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구본형

개인과

/

/

  • 구본형
  • 조회 수 15804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2년 9월 21일 10시 55분 등록

 

역사가 대중들의 이야기가 될 때 문학이 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이야기 책이다. 그래서 저자 일연스님은 자신의 책을 '역사(史)'라 부르지 않고, '사건(事)'이라 불렀다. 이 수 많은 사건들 중에서 나는 욱면이라는 부잣집 계집종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욱면은 귀진이라는 관리의 집 여종인데,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매일 지성으로 염불을 외었다. 주인이 보니 종의 주제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라 여겨 매번 곡식 두 섬을 주고 저녁까지 다 찧으라고 했다. 욱면은 초저녁까지 열심히 다 찧어 놓은 후, 밤이 제법 깊은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절에 가서 염불을 외웠다.

 

 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가락을 뚫어 노끈으로 말뚝에 매어 졸음에 몸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정성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욱면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예불하라'는 하늘의 외침이 들렸다. 승려들이 놀라 그녀를 법당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욱면이 불당의 대들보를 뚫고 솟구쳐 올라 날아가더니 부처의 몸으로 변했다.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미천한 한 여종의 황당한 성불기(成佛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 너는 한 번이라도 욱면처럼 하루를 지성으로 살아 보았느냐?"   그러자 이 황당한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욱면의 정성을 갖지 않으면 삶은 도약하지 않는다.

 

계집종 욱면이 종이 되어 매일 주인이 시키는 잡일이나 하고, 쌀 두 섬을 빻아야하는 고된 일과에 묻혀버렸다면 그녀의 일생은 불만과 탄식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위대한 전환이 다가왔다.  문득 불도를 닦기로 맘을 먹은 것이다. 밤에 미타사 절 마당에서 염불을 외울 때와 마찬가지로 낮에 일을 할 때도 저녁에 나락을 빻을 때도 그녀는 수도자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구도의 마음으로 일과 삶에 접근할 수 있다.

 

중세 수도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계율이 있다. 모든 일을 할 때, 기도 할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뜰의 낙엽 쓸 때도 빵을 만들 때도 눈 내리는 겨울 내내 먹을 쏘시지를 만들 때나 포도주를 만들 때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곧 수도의 대상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만일 직장인을 위한 단 한가지의 계율을 만든다면 '일을 일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하면 제일 좋다. 놀 때 우리는 몰입한다.  만일 그럴 수 없으면 전략적 태스크로 설정한 직무들에 대하서만은 하루 일과의 절반 쯤 되는 4-5 시간은 집중 투자하여 구도자의 자세로 일하는 것이다.

 

삼국유사.jpg

(한국 거래소를 위한 원고에서 욱면 부분만 발췌하여 수록함)

 

 

(한국 거래소를 위한 원고에서 욱면 부분만 발췌하여 수록함)

IP *.128.229.158

프로필 이미지
2012.10.23 18:32:43 *.192.208.83

 " 너는 한 번이라도 욱면처럼 하루를 지성으로 살아 보았느냐?"

참으로 부끄럽게 만드는 질책입니다. 욱면처럼 살아 본 나날이 있었고 그런 나날들이 가져다 준 찰나의 풍요에 취해 어느덧 병들고 나약해진 자신을 보았기에 더더욱 부끄럽습니다. 어쩌면 진정 욱면처럼 살아 본 날은 없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히 읽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11.04 22:04:48 *.68.172.4

처리해야 할 차트를 쌓아놓고 있는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글입니다. 하핫.;;; 얼른 일을 열심히 끝내놓고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책 읽고 차트 쓸게 아니고...=_=y;;;

프로필 이미지
2013.04.09 14:32:41 *.6.57.60

불쑥 사부님의 삼국유사 칼럼이 생각나서 다시 찾아 왔습니다. 욱면. 욱면. 생경한 이름을 입에 붙여 보려고 되뇌여 봅니다. 퇴근하면 삼국유사 욱면 부분을 다시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5.10.24 17:58:16 *.212.217.154

나에게 주어진 것에

진심을 다하기.

프로필 이미지
2017.12.20 10:31:07 *.32.9.56

세상 누구나

이야기 속 욱면같이

정성을 다 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겠지요.


스티브잡스의 말 처럼

오늘 하루,

정말 내가 하고싶었던 일을 한 것인지

말 할 수 있는 하루가 되도록

힘 써 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3 창의력을 해방시켜라 [2] 구본형 2006.02.28 6513
602 나를 캐리어 스폰서라 부르라 [2] 구본형 2005.05.29 6528
601 필부도 세상의 흥망에 책임이 있다(2000.여름) [3] 구본형 2002.12.25 6538
600 세상은 나를 보살펴 주었고 또 나를 필요로 한다 [2] 구본형 2002.12.25 6554
599 지난 여름 피서지에서 생긴 일 [3] 구본형 2004.09.11 6566
598 휴가, 쉴 겨를의 의미 [2] [1] 구본형 2002.12.25 6568
597 우리는 약소국인가 ? [2] 구본형 2004.08.12 6574
596 돈이 최선인 사회에서는 조지 소로스도 살기 어렵다 [3] 구본형 2002.12.25 6576
595 따라가는 기업은 멸종한다 [2] 구본형 2002.12.25 6578
594 새로운 비즈니스의 공간을 찾아라 [2] 구본형 2005.05.29 6578
593 년초에 세상의 변화를 엿보자 [2] 구본형 2007.02.12 6579
592 아이들이 있는 일상 - 3개의 스케치 [3] 구본형 2004.06.06 6580
591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푸른숲 [2] 구본형 2002.12.25 6581
590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2] 구본형 2008.02.20 6581
589 생각 탐험 (3) - 싸우되 존중하라 [2] 구본형 2010.04.19 6582
588 각종게이트를 보면서 [3] 구본형 2002.12.25 6583
587 창조적 문제아가 되라 [2] 구본형 2002.12.25 6584
586 설득 당하지 말고 설득하라 [2] 구본형 2002.12.25 6584
585 인물과 배경(2000.6) [3] 구본형 2002.12.25 6584
584 불면에 대하여 [2] 구본형 2003.11.05 6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