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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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11
영화 ‘인셉션’을 보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탐사지역은 사람의 내면이라는 말처럼, 이 최신영화는 사람의 무의식을 다룬다. 주인공 코브는 다른 사람의 꿈에 접속하여 생각을 훔쳐다 파는 일을 한다. 경쟁사의 사업기밀을 알아내기 위해 산업스파이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코브는 색다른 제안을 받는다. 누군가의 생각을 훔쳐오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새로운 생각을 심어놓자는 것, 이름하여 ‘인셉션’! 그것이 이 영화의 소재이다.
살인누명을 쓰고 떠돌던 코브는 집에 돌아가게 해 주겠다는 제안자의 조건에 혹하여 인셉션을 수행하기로 한다.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새로운 생각을 심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미 자기 생각을 빼 나가는 ‘추출’에 방어하는 훈련을 받은 인물이다.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조작이라는 것을 들키게 된다. 코브는 자연스럽게 생각을 바꾸기 위해 ‘꿈속의 꿈’까지 설계하고, 더 깊은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꿈속의 꿈속의 꿈’까지 접근한다. 현실과 림보에 이르는 5단계를 넘나들며 영화는 빠르게 진행된다. 단 1분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흡입력 강한 화면에 빨려들다 보니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인셉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정말 독보적인 상상력이다. 각본, 감독, 제작을 혼자 도맡아 이 독창적인 상상력에 옷을 입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천재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천문학적 수익이 보장된 고도로 상업적인 영화지만 영화외적인 분야에도 자극을 많이 주었을 것 같다. 때로 영화적인 상상력이 과학을 선도하지 않는가. 필요한 정보를 순식간에 뇌에 입력하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보며 머지않은 장래에 저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원하는 방향으로 꿈을 설계한다는 모티브 역시 그랬다. 영화에서처럼 인위적으로 꿈을 조작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무의식에 대한 연구가 가속화되지는 않을까. 이 영화의 성공을 통해 일반인의 무의식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된 것을 바탕으로 말이다.
나는 주인공들이 생각을 심기 위해 정교한 시나리오를 짜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들은 경쟁사의 CEO인 피셔가 거대기업을 쪼개는 결정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용되었다. 어떻게 이 생각을 피셔의 무의식 속에 심어놓을 것인가? 피셔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임종 직전에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말한 것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이 부분에 아주 간단한 대사 하나만을 끼워 넣는다. 아버지로 하여금 “네가 나를 따라 하려고 해서” 실망했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피셔는 아버지가 자신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여겨, 아버지가 이루어놓은 기업을 조각내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영화 속 코브가 말하는 것처럼 생각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아주 작은 실마리가 아주 커다란 일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의 꿈을 설계하는 이는 누구인가? 영화처럼 다른 사람이 내 꿈을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꿈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꿈을 통해 인체의 신비에 접한다. 스트레스를 좀 받은 날 꿈에서 무수하게 흩어진 신발들을 보는 식이다. 성장기에 살았던 집 댓돌 위에 무수하게 쌓인 크고 작은 신발들을 보며 한숨짓는 나! 낮에 잠시 생각했던 것을 바탕으로 꿈은 단편영화를 만들어놓는다. 스토리텔링과 캐스팅을 완벽하게 해 내는 뇌의 능력에 번번이 놀란다. 한 번은 커다란 무대에 포진한 대형 오케스트라가 한참동안 클래식을 연주한 적도 있다. 나는 진짜 음치이고 아는 악기가 몇 개 되지 않을 정도로 음악에 문외한이다. 그런 나의 꿈속에서 일어난 일 덕분에 나는 무의식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 내 몸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거대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무의식은 표면에 드러나는 의식을 지탱하는 거대한 심연이라고 한다. 그 곳은, 우리가 우연이라고 여기는 생각들의 뿌리이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의 발원이다. 조금이라도 더 무의식을 현재화할 수 있다면 세계적인 위인이 될 수 있다던 조셉 캠벨의 말처럼, 무한한 잠재력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의식을 확대해 보는 것도 필요할 터, 그러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방법은 글쓰기이다.
나는 크든 작든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것에 대해 글을 쓴다.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쓴다. 그러면 표면상의 문제를 제치고 진짜 문제가 드러난다. 아! 이거였어?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문제와 직면하면 속이 시원하다. 나의 무의식은 또 다시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 것이다. 도전할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그것만 결정하면 된다. 왜? 라는 질문을 놓지 않고 손을 놀리다 보면 어떻게? 라는 직관이 열린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의식 무의식을 아우르는 통로라고 생각한다.
도달하고 싶은 미래의 장면들을 글로 쓰는 것도 좋다. 벌써 이룬 것처럼 현재형으로 미래일기를 쓴 후에 소리 내서 낭독하라. 손으로 쓰고 입을 움직이고 귀로 들음으로써 오감을 모두 사용하여 잠재의식에 목표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모든 생각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언어는 의식을 규정한다. 나의 모든 자원과 경험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활용하겠다는 긍정적인 자기최면, 이것이 인셉션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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