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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7일 01시 04분 등록

좋겠어? 자기는

?

미순이가 좋아해서,

난 별로 좋은 줄 모르겠는데

?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지.

미순이는 사람이 아닌데

사람은 아니지만 미순이도 감정이 있어.

난 사람들이 다 좋아해

 

하면서 남편은 담배를 물고 베란다로 나간다.

 

미순이는 우리집 강아지 이름이다. 딸이 없는 집에 암놈을 들여놓으면서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미순이란 이름을 놓고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한다. 그 이름 누가 지었어? 내가. 그러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마 이름도 어쩜 저렇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겠지. 아무렴 어떤가.

 

늘 그랬다.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것. 모든 사람이 그렇기는 힘들어도 대체로 타인이 나를 좋아할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위험천만하다. 자연스럽게 삶의 중심에 내가 놓여 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인 것 같다고 지인들은 말한다.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무에 능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몸치에 음치인 나는 쉽게 놀이에 섞이지 못한다.

 

몇 년 전 참석했던 프로그램에서 일이다. 안전지대 넓히기 놀이. 강사가 역할극을 선보이면 그대로 재현하는 건데, 수강생이 이십여 명이었다. 강의가 시작되고 강사가 시범을 보인다. 시범을 보이는 강사를 바라보며 처음에 든 생각은 저걸 내가 어떻게 하나? 였다. 심장은 두방망이질을 하고 머릿속은 하얗게 질렸다. 핑개를 대고 나가버릴까도 생각해 본다. 이럴 때 배라도 심하게 아프면 좋겠다 싶은데 건강한 나는 절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수강생 한 사람이 무대에 나와서 재현한다. 이분은 여성스런 남자분이었는데쑥스러워하면서 자신의 색깔로 재현한다. 목소리나 행동이 자신의 틀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저렇게 하면 안전지대가 넓혀지기는 틀렸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사람이 재현을 하고 서너 사람이 같은 내용을 하고 나니까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다시 새로운 극을 선보인다. 다음 사람부터는 극이 바뀐 것이다.  먼저 하는 사람들을 보며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는데 낭패다. 내 차례에는 어떤 것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가만히 보니 4명을 하고 나면 다른 내용의 극을 하곤 했다. 첫 사람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내게 올 역할극에서 첫 번째 주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아직 내 심장소리는 요란하다. 서서히 나의 차례가 가까워 온다. 다른 사람 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가 어떤 시나리오를 표현하게 되는가에 꽂혀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한 남자가 평생 금광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금광을 발견하지 못하고 폐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표현하는 역할이었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헛것을 보기 시작하고...멀쩡한 바위가 금괴로 보이는 미쳐버린 상태를 재현하는 내용이었다. 저걸 제대로 할려면 복장이 중요하다. 바닥에 몸을 던져야 할 텐데 치마를 입은 상태는 좀 민망하다. 다행히 그날의 내 복장은 바지정장이었다. 웃옷을 벗어 어깨에 걸치고 축 늘어진 어깨에 어슬렁 어슬렁 바닥을 쳐다보며 걷고 있다. 그러다가 앞에 무엇인가가 보인다. 이 남자의 눈에는 그것이 금광으로 보인다. 금광이다! 를 외치며 바닥의 돌을 집어 들고 두 눈에는 광기를 뿜어내는 연기이다-

 

꽃다운 젊은 시절 부질없이 가버린 시간이 한탄스럽고 이제 늙어버려 더 이상 금광을 찾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남자. 그 남자에게 고향은 금의환향이 아니다. 다만 갈 곳이 없어진 사람이 돌아오는 곳. 죽음직전에 갈수 있는 곳이 고향이다. 부모형제가 있는 곳. 자신이 나고 자란 곳. 고향이란 다 망해서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망해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는 곳이 고향이기도 하지만.  아무런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남자의 쳐진 어깨, 오매불망 소원하던 금광을 발견했을 때의 광기 어린 눈빛을 표현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약간은 껄렁끼가 있는 내가 그 역할극을 생각보다(?) 잘 해내었다. 일단 망가지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안중에 없어졌다. 짧은 극이지만 제대로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전지대를 제대로 넓혀보리라. 몸을 사리지 않기로 생각하니 행동이 훨씬 편해졌다. 그날의 놀이 덕분에 나는 안전지대가 조금 넓어졌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몸으로 망가져보는 일 내가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내고 났을 때 기분은 좋아졌고 나도 이런 연기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안전지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생겼다. 나와 다른 기질의 사람과 함께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나는 그 상황을 피할려고 한다. 아예 함께할 기회를 만들지 않는 쪽으로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을 포기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기꺼이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사람으로부터 불편한 것을 잘 못 참는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며칠사이에 생겨난 고민으로 다시 펼쳐본 책이다.

 

[창조성이 회복되기 전의 일상생활에서는 낯설거나 놀라운 얘기를 들을 때마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재빨리 닫아버린다. “내면의 작업이 외부의 변화를 촉발한다고? 웃기는군!”(문을 쾅 닫는다)”신이 무엇 때문에 나의 창조성이 회복되도록 돕겠어?(!) “동시성이 뜻밖의 우연으로 나의 창조성을 돕는다고?”(, , ) 우리는 지금 창조성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그 방식이란 우리의 회의주의를 잠시 옆으로 밀쳐두고_혹시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니 버리지는 말자_낯선 생각이나 우연한 기회가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문을 조금씩 더 열어가는 것이다. 아주 잠깐이라도 회의주의를 옆으로 밀쳐두면 흥미진진한 탐험을 떠날 수 있다. 창조성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믿음을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필요하다. 창조성 회복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여는 연습이다. 다시 한 번 당신의 마음을 살짝 열린 방이라고 상상해보라. 문을 조금 더 여는 것은 마음을 조금 더 여는 것이다. 이번 주부터 의식적으로 마음을 여는 연습을 시작하자.] 아티스트 웨이 _줄리아 카메론  109

 

그리스 비극을 들고 간 시칠리아 여행에서 나는 라는 비극과 만난 것이다.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무엇을 힘들어하나 싶어서 나를 들여다본다. 그 동안 내게는 견고한 대문이 있었다. 빗장을 닫아 걸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문. 나만이 열고 나갈 수 있는 문. 문안 댓돌에는 파란고무신과 검정고무신 하얀 고무신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신이다. 수세미로 잘 빨아서 가지런히 세워놓았다. 마당 한 가운데 시원한 지하수도 있다. 별로 불편함이 없이 잘 지어진 집이다. 대문을 열고 나서면 너른 마당이 있고. 둑 너머에는 모래사장이 있고 강이 흐른다. 강 건너 마을에는 다른 부락도 있다. 그 동안 나는 그 대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나와 비슷한,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지냈다. 그렇게 살아도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고 불편하기 보다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빗장을 풀고

문을 나서보니 마당에는 백일홍나무에 꽃이 피었다. 미끈한 몸에 빨간 꽃들은 예쁘다. 잘생겼다. 조금 더 길을 나서니

강둑과 모래사장과 강물이 보인다. 한 여름이라 강물에서 사람들이 멱을 감으며 놀고 있다. 어울려 놀고 싶은 생각이

난다. 내 옷차림을 본다. 물속에 뛰어들어도 괜챦을지 가늠하는 것이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 입고 나오는 방법이 있다. 다른 하나는 지금 이 상태대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아니다. 강물에 꼭 들어가란 법은 없다. 그냥 눈으로 즐기는 방법도 있으니까. 물에 들어가면 옷이 젖을 것이고 수건도 여분의 옷도 없는 나는 젖은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신발도 신을 수가 없어 맨발로 돌아와야 할지 모른다. 맨발에 깨진 유리조각이라도 밟으면 상처가 나겠지.

 

이 상태로 내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곁에 있던 사람은 나더러 이럴 것이다. 미쳤어요?

 

이대로 강물로 들어가 볼 것인가.

집으로 돌아와 샌들을 찾아 신고 짧은 바지를 입고 젖어도 바로 마를 수 있는 간편한 민소매 셔츠를 입고 나설 것인가.

눈으로 바라보면서 지나칠 것인가.

IP *.39.13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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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11:33:58 *.51.145.193

" '나'라는 비극 " 제가 그토록 찾아 해메던 말을 누님의 글에서 봅니다.

안전지대 넓히기 놀이..우리끼리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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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21:59:30 *.39.134.221

그동안 한번도 내가 비극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시간이었는데...

이제사 열쇠를 찾았는지...아니다 아직 찾지 못했네...

정신없어 하고 있으니까.

이번 여행이 나한테 공부를 많이 시키고 있네...

꺽어진 나이에 너무 늦게 헤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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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16:35:43 *.114.49.161

백일홍나무 자귀나무 그 나무. 말끔하여 선비들이 좋아했다더군요.

형님의 집은 튼튼하고 깃들어 살기 좋을 것 같습니다. 

잘 문질러 씻은 고무신도 세워져 있고, 우물도 있고요.

우리 직장 앞에는 달동네박물관이 있어요.

거기 집 안에 개인 우물이 있는 집은몇 집 없었다 하더군요.

저 집 부엌에는 식구마다 제 그릇과 수저가 시렁에 씻어 엎어져 있을 것 같군요.

지금도 잘 살고 계신데, 어떻게 하실건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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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22:00:50 *.39.134.221

평상시에 나는 그냥 물에 들어간다...인데

일단 들어가서 놀아보고 다음 생각은 다음에 하고

이번에는 용기가 잘 나질 않아...

지금 떨고 있지...나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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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09:09:44 *.194.37.13

저에게도 견고한 대문이 있나 봅니다.

어딘에 가든, 무엇을 하든 온전히 제 자신을 몰입하지 못하나 봅니다.

저를 붙잡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불완전한 나를 너무 의식하고 있는 것.

그리고, 가족과 회사에 대한 의식.

 

하지만, 간혹 가다가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

저의 대문은 자동으로 열리게 됩니다. 불완전한 제가 받아들여지게 되더라구요.

가족과 회사에서도 그런 나를 좋아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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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11:09:15 *.142.242.20

그러게. 왠지 행님 그냥 옷 다 입은 채로 뛰어들 것 같은 느낌인데.. 

망설이고 있네. 어찌할지... 


이번 여행에서 나는 '미치는 것'이 뭔지 좀 느꼈달까? 

케이블카, 리프트 이런거 탈 때 엄청 무서워 하는데, 

애트나 올라갈 때 하나도 무섭지 않더라고요. 

내가 이상하다며 무섭지 않다니까. 

사부님이 '왜그런지 아냐? 니가 미쳐서 그래!'

이러셨는데.. 그때 기분이 엄청 황홀했어요. 


미치는게 이런거구나. 두려움, 걱정, 근심 없이 

너무 좋은거! 그런거구나. 

그래서 일상에서도 내가 미칠 수 있는것을 찾기 위해 요리조리 기웃기웃

계획도 세워보고, 그러는 중. 


ㅎㅎ 행님도 기꺼이 미치길!!! 

미쳤어요? 하면 '너도 미쳐봐!' 이렇게 말할 수 있음 좋을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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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12:50:51 *.217.210.84

세린이 해법을 주네...너도 미쳐봐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러고 있었는데...

방금 일 저질렀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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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20:12:27 *.142.242.20

ㅎㅎ 판타스틱!! 

행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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