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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일 11시 02분 등록

‘수’란 무엇인가? 



 수학시간에는 심한 불안을 느꼈다. 선생은 대수가 아주 자명하다는 식으로 큰소리를 쳤지만, 나는 아직 수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수는 꽃이나 동물, 화석도 아니었다. 수라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헤아림을 통해 생겨나는 수량에 불과했다. 혼란스럽게도 이 수량은 이제 소리를 의미하는 문자로 대체되어, 말하자면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이상하게도 급우들은 이 수들을 다룰 줄 알았으며, 자명한 것으로 여겼다. 아무도 나에게 수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못했고, 나는 그러한 의문을 조리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나의 어려움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카를 융이 유년시절 수학시간에 겪었던 어려움이다. 나는 이부분에서 ‘수’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책을 계속 읽다보면 융을 가르쳤던 선생님도 ‘수’에 대해 이야기 해주려고 노력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융은 그녀의 노력에 만 감탄했을 뿐 의문을 해결하진 못했다. 


 수학에서는 ‘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내가 생각하기엔 ‘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면서도  또 크지 않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는 수학 시간에 수만을 다룬다. 심지어 원주율을 나타내는 파이도 약 3.14로 가르친다. 그리고 학생들은 원의 넓이나 원의 둘레를 구할 때 3.14를 이용하여 계산한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 ‘문자’를 만나게 된다.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집합을 배우는데, 수학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내용을 접하게 된다. 나도 중1때 이 부분에서 불균형을 느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동화시키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수학에서 문자 사용은 아주 기초적인 것인데도 학생들은 그때까지 배운 수학과는 별개의 수학을 접하고,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게 된다. 이 지점, 즉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수를 문자로 대체하는 이 지점이 변곡점이 되는 학생들은 수학을 잘하게 되고, 최댓점이 되는 학생들은 *수포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수포자일까? 아니면 그 지점을 변곡점이 되게 하여 계속 상승곡선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일까?’


 이것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 또 그 지점이 변곡점이 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다.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두기엔 책임전가의 느낌이 많이 든다. 아직 방법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애들아,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그랬더니 한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태어나면 되요.” 난 그 말에 바로 웃음보가 터졌는데, 두고두고 생각해보니, 공감이 가기도 했다. 수학적 머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내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수학적 머리를 길러 줄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 있을거라는 희망 말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지금 자신이 그리고 있는 수학 곡선의 그래프 위의 현재 지점에서 변곡점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이 내 과제가 된 셈이다.  


 다시 돌아가서, 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계속 다루며, 대학수학을 배울 때에도 다루게 된다. 비중이 적어지지만 수학에서 수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카를 융이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최선을 다해 해보도록 하자. 

 

 수란 양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해 온 추상적인 개념이다. 수는 물체의 수량 등을 나타내는 것이고, 수를 표시하기 위한 기호가 숫자다. 예를 들어, 사과 한 개, 자동차 한 대, 강아지 한 마리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사실들이나, 이 사실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개념을 뽑아 이를 1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이 사과, 자동차, 강아지는 아니며 또한 위에서 아래로 그어진 선분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수의 종류는 자연수, 정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복소수 이렇게 있는데, 이 수들은 방정식의 해를 구하기 위해 생겨났다. 자연수는 자연에서 발견한 것이라면 (몇 개인지 수량을 나타내기 위해) 음수는 ‘x+1=0’의 해를 구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트 2와 같은 숫자는 x^-2=0의 해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또 소크라테스의 대화문에 보면 소크라테스가 사동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넓이가 2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구하면?” 그때 사동은 자연수나 유리수 만으로는 한 변의 길이를 구할 수 없는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그때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한 변의 길이는 바로 ‘루트2’라고 말이다.  정사각형의 넓이를 알 때 한 변의 길이를 구하기 위해 무리수가 등장한 것이다.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기하학적으로도 설명가능하다. 따라서 ‘무조건 외워’의 방식보다 수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수의 근원, 즉 기원을 알게 되면 말이다. 


 하지만 융이 궁금해 했던 수 자체에 대한 설명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 수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설명해보니 왠지 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해야하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갑자기 카를 융처럼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문명과 수학, 철학과 수학, 수에 대한을 꿈을 꾸고 싶다. 그래서 수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싶다. 내 생각으로 말이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 수포자 :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의 신조어 (어학사전 참고)

IP *.206.19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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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2 15:16:34 *.41.190.211

세린아, 새로운 시도는 늘 방랑자 처럼 가는 곳이  낮설고

방황하는 사람처럼 늘 확신이 없는 길을 가는 거야...(괴테의 파우스트 -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하는 것 처럼 보인다.)

 

우리 함께 이라고 꿔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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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2 17:23:45 *.68.172.4

수포자가 그런 뜻일 줄이야.ㅋㅋㅋ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작 중에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 자신의 방식대로 기술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재미있어. http://www.ontimes.kr/detail.php?number=9351&thread=23r03 주로 숫자의 모양에서 연상되는 내용지만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숫자에 관한 엄청나게 많은 오해들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가령 1+1=1 (물방울이 합쳐지면)을 헷갈려 하는 사람도 있고, 1부터 10까지 숫자 중 둘로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전부 다 - 라고 말한 천재 소년에 관한 영화(천재소년 테이트). 그리고 a=b를 사기라고 생각했던 융.ㅋㅋㅋ 그리고 0이 가지는 의미가 두 가지라는 것을 어릴 때 깨달았다는 내용의 소설이 있는데 이건 <콩고>라는 이름의 소설임. 아마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임과 동시에 양수와 음수의 중간이라는 뜻 아닐까 싶은데...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거네. 좋은 주제가 될 것 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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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06:29:14 *.194.37.13

나도 수포자중에 하나지~^^

아마도 어릴 적에 부모님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숫자를 잘 알던 아이가 갑자기 숫자가 싫어진거야.

숫자라는 녀석은 한 번 싫어지면 다시 친해지기 어렵더라구.

확실히 글자하고는 다른 것 같아,

그래서말인데, 숫자와 친해지는 방법이 궁금하다.

놀면서 숫자와 친해지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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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3:35:57 *.210.80.2

세린 수포자 여기도 한 명 추가요

잘 읽어오다 아아아 세린이 "수란~~" 시작하자 마자 아랫배 간질간질해지는 수포자입니다. ㅠㅠ그 단락을 뭉텅 건너뛰었어요.

융의 자서전에 나오는 저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는 세린이 멋집니다.

굉장히 풍부해지는 듯 합니다.

책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세린이 반짝이는 듯 합니다. 

칼럼마다 열심히 해서 매주 뭔가 없던 것을 만들어내며 전진하는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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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7 10:18:55 *.43.92.8

문득,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 또한 수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까?

수라는 개념이 없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다가

"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해보다가 스스로의 답을 내려본후 

인터넷에 다른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질문에 

여기에 우연히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세린님 글을 읽고 리플까지 달고 싶어서 이렇게 오늘 가입까지 하게 되네요.ㅎ


융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저 또한 잘 모르겠습니다만,

덕분에 저는 수에 대해서 좀더 명확 해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이 수학인데,

아주 부차적인 여러가지 상황들이 수포자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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