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2년 8월 29일 00시 47분 등록

장미 22. 시작과 끝

 

학창시절에 읽어 혀끝에 맴도는 시가 있다. 1847년에 발표된 롱펠로우의 <에반젤린>이다. 오늘같이 큰바람이 불어와 나무를 뿌리 채 뽑아버리고, 온종일 윙윙 거리며 창문을 마구 흔들어대는 날, 무서워서 문 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혼자서  여기는 태고의 숲.....   먼 옛날, 바람이 휘몰아치던 아카디아 숲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롱펠로의 장시 <에반젤린>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는 태고의 숲

바람에 살랑거리는 솔송나무들은 푸른 이끼에 휩싸여 황혼이 깔리면 흡사 우중충한 가운데 슬픈 예언을 하던 옛날의 성자, 또는 흰 수염의 악사들 모양 우뚝우뚝 서있다.

그리고 암굴로 새어 들려오는 바다의 무거운 울부짖음은 이 원시림의 괴로운 곡조에 응답하고 있다.

 

여기는 태고의 숲.

허나 사냥꾼 발소리에 놀란 어린 사슴처럼 쫓겨났을 그 주민들은 어디로 갔는가?

아카디아의 농부들- 숲 속을 가르며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 지상의 생활에서도 하늘의 계시를 담았던 그 아카디아의 농부들의 초가 마을은 어디로 갔는가?

아름다웠던 농장들은 이제 황무지로 화하고 그것을 가꾸던 농부들은 영영 떠나갔다.

 

그대, 참고 견딤으로써 사랑의 거룩함과 그 희망의 달성을 믿는 사람들이여!

그대, 여자의 아름다움과 정절과 그 강함을 믿는 사람들이여!

귀를 기울이라, 저 숲 속의 소나무가지들이 아직도 웅얼대는 저 오랜 괴로운 전설에.

듣거라. 행복했던 아카디아 , 그 사랑의 이야기를.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태고의 숲은 아직 그대로 서 있건만, 그들 두 사람은 그 그늘을 멀리 떠난 곳에 나란히 앉은, 이름 없는 묘지에 누워있다. 가톨릭교회의 우중충한 벽 아래.

도시의 심장부에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이, 그들은 누워 있다.

날마다 그들 옆을 사람의 물결이 스치며 밀려간다.

그들의 심장은 영원히 쉬고 있으나 수많은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으며, 그들의 두뇌는 쉬고 있으나 수많은 사람은 괴로워하고 있다.

그들의 손이 일하고 있지 않을망정, 숱한 손들은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발은 여행을 마쳤을지라도 , 피로에 시달리는 무수한 발이 있다.

 

태고의 숲은 아직도 그대로 서 있지만, 그 그늘 아래에는 풍속과 언어가 다른 종족이 살고 있다. 다만, 뼈나마 고향땅에 묻히고자 되돌아왔던 사람들의 얼마 안 되는 아카디아 농부의 후손들이 안개 짙은 대서양 기슭의 거친 땅을 거닐 뿐.

어부들의 토막에서는 베틀과 물레 젓는 소리가 여전히 바쁘고, 처녀들은 아직도 노르만 모자와 홈스펀 가운을 입었으며, 저녁이면 화로 가에 앉아 에반젤린의 사랑의 얘기를 되풀이 할 즈음에,

육중한 음향으로 웅얼거리는 바닷소리가 암굴을 새들어 오고 바람에 나부끼는 숲소리는 그 서러운 응답을 하고 있다.

 

나는 이제 비가오나 눈이 오나...작은 바람이 불거나 큰 바람이 휘몰아치거나, 태풍 뒤에 또 태풍이 몰려와도 이 사랑과 죽음의 시작과 끝 사이에 이야기를 채워넣어야 한다.

 

여기는 태고의 숲......그리고 그 끝에도 태고의 숲이 있을 뿐이다.

IP *.70.64.222

프로필 이미지
2012.08.29 05:14:10 *.39.134.221

사랑과 죽음은 동의어인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도 동의어 이겠지요...?

.

태풍이 또 올라오고 있다 합니다. 심하게 창을 흔들 것이고 심하게 나무를 흔들 것입니다.

창을 흔들지 않으면 우리는 태풍이 있는줄 모를 것이고 나무를 흔들지 않으면 바람이 있는 것을 모를 것입니다.

사랑이 있지 않으면 삶이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말입니다.

오늘도 태고의 숲에서 재미난이야기 채워넣은 하루 되세요...^^

프로필 이미지
2012.08.29 10:32:18 *.70.64.222

 길수 행님, 아호를 쓰기로 하셨나요?...서연, 부르기에 좋은 것 같아요. 

에~또...

한 밤중에 글을옮겨다 놓으며....  태고의 숲.....무언가 상징적인 의도를 담아두었는데.... ㅋㅋ

이제 깨어 일어나 다시 읽어보니......어디에 있나요? 그 얘기 정말 들으셨나요~ 오오..허나 그녀만은 , 그녀 하나만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반젤린과 가브리엘이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9 12:27:55 *.151.207.149
좌쌤.. 엄마는 아버지를 그만 보내드리자고 했어요. 엄마가 간병할 만큼은 했으니 여한이 없다고.. 더이상 찔러도 검사할 피가 안나오는 아버지의.몸 곳곳이 안쓰러워서 말이예요. 잠시 동생네에서 머무시는데 매일 우신대요. 나는 아침 아홉시에 엄마한테 전화를 드리기로 했지요.오늘은 잘 주무셨는지 아침은 드셨는지 여쭈니 눈물만 난다는거예요. 그래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쏟아내시라고 했어요. 너무 울면 머리가 아프니 몸도 잘챙기시라고도 했구요. 그리고 그래도 아버지 간병할 때가 낫지 않느냐고 여쭸지요. 그랬더니 그렇대요. 이럴줄 몰랐대요. 엄마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요?
프로필 이미지
2012.08.30 07:30:16 *.70.64.222

그대 아버님 가시던날, 비도 멈추었고 더위도 물러섰고 ...남은 사람들 수고를 그렇게 덜어주시더니....어머니 마음엔  그립고 아쉬운 마음을 그렇게 남기셨군요. .어머니께 잠시 혼자 계실 시간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요? 그 다음에는 긴 얘기, 같은 얘기....잘 들어드리고.....

 

프로필 이미지
2012.08.29 14:11:16 *.104.207.203

누구는 이 숲이 아름답다 하고 , 누구는 숲속의 삶이 고통스럽다 하고,

 누구는 벌렁거리는 심장의 힘으로 저 멀리 다른 숲으로 옮겨가기 위해 신발끈을 묶고 있다 합니다.

솔송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 바람에 묻어와 영혼에 깃드는 노랫소리...

오고 가고,  또 오고 갑니다.. 오고 가는 인연중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상세하게 조목조목 알아들을수 있게 빠짐없이 연민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감과 소통의 의미로 ... 적으라... 합니다..

홍홍... 밝은 눈 맑은 마음도 지어낸 것이라 하는데요..

샘의 놀이터에서 쏟아지는 ..까르르 낄낄 ㅋㅋㅋ 웃음소리 ~

바람에 날려 멀리 멀리 푸른 하늘  피어나는 흰 구름 까지 닿으시기를 요... 홍홍홍 ~~^^

 

프로필 이미지
2012.08.30 07:44:51 *.70.64.222

달따냥, 그대 이름을 줄여보니...삼총사의 그사람 이름이 되는군요. ㅎㅎ

난 책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1968년 판 <에반젤린>을 가지고 있는데...책  뒷편엔 영어 원문도 있다우...

This is the forest primeval. The murmuring pines and the hemlocks......

시인이 단어 하나를 두고도 몇날 밤을 끙끙댔을 생각을 하니 가끔은 나도 미쿡사람처럼 이 시를 읽고 싶기도  해요. ㅋㅋ 

항상 신경써서 달아주는 댓글에 감동한다우, 재미있는 글써서  갚아야할텐데....

프로필 이미지
2012.08.30 16:30:22 *.114.49.161

롤펠로우의 에반젤린 시가 멋져요. 좀 웅장한 느낌입니다. 

에반젤린이 클레멘타인, 에너벨리을 불러내서 고것도 불러보고, 읽어보았어요. 

모두 죽음, 바닷가가 나와서 그런가봐요. 

태고의 숲에서 곰이나 이리처럼 어슬렁어슬렁 하실 듯^^ 

저는 좀 밥잘님이 태풍부는 밤을 신나하실 것 같아요.

(밥잘 슨상님, 좌선생님 말고 기냥 입에 익은 대로 밥잘님 이렇게 할까요? 아하하 ^^;;)

프로필 이미지
2012.08.30 20:52:41 *.70.64.222

콩두야, 나 오늘 비오는데....길이 밀리는데도

정동 가서 중요한 미팅 하고 왔쩌. 문제는 콘셉이야 콘셉..... 문장력이 아니구.....

나는 그냥  바닷가에 가서 바람이나 맞으며 살까봐.....

콩두 놀러오면 짐 리브스처럼... 애나벨리를 불러주면서.....

It was mamy & many  years ago, In a Kingdom by the sea......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92 해외연수_시칠리아_에트나 서연 file [4] [1] 서연 2012.08.19 2684
2091 살기위해 오르는도시 , 타오르미나 file [2] [8] 학이시습 2012.08.20 3090
2090 고대의 도시들을 품은 섬, 시간에 비껴 선 땅, 시칠리아 file [1] 샐리올리브 2012.08.20 3501
2089 스칼라 데이 뚜르키 (Scala Dei Turchi) - 터키인들의 계단 file [3] [2] 세린 2012.08.20 6722
2088 사랑하려거든 아르메리나로 가라 file [2] [3] 장재용 2012.08.20 5602
2087 나의 바다로 뛰어드는 곳, 체팔루 file [4] 콩두 2012.08.20 2547
2086 수술을 마치고 file [5] 양갱 2012.08.21 6287
2085 쌀과자_#17 미쳤어요? [8] 서연 2012.08.27 2010
2084 17. 신화에 물들어 - 한젤리타 [5] 한젤리타 2012.08.27 2035
2083 루브르 박물관전을 둘러보며 느낀 사랑이야기 [5] 학이시습 2012.08.27 1963
2082 누가 비극이라 하는가 [6] 장재용 2012.08.27 1921
2081 시칠리아 사랑이야기의 덤 [12] 콩두 2012.08.27 2375
2080 버릇든 세월 이기기 [7] 세린 2012.08.27 1967
2079 샐리가 만난 2012년의 오비디우스 file [6] 샐리올리브 2012.08.27 2605
2078 메데이아의 슬픈 사랑 [10] id: 깔리여신 2012.08.27 2676
2077 [재키제동의 이탈리아 여행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곳, 시칠리아 file [10] 재키 제동 2012.08.28 3437
» 장미 22. 시작과 끝 [8] 범해 좌경숙 2012.08.29 2050
2075 시칠리아_김기담 file [5] 강현 2012.08.30 5387
2074 장미 23. 마음의 진보 [5] [2] 범해 좌경숙 2012.09.01 2873
2073 #18. 넌 무엇을 연구하니? [8] 한젤리타 2012.09.03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