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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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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9일 01시 13분 등록

세익스피어의 소설에 등장하는 리어왕은 자녀와의 관계에서 어리석은 판단을 하여 비참한 노후를 맞는다.

 

그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첫째 고너릴 둘째 리간 셋째 코너릴이다. 늙은 왕은 자신의 국토를 세 딸에게 물려주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를 원한다. 어떻게 나누어줄까 고심 끝에 딸들의 효심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하루는 세 딸을 불려놓고 왕국의 통치권과 영토의 소유권을 너희들에게 넘겨 줄려고 하니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보아라고 말한다.

 

첫째 딸은 아버님! 제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걸림 없는 자유보다 소중하게, 가장 값진 것이나 희귀한 것 이상으로, 신의 은총, 건강, 아름다움과 명예를 갖춘 삶에 못지않게 사랑합니다. 오직 자식은 사랑을 드리고 부모는 받는 것입니다. 말로 하는 것은 빈약해질 따름입니다. 말로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전하를 사랑하옵니다라고 말했다.

 

둘째는전 언니와 타고난 자질이 같사오니 사랑도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언니는 조목조목 잘 말했어요. 다만 빠뜨린 것은 전하의 귀중한 사랑 속에서만 행복해진다는 사실이옵니다.”라고 말했다.

 

두 딸의 말에 리어왕은 흡족해 하며, 제일 사랑하는 막내딸의 말을 기다린다.

 

코딜리아는소녀는 제 마음을 입에 담진 못하겠습니다. 전 전하를 도리에 따라서 사랑하고 있을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 라고 말하며, 아버님께 복종하고 사랑하는 것은 자녀 된 당연한 도리입니다. 저를 낳아 기르시고 사랑해주신 만큼 아버님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말한다. 제일 기대하고 있던 딸의 말에 리어왕은 분노한다.

 

막내딸 코딜리아의 말을 들은 왕은 부녀의 연을 끊고 눈앞에 나타나지도 말라고 명하면서 셋째 딸 몫으로 생각한 지참금까지 두 딸에게 나누어주어 버린다. 코딜리아는 아버지를 잃고 무일푼으로 쫓겨 난다.

 

두 딸에게 모든 재산을 내어준 후 리어왕은 그녀들에게 버림을 받는다.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막내딸은 곧 달려온다. 리어왕은 그녀에게 의지하는 처지가 된다. 늙은 왕은 흐려진 판단력으로 딸들에게 심한 상처를 받고,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난 대단히 어리석고 멍청한 노인이오라고 말한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의 줄거리이다. 400년 전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주변에서 심심챦게 마주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인생 100세시대가 화두로 떠오른다. 흔히 노후설계하면 돈을 먼저 생각하는데 경제력만큼이나 중요한 다양한 영역이 있다. 가족과의 관계, 잉여시간 사용의 문제, 성인이 된 자녀와의 문제, 상속이나 증여의 문제 등이다.

 

21세기 리어왕 사례를 하나 보자.

 

2012 113일에 등록된 뉴스이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고도 부양을 게을리 했다면 재산을 반환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법 제8민사부는 73살 손 모씨가 장남 부부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증여재산 2억원을 반환하라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움직임이 불편한 어머니 손씨에게 막말을 하고 식사도 제때 차려주지 않는 등 부당한 대우를 해왔다며 부양을 전제로 재산관리를 맡겼음에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증여계약 해제 사유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손씨는 지난 2008년 부양을 전제로 자신 소유의 땅을 팔아 28천 만원을 장남에게 물려줬지만 장남 부부가 부당한 대우를 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례는 형태만 달라졌을 뿐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비참한 노후를 맞는 노인의 모습은 같다. 노령의 부모는 자식을 의지하고 싶어한다. 경제력은 이런 부모의 바램을 충족시켜주기에 좋은 수단이다. 반면 자녀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후 부모의 삶은 본인의 바램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례는 우리에게 지식을 전달한다. 돈에 관하여 부모와 자녀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과

부의 이전은 언제 어떤 형태로 하는 것이 현명할까에 대하여.

 

다만 실천의 영역에서는 다른 고민이 보인다.

 

지인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이 분은 십여년 전 퇴직을 하셨다. 지금은 남편과 사별하시고 자녀들은 모두 출가를 한 상태다. 선생님이 근무하셨던 학교는 사립학교로 상당히 유명한 학교이다. 자녀들은 모두 어머니가 근무하는 학교를 졸업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출퇴근을 하셨다는 말이다. 삼십여년을 근무하고 퇴직한 후 지금은 상담봉사를 하고 계신다. 주로 청소년 상담이다. 선생님의 하루 일과는 일정하다. 날씨가 좋으면 등산을 하고 날이 궂으면 런닝머신에서 빨리 걷기를 하신다. 식사는 손수 집에서 만들어서 드시고 건강에 좋은 음식도 잘 챙겨 드신다. 혼자라고 가볍게 드시는 편이 아니다. 가끔 아이들이 이야기하곤 한단다. “엄마는 얼마나 오래 사실려고 그렇게 열심히 몸 관리를 하시나?” 선생님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고 몸을 챙기는 것은 다 너희들을 위해서이다. 내가 건강해야 너희들이 내 걱정 없이 살수 있다.”라고 하셨다고 했다. 자녀들의 눈에는 어머니가 자신을 너무 챙긴다는 생각을 하는가 보다. 상상이 갔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엄마를 둔 자녀의 투정 아닌 투정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 스스로 자기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주변사람들에게 걱정꺼리를 덜어준다. 특히 노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선생님의 식탁유리 밑에는 사진이 몇 개 넣어져 있다. 자신의 세 아이와 그 아이들의 가족이 있는 사진이다. 식사를 하실 때는 밥과 반찬을 차려 자리에 앉으면서얘들아 엄마 이제 밥 먹는다…” 하고 수저를 든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 혼자 살면서 생긴 습관이라고 했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오신 선생님은 이제 독거노인이다.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잘 하는 분이시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청소년 상담봉사를 하고 연금으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고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아 몸관리도 철저하다.

 

이런 선생님께도 고민꺼리가 있다고 하셨다. 얼마전 아들부부가 사업자금을 융통해주지 않으면 자살을 하겠노라고협박을 하고 갔다는 말이다. 몇 번의 사업실패로 상황은 계속 나빠만 가고 있었다. 엄마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해 달라는 주문이다. 월계동에 25평 아파트이다. 선생님께 남은 유일한 재산이다. 이런 경우는 자녀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자녀의 사업이 성공하여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대부분은 자녀도 부모도 모두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성인이 되어 독립한 자녀가 늙은 부모에게 사업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면 거절하는 것이 정답이다. 노후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미성년자가 아닌 성년의 경우에는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 맞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런 자식은 도와주면 안돼지…”라고 한다. 선생님도 말씀하신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내게 조언을 구하면 도와 주지 마라, 자꾸 도와주면 정신 못 차린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내 자식의 문제가 되니 상황이 다르더라. 정말로 자식이 죽는 꼴을 봐야 할 것 같았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사업이 잘 되기만을 바라며 아파트담보대출을 내어 주셨다고 하신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봤다. 내게 같은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지식의 영역에 머무를 것인가, 선생님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아마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이분의 선택에 동의가 되는 것은 왜일까.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좋은 삶이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이다.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이라고 번역된다. 무엇이 행복한 선택인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누구도 타인의 인생에 해답을 줄 수는 없다. ?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마지막까지 모두 살아봐야 아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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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1 06:19:59 *.154.223.199

서연형님,

리어왕과 실제 21세기의 예가 분명합니다.

행님 특유의 단아함, 절제된 간결함이 드러나는 듯 합니다.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이 생각할 꺼리를 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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