으로 증대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2008년 여성가족부가 기혼 여성2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살펴보자. 설문 조사 결과 결혼, 임신, 출산 등의 이유가 퇴직 사유의 절반 이상인 53.4%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일보다 육아와 자녀 교육이 더 중요해서 16.2%, ‘아이 맡길데가 없어서 14.1%에 달했다. 결국 기혼 여성의 퇴직 사유의 84%는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과정의 어려움에 비롯된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다르면 2011년우리나라 육아 휴직자는 5 8,137명으로 2003 6,816명에 비해 8.5배 가량 늘었다. 하지만 워킹맘들의 대다수는 육아 휴직을 내기에는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정말 각종 제도를 도입하고 육아 휴직 급여를 올려주면 해결될 문제일까? 셋째 아이 이상은 정원 외로 대학에 입학시켜주면 여자들이 아이를 더 낳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철저히 시스템이 아닌 마인드의 문제다. 이미 제도는 훌륭하다. 하지만 그 제도를 활용하기 힘든 직장 분위기가 문제다. 사실 그 분위기는 허울뿐인 제도의 산물이기도 하다. (마인드가 받혀 주지 않으니 제도 역시 허울 뿐일 수 밖에) 같은 팀의 여직원이 출산휴가를 간다고 가정해보자. 3개월 동안의 공백은 누가 채워줄 것인가? 일부 회사들은 계약직 직원을 뽑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기존의 직원들이 업무를 나누어 갖는다. 자기일을 하면서 출산 휴가를 간 여직원으로 일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보상은 없다. 그러니 누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반기겠는가? 만약 팀원이 5명인 팀에서 2명의 여직원이 연달아 출산휴가를 간다고 가정해보자. 기존의 팀원 3명은 두 명의 업무를 더 해야 하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팀장은 팀에 여직원이 많으면 골치가 아프다. 임신했다고 하는데 일을 더 시킬 수도 없고 출산휴가에 육아휴직까지 주어야 하니 부담스러운 존재가 바로 여직원인 것이다.

 

현대 경영의 구루 톰 피터스는 “21세기 리더들은 여성 관점에서생각하고 마케팅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경영 컨설팅업체 BCG W=2(C+I)라는 공식을 제시했다. 여성 시장의 크기가 중국과 인도 시장을 결합한 사이즈의 2배가 된다는 뜻이다. 이성을 중시하는 좌뇌경영이 저물고 감성과 공감을 중시하는 우뇌경영이 각광받고 있다. 바야흐로 여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혹자는 이미 여성의 시대라고도 말한다. 학교의 상위권은 여학생이 차지한 지 오래되었고, 사법고시를 비롯한 각종 국가고시의 수석은 어김없이 여성이다. 굴지의 삼성그룹은 여성인력의 비율을 20%에서 30%로 늘리겠다고 천명했고 여성임원의 수를 늘리기 위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회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현장에 있는 여성들의 상당수가 결혼,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의 관문을 거치며 하나 둘 조직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게임의 룰이 철저히 남성의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워킹맘들에게 버티라고 조언한다. 이미 여성의 시대가 왔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여러가지 면에서 나아질 거라는 의미다. 혹자는 여성의 지구력 부족을 탓하기도 한다. 유리천장을 뚫으려면 남성의 옷을 입고 버텨라, 그러면 조직에서 당신을 인정해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버티어 별을 딴 여성들도 일부 존재한다. 그들은 철저히 여성성을 감추고 남성의 룰에 맞추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데 성공한 전사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과정이 즐거웠을까? 일과 휴식, 삶의 조화를 이루며 그 자리에 이르렀을까?

 

회사에서 여성 인력을 위해 어린이 집을 마련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매일 아침 아이 손을 잡고 출근해 아이를 이 곳에 맡긴다. 이 곳은 보육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시설과 교사진도 훌륭하다. 더구나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아이 얼굴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의 회사는 살인적인 업무량으로 유명한 회사다. 표면적으로는 공정한 경쟁을 독려한다고 하지만 경쟁에서도도태된 직원은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분위기이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된 당신은 일주일의 5일은 야근이다. 11시가다 되어 일이 끝나면 졸린 아이를 등에 업고 퇴근을 한다. 그렇게 반년을 살았다. 그러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나와 내아이를 위한 최선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이직을 준비했다. 월급은 조금 줄었지만 정시 퇴근이 가능한 일을 찾았다. 당신이 퇴사의사를 밝히자 팀장은 의아해했다. 이 정도 연봉에 이 정도 복지 시설을 제공하는 회사는 없을 텐데 왜 이직을 하려 하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은 이직에 만족한다. 당신은 나 혼자 행복한 삶보다는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일구고 싶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또한 즐길 수 있어야 행복한 여자이기때문이다.

 

나는 여자들이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에 과감히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남자와 여자가 모두 행복한 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에서 신음하는 남성도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불쌍한 남자들도 우리 여자들이 구제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두새벽에 출근해 야근을 밥 먹듯 해야 성실하고 열정적인 직원으로 생각하는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중간관리자를 거쳐 임원이 되면 개인적인 삶을 모두 포기하고 자신 시간의 100%를 회사에 저당 잡힌 채 살아야 하는 조직의 룰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나와 맞지 않는 조직에서 시들어가지 말고 자신의 철학에 맞는 회사로, 자신의머리와 가슴에 맞는 일로 망설이지 말고 옮겨가야 한다. 돈 몇 푼에 소중한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배고프더라도 자신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생각에 어깨가 쳐진다면 조선 후기의 여장부 김금원의 인생에 귀를 기울여 보자. 김금원은 1817년 원주의 몰락한 양반 가문의 서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영특해 사서삼경을 금새 깨우쳤지만 규중 깊은 곳에서 식견을 넓힐 수 없는 것이 한이었다. 금원이 가장 존경했던 사람은 같은 원주에 살았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이었다. 금원은 비록 여자이지만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의 차이가 없다. 여자로 태어나 성인이 되길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자포자기한 사람이다라는 임윤지당의 금언을 그녀의 삶의 북극성으로 삼았다. 1830년 봄, 금원은 열 네 살의 나이에 남장을 한 채 여행을 떠났다. 제천 의림지를 거쳐 금강산, 관동팔경, 설악산, 서울을 여행하고 돌아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견문을 통해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에 이르렀다. 이후 규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기생이 되어 시기(詩妓: 시를 잘 짓는 기생)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금원은 금강산을 다녀온 지 20년 만에 자신의유일한 문집인 호동서락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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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원의 삶을 소설로 재구성한 홍경희 글, 김진희 그림의 <오래된 꿈>의 삽화 

 

그대가 만약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김금원처럼 과감히 그 틀을 깨고 나오라고 말해주고싶다. 누구를 위해 버텨야 한단 말인가? 과연 버티기로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한 번뿐인 인생을 왜 버티기 작전으로 낭비해야 한단 말인가? 그대의 정체성이 아이가 행복해야 그대도 행복해지는 엄마라면, 함께 행복하게 살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라. 일에 매몰되지 않고 과정과 결과를 함께 즐기기 원한다면 그런 일을 찾아라.

 

그러니 그대여! 버티는삶을 버리고 즐기는 삶을 살아라!

 

PS.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된 제가, 근무일 6일을 쉬는 10 11일의 여름 휴가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회사에서 휴가를 허해 주는 대신 월급에서 일부 금액을 제하겠다고 하길래 감사하다고 큰 절을 올렸습니다. 돈이야 다른 방법으로 벌면 되는 것이니까요. 졸지에 눈치 코치없는 파렴치한으로 괘씸죄에 걸렸지만 그래도 저는 갑니다. 이것이 재키제동 식의 저항법, 나는 용감한 녀석들 ^^

IP *.252.14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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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3 21:53:25 *.71.128.110

남성입장에서 여성을 이해하기 어렵기도하고..

누구를 위해 버텨야 한단 말인가 공감돋네요ㅎㅎ
누나의 휴가를 응원합니다!ㅋ 
화이팅!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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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11:07:47 *.252.144.139

오호, 베레히트님 반가워요.

자신을 찾는 작업은 잘 되고 계신가요?

그 과정을 변경연 홈피에 올려주시면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과정을 절대 버티지 말고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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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6:29:33 *.154.223.199

와, 입사 3개월만에 장기 휴가를 쓰겠다고 당차게 이야기하신 용기도 멋지십니다.

출산율 1.8명이 여성인력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보장받는 것과 당연히 연결되겠네요.

저런 통계치가 인용되는 것이 글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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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7 09:58:36 *.252.144.139

콩두님, 맨날 댓글 달아주시는데 저는 못달고 있어 미안하네요. ㅎㅎ

저 때문에 회사에 입사 6개월 미만자의 휴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었답니다. ㅋㅋ

요즘 글을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휴식>인지 <여성의 경력개발>인지 혼란스러워요.

고민하다보면 답이 나오리라 생각하며 기냥 하렵니다.

항상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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