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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5일 22시 39분 등록

6

 

 

 차가 멈췄다. 소년은 뿌꼬와 함께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세상에 나오면 분해되어 사라지고 말았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위쪽에 조금만 뚜껑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틈 사이로 뿌꼬와 소년은 나올 수 있었다. 차 위로  올라왔을 때, 그들 앞에는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소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소년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지금까지 우울했던 생각들도 바람에 날려보냈다. 그리고 호수 위로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새들은 잔잔한 호수 위를 아주 낮게 날아가고 있었다.

 

 "저기 보이는 새들처럼 자유로워졌어. 나도 마치 호수 위를 날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소년은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진짜로 날아볼까"

 뿌꼬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년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뿌꼬는 주머니 속에 씨앗을 꺼내고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뿌꼬가 입김을 불어넣자, 씨앗은 날개를 천천히 펼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커진 씨앗 위로 뿌꼬와 소년은 올라 탔다. 몇 번 날개 짓을 하더니 하늘 위로 올라간 씨앗은 호수가로 날아갔다. 뿌꼬와 소년, 그리고 씨앗의 그림자는 수면 위를 물결치며 지나갔다.

 

 "우와 신난다, 세상이 이렇게 멋진 곳인 줄 몰랐어"

 

 처음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소년은 몸을 가눌 수 없었지만, 천천히 바람의 흐름을 타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두 팔을 펼치며 온 몸으로 바람을 느꼈다. 세상이 자신을 반겨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뿌꼬,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

 "알았어, 단단히 잡아"

 

 소년은 뿌꼬의 허리를 꼭 잡았다. 씨앗은 수직으로 상승하며 날아올랐다. 구름을 뚫고 올라와서는 날개를 펼치며 중심을 잡았다. 구름 틈 사이로 보이는 호수의 모습은 작은 물 웅덩이 같았다. 바람은 잠잠해졌고, 햇빛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은 뿌꼬에게 말했다.

 

 "이렇게 높이 날아본 똥이 있을까? 조금 전에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모르겠어.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잊은 채 하늘을 날고 있는 새가 되었어"

 "너도 하늘과 하나가 되었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잊을 때,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어. 저기 물 속에 헤엄치는 물고기도 마찬가지야. 호수와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거든."

 "이런 느낌이 낯설지가 않아,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렴풋이 떠올라. 아빠의 차였던 것 같아. 퇴근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나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해주셨어. 그런데......"

 

소년은 말을 멈췄다. 뿌꼬는 바람 속에 귀를 기울였다. 소년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뿌꼬는 나지막이 말했다.

 

 "아픈 기억이 떠오른 거니?"

 "한달 전에 아빠가 돌아가셨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사고를 당하셨지. 엄마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만, 늦은 밤 엄마의 울음소리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소년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빠 꿈은 비행사였어. '지금은 차를 운전하지만, 언젠가 너와 함께 꼭 하늘을 날고 싶구나'라고 말했어. 올해 엄마와 함께 비행기를 꼭 태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거든"

 

 뿌꼬는 소년의 눈물이 얼굴에 스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픈 기억이었구나. 힘내! 지금 이렇게 나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잖아"

 "그러게 말이야. 한 동안 우울했었는데, 널 만나서부터 기분이 좋아졌어. 그리고, 아빠가 곁에 있는 느낌이야. 돌아가면 아빠의 꿈을 이뤄보고 싶어"

 "그래, 넌 분명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뿌꼬는 소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저 아래 똥차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 뿌꼬는 씨앗의 방향을 바꿔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 모두, 차 조수석에 열린 창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IP *.194.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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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1 06:21:30 *.154.223.199

글을 읽는데 한젤리타가 자분자분 낭독해 주는 걸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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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3 17:48:21 *.194.37.1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반부를 약간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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