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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4일 11시 49분 등록

진짜 이유

 

 “그런데 아무리 해도 전 안 돼요.”

 

 지예가 말한다. 수학 100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 듣고 하는 말이다. 아무리 해도 자신은 안 된다고 하는 지예의 말이 내 마음에 박혔다. 적어도 지예에겐 자신에게 맞는 목표 점수, 스마트한 계획, 꾸준한 노력과 같은 아주 교과서적인 대안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종이 친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와!”

 

 아이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지예의 걱정과 푸념이 섞인 문장은 사라지고 나는 지예에게 다가갔다.

 

 “지예에겐 효과가 없는 방법이라 실망했구나. 선생님이 지금 당장 다른 도움을 주기엔 더 연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 지예도 생각해보고 나도 연구해봐서 다음 시간에 수학 100점 맞는 다른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지예를 타이르고 나왔다. 지예는 수학 특별보충 수업을 듣는다. 특별보충은 일주일에 두 번씩 수학성적이 부진한 학생 4명 정도가 수학과실에 모여 복습하고, 시험 대비를 하는 반이다. 다른 친구들은 말도 많고, 활발한 데 지예는 말을 잘 안하고 조용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려면 정말 꾹 참고 기다려야 한다. 느리지만 기다리면 답을 하긴 한다. 물론 아주 짧게 대답하지만 말이다. 지예는 수학을 못한다. 정말 못한다. 다른 친구들보다 속도도 느리고 개념도 없어서 문제 하나 풀 때마다 아주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다. 그런데 잠시 다른 모습을 보여줬을 때가 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확률 문제를 풀 때 아주 달라졌었다. 문제를 쓱쓱 풀어 나가는 것 뿐만 아니라 답도 다 맞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지예의 달라진 모습에 놀라며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 지예는 방학동안 공부방에서 대학생 언니에게 과외를 받았단다. 그리고 점수가 20점 정도 올랐다. 나는 아주 기뻤다. 지예만의 100점을 맞은 셈이었다. 하지만 과외 언니는 곧 공부방에 오는 것을 그만뒀고 지예는 다시 혼자가 됐다. 기말고사 성적은 다시 20점이 떨어졌다. 그럼 지예는 과외를 받으면 되는 걸까? 과외가 잠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다.

 

 먼저 지예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 살펴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것 같다. 지예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첫 번째는 머리가 나빠서다. 충격적인가? 사실이다. 머리가 나빠서 수학을 못하는 것이다. 머리? IQ? 아니다. 어떤 머리냐면 바로 수학머리다. 수학은 머리가 필요하다. 수학 머리다. 모든 학생이 다 수학을 잘하지 않는다. 유독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있다. 그 친구들은 수학적 머리가 발달한 친구들이다. 나는 수학은 잘했지만 국어나 외국어는 잘 못했다. 노력해서 점수를 올리긴 했지만 언어적 감각이 수학적 감각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렇다. 우리에겐 머리가 있다. 수학을 잘하는 머리가 있다. 지예는 그 머리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 머리는 어떻게 발달시킬 수 있을까? 문제를 많이 풀어서? 개념을 많이 외워서? 아니다. 머리 굴리는 연습을 많이 하면 된다.

 

 이 문제를 풀어보자. 우리가 만약 다섯 발을 1,3,5,7,9점이 있는 과녁에 쏘아서 모두 맞혔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점수는 다음 다섯가지 중 어떤 점수일까?

① 1점 ② 16점 ③ 20점 ④ 27점 ⑤ 47점

 

 이 문제를 본 순간 계산을 시작한 친구들이 있을 것 같다. 계산해서 푸는게 아니냐고? 물론 계산해서 풀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한 모든 경우의 점수를 계산하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것이다. 단순 계산을 하지 않고도 답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다섯 발을 쐈다. 점수가 모두 홀수다. 어떻게 쏘아도 총점을 홀수다. 그렇다면 답은 몇 번일까? 눈치가 빠른 아니 수학 머리가 있는 친구들은 4번 27점이 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약간 둔한 친구들은 왜 1과 47은 안될까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다섯발 모두 9점에 적중해도 최댓값이 45점이기에 불가능하다. 1은? 당연히 안된다.

 

 머리를 굴리면 쉽게 답을 구할 수 있다. 계산을 하려는 게 아니라 되도록 계산을 피하려고 꾀를 부리는 것, 이것이 바로 수학의 핵심이다. 수학의 시작과 끝이다. 머리 굴리기, 즉 수학 머리가 있으면 수학을 잘 할 수 있다. 계산이 필요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를 보자마자 계산 하려는 습관을 버리라는 이야기다.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바로 수학을 잘하게 되는 지름길이다. 이 문제 말고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오늘은 이것만 이야기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지예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 두 번째는 과거 경험에 있다. 지예와 상담을 통해 알아봤더니 지예는 초등학교 때 수학 문제를 풀다 동생들 앞에서 어머니께 크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쌍둥이 남동생은 누나가 수학 문제를 못 풀어 혼나는 모습을 보고 웃었고, 지예의 자존심을 완전히 상했다. 그때 지예의 뇌에는 수학문제를 어머니의 꾸중과 동생들의 비웃음으로 연결지었다. 수학 문제를 풀 상황이 되면 알게 모르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없어 질문에 빠르게 대답하지 못하고,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작게 대답했다. 혹시나 선생님이 옆에 앉아 있다가 친구들 앞에서 망신이라도 주면 지예는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지예에게는 수학을 잘 못하게 하는 신념체계가 굳건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것을 깨지 않으면 아무리 외부적인 노력을 들여도 지속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다. 일단 잘못된 신념체계를 깨고 수학 공부를 즐거움과 연결시키는 생각이 프로그래밍 되야 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는 대로 어떤 결과를 얻게 된다. 효과적인 생각을 하고, 옳은 행동을 하며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소망이다. 지예에겐 먼저 과거의 경험을 끊어내고 다시 수학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제일 먼저 해결되야 하는 부분이고 근본적인 해결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지예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는 위의 두가지로 압축된다. 그 밖에도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심리적인 문제, 수학 문제를 해결할 때 신기함을 느끼지 못하고, 수학 감각이 없는 것, 잘못된 공부습관 등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앞에 말한 두가지 진짜 이유를 해결하면 좋은 방향으로 전환 될 것들이다. 지예 뿐만이 아니다. 현재 수학을 잘 못하는 친구들은  자신이 수학 문제를 보자마자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신의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는지 잘 살펴보자. 아마 계산 하려고 덤비거나, 이미 연필을 잡고 계산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 시험에서 큰 실수를 하고 부모님께 혼났던 경험,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혼을 내서 창피를 당한 경험, 언니와 함께 공부했는데 언니가 옆에서 ‘너는 이것도 모르냐?’ 하면서 핀잔을 받았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스스로 느낀 좌절감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험들을 계속 뇌 속에 남겨두지 말고, 고통과 연결시켜 보상함으로써 잠재력을 깨워라. 그리고 마음 속에서 확장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부분을 즐거움과 연결시켜보라. 아마 수학에 대한 느낌, 수학에 대한 흥미, 열정등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이 일어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에서 지예와 이야기를 나눴다. 지예는 스스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계산 문제를 30개 정도 받아갔다. 일반적으로 곱셈 식을 이용하지 않고 답을 금방 구할 수 있는 두 자리 수 곱하기 두 자리수 곱셈 문제였다. 지예가 그 문제를 풀어보고 수학 문제 해결의 신기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그녀가 신기함, 즐거움을 느낀다면 우린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IP *.196.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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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05:04:42 *.154.223.199

수학특별보충이 4명으로 된 거로군요. 소수라서 더 좋겠어요.

지예를 통해 심층분석에다 인생상담까지 들어가는 느낌이네요.

수학을 매개로 신념까지 다루다니...@@

프로필 이미지
2012.12.27 09:28:26 *.196.23.76

^^

이번 컬럼쓰면서 뇌에 대한 책을 좀 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수학적 감각을 키울 수 있는 뇌의 어떤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요즘은 수학 내용보다 이런거에 관심이 꽂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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