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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8일 02시 27분 등록
 

붓다와 편작의 간절함이 통하다


붓다는 녹야원에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법이 있다. 그것을 성취하면 큰 의왕(醫王)이라 부른다. 첫째는 병을 잘 아는 것이요, 둘째는 병의 근원을 잘 아는 것이며, 셋째는 병을 잘 알아 다스리는 것이요, 넷째는 다스릴 줄을 잘 알고 장래에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의사란 갖가지 병의 종류를 잘 아는 것이며,  좋은 의사는 병의 근원을 잘 아는 것이다. 훌륭한 의사는  ‘이 병은 바람으로 인하여 일어났는가, 위장에서 일어났는 병인가, 침과 가래에서 일어났는가, 찬 기운에서 일어났는가, 현재 일로 인해 일어났는가, 기가 끊어지려는 데서 일어났는가 등을 안다.  훌륭한 의사는 병을 잘 알아 다스리는 것이다. 병에 따라 약을 발라야 할 것, 토해야 할 것, 뜸을 떠야 할 것, 땀을 내야 할 것 등을 잘 알고 그것을 따라 갖가지로 다스리는 것이다. 좋은 의사는 갖가지 병을 잘 다스리되 완전히 없애어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여래는 큰 의왕이 되어 네 가지 덕을 성취하고 중생들의 병을 고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괴로움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이고, 둘째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이고, 셋째는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이며, 넷째는 괴로움이 소멸되는 것에 대한 그 진리를 실답게 아는 것이다.


저 세간의 훌륭한 의사는 태어남[生]의 근본적 치료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근본적 치료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여래는 훌륭한 의왕이 되어 태어남의 근본적 치료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근본적 치료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여래(如來)․응공(應供)․등정각(等正覺)을 큰 의왕이라고 부른다.

       <잡아함경 제 15권 양의경>


    바라나시에 있는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설한 가르침이다. 이 경전은 훌륭한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이 붓다도 중생들의 괴로움을 치료하는 대의왕(大醫王)임을 비유한 유명한 법문이다. 붓다의 출가 동기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는 것’에서 출발했듯이,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가르침 역시 인간의 괴로움을 치료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붓다는 대기설법이라 하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에 맞게 또 그의 능력에 맞는 가르침을 펼쳤다. 붓다의 가르침은 환자에 따라 병에 적합한 약을 주는 응병여약(應病與藥)과도 같았다.

   붓다는 우리 인생을 한 마디로 고(苦)라고 보았다. 고(苦)라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태어남, 늙음, 질병, 죽음 등 네 가지 고통을 포함하여,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과 만나야 하는 고통,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이다. 그리고 인간이 가지는 고통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몸과 마음에서 비롯되는 모든 고통을 뜻한다. 이러한 여덟 가지가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고(苦)이다.

  고의 원인은 무상과 갈애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그 흐름 속에 있기에 그것을 영원히 누리고 싶고 잡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배반한다. 배반당하는 그 마음에서 우리는 끝없는 갈애를 느낀다. 갈애는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맹목적으로 지니게 되는 욕구이다. 인간의 오욕-명예욕, 재물욕, 색욕(色慾), 식욕, 수면욕-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마치 툭 터진 가죽주머니에 물붓기와 같은 것이다. 갈애를 뒤집어보면 탐욕이다. 우리의 고통이란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음을 미처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붓다는 좋은 의사란 ‘병을 잘 아는 것이요, 병의 근원을 잘 아는 것이며, 병을 잘 알아 다스리는 것이요, 장래에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붓다가 그 마음의 병에 맞는 치료약을 주어 대의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듯이, 중국엔 전설적인 명의(名醫) 편작이 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열전>에 붓다가 말한 좋은 의사 편작이 등장한다. 편작은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의 전설적인 명의(名醫)로 일컬어졌으며, 침술과 뜸 그리고 탕약 이 모두에 뛰어났다고 한다. 편작은 괵나라의 태자를 살려낸 일로 ‘죽은 이도 살려내는 명의’로 더욱 이름을 날렸다. 괵나라 태자를 살려낸 이야기는 이러하다.

   어느 날 편작은 괵(虢)나라로 갔는데, 마치 괵나라 태자가 죽었다고 나라가 시끄러웠다. 편작은 괵나라의 궁궐 문 앞으로 가서 중서자(태자의 교육을 담당함)에게 물었다.

“죽은 때가 언제입니까?”

“닭이 울 때부터 지금 사이입니다.”

편작이 말했다.

“저는 제나라 발해의 진월사람입니다. 태자가 불행히도 죽었다고 하는데 제가 태자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중서자가 말했다.

“선생은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됩니다.”

편작은 말했다.

“내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환자의 맥을 짚고 안색을 살피고 목소리를 듣고 몸 상태를 살펴보는 등의 일을 하지 않고도 어느 부위에 질병이 있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몸속의 병은 겉으로 나타나므로 천리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으며 감추려해도 감출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제 말을 진실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안으로 들어가 태자를 살펴보십시오, 태자의 귀에서는 소리가 나고 코는 벌름거리고 있을 것이며 양쪽 넓적다리를 타고 음부에 이르면 당연히 아직 따듯한 기운이 느껴질 겁니다.”

편작은 척보면 알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멀리서도 알 수 있다고 하니 명의보다는 신의(神醫)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중서자는 바로 궁궐로 들어가 임금에게 편작의 말을 알렸다.

편작은 임금에게 말했다.

“태자의 병과 같은 것을 시궐(尸厥, 피가 위로 올라와 정신이 혼미해져 가사 상태에 빠지는 병)이라고 하며, 태자께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양기가 음기 속으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살지만 음기가 양기 속으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죽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은 모두 오장의 기가 몸속에서 거꾸로 치솟을 때 갑자기 일어납니다. 훌륭한 의사는 이것을 치료하지만 서툰 의사는 의심하여 믿지 않습니다.”

편작은 제자 자양에게 숫돌에 침을 갈게 한 뒤 그것으로 몸 살갗에 있는 삼양과 오회를 찔렀다. 그로부터 조금 뒤 태자가 깨어났다. 음과 양의 기운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일로 하여 세상 사람들은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편작은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이는 내가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날 수 있도록 한 것 뿐”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편작의 이름은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이 환자에 따라 병에 적합한 약을 주는 응병여약(應病與藥)과도 같았듯이 편작 또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의사로 활동했다.

  편작은 한단을 지나갈 때 그곳에서 부인들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의사가 되었고, 낙양을 지날 때는 주나라 사람들이 노인을 공경한다는 말을 듣고 귓병과 눈병과 중풍 등 노인병 의사가 되었다. 함양으로 들어올 때는 진(秦)나라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소아과 의사가 되어 각 지역 사람들의 풍속에 맞추어 의료과목을 바꾸었다. 편작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 되어 중원이 좁다면서 동분서주했다. 편작의 활발발하고  정확한 진료에 대해 시기심과 위기를 느낀 자가 있었다. 진나라의 태의령(의약 행정의 최고 담당자)이혜는 자신의 의술이 편작만 못함을 알고 사람을 보내 편작을 찔러 죽였다. 편작은 피살되었지만, 지금까지 세상에서 맥법에 관해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편작의 이론과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사마천은 적고 있다. 편작을 죽인 이혜는 자신의 행위가 세세생생 기록에 남아 이렇게 전해지고 있음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붓다는 ‘세간의 의사들은 늙음, 병듦, 죽음,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의 근본적 치료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세간의 의사들은 몸의 병을 고치고, 붓다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의사인 것이다.

  붓다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다. 우리는 여덟 가지 고통 속에서 살고 있지만 고(苦)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고통 즉 번뇌를 해탈로 돌리는 것이다. 니르바나로 가는 길에 대해 붓다는 팔정도(八正道)라 하여 여덟 가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팔정도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른 수단으로 돈을 벌고, 바르게 노력하고, 바른 신념을 가지고, 바르게 정진하는 것이다. 몸과 입과 마음으로 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 수행이요,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몸의 양생법으로 편작은 ‘질병의 징후를 미리 알게 하여 훌륭한 의사에게 일찍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질병은 치유될 수 있다.’고 했다. 편작은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 불치병을 제시했는데, 이것을 뒤집어보면 내 몸이 사는 길이다.

   “교만하고 방자하여 병의 원리를 논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불치병이요,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이 아까워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불치명이요, 입고 먹는 것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세 번째 불치명이요, 음과 양이 함께 있어 오장(五臟)의 기(氣)가 불안정한 것이 네 번째 불치병이요, 몸이 극도로 허약하여 약을 먹을 수 없는 것이 다섯 번째 불치병이요,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이 여섯 번째 불치명이다. 이러한 것 가운데 하나만 있어도 치료하기 매우 어렵다”고 했다.

  말하자면 발병의 원인을 먼저 짚어볼 것이며, 몸의 소중함을 알고 치료하는데 돈을 아끼지 말 것이며, 입고 먹는데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도록 할 것이며, 오장육부의 기를 안정시킬 것이며, 의사가 처방해준 약은 꼭 먹도록 할 것이며, 무당이나 그 외 바른 진료가 아닌 것은 따르지 말고 반드시 의사의 처방전을 따른다면 병은 고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는 대의왕 붓다와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명의 편작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해야겠다는 간절함이 있다. 붓다의  간절함은 세상에 진리를 전할 수 있었고, 마음에 의지처를 만들어주었다. 편작의 간절함으로 인해 그가 살아있는 동안 환자들은 한 줄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간절함을 지닌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따뜻하고 밝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 얼마나 따듯함을 주었을까? 나는 세상을 위하여 따뜻함을 주겠다는 간절함을 지녀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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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08:27:09 *.217.210.84

인간의 오욕-명예욕, 재물욕, 색욕(色慾), 식욕, 수면욕-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마치 툭 터진 가죽주머니에 물붓기와 같은 것이다. 갈애를 뒤집어보면 탐욕이다

 

이부분이 마음에와서 턱 걸려서 내려가질 않습니다.

툭터진 가죽주머니....맞습니다. 뭣한다고 그렇게 열심히 부어대는지

한번만 돌아보면 알게 되는 것을....큰 깨달음이 있는 출근길이었습니다.

돌아서면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지만 한번의 깨달음은 다음에 깨달음의 시간을 빨리만날수 있으니...

다음에 또 깨달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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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10.09 21:40:06 *.85.249.182

황송한 댓글에 부끄러워집니다.

우주를 다 준다 해도 만족울 모르는 것이 인간들이라고 합니다.

스님들께서는 '소욕지족'하라는 법문 많이 하셨어요.

저는 3.5평에 사는 스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만세도 부를 수 없는 작은 공간이 법당이자 스님의 침실이요 거실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한 번 짬지게 수행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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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0 13:58:27 *.114.49.161

잘 읽었습니다.

저처럼 가볍고 신문지에 싼 글이 아니라 비단 보자기처럼 정성과 공이 든 글이네요.

매번 느끼지만 공을 많이 들이시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가다듬어져요.

 

잡아함경 저 녹야원의 대의왕 법문의 상황이 궁금해집니다.

인간 붓다가 누군가 주변의 의사가 어떤 환자(붓다 본인이든 제자 중 한 명이든)를

치료하는 맥락이 있어서 저런 법문을 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서요.

편작의 이야기가 재미 있듯 붓다나 초기 수행자들의 이야기도 감동적일 듯 싶어요.  

경전을 많이 읽어본 분이 그걸 연결해주시면 참 좋겠다 싶어요.

 

제가 읽은 건 법륜스님 교화사례 <붓다, 나를 흔들다> <붓다에게 물들다>, 틱냩한 스님 <소설 붓다> 같은 책이예요.

아마도 다른 많은 이들이 붓다를 쉽고 인간적으로 감동을 주도록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요?

뭔지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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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10.11 19:47:28 *.85.249.182

콩두의 글 읽으면서 문득 생각난게 있어.

붓다의 주치의였던 명의 지바카가 생각이 났다.

지바카에 대한 것은 별로 없는데 붓다의 재자들을 치료해주엇으며,

그때 이미 눈에 대한  외과수술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어.

글을 새롭게 써봐야겠다.

 

법륜스님 책 <붓다 나를 흔들다>가 우리 집에 있네.

나도 법륜스님 광팬이라  스님 책 많다.

그리고 법륜스님 인터뷰한 적이 있어.

내 책에 등장하신 분,,보현보살로 .

 

콩두의 글은 항상 창의력을 불러 일으킨단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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