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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30일 11시 02분 등록

그리스인 이야기

앙드레 보나르 지음 /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책과함께)

 

 

I. 저자에 대하여 / 앙드레 보나르

 

그리스인 이야기 7월첫째주 내용으로 대체합니다.

 

저자 앙드레 보나르 ANDRE BONNARD (1888~1959)

1888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다. 로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1936년 그르노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5~28년 로잔 중학교와 고전 김나지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이후 1957년까지 30년 동안 로잔 대학 그리스어그리스 문학 교수를 지냈다. 대학 교수이자 작가로서 여러 저작들을 통해 고대 그리스에 생생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입히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글에서 지식인 사회 특유의 사변을 걷어내고,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대하듯이 읽도록 가르쳤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불어로 번역했으며, 《프로메테우스 LE PROMETHEE(1928), 《그리스의 신들 LES DIEUX DE LA GRECE(1940) 《안티고네 ANTIGONE(1942)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 SOCRATE SELON PLATON(1944) 《오이디푸스 왕 OEDIPE-ROI(1946) 《사포의 시 LA POESIE DE SAPHO(1948) 《비극과 인간 LA TRAGEDIE ET L?HOMME(1950) 등 그리스 관련 저서를 다수 남겼다.

 

그는 파시즘과 나치즘에 저항한참여하는 인문주의자였다. 자신의 작품 《프로메테우스》 《안티고네》 등에서는 주인공에게서 저항과 참여의 정신을 찾고자 했다. 1949스위스평화운동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평화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으나, 냉전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52국제평화수호자대회참석차 동베를린으로 가던 중 스위스 경찰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소련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여 이적행위를 했다는 것이 그의 혐의였다. 그러자스위스에서도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는 외침과 함께 구명운동이 벌어졌고, 그를 지지하는 내용의 전단지 8만 장이 전국에 뿌려졌다. 1954년 재판에서그는 소련의 스파이입니다라는 검찰의 주장에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이 이적행위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맞섰지만,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 후 그리스 문명사 연구와 집필에 매진하다가 1959년 작고했다.

 

《그리스인 이야기》(원제 CIVILISATION GRECQUE, 3)는 그가 평생을 일궈온 그리스 관련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작품이다. 그는 이 책에서 헬레니즘을 진보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헬레니즘은 인간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과 운명을 지배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의 시기로 간주된다. 1954년에 1권이 나왔으며, 1957 2권이 출간된 후 대학에서 은퇴했다. 마지막 3권은 1959년 그가 작고하기 며칠 전에 출간되었다. 스위스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같은 언어권인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 미국, 포르투갈, 러시아, 루마니아, 일본 등지에서 일찍이 각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그리스 문명사 분야의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그리스인 이야기

 

 

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Chapter 1. 그리스문명 탄생

 

P11 인간은 모두 원시인으로 시작했다. 그리스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원시 부족의 하나였을 뿐이다.

: 모든 인간은 다 똑같이 시작한다.

P11 동물에서 시작해서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이 동물의 속성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니다.

P11 그리스 중의 그리스라고 부르는 아테나이에서도 여전히 미신같은 것이 존재했고, 원시인에게 서나 볼 수 있는 엽기적인풍속도 그대로였다.

p12 염소 혹은 소 모양을 한 디오뉘소스와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아내, 즉 아테나이 여왕(Reine)’의 결혼식을 거행한다.

p12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신의 형상을 들어다가 궁으로 옮긴다. ‘여왕(아테나이의 여왕은 아테나이 혈통을 가진 처녀 가운데에서 최고집정관이 직접 고른다)’과 하룻밤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다. 그저 상징적인 의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실제 나무로 만든 신과 몸을 섞는, 말 그대로 첫날밤이 시민들의 관심속에서 치러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해 농사가 잘되고, 과실이 풍성히 열리고, 포도밭에 햇볕이 가득 내리쬐며, 모든 군대와 가족들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P14자유를 위한 숭고한 투쟁으로 일컬어지는 살라미스 해전은 헤로도토스의 말대로 그리스 민족의 독립전쟁이었다. 이 역사적인 날 아침,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는 모든 전함을 모아놓고, 인간의 생살을 뜯어 먹는 신 디오니소스에게 세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아주 잘생긴 데다 옷도 잘 차려입었고, 금빛 보석으로 치장한 그들은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친조카들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사람의 목을 졸랐다.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스 민족의 승리를 위해 희생양으로 바친 것뿐이다.

P17 우리는 아테나이를 무슨 대단한 도시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테나이는 넓은 농촌의 중심에 자리 잡은 시장에 불과했다.

P17 그들이 상업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P17 늘어나는 인구를 먹이기 위해 밀과 보리를 흑해 북쪽에 가서 얻어오려면 바다를 건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P18 발전과정 가운데 가장 두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다를 정복하는 일이었다.

P18~19 요컨대 농부로 시작해서 뱃사람으로 진화해온 것이 그리스 문명의 내력이다. 그리스인들이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은 시(). 사물을 시적으로 표현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어놓고 언어에는 문학이라는 단어도 없었다.

P21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알고 싶어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지식을 인간을 위해 요긴하게 쓰고자 했다. 수학을 만들었고, 천문학을 개발했다. 물리와 의학의 기본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들은 어째서 그것들을 발명하고 발견하는데 매진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에게 득이 되고, 인간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였다.

p35 그래서 이피게네이아는 야만족은 노예를 키우고, 그리스 민족은 자유를 키운다는 명언을 남겼다. 물론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P35 산은 인간을 보호하지만 바다는 그럴 수 없다 산은 경계를 나누지만, 바다는 허문다.

p40 그리스 땅을 밟은 부족들은 땅을 공동 소유라고 생각했다. 각 마을마다 책임자가 있어서 경작 계획을 세우고, 씨족별로 일을 할당하고, 생산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역할을 했다.

p42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p42 공동체로부터 밀려나는 개인이 생겨났다. 자기가 원해서 씨족 단위에서 빠져나오거나, 쫓겨난 것이다. 모험심에 불타서 바다로 나간 사람도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땅을 차지해서 사유화한 사람도 있다. 그런 식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재산의 사유화가 일어났다.

P45 그리스 문명은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문명이 발달했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은 거꾸로 인간을 변화 시킨다. 인간이 세계를 변화시키면 세계가 다시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세계는 서로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다. 인간은 세계를 바꾸고 세계는 다시 인간을 바꾼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 문명의 본질이다. 인간과 세계의 접합, 인간과 세계의 융합을 지향한다. 인간과 세계는 대립하는 당사자로서 서로 싸우고 투쟁한다. 그러는 가운데 조화를 이루어나간다. 문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Chapter 2 . <일리아스>와 호메로스의 휴머니즘

 

P.49 위대한 시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그리스 민족의 전쟁사다. 정복욕에 불타서 혹은 신의 부름을 받아서 전쟁에 나선 영웅들의 이야기다.

p.50 죽음의 그늘이 가득 드리워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역설적으로 곧 끝나고 말 생에 대한 찬사이고 목숨보다 그리고 신보다 더 위대한 인간들에 대한 증언이다.

P.51 아킬레우스는 호메로스의 <알리아스>에서 최고의 영웅이며, 모든 중요한 사건이 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p54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싸움은 <일리아스>의 백미다. 헥토르는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들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보다 강했다. 곧 이어 헥토르를 지켜준 신들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숨을 끊어버렸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트로피처럼 끌고 그리스군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p. 55 시편의 마지막은 이랬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시신이라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아킬레우스는 늙은 아비의 간청을 들어주었고, 헥토르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p. 58~59 다음은 디오레스였다.

운명의 화살이 그를 향했다.

전선에서 디오레스가 뒤로 쓰러졌다.

그는 친구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아킬레우스 : 현재에 충실한 인간형

p.83 아킬레우스는 삶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주 열렬히 사랑한다. 다만 그는 현재를 사랑할 뿐이다. 지금의 감정과 지금의 움직임만 사랑한다. 오로지 거기에만 충실하다. 매 순간이 그에게는 삶이고 전부다. 살인도 분노도, 눈물도, 사랑도, 연민도, 그는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

p.83  아킬레우스는 한번도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죽음은 없다. 왜냐하면 현재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두번씩이나 아킬레우스는 경고를 받았다. 헥토르를 죽이면 자신도 죽게 될 거라고. 하지만 아 킬레우스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살아서 이 당의 짐이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다.

헥토르 : 공동체를 사랑하는 고결한 인간

P. 89 죽음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 용감하게 죽는 길을 택해야 한다.

P.91 문명인 헥토르는 언제든 적과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나누는 힘보다는 통합하게 하는 힘이 더 강하다고 믿는다.

P.92 헥토르는 더 높은 이상을 꿈꾸다가 죽어갔다. 헥토르가 마지막까지 이루려고 했던 평화에 대한 꿈은 어쩌면 인간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지도 모른다.

P. 94~95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들은 기질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인긴이면서, 인류의 두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아킬레우스는 통째로 불타고 있는 한 시대에서 마지막 빛을 발한다. 약탈과 전쟁으로 얼룩진 아카이아인들의 시대는 이제 아킬레우스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훗날 우리 속에서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헥토르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한다. 가족과 땅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지 잘 싸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볗할 줄도 안다. 협정을 맺을 줄도 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음 세대에서 더 넓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 할 것이다. <일리아스>가 위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위대한 시편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상반된 인간형을 통해서 인간의 고결함과 정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있었고, 그들이 인류의 역사를 번갈아 가며 이끌어왔으며,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Chapter 3. 오뒷세우스와 바다

 

p.100 오뒷세우스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다음 문학작품으로 빚은것이다.

p.100 기원전 8세기 중반 혹은 후반 그리스 민족이 지중해 서쪽 세상에 대한 탐구와 정복에 나서던 시점이다. 따라서 <오뒷세이아>는 그길에 앞장섰던 뱃사람들과 상인 계급의 노래라고 보아야 한다. 

P.112 <오뒷세이아>에는 세계에 대한, 혹은 존재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있다. 그리스인에게 자연은 위험한 존재들이 사는 무서운 곳이다. 동시에 신비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 신비를 보고 싶고, 샅샅이 뒤지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지배하고 싶고, 알고싶다. 오뒷세우스는 그런 의미에서 문명인이다. 

지혜로운 인간의 상징, 오뒷세우스

선원들이 동굴에 갖혀있다. 동굴문은 너무 무거워서 열수 없다. 오직 외눈박이 거인만 문을 열 수 있다. 그 거인은 지금 선원들을 하나둘 먹고 있고, 동굴 안에는 양이 있다. 양젖을 위해서라도 거인은 문을 열고 양을 내보내서 풀을 뜯게 해야 한다.

해답 : 거인만 문을 열수 있으므로 거인을 죽여서는 안된다. 대신 무력화 한다. 눈이 하나니까 그걸 없앤다. 그러러면 재워야 하고, 재우려면 술 취하게 해야 한다. 문제는 거인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친구들이 끼어드는 것인데, 그걸 막으려면 거인의 말을 듣고도 친구들이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오뒷세우스는 자신을 아무도아니다(no one)’이라고 소개해서. 나중에 퀴클롭스가 “no one이 내 눈을 멀게 했다라고 소리지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동굴에서 반드시 나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양이다. 나갈때는 양의 배에 매달려서 밖으로 나온다. p.118~119

P120 오딧세우스는 신심이 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신이 배반할 때도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일단은 먼저 자기가 자신을 믿는다.

: 내 자신을 믿는다는 게 가장 쉬운 일 같으면서도 어렵다.

 Chapter 4. 아르킬로코스, 시인과 시민

 

아르킬로코스는 한마디로 말해서 유럽 서정시의 아버지다. P126

P129 “운다고 슬픔이 끝나지 않으리니, 차라리 한바탕 축제로 이 슬픔을 다스릴 일이다.”

p.141 죽고 나면 명예는 잊히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음의 멋을 즐겨라. 죽음은 상실에 불과하다.

 

Chapter 5. 열 번째 뮤즈, 삽포

 

p.157 삽포의 시에는 슬픔, 괴로움, 그리움 같은 고상한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삽포 이전의 사랑은 불탄 적이 없다.

P.159 많은 이들이 사랑을 노래했다. 각각의 독특한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과 삽포를 비교할 수는 없다. 안드로마케의 부드러운 말투나, 마음이 떠난 할레네를 부르는 파리스의 관능적인 말투나, 네오불레를 바라보는 아킬로코스의 직접적이고 단호한 말투나, 나노를 기억하는 밈네르모스의 슬픈 목소리도 삽포와 견줄 수 없다. 삽포는 치열했고, 엄숙했고, 무엇보다 달랐다.

P.159 삽포 이전의 사랑은 불탄 적이 없다. 물론 사랑이 사람의 가슴을 데워 무딘 감각을 일깨운 적은 있다. 희생과 욕망과 부드러움을 자극하고, 심지어 잠자리로 이끈 적은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용기를 얻었고, 기쁨을 얻었고, 후회와 슬픔을 얻었다. 하지만 삽포의 사랑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다 불태워 버리기 때문이다.

P161 모든 감정에는 대상이 있다. 누구를 만나서 기쁘고, 누구로부터 멀어져서 슬프다. 그렇게 우리는 기뻤다. 슬펐다 반복한다.

: 감정이란 그 누구 때문에 기뻤다 슬펐다. 지금은 난 어떤지….. 그 감정이 많이 무디어 졌다.

P177 젊음의 꽃망울을 사랑했다.

사랑이 왔다.

그것은 반짝임이었고 순간이었다.

 

Chapter 6. 솔론과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태동 : 화폐의 등장과 상인의 부상

P.183 기원전 8세기 아테나이가 먼저 해결해야 했던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다. 해법을 찾는 데만 200년이 걸렸는데, 그 해법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P. 186 화폐가 등장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남은 부를 화폐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귀족들은 셈이 빨라서, 화폐는 이자를 통해 부풀어오르는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귀족들의 고귀한 피에 탐욕이 섞이는 순간이다. 전에는 나눠주던 것을 이제는 빌려준다.

: 자본주의 시작 지금 돈 없는 사람은 빌리는 것 조차 힘들다.

P.196 귀족과 평민 사이에 조정자를 한명 지정해, 그가 정치, 경제, 사회적 개혁을 주도하게 하는 방안이었다.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사람이 바로 솔론이었다.

외로운 개혁주의자

p.198 몇 구절 남지 않은 시편에서 솔론은 불편부당한 싸움을 하고 있는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p.198 나는 방패로 양쪽을 찍어 누르고 있다.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서 부당한 승리를 하게 할 수는 없다.

p.199 나는 가난한 자에게나 부자에게 똑같이 공평한 법을 만들었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나를 모함하는 자들은 시민들 편이 아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시민들이 내 편을 들었을 리 없다. 나는 개들에게 둘러싸인 늑대처럼 싸우고 있다.

최초의 시민 법정

P.200 특히 솔론이 만든 헌법에는 모든 사람들이 신분과 경제력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누리는 권리가 있었는데, 바로 민회에서의 투표권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조치였다. 민회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평등하고 누구나 발언할 수 있다.

P.201 아테나이의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또 다른 공간이 있는데, 바로 법원이다. 솔론은 자그마치 6천명이나 되는 법관을 소환해 열 개 부문으로 나눠 일종의 시민 법정을 만들었다. 소위 배심제를 완성한 것이다. 배심은 시민들에게 골고루 개방했으며, 직업 법관의 재판에 대해 배심재판에 항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관할권을 차츰 넓혀갔다. 마침내 민사, 형사상 대부분의 사건들을 배심원들이 재판하게 되었다. 이처럼 시민들이 민회에 참석하고 배심원이 되는 솔론의 아테나이에서 국민 주권주의는 이미 실현된 셈이다.

최초로 노예제도에 반기를 들다

솔론은 무슨 연설을 하다가 외국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아테나이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오래 밖으로 떠돌아서 제 나라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솔론은 거의 흐느껴 우는 사람 같았다. 그러더니 다음 구절에서 솔론은 그리스 역사상 p.202 처음으로 노예제도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 노예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 주인의 채찍질에 벌벌 떠는 사람들을 나는 풀어주었노라.”

P.203 부자의 탐욕이 가져올 수 있는 재앙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조국에 필요한 것은 정의로운 법이라고 선언한다. “아름다운 법만이 질서와 조화를 가능하게 한다. 법의 힘으로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이 지혜로워진다.” 이런 구절들을 보면, 솔론은 결국 입법자이고, 합리적인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동시에 가슴속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시인이자 애국자였다.

 

Chapter 7. 노예와 여자

 

노예제도 위에 서 있는 민주주의

p.208 지금와서 아테나이 인구가 몇 명이었는지를 세기는 쉽지 않지만, 대략 13만명의 시민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여성과 아이들까지 포함한 숫자이므로 선거권자가 13만명이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거기에다 7만명의 거류민이 있었다.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아테나이로 이주해온 사람들로서 일종의 영주권자이며, 따라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리고 20만명의 노예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40만명의 인구 가운데 절반이 노예였다. 시민들이 평등하게 정치적인 권리를 행사했다는 의미에서 아테나이는 민주주의 사회였지만, 그 민주주의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노예였다.

노예는 왜 생겨났을까?

노예제도가 생긴 이유는 사회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초기 그리스 사회에는 노예가 없었다. 아주 옛날에는 부족간 전쟁에서 포로가 생기면 날로 혹은 구워서 먹었다. 그다음에는 그냥 죽이고 말았다. 포로를 노예로 삼기 시작한 것은, 사람의 생명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일을 시키기 위해서 였다. 그러다가 결국 노예를 사고파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P.208~209 전쟁 포로만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태어나면서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가 노예면 자식도 노예가 되었다.

생각하고 말귀를 알아듣는 기계

p.209 인간이 관여했던 첫 번째 상행위는 노예를 사고 파는 일이었다. 전쟁 포로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을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발전의 동력은 바로 돈이었다.

p.211 법적으로 보면 노에는 재물이었으므로 팔고, 넘겨주고, 빌려주고, 물려 줄 수 있었다. 어떤 철학자가 정확하게 표현한 것처럼 노예는 생각 하는 기계였다. 기계는 기계인데 생각하고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이 노예의 장점이었다. 

P. 212 멀리 갈 것도 없이 스파르타에만 가도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노예를 노예답게, 잔인하게 다루었다. 

P.213 스파르타에서는 1년에 한번 노예의 수를 줄이는 게임을 했다. 노예사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젊은 병사들을 매복시키고 들판에다 노예를 푼다. 잡히는 족족 죽이는 게임, 전쟁 연습치고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게 없다.  

노예제도라는 암 덩어리  

p.222 노예제도는 발전의 장애물이다. 과학자들은 잘 인식하기 못하겠지만, 어쩌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과학은 인간에게 쓸모가 있어야 한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과학이다. 최소한 그것이 과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만약 과학적인 연구와 발견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 과학은 의미가 없고, 곧 소멸하고 만다. 바로 그리스의 과학이 그랬다. 노예제도에 물든 나머지 기계를 발명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과학은 무력해졌으며, 심지어 죽어갔다. 인간을 발전시키지 못한 그리스의 과학은 스스로의 울타리 안에 갇혔고, 사변적인 과학으로 전락했다. 발전이 있을 수 없었다.

여성은 집안일 돌보는 부속품

p.230 남편의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남편을 따라 모임에 나가지도 못한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남자를 데려가는 것은 부인이 아니라 애인이다.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기껏 남편이 원하는 아이를 만들어주고, 그 아이가 일곱살이 될 때까지 키우는 일밖에 없다. 일곱 살이 되면 아들에 대한 양육권도 없다. 남은 딸아이들과 함께 내실에 갇혀, 아이 키우는 몹쓸 운명을 딸아이에게 전수하는 역할에 전념한다. 이처럼 아테나이 사회에서 여성은 주목적이 집안일 돌보는부속품이다.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민주주의

p.235 아테나이 민주주의는 허술한 민주주의다. 성인 남성의 민주주의이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40만명 가운데 남자 시민은 고작 3만 명이었다. 바람 한번 몰아치면 모조리 바다에 빠뜨려 버릴 수 있는 숫자다. 혹시라도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발명했다고 한다면, 그 발명품이란 어린아이의 입안에 난 이와 같다. 반드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민주주의였다.

 

Chapter 8. 신과 인간

 

P.240 그리스의 종교는 자유분방하다. 버릴 수도 있고, 변절할 수도 있다. 믿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그저 예식을 치를 때 어떤 자세를 취하라는 지침에 지나지 않는다. 

P.240 대대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읽은 다음에 그 등장인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신으로 만들고, 불러볼 뿐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 혹은 시인이다. 그들이 그리는 신은 따라서 인간과 흡사하다

신들의 탄생

P. 240 다른 원시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 종교가 발생한 이유도 인간의 무력함 때문이다.

p.241 생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때 인간은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이 세상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구나. 내 뜻대로 안되는게 있구나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신이 개입한 거라고 믿었다. 좋은 쪽일 수도 있고, 나쁜 쪽일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인간이 모르는 어떤 것이라는 점이다. 낯설다. 그리고 놀랍다. 신이란 그런 것이다. 두려운 힘이며,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힘이다. 그 힘 앞에 놓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스 사람들은 경외라는 단어를 섰다. 경외로운 존재, 그것이 반드시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존재는 인간과는 다른존재라는 것이다. 그리스 종교는 결국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돌에도 이상한 힘이 있고, 물에도, 나무에도, 동물에도 있다. 그렇다고 돌과 나무와 동물 모두를 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신으로 승급된다.

P.242 돌무덤을 의인화해서 헤르메스라는 신을 만든다. 여행자의 신이 되고, 잘 알지 못하는 저승으로 떠나는 죽은 자들의 신이 된다. 처음에는 돌무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신이 되고, 신비한 을 행사한다. 한 여객이 자신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음식을 놓고 지나간다. 잠시후 굶주린 다른 여행객이 헤르메스 앞에 놓인 음식을 먹는다. 그게 바로 헤르메스가 준 선물이 된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괴물 이야기

p.250~251 가령, 여괴 카륍디스와 스퀼라를 보자. 카륍디스는 지나는 배들을 모조리 삼켜버리는 소용돌이고, 스퀼라는 턱 세 개와 죽음처럼 시커먼 이빨이 달린 여섯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다. 뱃사람이 보기에 자연이란 그런 괴물들처럼 끔직하고 파괴적인 그 무엇이다.

인간의 얼굴을 하게 된 신들

p.252 오래전 조상들이 자연의 신비와 공포앞에 맥없이 무너졌다면, 오뒷세우스는 아주 잠깐씩이지만 웃을 줄도 알 만큼 성장했다. 그때쯤 그리스 사람들은 자연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냥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리스 사람들의 성질에 맞지 않았다. 그들은 괴물 같은 신과 잔인한 요정에게 인간의 얼굴을 입히게 되었다.

올림포스에서 내려와 신전에 기거하게 된 신들

P.260 그리스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다. 안되는 싸움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들이 신을 에배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신과 같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 신처럼 존재의 기쁨에 충만하기를 바란다. 신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P.261 그리스의 신들은 따라서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전진하게 하는 지표다 그렇게 됨으로써 신으로서의 품위를 잃는다. 단지 아름다운 이미지가 된다. 범접할 만한 아름다움 말이다.

P.262 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공동체에 대한 믿음으로 바귄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이면서 신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세운 도시에 대한 애국심을 되새긴다.

종교가 아닌 인간 중심의 철학

p.269 기원전 5세기,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이 힘을 얻던 시대에는 정의로운 신이 인간의 영혼과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이스퀼로스의 영원한 주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오레스테이아>의 작가의 눈으로 보면 수천 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야만스러운 힘이 세상을 지배해왔고, 이제 세상의 질서가 바로잡히면서는, 정의로운 신들의 치세가 왔으며 정의가 역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 종교가 걸어온 길이다. 종교가 인간이 되었고, 인간의 친구가 되었고, 인간의 정의를 구현하게 된 것이다.

 

Chapter 9. 비극 : 아이스퀼로스, 운명 그리고 정의

 

P.274 사실 아이스퀼로스 이전의 비극은 극이라고 불릴 수도 없었다. 음탕한 풍자와 신파극을 버무린 데 지나지 않았따. 하지만 아이스퀼로스 때에 이르러 인간들이 다루지 않을 수 없는 무거운 주제가 갑자기 떠올랐고, 그 무거운 주제를 비극이 과감하게 끌어안았다. 그 주제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

P.275 우리의 영웅은 최전선에 서서 인간의 몸짓으로 싸움을 한다. 역경에도 물러서지 않고 불행을 극복해간다. 그러고는 기뻐한다.

P.275 한 비평가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비극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주인공과 나를 일치시키는 것, 주인공의 액션을 내 액션으로 혼동하는 것이 비극이다.

p278 정치적 평등을 위하여, 사회정의를 위하여 오랜 세월 싸워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 비극은 관객들과 코드가 맞는다. 영웅이 운명과 대적하는 얘기가 대중들의 입맛에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투쟁의 장에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맞서고 있다. 토지와 돈을 소유한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빈곤으로 내몰고, 공동체 전체를 와해할 기세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사람들 간의 평등을 추구하고, 사람들 간의 연대를 중시하며 공동체의 번영을 꿈꾸는 가난하지만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자연을 대적하는 인간,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신이다. 그런데 이 인간의 친구이며 인류의 수호자인 프로메테우스에게 제우스가 벌을 내린다. 인간에게 불을 주었기 때문이다. P.280

P.283~285 그는 인간의 창의적인 정신을 대표한다. 기술과 발명을 통해 자연에 대적하는 인간이 바로 프로메테우스다. 즉 지금 프로메테우스가 벌이는 싸움은 프로메테웃의 싸움이기 보다는 인간의 싸움이다. 인간이 제우스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몰살시키고자 하는 자연력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 싸움의 와중에서 인간은 집을 지었고, 동물을 길들였고, 쇠를 만들었고, 천문학과 수학, 의학, 문자 등을 발명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의미의 인간의 전형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 시인

P.307 아이스퀼로스는 마음 깊은 곳에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신들과 인간이 결국 조화 가운데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때는 아테나이 시민들이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 정부를 구성하던 시점이었다. 그나마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치형태를 모색하던 때였다. 시인은 그 시점에 신의 세계조차 정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아테나이 시민들의 국가가 조금 더 정의의 편에서 살기 좋은 국가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것이다.

 

Chapter 10. 시민 페리클레스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 장본인이다. 아테나이의 지휘자였고, 지도자였다. P.312

P.313 투퀴디데스의 증언을 보면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은 연설로 그리스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고 한다. “용기가 자유를 낳고, 자유가 행복을 낳습니다. 우리가 이 두려운 전쟁 앞에서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테나이 시민들 앞에서 했던 이말은 그리스 사람들 전체가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일깨웠고, 그로 인해 그리스 사람들은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게 되었다. 페리클레스는 갈래갈래 찢긴 그리스 사회를 아테나이 중심으로 모으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페리클레스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누구나 예견하지만 제대로 대비할 수 없는 죽음 때문이었다. 죽음이 계획의 완성을 방해했다.

민주주의, 꽃피자마자 시들다

P.319 공직 사회의 문호 개방과 급료 지급, 이것이 페리클레스가 생각한 민주주의 개혁의 내용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최고재판소의 거부권을 없애는 일이었다. 실제로 에피알테스라는 시민이 최고재판소 판사들이 횡령죄를 저질렀다고 폭로했다가 아무도 모르게 암살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61년에 최고재판소의 특권을 폐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최고재판소는 이제 이름만 남아 있고, 대부분의 임무는 민회와 시민 법정에 인계되었다.

P.322 페리클레스에 대해서는 두가지를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아테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민주주의의 발전에 방해가 되었고, 심지어 시들게 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P.323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페리클레스의 치세이던 기원전 451년에서 450년 사이에 부모 모두 아테나이 시민일 경우에만 자식에게 시민권이 주어지는 규정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솔론의 시대에는 그런 법이 없었다. 아버지가 시민이면 어머니가 외국인이라고 해도 시민권을 가졌다. 테미스토클레스나 키몬, 투퀴디데스, 크레이스테네스도 모두 그런 의미에서 시민이었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심지어 아테나이 발전에 기여한 자들도 시민권을 얻었고, 관료들의 묵인 아래 시민으로 등재되는 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게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시민의 수가 감소했다. 기원전 455년과 444년 사이에 아테나이에 기근이 덮쳤을 때, 델타의 왕 프삼메티코스가 아테나이에 수천 상자의 밀을 구호품으로 보냈다. 이때 구호품을 신청한 시민은 14240명이었다고 한다. 신청하지 않은 사람의 수를 많이 잡아서 1만 명이라고 해도, 아테나이는 겨우 3만 명의 시민만 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르러 아테나이 민주주의 꽃이 피었고, 그리스에서 가장 민주적인 도시로 추앙을 받았다. 그 아테나이에 총 40만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그 가운데 시민은 고작 3만이었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잠시 꽃을 피웠다가 시드는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제국으로 가는 길

P.324 동맹국끼리는 평등한 관계였다. 하지만 맹주인 아테나이는 너무 강했고, 다른 동맹국들은 힘이 없었다. 그런 불균형 상태로 인해 동맹국들 가운데는 탈퇴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가 생겼고, 그때마다 아테나이는 가혹한 진압에 나섰다. 기원전 470년에 낙소스가 그랬고, 기원전 465년에 타소스가 그랬다. 두나라는 동맹에서 조공국으로 전락했고, 해마다 조공을 바쳐야 했다.

P.327 투퀴디데스의 책에 보면 페리클레스가 시민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테나이가 싸우는 이유는 누구 하나를 제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배력을 잃게되면 억눌렸던 적들이 나타납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편안히 물러서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적 민주주의의 실체였다. 이민주주의는 철저하게 노예들 위에 세운 민주주의다. 또한 조공국의 재산과 땀과 피위에 세운 민주주의였다.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

기원전 450년에서 499년 사이에 페리클레스가 주도해서 통과시킨 법에 따르면 제2차 페르시아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신전을 재건하기 위해서 동맹의 돈을 가져다 쓸수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P.329 재건축이 시작된 것이다. 기왕에 존재하던 자질구레한 입상들을 빼고도 네 개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발주되었다.

P.330 파르테논과 프로퓔라이아, 에레크테이온, 아테네-니케 신전 등이 그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로 아테나이 건축과 조각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순수한 아름다움의 절정이엇다.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와 아테나이 시민들의 심미안 자체가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했다.

P.335 시대의 걸작 파르테논은 순수한 작품이다. 모든 걸작들이 그렇듯이 평범해 보이는 외관 속에 엄청난 재주와 철학이 깃들어 있다. 언뜻 보기에 파르테논은 순전히 수학적인 건축물 같다. 재료를 수직, 원 혹은 삼각형, 직선의 형태로 잘 배열해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신전 건축 기술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의 높이와 너비, 길이 사이의 호아금비율을 맞추고 있다. 기둥의 높이와 지름의 관계, 기둥의 크기와 기둥 사이의 거리 관계, 지표 부분의 기둥 지름과 꼭대기 부분의 지름과의 관계 등을 수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면에 불과하다. 현재의 과학기술로 볼 때, 우리식의 셈법을 맞췄다는 얘기지, 그것이 파르테논의 본질이 아니다. 파르테논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파르테논은 수학 공식 속에 갇힌 건축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건축물이다. 수학이 아닌 감성을 건드리는 건축물이다.

영광과 실패

P.342 누구도 흉내 낼 수 업는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도 실상은 다른 동맹국의 돈과 노예들의 피로 가능했다는 점을 확인하면,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적은 거기 있었다. 페리클레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아테나이 시민 전체의 잘못으로 적을 만든 것이다. 노예를 허용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없다. 군주가 있을 뿐이며, 노예가 있을 뿐이다.

P.343 페리클레스의 영광과 실패를 목격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진실을 깨닫게 된다. “문명은 모든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문명이라야 한다.” 그리스 문명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과 용기라는 열매를 주었다. 하지만 그 열매 속에는 쓴맛이 도사리고 있다. 그게 없어지기 위해서는 다시 몇 세대가 더 흘러야 했다. 문명은 푸른 사과다. 태양이 더 내리쬐어야 붉은 사과로 변할 것이고, 아직은 태양이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는 아직 어린 문명이다. <오뒷세이아> 저자의 말마따나 태양이 그리스를 더 키워줄 것이다.

: 항상 그 태양이 나를 따라와 주길   지금 처럼

 

 

그리스인 이야기2 /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Chapter 1 안티고네의 약속

 

비극 : 한계를 초월하려는 영웅의 투쟁

P.11 거룩한 성수나 멸균 처리된 밍밍한 물로는 비극을 쓸 수 없다. 비극은 눈물과 피로 쓴다.

P.12 비극이란 아테나이 민중(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이 많은 종족들이 아테나이를 침입)들을 민주주의와 시민 자유의 옹호자로 만들어 준 역사의 압력에 그들이 시적인 언어로 기록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

P.13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두 명의 비극 시인은 귀족 계급이나 상층 부루주아지 계급에 속한다. 이들의 예술은 불 같은 원천을 다스리고 사나운 불길을 시민들의 삶에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해주는 자양분 같은 태양빛으로 바꾸어 주었다.

P.13 비극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자유로운 인간들의 교육이야말로 시인 본연의 임무였다.

P.13 비극은 원칙적으로 상당히 교육적인 장르다. 행동의 재현을 통해서 비극 시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P.14 극적인 투쟁 장면은 인간을 영웅으로 끌어올리는 투쟁을 담고 있으며 이는 비극의 고유한 주제이기도 하다. 영웅은 결국 추락하지만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위대함의 새로운 차원을 열려는 인간들을 일깨워준다.

P.14 영웅의 추락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P.14 모든 비극들은 하나같이 이제까지 듣도 못한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인간, 장애물에 부딪힘으로써 미지의 세계와 대면에 위대함의 새로운 차원을 열려는 인가들을 보여준다.

P.14 연속되는 시련을 통해서 인각 조건이라고 하는 좁디좁은 감옥은 차츰 넓어질 것이다.

P.16 비극은 항상 지속되고 변화하는 인간 세상의 미래를 다루며 이를 표현하고 변화시킨다.

P.16 비극이 존재하는 동안 그 비극을 태어나게 한 조건들을 털어내고 다른 사회에서 여러 형태로 변신해 가는 동안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기도 하고 아름다움으로 빛나기도 하며 그 위대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기도 한다.

안티고네와 크레온, 대립되는 가치의 충돌

P.16 비극의 여왕으로 꼽히는 안티고네는 많은 약속을 담고 있다.

안티고네 : 개인의 삶 크레온 : 국가를 의미 즉, 개인의 삶과 국가의 가치 충돌

안티고네 내용 정리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개인의 양심을 대변하며 크레온은 국가와 국가의 준엄한 법을 대변한다. 안티고네는 본인이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 하는 반면, 크레온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법을 어기고 국가에 불복종할 경우 사회가 무질서해질 거라는 입장에서 안티고네의 불복종을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음

비극에 으레 등장하는 주제, 즉 삶에 대한 전적인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죽을 힘을 발. P.25 휘하지 못한다는 주제를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라고 하는 인물을 통해 빛나는 진실로 보여주고 있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굽히지 않으므로 인해 주위의 인물들까지 비극으로 끌고간 인물.

<<안테고네 전체적 부분 정리>>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대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경우, 그 경우에 나는 저항해야 할까 아니면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할까

내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살아갈 수 없고 국가에 의해 억지로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야만 한다면 나의 신념과 다른 삶이 인간다운 삶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 안티고네의 불복종은 의미가 있고 오늘날의 시민 저항권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국가의 법은 사회 정의를 구현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조화를 가능케 하고 그로써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하나의 토대를 마련해준다고 할 때 누구든 자의적으로 법을 어겨도 된다면 누가 법을 지킬 것이며 어떻게 법을 통한 사회 정의 구현 등등이 가능해지겠는가 하는 점에서 국가의 권위를 내세워 법적 안정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크레온의 입장에도 또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조화가 유지되도록 사람들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와 법이 필요하며 국민들은 법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들을 위한 법, 악법 이라면 그 때는 국민의 저항이 그 무엇보다도 정당하고 필요한 행위일 것이다.

 

Chapter 2. 돌을 조각하고 청동을 주조하다

 

P.59 그리스 사람들은 시인이자 타고난 조각가 였다.

P.60 지금 전해져 오는 그리스 시대 조각상들은 헬레니즘 시대의 모방품에 불과하다. (복사되고 왜곡된 졸작들이다)

P.61  고대 조각 분야 활동하던 작가들은 석재 조각가가 아니라 청동 조각가들이지만 단 한 점도 전해지지 않는다. 고대 말기에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복제품을 통해서만 작품을 접할 수 있다.

P.61 이것이 그리스 조형 예술에 대한 우리의 무지이다. 앞으로 절대로 원본을 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무로 신들의 형상을 깎다

P.63 그리스 민족은 돌로 이루어진 땅의 자손들이다. 그리스 예술가들은 나무를 잘라 조각했다.

P.63 자신이 경배하는 무서운 신들의 형상을 나무로 표현했다. 신들에게 인간의 얼굴을 선사하는 것은, 신들을 몰아내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으로 바꿔놓음으로써 신들이 지닌 저주스러운 무시무시한 힘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P.64 신들을 모습을 나무로 조각해 성소에 놓았고 그것을 작업된 조각이라는 뜻의 크소아논이라고 불렀다.

p.65 미켈란젤로가 말했듯이우리는 손이 아닌 머리로 그림을 그린다. 그러니 자유로운 머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P.65 신을 재현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던 예술가는 신성에 대한 존중과 신과 대면해야 하는 인간의 대담성을 결합시키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신앙심은 장애인 동시에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창작 의지를 부추기는 촉매였다.

그리스 최초의 조각 사모스의 헤라

P.66 예술가는 크소아논을 만들기 위해 곧게 뻗은 통나무를 선택한다. 신은 인간보다 크므로 인간의 키보다 약간 큰 덩어리로 나무 기둥을 자른다.

P.66 예술가의 손이 유연해지고 단단해진 시기인 기원전 6세기 중반 정도에 그리스 사람들은 무른 돌, 즉 석회석을 공략한다.

P.66 조각에 대한 투쟁은 만만치 않아서 서정시는 빠르게 발전하는 것에 비해 조각의 발전은 다소 느렸다.

P.67 사모스의 헤라는 그리스에서 발견된 최초의 조각 중 하나이다. 크소아논은 아니지만 통나무 조각의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신적인 존재를 재현한 것 이기 보다는 살아 있는 통나무 조각이 여인이 된 것처럼 보여진다.

P.69 벌거벗은 남자의 입상, 쿠로스

P.69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마다 장애와 싸워야 했다. 선배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힘들게 성취한 위업의 연장선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

P.70 벌거벗은 남자의 입상인 쿠로스는 젊음으로 충만한 신을 의미한다.

P.70 쿠로스를 조각하면서 그리스 예술가들은 인체에 대해 배웠으며 조각상에 근육의 움직임들이 발전해 가며 표현되었다.

P.72 미소를 띄는 조각상들이 있는대 상고 시대 조각에서 나타나는 미소는 복자들의 특권인 영원히 사는 기쁨의 반영이다.

P.74걷는 모습을 형상화 하지 않았지만 왼쪽 다리는 앞으로 나와 있다. 이집트 조각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엄격한 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나와 있는 왼쪽 다리로 인해 균형이 깨져버릴 수도 있다.

P.75 움직임을 재현하는 데 따르는 기술적 어려움은 예술가가 자신이 재현하려는 신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경외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P76 옷을 입은 여자의 입상, 코레 쪽

P76 벌거벗은 남자상 쿠로스에 옷을 입은 여인상 코레가 화답한다.

P76 코레는 주름 잡힌 옷을 걸쳤다. 다양한 색채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예술가가 조각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꾸미고 싶어서였기 보다는 단순히 눈에 띄는 색채를 통해서 석재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P.79 예술이란 평온하기 보다는 야만스럽고 유쾌했다는 표현이 훨씬 잘 어울린다.

P.79 조금이라도 닮은 여인상 없이 예술가들은 각각의 재미난 차이점들을 도입했다. 절대 우연이 아니라 예술가의 선택이 낳은 결과이다.

P.80 코레에서 예술가의 관심사는 여인의 인체기 보다는 복잡적인 주름 연구였다.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 재현한 신의 이미지

P.80 기원전 6세기경 활약한 조각가들의 예술 활동은 인간의 신체 정복

P.81 조각가들은 자신들이 끊임없는 열정을 기울여 파헤쳐가는 인체를 신의 몸이라고 간주했다.  조각하면서 그리스 예술가들은 그리스 민족이 섬기는 신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P.81 신들을 동물이나 괴물로 형상화한 이집트인들과 달리 그리스 인들은 애초부터 괴물 같은 형상은 제쳐놓았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신은 벌거벗은 소박한 젊은 청년, 아름답게 치장하고 상냥한 표정을 짓는 젊은 처녀였다.

P.82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에게로 규칙을 도출할 수 있다. 신을 표현하기 위해 환하게 빛나는 대리석을 사용했다. 불멸의 존재인 신에게 그 아름다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려주었다.

P.83 조각가는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을 인체를 재현함에 있어서 어제보다 발전된 지식으로 정확성을 기하려고 노력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루어가는 발전을 아낌없이 신에게 바친 셈이다.

부동자세에 움직임을 부여한 조각가, 뮈론

P.85 누가 인간-신을 걷게 함으로써 그의 몸에 가득 채운 에너지를 발산시켜 줄 것인가

P.86 뮈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을 보면 조각에서 움직임이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신이 아닌 인간을 재현했으나 뮈론은 운동선수를 택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움직임을 선택했다. 조각의 정면성의 법칙을 흔든 것이다. P.86

P.87 그가 안내하는 세계는 움직임이 최고의 권위로 지배하며 인간은 균형에 의해서 지탱되는 힘에 취한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뮈론은 조각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P.88 살아 있는 존재의 움직임은 시간 속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순간들의 결합을 통해서만 조각으로 포착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움직임의 달인은 시간의 달인이기도 하다.

P.89  원반 던지는 사람의 단계에서 대상은 재생되기에 앞서 조각가에 의해 다시 한 번 성찰되고 해석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인체 골격과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토대를 둔 조각가의 사실주의가 단순한 현실 복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고전주의 : 인간이라는 피조물과 진리에 대한 애정

P.89 조각에서 사실주의란 조각가가 객관적인 현실로서 재현하고자 하는 몸에 대한 지식 의미

P.90 인체에 대한 사실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조각가 자신이 그가 관찰하는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고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고전주의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P.90 예술가는 각종 특징과 형태, 자세 등을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같은 선택은 아름다움 기반이 된 황금률이 기준이 되었다. 황금률이란 나뭇잎 또는 인체 같은 자연의 비율이나 형태에서 두루 발견되는 객관적인 법칙을 가리킨다. 자연이 객관적인 법칙에 따라 인체의 가장 조화로운 비례를 찾아준다는 이 의인화 현상은 고전주의 시대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P.91 그리스 예술가들은 사회에서 이미 해체될 위기에 놓인 것과 앞으로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될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삶의 의미 면에서 부상하는 것을 택했다. 사실주의는 매우 건설적이었고 고전주의는 활기찬 사회에서 살고자 하는 예술이 따르는 법칙과 다르지 않았다.

P.91 용기는 무표정한 얼굴을 통해서 드러난다.

 P.91 신만이 소유했던 완벽한 평온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P.92 사실주의에 토대를 둔 그리스의 고전주의는 인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기 시작한다.

P.92  요란스러운 몸짓을 동반하는 힘은 그 몸짓에 의해서 결정되는 하나의 행동만을 가능하게 하지만 고전주의 조각상의 힘은 이와 반대로 결정적이지 않는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P.92 고전주의 조각은 언젠가 상황이 요구한다면 사나운 급류로 변할 수 있는 힘의 저수지, 평온한 호수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인체 비율의 탄생

P.92 폴뤼클레이토스가 활동했던 시기는 그리스 예술의 결정적인 시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사실주의적인 완벽함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전주의적인 인본주의의 정점에 위치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P.93 폴뤼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청년을 비롯하여 그의 대표 작품들에서 인물들을 걷게 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인 걸음걸이를 보는 듯한 환상을 선사했다.

P.93 균형과 전혀 반대되는 효과를 내는 대칭속에 놓임으로써 걷고 있는 듯한 허구적인 동작에 유연성과 단호함을 부여한다.

P.95 폴뤼클레이토스는 손바닥을 단위로 하여 신체의 각 부위와 각 부위 사이 관계를 계산했다. “걸작품이란 머리카락 한 가닥의 차이까지 찾아낼 만큼의 수많은 계산의 결과라고 말할 정도로 인간의 구조에서 숫자가 가지는 중요성을 인식했다.

P.95 창을 든 청년은 미래에 도래하게 될 인간 사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별다른 노력없이도 물씬 풍긴다.

P.96 자연이라고 하는 객관적인 세계와 분리할 수 없으며 사실주의에 의해 오히려 자연에 밀착하는 이 아름다움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킬 때에만 아름다움으로 비칠 수 있다.

신들을 조각하는 거장, 페이디아스

예술에는 완벽의 정도가 있으며 이는 자연에 성숙한 정도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 페이디아스의 천재성은 이 성숙 지점에 위치한다. 그의 예술은 상고 시대 예술에 비해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금 고전주의 이전 시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P.96

P.96 페이디아스는 신들을 인류과 매우 가까운 형상으로 조각했다.

P.96 아름답기만 한 인간으로 신을 표현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형태에서 출발해서 영웅적인 모습을 가진 신의 모습에 도달했다. 신들에게 완벽하고 소박한 지혜와 선의를 부여했고 이 완벽함을 그가 바라는 조화로운 사회가 수여하는 선물처럼 인간들에게도 부여했다. 이것이 페이디아스 예술이 지니는 본직적인 특성이다.

 P.97 페이디아스의 예술은 인류에게 신적인 형태들을 선사했다는 데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P.97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고 사물들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P.98 인간은 자연 속에서 존재한다.

페이디아스는 정의와 선의를 통해 행복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평정심에 도달하고자 한다. P.98

P98 페이디아스가 빚어낸 신들도 자연속에서 존재한다. 신들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적인 존재들이다. 신들은 인간들이 벌이는 대중적인 축제에 끼고 싶어 인간들 틈에 끼어든다.

P.98 페이디아스는 신전에 최초로 신화 대신에 대중적인 축제를 재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신들

P.99  페이디아스는 독립적인 신상도 몇 개 제작했다. 파우사니아스는 그를 가리켜 신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P.100 대표적인 첫번째 작품 입상 렘노스의 아테네는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나 지금은 조각난 대리석 복제품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그가 느끼기에 그리스 민족의 용기와 지혜의 산물을 나타내는 평화를 표현했다.

P.101 두번째 작품 올륌피아의 제우스는 금과 상아로 제작되었다. 규모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소재 때문에 약간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페이디아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신의 위대함을 구현한 것이다. 제우스는 그리스 민족 전체의 우상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P.103 위대한 작품이란 세기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전달되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이 당대의 진리, 고전적 사실주의 아니겠는가.

 

Chapter 3 과학의 탄생 :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P.107 인류 역사에는 갑작스럽게 새로운 형태의 행동이나 사고가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

P.107 자연을 대하는 학문적 자세는 원시적인 그리스 사람들, 최초 인간들에게도 친숙한 것

P.108 합리적인 과학과 신화를 서로 배척하는 대립되는 개념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신화와 과학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

P.108 그리스에서 막 태동하는 과학은 보기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과 닮았다.

P.109 적대적이며 이상하고 비극적인 외부 세계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보호할 수단을 만든다.

P.109  운명에 대항하기 위해 윤리를 고안했고 인간에게 윤리란 살고 죽는 방식이다.

P.111 인간의 과학적인 태도와 관찰자로의 자세 자연의 법칙을 모방하고 활용하려는 인내심 덕분에 농업 발병, 금속 발견 짐승 가축화 등 신석기 시대에 이미 인류가 자랑할 만한 몇몇 발명이 이루어졌다. 수레, 바퀴, 태양력, 태음력 등의 발명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역사에 등장하기에 훨씬 앞서 이루어졌고 그들은 물려받은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해왔다.

P.111 그리스인들은 발명을 선의의 신들이 준 선물로 여겼다.

P.112 새로운 사상의 집결 지, 이오니아

P.112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에 이오니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오니아 도시 전체에 피 바람을 몰고 온 계급 투쟁은 결과적으로 그리스에서 발명이 풍성하게 이루어지게 했다.

P.113 서로 기선을 제압하려고 분기충천한 가운데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발명되었다.

p.117 이들은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했으며 그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인간적인 삶의 리듬을 익혀야 한다.” 고 말년의 아르킬로코스는 주장했으며, 이는 장차 도래하게 될 과학과 철학의 언어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P.117 신을 배제하고 세계를 설명하다

P.117  무지는 무거운 짐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탈레스는 하늘과 땅 사이(공기 중에 나타나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단순한 사물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P.118 과학의 목적은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것이 듯 과학은 실용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P.118 과학 발전의 첫째 조건은 감각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P.122 탈레스는 단순한 자연현상들로부터 물에 대한 개념, 즉 물이 모든 원소의 근본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최초의 유물론자, 탈레스

P.123 같은 시기 탈레스를 포함한 이오니아 학자들은 또 다른 과학적 방법을 발견했다. 바로 기하학혀태를 활용한 수학적 방법이었다. 인간은 일찌감치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P.124탈레스는 신전 기둥의 둥근 초석 건축과 관련하여 기하학적인 발견을 했다. 그는 반원 안에 포함된 각은 직각이며 반드시 그럴 수 밖에 없음을, 반원의 지름의 원주각은 직각임을 증명해 보였고 피타고라스는 오늘날 피타고라스의 정의라 불리는 것을 증명했다.

.P.127 그리스인들은 이렇듯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기하학이라고 하는 학문을 창조했다.

P.128인본주의적 학문에 기초를 둠으로 인해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엄격한 법칙을 읽을 수 있었다.

탈레스의 후계자들

P.131 탈레스는 연구자들의 협업이 있어야 발전 할 수 있다 생각하며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연구하지 않았다. 실증적이고 실리적인 정신에 입각에 자연을 관찰, 자연철학자라고 부른다.

P.131 이들의 관찰은 신속하게 경험에 호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P.132 아낙시만드로스 : 최초 지도 작성 , 천문 관측기 그노몬을 사용한 최초 인물 이를 이용해 해시계를 만들고 최초의 괘종시계인 폴로스를 고안했다.

P.132 크세노파네스 :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졌던 개방적인 정신의 학자

그밖에 많은 탈레스의 후계자들이 보여준 노력들로 인해 천체에서 해마다 진행되는 태양의 정확한 움직임과,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정확한 수학적 값어치를 발견했다. P.133

 

상식의 조롱거리가 된 천재

P.133 천재적인 탈레스가 별을 관측하느라 하늘만 쳐다보고 걸어가다 그만 우물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P.133 그로 인해 다른 학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P.134 과학이란 참으로 인간에게는 어렵기 그지없는 정복의 대상이다. 상식에 도전해야 하며 상식의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고대 유물론자의 사라진 저서들

134쪽 이오니아의 사상과 탈레스 학파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물질적 요소에 기반을둔 역동적인 세계관을 지향했다.

P.134 자연을 영원하고 무한하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물질의 덩어리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P.134 유물론적 관점은 기원전 5세기에 데모크리토스에게 계승되었다

P.134 파르메니데스 학파는 모든 것은 안정, 곧 움직임 부재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P.134 데모크리토스는 각각 반대 의견을 반박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답을 찾아 갔으며 나름대로 자연의 체계를 정립해갔다.

P.135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은 대단히 방대했으며, 인간 지식의 모든 분야를 넘나들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전해지는 저작은 단 한군데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온전하게 전해지는 저작은 단 한 권도 없다.

p136 기독교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대 저작들에 대한 박해(6,7,8세기까지 무려 3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가 유물론의 아버지로 알려진 이 작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가혹하게 자행되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기독교 교회는 반대로 관념론의 창시자에게는 상당히 너그러웠다. 심지어 그로부터 기독교 신학 체계의 상당 부분을 차용했다.

p137 그리스의 모든 위대한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데모크리토스 역시 타고난 여행가였다.

원자설, 최초의 무신론적인 학설

P.138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라고 하는 대단한 용어를 남겼다.

그가 세운 자연의 체계 안에서 원자와 빈자리 두 가지의 원초적인 현실을 인정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견고하고 분리 불가능하며 해되지 않는 입자라고 정의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수량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질을 추론해내는 자연과학을 정립하고자 시도한 최초의 인물

P.140 원자들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말하자면 이들은 고저도, 중간도, 끝도 없는 세계에서 아무 방향에서 서로 충돌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이 같은 주장에서 그의 자발적 직관의 정확성을 뚜렷하게 간파할 수 있다.

P.140 자연은 아무 방향으로나 마구 튀어 오르는 원자들이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원자들 각각의 운동 경로는 그러므로 교차하게 되며, 그 결과 서로 스치고 흔들리며 높이 튀는가 서로 충돌하다가 무더기들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141 우리가 사는 세계는 수많은 원자들이 구형의 덩어리를 이루고 그 안에서 가장 무거운 원자들이 구의 중심을 차지하고 가벼운 원자들은 가장자리 쪽으로 밀려난다. 무거운 원자들은 대지를 이르고 대지 내부에서 가벼운 원자들은 물을 이루며 더 가벼운 원자들은 공기를 형성한다.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무한한 공간 안에 형성되어 있는 여러 세계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무한히 많은 세계가 존재하며 각각 고유한 태양 행성 별들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물과 진흙 속에서 태어난 우연의 산물

P.142 데모크리토스는 과학이 인력이 법칙, 같은 형태의 원자들끼리 뭉치려는 법칙을 통해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P.143 생명체는 원자의 결합체이며 이 원자들은 오랜 진화를 거치며 형태 결합체 이루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인간에 대해서 물과 진흙 속에서 태어난 우연의 산물이라는 가설 제시

P.143 신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죽음)에서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

P.143 인간보다 미세한 원자들로 이루어진 존대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

물질을 사랑한 이유로 가장 핍박받았던 학자

P.145 데모크리토스는 이런한 설명을 전개하면서 난관에 부딪히거나 심지어는 모순에 봉착하기도 했다.

P.147 데모크리토스는 고대에 가장 핍박받는 학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물질을 사랑하고 찬미하며, 우리의 영혼이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감히 주장했으니, 후대 사람들로부터 악마의 앞잡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물질을 사랑하고 찬미하며 우리의 영혼이 물질로 만들어 졌다고 주장함으로 인해 학자로서의 명성과 성과물을 잃었다.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고대 과학

P.148 그리스 과학은 고대 전 기간에 걸쳐 진보를 거듭하지도 지속되지도 못했다. 과학은 로마 시대에 들어과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이후 지속된 중세에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P.148 르네상스는 정확하게 고대 과학이 추락한 그 지점에서부터, 그 지점을 잊지 않고 정확하게 다시 거기에서 출발하게 될 것이었다. .

 

Chapter 4 소포클래스와 오이디푸스 운명에 화답하기

 

P.151 이제 다시 인간의 삶과 세계를 파헤치는 또 다른 방식 그리스 비극으로 돌아가 보자. .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오이디푸스 신화

P.152 소포클레스는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 오이디푸스 신화를 끔찍하게 생각, 관한 책을 씀.

p.152 신들은 과연 죄 없는 인간을 벌할 수 있는지 없는지 끝까지 지켜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발동했던 것 같다. 신들이 방향타를 쥐고 이끄는 이 세계에서 과연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P.153 실제로는 전혀 일어 날 것 같지 않은 상황과 자의적인 심리가 뒤엉켜 있는 신화를 민중에게 설명하고자 함. 어찌할 수 없는 성격을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서 이 문제에 대한 인간의 답변을 끼워 넣는다.  

P.153 가장 고귀하고 영예로운 인간의 파멸

P.153 장 콕토가 현대적으로 해석한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는 이런 말로 막을 올린다. 콕토는 제목도 아예 지옥 같은 기계라고 붙였다. 

소포클레스는 극중 행위를 마치 기계 장치를 설치하듯이 쌓아 올렸다. 극중 행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인간 심리를 구성하는 톱니바퀴들이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맞물려 돌아감. 등장인물 모두 기계의 부속품들이다.

P.156 고귀함의 정점에 대비되는 비참함의 절정을 나타내는 이미지다. 

P.157 동시에 들리는 두 가지 의미는 마치 제멋대로 뒤섞인 음표들이 끔찍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행위가 전개되는 과정에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두 가지 움직임이 있으며 우리는 두 가지 움직임을 동시에 따라가는 셈이다.

 

P.158 눈부신 진실 앞에서 스스로 두 눈을 찌르다

P.158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살해 사건을 해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 늙은 장님을 오게 했다.

P.165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 그리고 계속되는 삶

P.165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 모든 비극은 재앙으로 막을 내린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 모든 비극은 재앙으로 막을 내리는 것 같아 보이나 그렇지 않다.

파멸의 운명을 맞은 오이디푸스의 내면에서 또 다른 삶이 박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P.166

이제는 오이디푸스가 신들에게 화답할 차례

비극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P.167

P.168 첫 번째 단계는 반항이다.

P.174 분개심, 반항심이 첫 번째 반응이라면, 두 번째 단계는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P.180 그가 운명에게 보이는 유일한 허점이 있다면 단지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을 지배하는 우주의 법칙에 복종한다는 사실뿐이다.

P.180 이처럼 비극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의미는 지지인 동시에 해방이 라고 할 수 있다.

P183 우리가 신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신탁, 예감, 꿈 등은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막역한 언어로서, 저 깊은 심연 속에서 인간의 영역을 향해 솟아오르는 물방울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신의 존재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신을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하락하지 않는 신호인 것이다.

P184오이디푸스가 모호한 언어를 통해서 우주가 그에게 전하는 부름을 듣게 되면, 그는 즉시 사랑의 부름을 받을 때에 버금가는 열정으로 운명의 길을 향해갈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같이 고귀한 형태의 종교심을 가리켜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표현을 썼다. (니체도 고대인들의 사고를 집약해서 말하면서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공격의 망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용서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아모르 파티는 산산조각 난 인간의 마음속에서 운명과 소명이 화해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Chapter 5. 핀다로스, 시인들의 왕자, 왕자들의 시인

 

눈부시도록 화려한 시인은 아이스퀼로스,, 아리스토파네스와 더불어 그리스 언어의 대가로 꼽힌다. P.210

승리자를 찬미하는 테바이의 시인

P.211 그가 처음으로 쓴 승리의 오드는 아폴론 축제 경기의 우승자에게 헌정돈 열 번째 시로 최고 걸작품은 아니더라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P.213 “아들의 천성은 아버지의 궤적을 따른다뛰어난 신체는 도덕적인 덕성도 마찬가지겠지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는 다고 생각했다.

P.213 운동선수들의 행복에 대한 주제에 관심을 가졌고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 승리자 아들을 둔 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동 하늘까지는 닿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복에 도달할 수 있다

P.216 젊은 시절 쓴 시에 판다로스는 인간을 위한 모든 부드러움과 감미로움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세 가지 유형의 남자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세 가지 유형의 남자란 뛰어난 영감을 지닌 시인, 아름답게 치장한 남자, 영광으로 빛나는 남자들이다. P

P.216 세 미녀로 대표되는 덕목들이다. 세 미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끈다. 축하해야 할 모든 요소들을 세 미녀의 공으로 돌렸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매력적인 남자라고 부르던 자에게는 단 한마디의 경의도 표하지 않고 우아함을 칭송한다. 그의 왕국은 세미녀의 왕국이었다.

P218 운동 경기에서의 승리가 전쟁 승리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했다. “젊음이 주는 아름다운 팔다리가 그에게는 인간의 삶이 정복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였다.

p224 “나는 언어 위에 노래하는 숫돌을 놓았으며 그 돌은 원천으로부터 전해지는 입김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

 

Chapter 6. 구대륙 탐험에 나선 헤로도토스

 

P.251 헤로도토스는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런데 그는 지리학의 아버지가 될 자격도 충분하다.

P.251

상상 속에 존재하던 세 개의 구대륙을 소개했는데, 대지는 하나라고 믿었던 그 자신은 정작 어째서 대륙이 세 개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P.251 에우로페(유럽), 아시아, 리뷔에(리비아)였다. 여기서 리뷔에는 아프리카 대륙을 가리키는데, 1492년까지는 정확한 명칭으로 인정받았다.

P.252 독립에 대한 유별난 애착을 만방에 드러냈다.

가진 그리스인은 그리스인과 다른 민족들 타지인과 확연하게 구별지었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을 사랑했으나 다른 문명에 대한 호기심도 강했다.

P.255 그는 다른 사람 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이렇다 할 비판 의식 없이 무분별하게 옮겨 적기도 했다.비판 의식 없이 무분별하게 타지인의 말을 옮겨 적기도 했다.

P.260 고대의 주요 곡물 산지다. 그것만 보더라도 헤로도토스 자신은 의식하지 않을지 모르나, 자리학이라는 학문이 인간의 어떤 필요에 의해 탄생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헤로도토스의 관심 나라는 공교롭게도 모두 고대의 주요 곡물 산지다. 지리학이 인간의 어떤 필요에 의해 탄생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곡물 산지 세 곳은 스퀴티아(우크라이나), 메소포타미아, 북아프리카다.

P.267 그 자진도 지구를 구의 형태가 아닌 납작한 원의 형태로 보았다.

헤로도토스가 먼저 강조하는 것은 침략에 맞서서 저항하는 스퀴티 아인들의 독창성이다 적이 침략해 오면, 이들은 일단 퇴간한다.

스퀴티아인들은 적이 침략해오면 일단 퇴각하고 자신들이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 광대한 들판으로 적군을 유인한다. 왕이 죽으면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향신료, 씨앗 등으로 배를 채운 후 다시 꿰맨 후 수레에 실어 왕의 지배를 받던 지방을 다 돌고 사각형의 커다란 구덩이에 왕이 살아있는 동안 필요로 하던 사람들과 짐승들을 함께 집어 넣었다.

*소문에서만 의존해 쓴 나라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P.281~282 녀석들이 짝짓기를 할 때면, 암놈은 수놈이 사정을 하는 순간에 녀석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거기 매달린다. 그러고는 녀석을 다 먹어치울 때까지 놓지 않는다. 수놈은 그렇게 해서 죽는다. 암놈은 이 일로 인하여 응분의 벌을 받는다. 새끼들이 알을 까고 나올 때가 되면 어미 뱀의 자궁과 배를 갉아먹음으로써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말하자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어머니에 대해 새끼들이 복수를 하는 것이다.

 

P.294 핀다로스의 시에 등장하는 풍습은 세상을 지배하는 여왕이라는 말보다 더 맞은 말은 없다. 헤로도토스는 풍습의 다름을 인정했던 열린 정신의 소유자 였다. 핀다로스의 시에 풍습은 세상을 지배하는 여왕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Chapter 7. 인본주의 의학의 꽃, 힙포크라테스

 

P.297 힙포크라테스는 오랜 전통에 의지해가면서 기원전 5세기에 의학의 프로메테우스로 부상

p298 호메로스는 그 작품에서 무려 141종의 상처를 취급하며 상당히 정확하게 이를 묘사했다. 그의 시에 따르면, 의사라는 직업은 자유시민들의 몫이었으며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의사 한 명은 여러 사람의 목숨만큼의 가치가 있다. 고 그는 말한다.

P.300 성소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에 따라 구마식이나 꿈, 기적, 요컨대 사제의 목소리에 고분고분 반응하는 모든 것들이 무성하게 이루어질 때, 다른 한편에서는 전적으로 세속적이며 도립적인 의학 기술이 그것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P.302 힙포크라테스의 전집은 이론에 치중하는 의사들(모험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철학자들), 대척점에 위치한 크니도스 학파(관찰된 사실에만 너무 집착), 힙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코스 학파의 의사들, 관찰에서 출발하여 관찰 결과만을 가지고 해석하고 이해) 세 부류의 의사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P.307 (이론에 치중하는 의사들, 즉 모험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철학자들 부류다. 두 번째는 이들의 대척점에 위치한 크리도스 학파에 속한 의사들로서, 이들은 사실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 번째는 힘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 즉 코스 학파의 의사들이다. 이들은 관찰에서 출발 하여 오로지 관찰 결과만을 가지고 이를 해적하고 이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관찰된 사실만을 맹신한 크니도스 학파는 사실만을 지나칠 정도로 맹신하다 보니 사고의 지평이 편협해질 우려가 있었고 , 크니도스 학파는 질병을 분류하는 데 만족하며 치료를 할 때는 전통적으로 효과를 거둔 방식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의학적 토론을 즐기지 않았다.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애쓰지도 않았다. 모든 질병은 두 가지 체액 담즙고 담의 상황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회피했다.)

P.321 힙포크라테스는 인간이라고 하는 피조물을 위한요리, 건강을 약속해주는 동시에 질병을 치료해주는 의학, 운동선수의 몸뿐만 아니라 고통 받는 몸을 위한 의학을 위해 평행 동안 불 같은 열정을 가지고 봉사했다. 

P.321 “환자의 몸을 살피는 일은 거창한 작업이다.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 언어, 추리력 등을 모두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마지막 단어, 추리력이라고 하는 말이야 말로 우리에게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핸다.

P.327 힙포크라테스에게서는 관찰이 관찰로만 끝나지 않는다.

테스에게서는 관찰이 관찰로만 끝나지 않고 수집된 사실들을 이해하고 인간에게 유용한 의미를 부여하도록 노력했다.

p.343 생명이란 매우 복잡한 현상이고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감정을 늘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에게는 겸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의술에 대한 사랑은 의사의 인류애를 받치는 두 기둥이다.

P.346 지식에 대한 놀라운 식욕, 이성적인 추론에 의해서 생생한 활력을 얻는 연구의 엄정성,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향한 헌신, 모든 인간에게 차별없이 베푼 우정으로 말미암아 힙포크라테스 의학은 당당히 기원전 5세기 무렵의 인본주의가 표방하던 가장 높은 고지를 차지한다. 아니, 적어도 신분고하를 따지지 않는 그의 인간에 대한 보편적 우애 정신만큼은 그 고지마저도 훌쩍 뛰어넘는다.

 

Chapter 8. 아리스토파네스의 웃음

 

P.349 아라스토파네스 웃음이라면, 가장 덜 앗티케적이고 가장 갈리아적 이며 가장 천박한 웃음이다

P.352아리스토파네스의 웃음은 모든 종류 웃음이 동시에 들어 있는 웃음(풍자적웃음, 기쁨웃음)

크게 웃음은 분노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웃음과 순 웃음이 있다.

풍자적인 웃음과 서정적인 웃음, 이렇게 두 부류의 웃음은 분리하기도 어렵지만 고통된 기능을 지니고 있다. 바로 치유의 기능이 이다.

.P.353 서로 붙어 다니며 연대감을 자랑하는 이 쌍둥이 웃음의 근원을 거슬려 올라가보자

분노를 머금은 풍자의 웃음

P.353 풍자적인 웃음은 모든 시대에 모든 나라에 존재하던 오랜 민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P.363 여러 세기 동안 희극의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는 대중 익살극의 오랜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기쁨으로 충만한 서정적인 웃음

P.363 분노의 웃음 옆에는 그 웃음과 밀접하게 연결된 또 하나의 웃음, 즉 기쁨의 웃음이 있다.

P.369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외설스러움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라고 하는 왕관을 쓰고 나온다.

P.371 아리스토파네스는 언젠가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게 되기를, 잔칫날처럼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한가로운 시골에서 산책을 즐기게 되기를 소망했다.

p.373~374 평화를 너무도 간절하게 사랑하는 까닭에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절제를 강요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파네스가 던진 질문이다. 이제 세상이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Chapter 9. 지는해

 

p.401 황금기는 더도 아니고 고작 50년 정도 지속되었으며, 주로 5세기 후 반부를 가리킨다.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50년이라고 하면 어느 여름날 하루 정도나 될까…...”정오의 열기 속에서, 태양 때문에 정신이 나간 매미는 소리를 지른다고 아리스토파네스는 노래했다. 그리스 문명의 정오에는 천재적인 작품을 내놓느라 산고를 겪는 인간 종족의 오장육부에서 끌어낸 기쁨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

P.403 기원전 4세기 초에 그리스 문명이 급작스럽게 멸망의 길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 그리스 문명은 여전히 건재했으면, 그 후로도 여러 세기 동안 기독교 시대가 시작도기 전까지는 스스로 개척한 인간의 새로운 활동 영역에서 몇몇 걸작품들을 생각했다.

P.403 황금기가 끝나자, 그리스 문명의 가치에 대한 질문, 아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 문명이 성공이냐 실패냐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P.404 전쟁은 2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계속되었다.

고삐 풀린 제국주의

P.408 황금기와 동시대에 일어난 이 끔찍한 전쟁의 성격을 가장 잘 요약해 주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으니, 바로 멜로스 섬 사건이다. 아테나 이의 고삐 풀린 제국주의를 잘 보여주며, 분파 간의 배신 정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사건은 대학살 속에서 말을 내린다. 

민주주의 붕괴

 P.409 그것은 아테나이의 황금기를 수놓은 민주주의 현상으로서, 이 형상은 미완성인 동시에 이미 붕괴의 길을 걷고 있었다.

P.409 아테나의 민주주의 초기에는 성공석인 정복이었다.

P.429 소크라테스가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지 천 년 만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

 

Chapter 10. 소크라테스라는 수수께끼

 

P.435 소크라테스는 동시대인들에게도 그랬지만 우리에게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인물이다.

: 수수께기로 남아 있는 당신 그래서 소크라세트 당신이 더 궁금 합니다.

P.435 독특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했던 그의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의 죽음이 가져온 엄청난 다산성이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제자들 또는 적수들 중에서 일군의 증인들이 나타났다.

P437 소크라테스 옹호자들의 증언을 보자. 이들 중에서 가장 비중 있는 자들은 제각기 철학 학파를 세웠으며, 학문적 입장이 완전히 상반됨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임을 내세운다. 우선 제일 먼저 플라톤은. 그는 문학사에서 유일하게도 50여 년에 걸친 철학자 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스승의 입을 빌려 발표했다. 플라톤은 저술 속에서 자신에게 지혜를 길러준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식 관념주의의 창시자로 만들었다. 플라톤은 위대한 시인으로, 스승의 이미지를 왜곡시켰다.

: 진실을 알고 싶다.

P.445 그는 신동이 아니었다. 마흔 살이 되어서야, 그나마도 신이 그에게 신호를 보냈기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게 되었다.

: 역시 타고 나기 보다는 모든 주어진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가져야겠다.

젊은 시절 내내 그의 마음속에서는 너는 누구냐? 너는 무슨 쓸모가 있느냐? 너는 무엇을 아느냐? 네가 아는 것은 너한테 무슨 도움이 되느냐?” 등의 질문이 메아리쳤다.  그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열렬하면서 동시에 숙고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열정적인 기질과 냉정한 이성을 겸비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되, 분별 있게 그렇게 하고자 했다. 그에게 자자신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

: 나도 내 자신을 알고 싶다.

P.448 소크라테스는 인간과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길을 회피하고 천체 속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일한 질문에 대해 침묵하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하찮은 과학 따위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영혼의 산파

P.448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그에게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데, 인간은 누구나 그 안에 인간으로서의 진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P456 그는 만일 우리가 합리적이라면 (이는 그 자신이 한 말이다), 지금 당장 이라도 우리는  신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P.460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거래는 아름다움의 거래와 마찬가지로 매춘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면서, 돈을 매개로 지식을 사고파는 일을 대단한 수치로 여긴 반면, 이들은 수업료를 받고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P.461 따르는 자들에게 머릿속에 들어 있는 모든 개념을 거부하고 무지함을 고백하라고 권유하는 이  인물은 소피스트를 중에 단연 최고였다. 그들이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젊은 층을 타락시키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기만적이었다. 따라서 가장 책임이 무거운 자이고 했다.

P.462 소크라테스적인 혁명을 통해서 가능해진 깨달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 부류에서 완전히 떼어내어 그가 소피스트들에게는 없는 지적, 윤리적 위대함을 지닌 위인이었음을 인정하게 한다.

P483 그는 우선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관들을 상대로 말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진실은 한층 더 선한 사람이 됨으로써만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P.489 아리스토파네스의 웃음 소재가 되다.

P.489  현학적인 영혼들의 생각하는 곳에 불을 질러, 이 두 부류의 협잡꾼을 쓸어 버린다. P.464

P.489 죽어서 영원한 이름을 남기다.

P.489 죽은 사람에 대해서 말하듯이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말하지 말자. 육신의 해체가 그의 삶의 종착역이 아니며, 그가 제자들의 영혼 속에서 지속하게 될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우리가 이해했다면 말이다. 이 충성스러운 영혼들은 그 후 그를 기리는 신전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곳, 끊임없이 지식 탐구라는 모험을 시작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스인 이야기3

 

Chapter1 쇠락과 새로운 발견, 에우리피데스이 비극 <<메데이아>>

 

P11 문명은 발전 과정에서 자연적인 존재들, 이를테면 식물들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씨앗이 배태되어 싹이 나며, 성장하고, 흔히 문명의 고전시대라고 하는 시기에 만개했다가 피었던 꽃이 시들고, 노화하며, 쇠락 기에 접어들어 결국 죽는다.

P25 완벽한 신사가 완벽한 불한당으로 변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P25 오직 사랑만이 인간을 상처받기 쉽게 만들며, 메데이아는 그 사실을 몸소 뼈저리게 겪고 있다.

P33 그녀의 운명이 완성된 것으로 받아들이다. 자신의 본성이 이끌어가는 운명이 종착 지적에 도달한 것으로 말이다. 모든 성취가 그렇듯이, 이 같은 성취를 통해서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Chapter 2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나타난비극성

 

P37 우리는 공포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다시금 희망과 기쁨으로 하늘로 뛰어오르는 널뛰기를 반복하게 된다.

P51 모름지기 인간의 모든 성공에 재앙이 뒤따르는 법이다.

P51~52 인간과 관련해서는 모든 것을 명쾌하게 파악하기란 어려우며, 모든 것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인간은 불확실성 속에서 모호한 가운데 투쟁을 벌이면서, 불행 속에서 사는 형제자매들, 흔히 사회라고 하는 기제의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공동의 싸움이 문제되는 운명의 교묘한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것일까? ‘사회란 사실 그런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었던가?

P53 비극을 통해서, 비극이 우리에게 보여주고는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살기를 배우며, 신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인간인 우리 자신의 약한 마음으로부터 기인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야 하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배운다. 그리고 크고 작은 부침이 끊이지 않는 그 운명의 끝에는 언제나 피할 수 없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비극<<아울리스의 아피게네이아>>는 우리에게 또 다른 것을 가져다주고, 또 다른 것을 희망하게 한다. 이 비극은 또 다른 것으로 우리를 기쁘게 해준다. 이 비극은 논리를 전개해나가면서 간간이 실감나는 말다툼, 운명의 가혹한 반격을 등을 제공한다.

 

 

Chapter 3 비극 <<박카이>>

 

P69 인간은 허둥대가 미끄러져서 신의 신비라고 하는 깊고 위험한 물속으로 자꾸만 빠진다. 이런 상태라면 인간은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음을, 인간이 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그렇다면 신은 과연 이길 자격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P71 신은 인간보다 강하다.

P75 하지만 비극적인 갈등의 끝에서 신이 인간에게 선고하는 판결은 때는 너무 늦었다.” 는 것이다. “그대는 나를 너무 늦게 알았노라라고 디오니소스는 말한다. 인간 아가우에는 다시 애원한다. 그렇지만 신에게서 듣는 대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나는 신이다’ (

P82~83 오직 인간만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살며, 바로 이것이 인간의 불행이다. 인간은 대자연의 가장자리에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를 구축하고는 그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신으로부터 분리 되었으므로, 지혜가 아니라 광기라고 해야 마땅하다. 에우리프데스는 그의 작품 속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광기의 수수께끼를 다루었으며, 광기를 분리라고 정의했다. 자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신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의 삶 전체가 그에게는 광기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혜 따위는 포기해야 한다 ! 이방인의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혜는 지혜가 아니기때문이다. 앞에 나오는 지혜 (소위 인간의 지혜)에 중성적이며 매우 지적인 단어, 지혜에 인위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단어 소폰(sophon)이 쓰인 반면, 두 번째 지혜에는 소피아(sophia), 즉 인간이 비판정신을 버림으로써 되찾게 되는 지혜가 쓰였음은 의미심장하다. 두 번째 지혜로 쓰인 단어는 특히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오래된 여성 단어로, 살아 있으면서 생산적이 지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사고만을 고집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시인은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일행 속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P86~87 신이란 곧 전지전능함이며, 전지전능함이 신을 정당화하는 요건이라면, 디오뉘소스는 분명 정당화될 수 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건 말이다. 소포클레스도 말했듯이, “신들이 무슨 직을 하건 그건 악이 아니기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신앙은 일종이 신성한 공포, 제동장치라고는 없는 힘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고 느끼는 불안,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신은 우리에게 죽음을 부여할 뿐 아니라, 우리를, 우리와 더불어 이 세계를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 본질적인 힘이다. 신은 사는 기쁨, 쾌락이며 동시에 고통이다. 신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신비다.

P88 “신들은 아무리 진노했다고 해도 우리 인간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P88고통에 대한 연민, 윤리의식(인간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로 요약해도 되지 않을까?)은 그로 하여금 또 다른 이 신앙, 다시 말해서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이 신앙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Chapter 4 투퀴디데스와 도시국가들간의 전쟁

 

P94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객관성은 믿을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P103 그는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 대호는 지나치게 압축적이고 밀도 높으며 일견 모순 되는 것들이 집약되어 있어서 처음엔 모호한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을 따라서 계속 이어지다가,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이 미로 같은 길을 함께 따라 걷기로 결신한 독자들에게 어느 순간 문득 명확해진다.

P103  행복은 자유 안에 깃들어 있고 자유는 용기 안에 깃들어 있음을 안다면 전쟁의 위험과 당당히 맞서라.”

P104 (투퀴디데스) 그의 저술은 영원을 위한 산물’, 즉 미래 세대를 위해 제공하는 재산이다.

P105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사건은 합리적인 원인의 결과로, 필연성의 지배하에서 발생한다.”

P105~106 소크라테스가 윤리를 학문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던 것처럼 투퀴디데서도 역사를 정밀 과학 또는 정밀 과학에 근접한 학문으로 만들고자 했다.

P109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생명을 가진 모든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원초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은 이 힘을 존재를 위해 절대 파괴할 수 없는 요구로 받아들인다. 이 힘은 곧 살려는 욕망이다.

P109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복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유하는 것이다.

소유와 지속, 이것이 생존 본능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익이 될 것이다. 이익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활동을 좌우하는 동기다. 온갖 동기들이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투퀴디데스에 따르면, 대중들을 움직이기 위해, 마음 같은 곳에 숨겨진 은밀한 동력을 발동시키기 위해 이익 또는 이익의 동의어 (유용성, 소득, 이점 등)를 언급하지 않는 행도 가란 없다. 이러한 단어들은 그의 작품을 관류하는 키워드다

 

Chapter5 데모스테네스와 도시국가 시대의 몰락

 

P125 그는 또한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자였다. 긴 시간을 두고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다시 말해서 때가 올 때까지 사건의 추이를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이때다 싶은 순간이 오면 번개 같이 치고 들어가는 비상한 능력이 있었다.

그는 특히 겉으로는 평화를 추구하면서 실제로는 전쟁을 하는 데 능했다.

P125 데모스테네스는 바로 이 점을 꿰뚫어보았으며, 이것이야말로 모든 제국주의적 발상의 즐겨 사용하는 함정임을 간파했다.

P138 작가들은 독자들을 위해 선한 군주의 이미지를 양산했으며, 이것은 그리스와 헬레니즘 문화권에 속해 있던 나라들이 왕의 지배를 받는 나라들로 재편성되는 기원전 4세기 초반부의 격변기에 필요한 여론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P142 “데모스테네스는 자신이 처음에 맡았던 자리와 정당에 끝까지 충성을 다했다. 그는 평생 동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달라지지 않기 위해 전 생애를 바쳤다.”

 

Chapter6 플라톤의 정치적 대망

 

P145~146 플라톤은 시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살았던 사람답게 저술 활동 기간 내내 시인이면서 동시에 철학자였다. 시와 철학의 혼재라는 바로 이 점이 매력이며, 동시에 그의 저술에 대한 해석이 어려워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P146 그는 완벽한 교육, 즉 지성을 예리하게 정련하고, 정치 생활을 위해 언어를 유연하게 가다듬는 최상의 훈련을 받았다.

P149 소크라테스가 지혜를 정의해보라고 요청하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뤼시스도 우정에 대해서 묻자 같은 태도를 보였으며, 용감한 무사 라케스마저도 용기가 무엇인지 정의해보라는 요구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하면 박학다식한 궤변의 대가 힙파아스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P155 나는 국가의 해악은 순수하고 진정한 철학자 종족이 권력을 잡게 되거나, 국가 지도자들이 신의 도움으로 진정으로 철학에 입문하게 될 때까지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욕망에 저항할 수 없이 강렬하게 이끌린다.” (p. 155)

P157 철학자들이 왕이 되거나, 또는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 중 후자의 가증성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P161 내세에 대한 생각, 사회의 기원에서부터 인간 사외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체계화된 역사, 정치 형태의 혁명에 관한 이론, 특히 그리스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플라톤이 가장 혐오하는 두 종류의 정치체제, 즉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매우 심도 있는 연구 등이 총망라되어 있는데, 특별히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그는 신랄한 독설을 퍼부어낸다.

P163~164 기술 전체를 통해서 교육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플라톤이었지만, 노동자들에게 문화를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들은 알만 잘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기껏해야 국가 전체의 출게, 즉 종교를 통해 이들이 국가에 대해 지고 있는 의무를 교육하면서 이들이 접하게 될 숭배의 대상의 이름이나 가르쳐주는 정도였다. 노동자 계급의 주요 의무는 주어진 위치에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고요한 덕목이란 욕심을 절제하고, 정념에 제동을 거는 것이었다. 이들은 늘 절제와 절도를 익혀야 했다.

 

Chapter7 플라톤식 아름다움과 환상

 

P173 허항되기도 하면서 (국가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편으로 제법 합리적인 (법률 에서 드러난 것처럼)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면

P190 “이는 한번 믿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네, 그것을 위해 다려가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기회이며, 각자가 스스로 기쁘게 간직해야할 흐망이지…..”

P191 오로지 학문이 주는 쾌락에만 몸을 던지고 영혼을 남에게서 빌린 장식이 아닌 자신만의 장식, 그러니까 절제와 정의 용기, 자유, 진실 같은 것으로 부를 때 길을 떠날 수 있기를, 다른 세계로 떠날 순간을 기다린다네.”

P191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영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철학을 하는 것이라네. 다시 말해서 궁극적으로 고통 없이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지, 그것이 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P193 진정한 철학자의 영혼은 자신의 해방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정념과 쾌락, 슬픔, 두려움을 삼간다네. 커다란 기쁨과 커다란 고통, 끝을 모르는 두려움과 욕망 뒤에는 병에 걸리거나 재산을 잃은 따위의 일장적인 해악만이 아니라 가장 심각하고 고약한 해악을, 그나마도 그런 것을 겪는다는 느낌조차 갖지 못하는 상태에서 겪게 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

 

Chapter 8 아리스토텔레스와 생명체

 

P225두 사람이 천재라고 하는 말은 (리트레 사전을 비롯한 몇몇 사전을 찾아본 결과) 두 사람이 자신

들의 직업, 즉 철학 하는 일에 필요한 능력을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한계이상으로 끌어올렸음을 의미한다. 천재라는 말은 그러니까 뛰어넘기, 새롭게 발견하기, 즉 창조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P226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트라케 해안에 위치한 그리스 도시스타게리아에서 태어났다. (참고로, 플라톤은 그보다 43년 일찍 태어난 선배다.)

P227 플라톤은 예순 살이 넘었어도 사지의 철학을 고인 물처럼 가만히 가두어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정립한 철학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 가치를 확인하거나 문제를 제기했다. 승승과 제자의 우정은 이처럼 수렴되거나 상충하는 비판을 통해서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P244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이 지니는 막강한 위력과 다양함, 그리고 정확함에 대해서는 우리 시대의 학자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국 적인 동물들에 관해서 호기심을 보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가까이에 관찰할 수 있는 친근한 동물들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관심을 쏟았다.

P254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천 가지 사실들을 수집했다. 그는 생명체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상한 것뿐만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도 매혹되어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사실들을 수집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수집한 사실들을 비교하고 법칙을 발견하며, 자연에 대해서 성찰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이 지니는 독창성은 수집된 사실들을 끊임없이 비교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P256 “자연은 불필요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P256 그는 자연에 대해서 조직하고 제조하며, 창의력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자연은 원하고”, 원하는 목표를 향해 신선을 고정시킨다.” 자연은 그러므로 창조하는 힘이라기보다 더 나은 것을 위해 주어진 조건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것으로 만족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신이 니다. 자연은 개개인이라는 존재 안에 깃들어 있는 활력”, 신의 견인에 화답하는 성장 충동이다.

P257 세월의 시련 속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만큼 견고하다.

P263 왜냐하면 이 이상하고 비인간적인 생명체를 통해서 우리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근원, 즉 욕망에 따라 자손을 번식해나가는 삶, 배고픔을 느끼는 삶, 허기를 달래고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는 치열한 삶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P264  우정이란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이 감정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들과 대부분의 생명체에도 존재한다.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우정을 느끼며, 이는 특히 인간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P265 이처럼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인각적이고 훨씬 심리적인 동물의 세계가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과 합류하여 이를 확신시켜주며 이 같은 주장에 균형을 부여한다.

 

Chapter 9 알렉산드로스의 천재성 또는 우애에 관하여

 

P269 알렉산드로스는 그런 특출한 인물 중의 하나다.

P271 알렉산드로스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들처럼 영광을  가져다준 예전의 사회 구조를 재건하려 들지 않았다. 이제는 너무 작아진 옷을 구차스럽게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다.

P271 그는 말하자면 군주가 통치하는 근대국가를 탄생시켰다.

P272 군대의 통솔자로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맹성과 참을성을 매 순간 자신은 물론 그가 이끄는 장병들에게 변함없는 충성심과 애착을 불어 넣었다.

P272 “정치의 간교함에 미리 대비해야한다는 정도만 받아드렸다. 로마의 역사학자 아리아누스는 모든 조약과 협약을 충실하게 준수하기 위해서 그는 항상 교활함, 간교함에 대비했다.”고 기록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유일하게 사용한 기교라면 신속하게 움직이는 기동력이었으며, 그 덕분에 그는 모두가 불가능 하다고 하는 곳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P282 그가<<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아킬레우스가 상큼한 볼을 가잔포로여인 아름다운 브리세이스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목숨과 그가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P285 “내가 파르메니온이라면 나도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P287 “너그럽게 인정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안에 받아들였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이집트인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으며, 그에게 연대 파라오들에게 주어졌던 칭호들을 부여했다. ()이집트 왕국의왕’, ‘()이집트 왕국의 왕,’ ‘라의 아들같은 칭호가 대표적이었다.

P288 도대체 무슨 질문을 했으며 무슨 답변을 들었을까?

P288 “그가 알고 싶었던 모든 대답을 들었다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만 던진다.

 

Chapter 10 질서라는 탈을 쓴 무질서, 두 명의 프톨레마이오스

 

P329이미 쇠락기에 접어든 그리스 문명, 솔론과 아아스퀼로스, 아리스토파네스를 낳았으며, 도기국가라고 하는 정치 구조로 특징지어지는 이 문명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이 오래된 그리스 문명을 연장한다고 볼 수 있는 도 하나의 문명이 새로 태어난다. 이른바 헬레니즘 문명이다.

P335 첫째, 섭정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둘째, 알렉산드로스가 세운 제국으로부터 분할되어 생긴 국가들간의 균형을 이집트에 유리하도록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P350 “왕은 너무도 많은 행운을 누린 나머지 언제까지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오직 자신만이 불면의 비밀을 발견했노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평생 강건한 적이 없었던 그의 기질은 절제와 소박함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던 여러 해 동안의 삶 때문에 손상을 입었다.

그가 무제한적인 삶을 꿈꾸면서까지 두려워했던 죽음은 그가 예순두 살이 되던 해에 그럴 찾아왔다. 기원전 246, 재위 39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Chapter 11 책의 전성시대, 알렉산드리아 :  도서관과 박물관

 

P 369 기독교의 발전은 박물관 쇠퇴의 주요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서력기원이 시작된 초기 몇 세기 동안 박물관에서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던 과학 교육은 다신교 신앙을 전제로 삼고 있었다.

 

Chapter 12 알렉산드리아의 과학 : 아리스타르코스의 천문학

 

p379 고전시대에는 데모크리토스, 힙포크라테스와 코스 학파, 투기디데스(기원전 460년에 태어난 이 세 사람은 완벽하게 동시대인이다) 등과 더불어 과학은 활활 타올랐다.

P388 대중적인 편견이라고 하면 특히 지구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인가적인 자존심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교적 믿음은 지구가 다른 행성들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과정에서 이미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지구는 소멸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별들은 본질적으로 소멸하지 않고 신성하다는 구분, 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들을 신으로 여기는 그거를 제공해주었던 그 구분을 없애는 것은 한마디로 불경 그 자체였다. 아낙사고라는 아테나이 법정에서 태양은 불타는 암석이며 달은 흙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Chapter 13 지리학 : 퓌테아스와 에라토스테네스

 

P406 그는 헤르메스의 신화에서 출발하여 헤라의 젖꼭지를 깨물어 하늘에 은하수를 흩뿌린다. 다음, 은하수 길을 따라 별들의 나라로 날아간다. 그의 시는 천문학적인 동시에 지리학적이었다. 하지만 지구를 묘사한 일부분, 즉 지구의 다섯 개 지역에 관해 그가 노래한 대목을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인용된 부분만 지금까진 전해진다.

P408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재는 작업에도 착수했으며, 탁월한 방법을 사용하여 사실과 매우 가까운 수치를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Chapter 14 의학 : 아르키메데스, 헤론, 그리고 증기기관에 관하여

 

P415 인간의 진보를 위해, 인간의 더 나은 일상을 위해 봉사하기를 거부할 때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 죽음을 거부했다. 이 특별한, 특권적인 과학은 다름이 아니라 의학이었다.

P416 (신체해부)미래의 진보를 약속해주는 상징이었다

P432 노예들의 노동을 이용해야지. 팔 곳도 없으니 생산을 늘려야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당시에는 아무도 상식만큼이나 반반하기 어려운 이런 식의 논리에 대항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큼 노예제도의 존재는 고대 전체를 지배했다. 노예제도는 말하자면 건널 수 없는 망망대해였다.

P434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이 시대를 사람들에게는 노예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문명이란 대중의 상승 의지가 있을 때에만 발전 과정 중에 부딪히게 되는 일정한 장애를 넘어설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P435 매 순간 우리에게는 현재가 되는 미래 속에서 만나게 된다. 바로 인간의 천재성이라고 하는 주체다. 희망이 있는 한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도 없다.

 

Chapter 15 시로의 회귀 : 칼리마코스,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가쓴<<아르고나우티카>>

 

P441~442 나는 공동 우물의 물은 마시지 않을 것이다. 대중적인 것들은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토했다. 그뿐 아니라 앗쉬리아의 강물만 보더라도 그 흐름이 대단히 위력적이긴 하지만 출렁거리는 물결 속에는 더러워진 흙, 진흙도 포함되어 있다. 데오에서는 제사장들이 아무 물이나 마사지 않고 샘에서 솟아나는 깨끗하고 투명한 물, 그 몇 방울의 지고한 순수함을 마신다.!”

그러니 시는 서사시에 등장하는 위력적인, 위력적이지만 더러운 강물보다 순수한 샘물, 가느다란 물줄기에 불과해도 한 방울 한 방울이 소중한 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P476~477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이 우리와 더불어 괴로워하기를 바란다. 자연이 우리의 고통에 무심하다고 분노 했다. 하지만 결국 같은 말이다. 전자나 후자 모두 자연은 주관적으로,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심리 상태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P473 그는 마음속 깊이 호메로스를 사랑했으며, 젊고 야심 많았던 시절엔 그에 버금가는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 이따금씩 상당히 재능을 발휘하기도 하는 그가 자신이 선택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지리학적 서사시라는 독특한 형태를 부여한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는 서사시에는 전혀 재능이 없었으며, 당시 문인들이 전부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스케일로 이야기를 구성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Chapter 16 테오크리토스의 낙원

 

P484 테오크리토스. 휴가의 시. 그리스의 시. 아니 그리스 문학 전체는 대단할 정도로 진지했다.

P484 처절한 인간 조건에 대한 인식을 불어넣어줌으로써 인간들에게 지혜와 투쟁, 그리고 해방의 도구를 쥐여준다. 그리스 문학은 적어도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그와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그리스 문학이란 인간의 인간 자신에 대한 성찰이며, 공동의 행위를 위한 에너지 비축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요컨대 그리스 문학은 순수한 오락거리’, 무상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P489 시인의 손에서 모든 현실은 방사선이 된다. 그러니까 신선한 아름다움을 발한다는 말이다….

P496 예술, 즉 원석 상태인 시적 금속을 세련된 귀금속으로 변신시키는 연금술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누가 감히 어느 지점에서 예술이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긴,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출발점은 분명 온전히 대중적인 곳, 대지에 굳건하게 뿌리내린 농부 기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확실하다.

 

Chapter 17 다른 형태의 도피 : 헤론다스와 사실주의 풍자 희극, 그리스의 소설 <<다프니와클로에>>

 

P522 생긴 그대로의 세계 속에서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되, 마주한 그 세계를 더 나은 세계로 변화시키는 것이 그리스 문학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제일 중요한 목표였다.

P522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인 이 세계 속에서 그의 위치를 제대로 가늠해야 하며,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과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칙을 분명하게 인식함으로써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현실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제까지 그리스 문학이 추구해왔던 목표였다.

 

Chapter 18 에피쿠로스와 인간의구원

 

P552 대대적으로 그의 저작을 없애버린 의도는 그의 스승인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을 파괴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인간들이 쓸데없는 두려움과 고답적인 미신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온한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해방자이며, 치유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구해준 치료사다. 사실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이란 따지고 보면 인간의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음, 아니 얼마든지 치유 가능한 어리석음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P554 (에피쿠로스)그는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벌써 어른이 되어 있었다.

P556 지혜에 대한 사랑 안에서,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베풀어주었으며, 나에게 가능한 모든 우정의 표시를 보여주고, 나와 함께 철학을 공부하면서 늙어가기를 택한 나의 동반자들이 결핍 속에서 지내지 않도록,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그들을 살펴주게.”

P560 노예제도와 자유노동의 공존은 고대 노동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재앙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을 조직한다거나 노동자들의 저항을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노동자들의 삶은 제어가 불가능한 자본의 힘에 종속되게 마련이다. 그리스 사회에서 노예 노동의 본견적인 활용은 소규모 생산자들의 대대 적인 몰락을 가져왔다. 요컨대 노예 노동은 자유노동자 계급의 왜곡과 소멸을 초래한 것이다.

P565 가장 마음을 잡아끄는 목표를 향해 곧장 달려가는 지혜, 곧 개인의 행복이라는 화두는 이렇게 해서 등장한다. 그렇다. 에피쿠로스는 현대의 한 철학자가 말했듯이, “지장의 행복을 원할 정도로 고상함이 결여된 잘들증의 한 사람이다.

p.565 “철학을 하는 척해서는 안 된다. 병이 들었을 때에는 건강을 되찾으려는 척을 해서는 안 되며, 실제로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P565~566 진리란 무엇인가행복을 찾고, 그것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이란 매우 불행하다는 것과, 왜 그렇게 불행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왜 불행한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인간 존재 각자의 마음 깊은 구석에 깃들어 있으면서 늘 우리 엄습해오는 이불안감을 몰아내야 한다. 혜신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통해 이 불안감을 몰아내고 나면, 그때 비로소 행복이 태어날 수 있다.

P566 인간은 불행하다고 에피쿠로스는 단언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기쁨을 위해 태어났다. 에피쿠로스는 기쁨의 필요성, 기쁨의 소박함, 기쁨의 즉각성에 대한 뿌리 같은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기쁨은 언제나 우리가 손을 내밀면 잡힐 만한 곳에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은 현실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 의해 지배된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란 말인가?

우리가 가진 으뜸가는 두려움,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인간은 자산이 언젠가 대한 생각이 어디를 가나 따라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기분전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황당한 기분전환을 즐기고 있을 때에도 이 생각을 줄곧 인간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지 않도록 꽉 막아버린다. 죽음에 대한 생각 앞에서 인간은 마치 곧 끝 모를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 현기증으로 가득 찬다.

P566~567 인간은 신들이 높은 하늘에서 그들을 살피고, 관찰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자, 이 세계를 좀 바라보십시오.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 아래서 이 세계를 똑똑히 바라보시란 말입니다. 우리에게 훗날 드러내 보이겠다는 구실로 현실을 감추는 신화 따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 (p. 568)

P571 신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신들이란 물질적인 원자로 구성된 복합적인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P574 이 세계도 인류의 역사도 신의 섭리에 따른 행위로는 설명 되지 않는다. 사실  신의 섭리에 따른 행위란 어디에서도 합리적이고 정의로우며 선하지 않다.

 

P593 신들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죽음에 대해서는 전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고통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행복에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다.

P594 인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는가? 인류는 신들이 존재했다는 사살을 완전히 망각했는가?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 이다.

 

 

III. 내가 저자라면 / 앙드레 보나르

 

그리스 문명의 탄생과 신의로부터 독립 하기 위한 인간의 사유가 있는 고향그리스인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이 즐겼던 문명을 통해 인간의 생각에 대한 근원을 찾아 보고 싶었다.

 

저자는 오래 전 부터 이런 질문을 가슴에 품고 조사와 연구를 했던 것 같다.

이번에 두번 읽기를 다시 그리스인 이야기로 돌아간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문명이야기에서 르네상스는 생각의 불꽃이라 할 만큼 엄청난 인간의 자각과 생각의

각성이 쏟아진 시기이기도 하다.

 

 월 듀런트의 문명 이야기에서는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페트라르카를 꼽고 있다.

그보다 한 세대 전에 젊은 단테가 그랬듯이 페트라르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음유 시인이

되어 자신의 정열을 수많은 시구로 바뀌었다. 그는 이탈리아 청년, 이탈리아 남성, 이탈리아

성직자 계층의 상상력을 사로 잡았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주었던 분이 그리스 호메로스라면, 이야기는 다시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 간다. 아름다운 시와 인간의 상상력을 맘껏 펼쳐 볼 수 있는 사유의 고향은 그리스

인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준 호메로스의 휴머니즘에서 잠시 생각을 멈춰슨다.

 

마지막으로 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 등을 거쳐오면서 인간의 미래를 설명 하려 든다.

세월이 흐름에 비해 인간의 속성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마차경기를

보며 열광하던 로마 시민이나, 주말이면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경기용 자동차를 보며 환호하는

오늘날 현대인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그리스인 이야기를 하면서 현대인 이야기를 서로 비교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쓰면 어떨까를

생각해 봤다. 그리스인들이 즐겼던 문명을 현대인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인간이 변하지 않고

내면에 깃들어 있는 마음들을 찾아 보면 어떨까?

나아가서 기업의 역사를 정리 해 보는 것이 필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기업의 흥망을 다루는 책들은 많지만, 그들이 처 한 상황에서

내린 의사 결정들을 역사로 기록해 놓은 책은 거의 없다. 우리가 접 하는 것은 늘 부분적이고

역사성이 결여된 글들을 주로 접하다 보니 경영의 책임자로 업무를 수행 하면서 참고 할 만한

의사 결정 사례가 정말로 희귀 할 정도로 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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