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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7일 11시 11분 등록
 

메데이아의 슬픈 사랑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두 번째 읽는다. 처음엔 좀 급한 마음으로 읽었다면 두 번째는 서두르지 않고 내용을 분석해가면서 읽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복수하는 마녀의 신화적 원형인 메데이아’가 인상 깊었다. 여성으로서 정열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는 보기 드물게 그리스신화에서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메데이아를 악녀로만 생각하였는데, 두 번째는 악녀인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악독한 마법사이기도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한 남자의 여인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은, 사랑받고 싶은 본능이 숨어 있었다. 

 

   이올코스의 영웅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구하기 위해 아르고호를 타고 콜키스라는 소국에 도착했다. 이아손은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를 찾아가 금양모피를 넘겨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왕은 자신이 키우고 있는 황소에 멍에를 매어 하루만에 4에이커의 밭을 매라고 했다. 또 씨앗대신 용의 이발을 뿌려 거기서 솟아나는 전사들을 이삭을 베듯 모두 죽이라고 요구했다. 이 모든 임무를 완수하면 금양모피를 주겠다고 했다. 이아손은 그 자리에서 선뜻 약속은 했지만, 영웅인 그에게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그때 아이에테스왕 옆에서 이아손을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공주 메데이아다. 순진한 처녀 메데이아는 용모가 수려하고 자태 또한 늠름한 청년 이아손을 보는 순간 첫 눈에 반해버렸다.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본 그녀는 “욕망은 나더러 이렇게 하라고 하고, 이성은 나더러 저렇게 하라고 하니 이 일을 어쩌지?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나는 알고 있다.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나는 옳지 않은 길을 따르려 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느껴진다. 그날 밤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찾아가 과업을 완수할 방도를 알려주면서 자신을 그리스로 데려간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과업을 완수하였고, 콜키스의 왕은 단박에  메데이아가 개입했음을 눈치 챘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여자가 되기 위해서 조국과 부모를 버리면서 “내 아버지는 잔인한 분이고 내 모국은 아직 미개한 나라, 내 동생은 아직 어리다. 자매들은 나를 위해서 기도할 것이고 신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신 신은 내 가슴에 계시다. 내가 이 땅에다 남겨두어야 할 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들, 내가 좇는 것들은 모두 고귀한 것들”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이아손의 나라에만 가면 고귀한 것들을 얻을 수 있고, 그런 도시의 예술과 문화를 몸에 익힐 수 있으며, 이아손을 남편으로 섬기면 자신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만큼 드높아질거’라고 기대한다. 결혼을 통하여 신분상승을 꾀하는 모든 여자들의 공통된 심리이다. 결혼을 로또당첨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아르고호에 승선해서 천신만고 끝에 그리스의 이올코스에 도착햇다. 이아손은 약속대로 이올코스에서 메데이아와 결혼을 했고, 아들 두 명을 낳았다. 메데이아의 마법을 잘 알고 있는 이아손은 자신의 아버지를 젊게 만들어달라고 했다. 메데이아는 시아버지를 위하여 온 정성을 다하여 회춘의 명약을 만든다. 그 장면은 압권이다. 별과 달이 지켜보는 한 밤중에 명약을 만드는 메데이아의 작업은 계속된다.

 

   ‘메데이아가 불 위에 올린 가마솥에서는 약초즙이 흰 거품을 내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메데이아는 여기에다 하이모니아 계곡에서 거두어 온 약초의 뿌리와 종자와 꽃과 즙을 넣고 또 극동에서 가져온 돌, 오케아노스의 파도에 씻긴 자갈, 보름달 밤에 내린 이슬, 부엉이 고기와 날개, 인간으로 둔갑할 수 있다고 믿어지던 이리의 내장을 넣었다. 메데이아는 또, 키뉘프스의 시내에 산다는 물뱀의 비늘, 장수하는 짐승으로 유명한 노루의 간장, 백년 묵은 까마귀 대가리와 부리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개한 나라에서 온 공주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약재를 더 넣고서는 올리브나무가지로 고루 천천히 저었다. 고대에는 마법사들이 곧 연금술사였다. 연금술이라고 하면 비금속을 귀금속으로 바꾸는 것이었으며, 때로는 불로장수약 또는 만능약을 창제하는 데 있었다. 지금 메데이아는 회춘하는 약재를 만들고 있다. 약이 들어간 지 오래지 않아 늙은 아이손의 하얗던 수염이 그 흰빛을 잃더니 곧 검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40년 전의 자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아손의 숙부 펠리아스왕은 금양모피를 가져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해놓고서는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펠리아스왕의 딸들은 큰아버지가 회춘한 것을 보고 메데이아에게 자기 아버지도 그렇게 젊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메데이아는 커다란 솥에 약재를 끓이는 척 하면서 펠리아스왕을 가마솥에 넣어버렸다.

 

   그녀는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두루 할 수 있었으며 악마의 힘을 빌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흑마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백마술을 다 부릴 수 있었다. 메데이아는 연금술사로서 재능이 뛰어난 똑똑한 여자이다. 격정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그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했고, 그녀의 정열은 식을 줄 몰랐다.

 

   숙부이자 왕을 죽이고 나서도 왕위는 이아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아손은 가족을 데리고 코린토스로 망명을 떠났다. 아들이 없는 코린토스왕은 영웅 이아손을 본 순간 자신의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항상 왕이 되기를 꿈꾸어왔던 이아손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와 올리는 새결혼식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고, 메데이아와 두 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설상가상 메데이아와 두 아들에게는 24시간 내로 코린토스를 떠나라는 추방령이 내려졌다.

 

    조국과 가족을 버려가면서 혼신을 다해 지아비를 모셨는데 돌아 온 결과가 고작 딴 여자와 새장가를 가겠다고 하니 그 배신감은 태산보다도 클 것이다. 메데이아의 헌신적인 사랑에 비해 이아손은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쟁취하는 영웅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생 전부를 걸고 사랑했는데, 내 사랑으로 영웅이 된 남자가 제 잇속만 챙기고 떠나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남편에게 행운을 빌어줄 여자가 몇이나 될까? 메데이아는 열정적이고 솔직한 여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용서라는 거짓된 카드를 내놓지 않는 그녀가 더 사랑스럽다.

 

  추방령을 전해들은 메데이아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복수를 결심한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죽이는 대신에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전략을 짰다. 이 세상에서 이아손을 위한 기쁨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메데이아는 포카페이스에 능한 여자라, 분하고 슬픈 얼굴을 감추고 이아손의 결혼을 축복하고 싶다고 전한다. 황금으로 된 왕관에 그녀가 만든 독약을 발라서 글라우케에게 보낸다. 이아손의 약혼녀 글라우케는 메데이아가 보낸 예쁜 왕관을 머리에 썼다가 온몸에 불꽃이 일면서 죽게 된다. 이아손이 손을 쓰기에 이미 늦었다. 메데이아는 코린토스에 남겨진다 해도 어차피 죽을 목숨인 두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그 생명을 거두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일방적인 헌신으로 메데이아는 자신의 사랑을 키워왔지만 결국 배신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주고받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으며,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한꺼번에 자신의 생 전체를 몽땅 건다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실패로 끝난 메데이아의 사랑에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고도 감당할 수 있다면 다 주어도 괜찮지만,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자신을 위하여 사랑을 아껴놓아야 한다. 사랑이 트라우마로 남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상처가 평생 동안 안고 갈 고통이 된다하더라도 기꺼이 동의한다면 모든 것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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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11:18:46 *.51.145.193

누님의 '사랑학개론'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모든 것을 걸어라'에서 누님의 여전한 붉은 청춘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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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8.31 00:14:57 *.85.249.182

한 번도 붉은 청춘은 커녕 푸른 청툰이 되어 본 적도 없엇는데,

오십이 넘어서 그런 찬사를 들으니 정말 좋다.

청춘들에게 뜨거운 삶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재용이의 찬사 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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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10:23:31 *.142.242.20

메데이아도 그렇고 스퀼라도 그렇고. 

읽으면서 여자들은 사랑에 목숨 거는구나.. 싶었어요. (변신이야기에서)

목숨을 건다기보다 뭐랄까.. 전부가 목숨인가? 아무튼.. ㅎㅎ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고도 감당할 수 있다면 다 주어도 괜찮지만,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자신을 위하여 사랑을 아껴놓아야 한다.'


후회하지 않겠다면, 후회해도 그 후회를 내가 감당하겠다면!! 그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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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8.31 00:16:44 *.85.249.182

세린이의 아름다운 사랑이 아름답게

결실 맺어지게를 기도한다.

 

때로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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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10:38:41 *.194.37.13

"후회하지 않겠다면, 모든 것을 걸어라!"

누님의 열정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태풍 볼라멘 불어오는 이 아침에, 저에게 큰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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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8.31 00:26:08 *.85.249.182

내 글에서 열정이 느껴진다니,

생각지도 못한 과찬이네.

메데이아의 열정에 내가 반한 것인지도 모르겟다.

떳떳미지근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은

감추어 두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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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9 04:20:46 *.39.134.22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잇속을 따라서 행동한다.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동인. 메데이아가 가족과 나라를 등지고

이아손을 따라서 길을 나섰을때 이미 예견되어 있는 바였다. 똑같이 서로를 징검다리 삼아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전형을 본다. 누가 누구한테 책임을 전가할 것인가.

자신의 행동에 다가온 결과를 어떻게 풀어가는냐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몫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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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8.31 00:20:10 *.85.249.182

아! 서연님! 이름 멋져요. 사기열전에도 잠깐 서연이 나왔는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또 서로의 능력을 이용하는 그런 사이였군요.

메디아의 생각은 적나라하게 펼쳐있지만, 이아손의 생각은 행간속에 숨어 있어

읽을 새가 없었네요^^

서연님의 예리한 시각 멋져요.

우리는 모두 자기 본위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남을 위하는 것도 자신이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잖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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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30 16:14:36 *.114.49.161

사부님의 신화 책을 아직 읽지 못했어요.

출판사의 소개글에서 개방된 목차에서는 메데이아의 사랑에 대해

'자신의 필요를 위한 나를 사랑하는 이를 믿지 마라'고 했었죠.

제가 좋아하는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는 메데이아를 아내 원형이 강한 여자라고 분석했더군요.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앙드레보나르는 또 다르게('메데이아는 괴물이다. 사랑보다 힘을 우선했다)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요.

 

메데이아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저에게도 있어요.

저는 시네큐브에서 하는 '케빈에 대하여' 영화를 볼까 해요.

애착형성기를 놓친, 반사회성 인격장애 아들의 잔인한 일을 지켜보는 엄마의 이야기라 하더군요.

저는 그녀의 잔인함이 어디서 왔을까가 궁금해요.

매혹적인 캐릭터예요.

잘 읽었습니다. 깔리여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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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8.31 00:24:26 *.85.249.182

사실 메데이아를 정하면서 연금술에 관한 것을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급해서

테마가 바뀌어졌어요.

좀더 자료들을 참고로 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한 번 쓰려고 합니다.

처음 메데이아를 접했을 때는 악녀로 가차없이 몰아갔어.

읽으면 읽을 수록

메데이아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사이 마음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건가?

아 무슨 자화자찬..........

콩두의 글 고마워.

이 가을엔 콩두의 계절이 되었으면 좋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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