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도윤
  • 조회 수 4610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8년 9월 18일 10시 58분 등록
gt38.JPG

 

탐험을 멈춰서는 되네.

탐험의 끝에서 우리는

출발했던 곳에 도달할 테지

그리고 처음으로 곳을 알게 테지- T. S. 엘리엇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어린 시절, 곳에 머물 때는 미처 몰랐던, 아릿하고 향긋한 속살로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동안 조금 지쳤나 봅니다. 바쁜 일상에선 무심코 지나쳤는데, 잠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니 마치 나간 고양이 마냥 여기저기 헤어진 구석이 눈에 띕니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가는 오후, 아내와 함께 바다가 보이는 산을 올랐습니다. 멀리 흐릿한 산등성이 너머 9월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남해 바다가 붉게 빛나고 있습니다. 환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영혼 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소록소록 되살아나네요.

 

동네 좁은 운하를 없이 파고들며 뒤척이던 새파란 물살, 평화롭게 반짝이던 오전의 은빛 바다, 햇살이 노곤한 어느 봄날의 유채꽃밭, 가끔 창문을 덜컹거리며 울리던 요란한 뱃고동 소리… 모든 것들이 안에서 피가 되어 흐르고 있는 영혼의 풍경임을 이제야 조금 같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여행을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없는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갖지 못한 것들로 가슴 아파하고, 뼈아픈 실수를 되새기며 밤새 뒤척입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꿈과 냉엄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깨달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러다 어느새 그나마 넘어진, 익숙한 길로만 다니고 있는 좁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인 윈델 베리는 말합니다. " 종류의 뮤즈가 있다. 하나는 영감을 속삭이는 뮤즈이고 다른 하나는 잊을만하면 나타나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야'라고 일깨우는 현실적 뮤즈다. 이는 형태의 뮤즈이기도 하다. 형태라는 것은 우리를 가로막는 방해 요인이 되고 의도한 길을 가지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우리는 진정한 작업을 시작한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열리는 것이다. 좌절하지 않았다면 몰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냇물은 장애물에 부딪쳐야 노래한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가지 깊은 의문을 품고, 갖가지 장애물 부딪히면서 자신의 껍질을 벗어나가는 것인가 봅니다. 그렇게 다른 이들과는 차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하고 오롯한 영혼을 찾아나가는 길고도 짧은 여정입니다. 

 

언제가 길의 끝에 다다르면 제가 여기에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겠죠. 그때까지는 다시 열심히 '장애물' 부딪히며 노래해야겠습니다. 이렇게 길이 막혔을 , 다시 돌아와 자신의 시작을 되돌아볼 있는 곳… 그것이 고향의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산 너머 따스한 오후 햇살이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2008 9 18 , 서른 여덟 번째 편지)
logo.jpg



IP *.249.162.200

프로필 이미지
김형섭
2008.09.18 11:50:17 *.255.166.24
와~ 오늘도 가슴찡한 글 잘 받았습니다. 필력의 파장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네요.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햇빛처럼
2008.09.18 20:09:15 *.220.176.76
언제나 좋은 글 감사를 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앨리스
2008.09.18 22:33:47 *.252.102.69
랜디 포시의 '마지막 수업'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요, 거기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보다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강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은 어떠한 장벽도 이겨내고 결국은 자기가 원하던 꿈을 이뤄낸다는... '장애물'을 언급하셔서 책의 이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08.09.23 14:56:38 *.38.102.209
잘 읽고 있습니다. 가끔 글 쓴사람이 나인듯 이입이 될만큼.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36 화요편지 - 오늘도 덕질로 대동단결! 종종 2022.06.07 658
4335 [내 삶의 단어장] 오늘도 내일도 제삿날 [2] 에움길~ 2023.06.12 716
4334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종종 2022.07.12 719
4333 역할 실험 [1] 어니언 2022.08.04 724
4332 목요편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운제 2018.12.06 742
4331 목요편지 - 거짓말 [2] 운제 2019.03.15 743
4330 모자라는 즐거움 [2] -창- 2017.08.26 747
4329 이상과 현실 [1] 어니언 2022.05.19 749
4328 65세, 경제적 문제없이 잘 살고자 한다면?(9편-노년의 일과 꿈) [4] 차칸양 2018.12.04 753
4327 가족처방전 – 가족은 어떻게 ‘배움의 공동체’가 되었나 [2] 제산 2018.09.10 754
4326 [수요편지] 똑똑함과 현명함 [1] 불씨 2023.11.15 755
4325 목요편지 : 가을바람이 분다 운제 2018.09.06 756
4324 [금욜편지 48- 신화속 휴먼유형- 하데스형 1- 자기고백] [2] 수희향 2018.08.03 757
4323 목요편지 - 어린시절 두 장면 운제 2018.10.11 757
4322 작아도 좋은 것이 있다면 [2] 어니언 2023.11.30 757
4321 목요편지 -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구두 운제 2019.01.18 758
4320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22. 기쁨의 책읽기를 잃어버린 사회 제산 2019.04.14 758
4319 [금욜편지 33- 1인회사 연구원들과 공저] [6] 수희향 2018.04.20 759
4318 목요편지 - 사람평가 운제 2018.07.19 759
4317 목요편지 -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다 [3] 운제 2019.01.03 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