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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5일 11시 5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번역문학가이자 소설가.

서울에서 태어나 1965년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64년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코리아타임스>,<주간여성> 기자,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 편집부장, 코리아타임스 문화체육부장을 지냈다. 1975년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번역을 비롯, 150여권의 책을 번역하였다.

1983년 <실천문학>에 장편 반전(反戰)소설 <하얀전쟁> 으로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가을바다 사람들>, <학포장터의 두 거지>, <은마는 오지 않는다>, <동생의 연구> 등을 썼다.
<악부전>으로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했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489

<여기서부터 참고하셔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일부러 앞으로 뺐습니다.>

 

1. 자신만의 문체를 개발하고 유려한 표현력을 가꾸기 위해서는 하루도 빼놓지 말고 조금씩이나마 글을 써야 한다. 휘황찬란한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거나 첫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성공을 거두리라며 대박을 기대하지 말라. 아무리 조금이라도 하더라도 날마다 글을 쓰는 꾸준한 습관이 성공으롱 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2. ‘사랑이라는 주제 달랑 하나만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세상에서 치약만큼이나 흔해빠진 것이 사랑이다.

 

3. 작품 속에서 지금 독자가 읽어가는 내용이 어떤 상황인지, 사건의 개요를 작가가 앞에 나서서 설명하지 말라. 꼭 설명을 해야 한다면,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고, 작가는 절대로 독자에게 직접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념이나 대의명분을 알리기 위해서도 깃발을 흔들며 앞장서지 말라. 정치적인 선전은 돈을 받고 길바닥에 나가서 떼를 지어 하는 짓이지, 예술 행위가 아니다.

소설 문학이 아무리 자아의 표현이기는 하더라도, 모두가 정도의 문제이다. 어떤 소수파 집단의 독선을 선전하거나 특정한 대상을 욕하기 위한 내용은 분풀이에 도움이 되기는 할지언정, 결과적으로 작품을 좀먹는 독소 노릇을 한다.

 

4. 대부분의 어휘는 머릿속에 생각할 때보다 실제로 써놓고 나면 힘이 약해진다. 멋진 단어 하나를 머릿속에서 굴리며 혼자 감격하는 사람은 문학 작품을 쓰는 대신 사전을 만드는 출판사로 가야 한다.

 

5. 단편소설에서는 중요한 갈등 하나만을 다루어라. 두 가지 갈등을 제시하고 싶으면 두 편의 작품을 써야 한다. 하나 이상의 갈등은 새로운 선택의 갈등을 낳는다.

 

6. 단편소설이나 짧은 글을 쓸 때는 극점에서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시점에서 얘기를 시작하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한평생을 회고하는 일대기부터 늘어놓으며 단편소설을 시작하면 독자는 일찌감치 달아난다. 여행을 떠나 어떤 여자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었다는 줄거리의 단편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열어주기를 했다고 가정하자. “나는 2006425일 오후 447분에 강릉을 떠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서울로 올라오다가 거시기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배가 고파 가락국수를 사먹었는데, 그때 건너편 자리에 앉아서 냉면을 먹고 있던 아가씨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와는 대도적으로 이런 간결한 열어주기는 어떨지 생각해보라. “그녀는 어딘가 달랐다.”

수필이나 논문을 써놓은 다음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락을 뒤로 보내고 서 번째 단락을 앞으로 끌어올려 놓고 결과가 어ᄄᅠᇂ게 달라지는지를 비교해보라. 대부분의 경우, 서론 역할을 하는 앞부분은 그냥 잘라버려도 상관이 없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꼭 필요한 내용이라면, 길이를 줄이고 압축하여 중간쯤 눈에 띄지 않도록 삽입하도록 한다. 세 번째 단락에서 시작되는 글이 첫 번째나 두 번째 단락에서 시작되는 글보다 훨씬 극적인 긴장을 증폭시킨다. 소설의 열어주기에서는 도치법이 확실하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7. 처음 서너 쪽에서 두 번째 주요 인물을 등장시키면 주인공이 빛을 잃는다.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엷어질 무렵에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도록 하라. 독자에게는 여러 인물에 대해서 천천히 넉넉한 새김질을 할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8. 재치 있고 발랄한 대화는 섣불리 시도하지 말라. 튀는 화법을 구사하는 능력은 고도의 기술과 정보와 훈련을 필요로 한다.

 

9. 사투리를 구사할 때는 그랬지비그랬시켜같은 이상한 발음의 표기에 열중하지 말고, 해당 지역의 독특한 어휘나 표현법을 동원하라. 개성과 특성은 표기법이 아니라 내용에서 우러난다.

 

10. 독서를 많이 하라. 대부분의 작가는 체험보다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정보와 자료를 얻는다. 독서는 2차적인 경험의 폭을 넓혀준다.

 

11. 등장인물이 적을수록 독자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줄어든다. 7항과 같은 원칙에서이다.

 

12. 주제는 작품을 뒷받침한다. 문학에서는 작품이 주제를 뒷받침해서는 안 된다. 작품이 먼저이고, 주제는 나중이다.

 

13. 독자는 매력이 없는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그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은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악역이라고 해도 모든 등장인물이 어느 정도는 독자에게서 호감을 사야 한다.

 

14. 실존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작품에 차용할 때는 그들을 그대로 복제해서는 안 된다. 인물 구성은 이력서를 작성하는 작억이 아니고, ‘인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신빙성을 지닌 세부 사항을 정확히 묘사하되, 지나치게 실제 그대로를 보여주면 역겨움과 식상함을 자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가는 사실성이 아니라 사실적인 인상을 창조해야 한다.

 

15. 악역을 맡은 등장인물 또한 논리적인 이유에 따라 행동하는 입체적인 인간이어야 한다. 모든 유형은 단편적이고, 그래서 기피해야 한다. 이기적이고 야비하며 무자비한 악역의 착한 면을 신파조로 강조하여 우스꽝스러운 인물을 구성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좋은 일을 하고 죽는 주인공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하더 시대는 1960년대에 다 지나갔다.

 

16. ‘거의(nearly, almost)’ 따위의 막연한 표현은 문장에서 힘이 빠지게 한다. ‘아주(very)’너무따위의 부사는 대화에서가 아니고는 아예 사용하지 말라. 등장인물이 슬프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장면을 묘사하고 싶다면, 그 감정을 살코기처럼 따로 잘라내어 저울에 달고 자로 재어 숫자로 계산한 다음, 그 수치에 맞게끔 정확하고도 구체적인 표현을 찾아쓰도록 하라.

 

17. 극적인 대화는 갈등과 충돌로 이루어진다. “날씨가 좋군요.”라고 여자가 말할 때 남자는 좇긴 뭐가 좋아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호기심을 갖는다. 남자도 , 날씨가 좋군요.”라고 말한다면, 그런 대화는 가차 없이 삭제해도 좋다. 쓸데없는 말을 잘라내면 대화에 속도가 붙는다. 반면에, 더딘 대화는 인물 구성에 구정물을 끼얹는다.

 

18. 동사의 힘과 명확성을 부여하려면 부사를 없애야 한다.

 

19. 대화체를 많이 사용하라. 따옴표는 독자의 눈을 자극한다. 때론대화가 서술체보다 인물의 행동을 훨씬 가시적으로 묘사한다. 작가가 그는 빨리 밥을 먹었다.”라고 설명할 때보다는, 한 등장인물이 다른 등장인물에게 너 왜 밥을 그렇게 빨리 먹니?”라고 말할 때 밥을 먹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다. 적어도 독자는 그렇게 착각한다.

대화에서는 짧은 문장을 사용하여, 탁구공을 치고 받는 선수들처럼 빨리 화자가 바뀌게 하라.

 

20. “, 이제는 설명이 좀 필요하겠구나.” 하는 식으로 묘사를 삽입해서는 안 된다. 작가의 생각에 아무리 통렬하고 아름다운 묘사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길이로 압축하라. 가능하다면 멋진 묘사도 대화 속으로 흡수하라. 인상적인 표현은 작가의 서술체가 아니라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독자가 듣도록 하라.

 

21. 셋째 마당 열어주기항에서는 첫 단락이 매우 긴 하나의 문장 그리고 둘째 단락은 아주 짧은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다. 왜 그렇게 했을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문장과 단락을 구성할 때는 앞뒤를 살펴 길이를 바꿔가며 장단을 만들어야 독자의 관심을 긴장시킨다.

 

22. 하느님이나, 우발성이나, 우연이나, 자살이나, 로또 복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인공 스스로 논리적인 방법을 통해 갈등이나 위기를 해결하도록 하라. 주인공이 갖추었다고 앞에서 독자에게 이미 작가가 보여준 능력과 자지로가 성품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방법으로 소설 속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는 멋진 우연은 소설 속에서라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23. 주인공이 삶에서 전환점을 맞으면 그의 인간성이 달라져야 한다. 중대한 갈등과 위기를 넘기도고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양상은 작품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24. 독자의 지능을 모욕할 정도의 설명은 절대로 하지 마라.

 

25. 독창적인 화법으로 생기를 불어놓도록 하라. 텔레비전 연기자 김미숙의 어린 조카가 발이 저리다.”라는 말을 몰라서 발이 반짝반짝해.”라고 표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혼자만의 표현은 이렇게 싱싱하다.

 

26. 초고를 쓸 때의 즉흥적인 신선함이 고쳐 쓰기 과정에서 훼손될까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즉흥성은 흔히 논리성만큼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6항의 내용을 참조하여, 초고의 열어주기에서 4분의 3을 잘라낸 다음, 여러 토막으로 분리하여 뒷부분 여기저기 눈에 잘 띄지 않게 심어보도록 하라. 응어리가 풀리고, 전체의 흐름이 안정되는 기분이 느껴지리라.

 

27. 등장인물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자꾸만 장면이 고정된 연극 무대에서 제한된 시간에 벌어진다고 상상하라. 한 토막의 기승전결이 모두 이루어지기 전에는 무대 장치를 바꾸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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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수영과 글쓰기

수영에서는 동작과 자세에 관한 공식을 낳이 이론적으로 배우고 외운다고 해서 저절로 헤엄쳐 강을 건너가게 되지는 않는다. 마포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이에 이미 그런 진리를 터득했다. 물을 먹고 허우적거리며 물과 친해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힘과 요령은 몸이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글쓰그닌 헤엄치기와 똑같다.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공부가 수영을 배우는 과정과 똑같다.

 

18 1960년대 대학에 다니며 처음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루돌프 플레시(Rudolf Flesch)는 이런 충고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면, 끝내라.”

이 원칙은 문장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나의 문장을 다 썼으면, 주저하지 말고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것이 어디에서 끝내야 하는지를 아는 훌륭한 감각이다. 멋을 부리려고 쓸데없이 문장을 잡아늘이고 미사여구를 더덕더덕 붙이지 말라는 뜻이다.

이 원칙은 하나의 단락을 구성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승전결을 갖춘 단락이 이루어지면, 주저하지 말고 줄을 바꿔야 한다.

이 원칙은 하나의 작품을 마무리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쓰고 싶은 얘기를 다 썼으면,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 자꾸만 살을 붙이면 그 작품은 너덜너덜해진다.

나는 루돌프 플레시의 이 가르침을 하나의 지혜로 받아들였다.

 

19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이것이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이다.

 

20 글쓰기 공책을 한 권 따로 마련하기 바란다. 내일 저녁에 일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이 아니고 내일이다.

컴퓨터로 글을 쓰지 말고 공책을 따로 마련하라고 하는 까닭은 글쓰기를, 적어도 습작 과정에서는, 손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따.

 

21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읽기에 쉬운 글이 가장 쓰기가 어렵다고 했다. 쉽게 쓴 글은 막 쓴 글이다. 그러니 읽기에 쉬울 턱이 없다. 아무렇게나 쓴다면 글쓰기가 쉽다. 하지만 그런 글은 사람들이 읽어주려고 하지를 않는다.

글씨도 또박또박 시간 걸려 써야 읽기에 쉽다. 휙휙 갈겨쓰면 쓰는 사람은 편하고 즐거울지 모르지만, 받아 볻는 사람은 읽기 힘들어서 편지가 그만큼 덜 반가워진다.

음식도 정성껏 차려놓아야 맛이 좋다. 그래서 눈으로도 음식을 먹는다고 얘기한다. 작품도 눈으로 보고 머리로 흡수한 다음이라야 마음이 따라 움직인다. 마음을 감동을 시키기 전에 눈을 즐겁게 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거기에서 찾는다.

 

23 요즈음 나는 하루에 A4 용지 한 장가량의 글을 쓴다. 어휘 수로 계산하면 4백 단어쯤 된다. ‘충동적인 영감이 작용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원고를 쓰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초과한 부분을 거으 틀림없이 이튿날 다시 손질해야 한다. 충동적인 영감은 정신적인 설사와 같다. 아무리 언어의 설사라고 해도, 모든 설사는 멈추도록 치료해야 한다.

 

24 한 줄 한 줄 천천히 글을 써나가면서 단어 한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성과 공을 들이드록 한다.

무슨 정성과 어떤 공을 들여야 하는지도 아직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어던 글쓰기가 좋은 글쓰기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24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앤다.”라는 원칙 또한 번역에서나 마찬가지로 창작에서도 유효하다. “있었다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있다

 

 

30 그러니까 집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에서 있다이라는 두 단어 잎사귀만 다른 단어로 바꿔 넣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아예 문장을 새로 쓰라는 얘기다.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라고 말이다.

 

31 ‘있다과 더불어 단어 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쓰기에서 ‘3으로 꼽힌다.

 

34 하얀 한복에 김칫국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김칫국물 한 방울이 더럽다 하지 않고 한복이 지저분하다고 말한다. 그까짓 얼룩 그냥 못본 체하면 안되느냐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한복을 보지 않고 얼룩만 보기가 쉽기 때문이다.

 

어딘가 허술한 결점이 생기더라도 독자들이 안 보고 넘어가 줬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의 눈에는 얼룩부터 보이고, 그래서 독자는 흠집만 골라서 보는 듯하다. 그까짓 작은 결함들쯤은 소홀히 하는 사람을 옛날에는 대범하다고 존경했다. 하지만 정밀한 과학이 지배하는 요즈음 세상에서는 빈틈없고 꼼꼼한 작은 구석들이 승부를 결정짓는다.

 

시인들의 글이 왜 우리들이 쓰는 일기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나사못 하나를 잘못 헐겁게 박으면 문짝이 비뚤어지고, 문짝이 떨어져나가면 그 집은 부실공사의 표본이 된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은 하나하나의 단어를 무서워해야 한다.

글을 쓰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필시 집을 지으면서 나사못 따위를 고르는 데 신경을 쓰지 않는 목수와 비슷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다.

 

35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체로 쓴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면 정말로 술술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사람의 얘기처럼 부담 없이 읽힌다. 하지만 그렇게 술술 읽히게 하기 위해서 작가 J.D.샐린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하나하나의 단어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다듬었을지를 생각해보라.

 

36 나는 글쓰기를 하면, 한 단락을 끝날 때마다 읽어보고는, 중복된 어미와 토씨를 일일이 걸러내어 고쳐놓는다. 예를 들면 충동적 영감항의 첫 단락은 처음에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동료에게서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직장에서동료에세거의 중복된 어미가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동료로부터라고 고쳐놓았다.

 

... 그러면 단순히 이어지는 어미만 달라지지 않고 문장 전체의 획일적인 양상이 다채로워지면서 답답한 문장에 숨통이 트여 싱싱한 기운이 생겨난다.

 

그러고는 한쪽이나 한 장의 글이 끝나면 한 눈에 들어오는 지면에서 반복된 같은 단어들을 찾아내어 고치는 기계적인 작업을 다시 거친다. 물론 운을 맞추거나 두운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문자의 율동과 강조를 도모하기 위해 일부러 같은 단어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우발적인 반복은 가능하면 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체 문장을 아예 새로 쓰기도 한다.

 

같아요

 

피동 표현

 

42 루돌프 플레시 잘 읽히는 글쓰기에서 정말 놀랍고도 기막힌 교운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신이 써놓은 글에서 그리고라는 접속사를 모조리 제거하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고는 그래서하지만역시 없애라고 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전혀 글의 흐름이 막히지 않으리라고 했다. 막히기는커녕 오히려 청소를 끝낸 하수구처럼 모든 문장이 맑은 물소리를 내며 잘 흐르리라는 애기였다.

 

44 고쳐 쓰는 일기

자신이 써놓은 글에서 있다가 발견되면,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고쳐본다. 그러면 같은 일기를 두 번 쓰는 셈이 된다.

그렇게 고쳐 쓴 글에서 다시 너무같다처럼 다른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남발하는 단어들을 모두 제거한다. 단어만 달랑 하나 바꿔 넣기가 힘든 경우에는 아예 문장 전체를 바꿔도 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거기에서 문장쓰기 공부가 시작된다.

 

48 존 오하라 <웃음 소리>

He laughed.

이렇듯 거느려야 하는 어휘 수가 늘어나고 기교와 순발력이 능해지면 문장에서는 힘이 빠진다. 그것이 장식적인 글쓰기의 약점이다.

 

52 젊고 정력적인 문장

늙은 여자가 짙은 화장을 하면 더욱 추해 보이고, 젊음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싱싱함이 아름답다. 젊음은 아름다움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선 명사와 동사를 눈에 잘 띄게 전진 배치한다. 동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임은 정력의 증거이다.

무리가 가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부사는 형용사로 바꾸고, 형용사는 가능하면 동사로 바꿔본다. “그는 태만하게 근무한다보다 그는 일솜씨가 게으르다가 조금쯤은 힘이 있어 보이고, “휘청거리며 걷는다보다는 휘청거린다가 강하다. “빠르게 말한다보다는 말이바르다가 의미의 전달 속도가 빠르고, “많은 눈이 내렸다보다는 눈이 쏟아졌다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는 표현이 훨씬 생동한다.

가장 약졸인 접속성 품사의 어휘는 흐름을 토막 내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도록 한다.

 

59 비둘기에 대한 글을 쓰려면 비둑리게 관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상상이라고 해도, 가설에는 정당한 논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64 누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소리를 하면 사람들은 소설 쓰지 말라는 잔소리를 한다. 영어 단어 소설(fiction)지어낸 거짓말(fibrication)’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설은 사실보다도 더 사실적이어야 한다.

 

73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서 지어낸 얘기에 공감하고 믿게 만들려면 철저한 사실화가 도움이 되듯이, 박진하는 현실감으로 전체를 믿게 만들려면 세밀한 구성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질구레한 모든 요소가 사실적이라면, 거짓된 결론을 사람들은 저절로 믿게 된다.

 

조금 심한 표현을 쓴다면, 소설 쓰기는 사기 행각과 참 비슷하다.

 

번역에 관한 책에서 역시 언급한 사항이지만, 소설은 상상력이 아니라 체험으로 쓰되, 현실의 허술한 빈틈을 상상력으로 완벽하게 메워야 한다는 원칙을 내가 받아들이기로 했던 이유는.

 

77 수많은 사람들이 대를 이어 <데미안>을 읽으며 심취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공감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것을 동일시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동일시의 경험을 위해 소설을 읽고 연극(영화)를 보러 간다고 프로이트는 믿었다.

 

나쁜 자식죽이기

 

80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체험을 빙산에 비유하면서, 작가는 물 위로 보이는 부분처럼 전체 경험에서 확실하게 드러나는 지극히 작은 일부만 작품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 속에 잠긴 90퍼센트의 빙산은 아낌없이 밑거름으로 남겨두라는 뜻이다.

하지만 체험의 10퍼센트를 활용하는 대신, 스스로 경험조차 하지 않고 남에게서 젼해 들은 얘기를 열 배로 불려서 작품을 만들려고 하면 당연히 무리가 간다. 한 가지 거짓을 믿게 만들려면 아홉 가지는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아홉 가지 거짓말로 한 가지 진실을 믿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90 격렬한 감정의 표현을 절제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일단 설사를 하듯 마음놓고 좔좔 써대는 배설이다. 우선 쓰고 싶은 대로 써놓고, 나중에 걸러내는 이 방법은 그러나 일단 살이 찐 사람이 다시 살빼기를 하는 만큼이나 힘이 든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운동과 식이요법을 계속하여 몸매를 유지하듯, 초고를 쓸 때부터 단어의 섭취와 소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일단 써놓은 글에서는 무엇이 군더더기이고, 어떤 표현이 비논리적이고, 어떤 단어가 잘못된 선택인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것은 다 그려놓은 그림에서 숨은 그림을 찾는 격이다.

 

103 앞에서 모범 답안으로 제시한 두 단락 가운데 한 줄짜리 나중 단락 분순이 시선을 멈추었다.” 같은 문장을 한 방 먹이는 말(punch line)’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정곡을 찌르는 표현정도가 되겠는데, 편의상 이제부터는 정곡이라고 줄여서 말하겠다.

 

개그맨 마지막 한 마디

KO 펀치

 

106 독창성은 반항에서 시작된다.

 

13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제목은 또 얼마나 유치하기 짝이 없는가. 작품 자체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허물이 안 보일 따름이지, 별로 구체적인 의미도 담지 못한 이 제목은 감상적인 여중생의 일기장에나 어울릴 만한 표현이다.

 

135 이런 짝퉁 문학은 스스로 창작할 능력이 부족한 사라믇은 창작의 아버지라는 핑계를 내세우고 앞세우며 자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록 직업적으로 해먹을 짓은 아니지만, 혼자서 쓰고 읽어보는 습작 시절에는 사실 남의 글을 베껴보는 훈련이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모방은 혼자 하면 훈련이지만, 베낀 작품을 나눠주며 돈을 받고 팔아먹ㅇㅁㄴ 도둑질이 된다는 뜻이다.

 

152 나는 서강대학교를 다닐 때 미국인 교수들에게서 영어로 영ㅁㄴ학 공를 하면서, 소설을 크게 나누면 character novelsituation novel로 분류한다고 배웠다. situation noel이라면 상황을 중심으로 꾸며나가는 소설이어서 상황소설이고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지만, 그러나 캐릭터 노벨은 어떠한가?

 

159 이러한 양면성은 글쓰기에 고정된 인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유동적 인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결국 하나의 인물 내면에서 정과 반이 만나 합에 이르는 변증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새로운 공식이 생겨났다.

 

165 왜 밀턴은 악마의 관점을 선택하여 에덴 동산의 얘기를 했을까?

그것은 마왕이 그만큼 극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166 악마는 발전과 개선의 여지가 무한하다. 193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싱클레어 루이스의 걸작 소설 <엘머 겐트리>에서도 그런 예가 발견된다. 여자를 농락하다가 버려서 창녀가 되게 만들고, 유창한 말솜씨로 고객들을 현혹시키는 주인공 엘머 겐트리가 참으로 멋지다는 착각을 독자가 일으키는 까닭은 그의 악마적 속성을 보고, 엘머가 앞으로 발전하게 될 과정을 미리 짐작하고는, 그 추측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예시력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을 바딕 때문이다.

==> 아니다. 사람들은 악마적 속성 그 자체에 끌린다.

 

170 하지만 독자는 자신이 기쁨을 얻기 위해 책을 읽지, 남의 넋두리와 하소연을 듣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기 위해 돈을 내고 책을 사지는 않는다.

 

181 작가는 앞에 나서서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그래서 유리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며, 그러면 독자는 등장인물과 자신이 직접 만난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독자는 주인공의 다음 행동이 무엇일지를 상사하고, 마치 주인공이 작가의 뜻이 아니라 독자의 뜻대로 행동할 듯한 생각이 들어서, 소설의 전개에 관해 작가와 상상력의 경쟁을 벌이려고 한다.

 

186 취재와 확인이 불가능한 내용을 작품으로 만드는 능력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는 사실만 한 번 더 깨달았을 따름이었다.

 

187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Don’t tell, show!) 이것은 글쓰기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아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가르침이다. 그는 키가 크다 라고 하는 대신, 그는 키가

184센티미터이다. 라고 써 놓은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보라. 막연히 키가 크다라고 한 경우보다 구체적인숫자를 밝혀 키가 174센티미터라고 하면, 나중 문장이 훨씬 눈에 잘 보인다. 184 센티미터라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정마로 키가 크기 때문이다.

 

목요일 쯤이면 항상 몸에서 걸레 썩는 냄새가 나는 남자

소변을 보고 오면 꼭 바지에 흘린 자국이 남는 남자

 

==> 가령 짜증 내는 여자. 우울감과 무료함으로 짜증이라도 내지 않으면 자살할 것 같은 여자.

 

192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짤막한 첫 대화에서 우리는, 비록 작가가 앞에 나서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두 주인공의 성격뿐 아니라 가정과 종교, 교육과 성장 배경,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

 

196 기교를 부리겠다며 기묘한 어휘나 뒤틀린 표현 따위 언어적 도구만 가지고 인물 만들기를 하지 말고, 대상 인물의 내면을 깊이 관찰하여 거기에서 본질적 특성을 찾아내어 정확하게 묘사하면, 구성된 인물에게서는 인간의 향취가 난다. 그리고 새어이 강한 인물은 영웅이나 꽃미남보다 훨씬 극적인 요소를 지녀서,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에서도 아가멤논이나 파리스 왕자보다 아킬레우스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197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인공 못지 않게 주변 인문들이 눈부실만큼 돋보이는 인물 수집형 문학 작품은 조지 오엘이 가난한 뜨내기 생활을 하던 시절에 만나고 알았던 사람들을 에밀 졸라 분위기로 그려낸 자전적 처녀작 <빠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꼽고 싶다.

 

198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관한 정보, 때로는 신문에 난 기사 따위를 수집하여, 내가 서류함 속에 차곡차곡 정리한 자료는 훗날 쓰게 될 소설에 등장시킬 인물들을 배우나 유명인들의 밀랍 인형 박물관처럼 이렇게 준비해 놓는 까닭은 전쟁에 대비하여 군대를 양성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야 이 구구리 같은 놈아.”

 

192 러브 스토리에서 나오는 짤막한 첫 대화에서 우리는, 비록 작가가 앞에 나서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두 주인공의 성격 뿐 아니라 가정과 종교, 교육과 성장 배경,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

199 작가 지망생들이 흔히 생각하듯, 갑자기 무슨 대단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다음 책상 앞에 앉으면 밤낮으로 손끝에서 글이 줄줄 흘러나오는 그런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긴 글쓰기란, 집을 지을 때처럼 설계도를 만들고 기초를 닦은 다음, 땅을 밑으로 파고 들어가 지하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

 

204 작품은 하나의 새로운 지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등장인물 황우석을 차용하고 싶다면, 그 인물을 어'던 특정한 각도에서 새로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새롭게 해석한 다음, 다른 극적인 인물로 재구성해야 한다.

217 줄거리를 얘기하면서도 물론 작가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노출시키지 않고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해야 하지만, 주제는 아예 비치지도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작가'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위선과 거짓이 이 소설의 '주제'라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222 심리적으로 얘기하자면, 열어주기에서는 독자의 관심을 끌고, 다음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는 하지만, 몽땅 보여줘서는 안된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얘기를 대충만 짤막하게 털어놓고, 내용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비중에 따라 세부적인 사항을 조금씩 차례대로 독자에게 알려준다. 그러고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면, 끝내라. 마지막으로 종합하여 설명하는 종결은 불필요하다.

228 <러브스토리>는 끝에서 얘기를 시작하여 도서관 장면에서 처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끝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구조이다. 영화 <애수>도 똑 같은 구조를 갖춰 관객의 슬픔을 배가한다.

232 훌륭한 글쓰기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라면 섣불리 그리고 감히 동원하지 않는 정밀함을 보여주지만, 그러면서도 얘기를 하는 듯한 말투의 뒷맛을 남긴다. 그런 문체를 제대로 터득하려면 평생이 걸린다.

 

238 우연히 돌출된 단 한마디의 말이 법정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하는 범인의 증언만큼이나 확실하게 인물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248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기승전결의 굴곡은 상황의 전개 과정 자체에서 이루어져야 이상적이다. 그 굴곡을 구성하는 요령은 곧 설명하게 될 갈등 만들기의 공식과 같다.

 

253 어떤 작품이 '빤한 얘기'가 되지 않게 하려면 작가가 결정적인 마지막 사실을 감추는 데서만 긑나서도 안 된다. 감추기는 감추면서도 감추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줘야 하는데, 애거타 크리스티가 중간에 가끔 엉뚱한인물이 범인이라도 되는 듯 의심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기법이 이런 의도된 오도의 한 가지 전형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반복되는 그런 기법에 익숙한 독자나 관객은 전반부나 중반에서 범인으로 지목받는 인물을 아예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여기에서도 노련한 줄타기가 필요하다.

263 하지만 예외는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어서, 단편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살인자들>은 도레미파솔라시도시의 기승전결구조가 아니라, 도레미파미미미로 이어져 언덕 너머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도표를 그린다. 병원에서 진동 기록기가 나타내는 죽음의 선처럼 말이다.

 

276 전개의 과정을 보면 대하소설은 인간의 일생과도 비슷하다. 인간은 30대에 절정기를 맞아 중년을 보내는 추진력을 뒷받침하고, 그런 다음에는 장년기를 지나 점점 노쇠하여 죽음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나이가 80을 넘긴 노인에게서는 절정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278 본론이 훌륭하다면 서론이나 결론은 웬만해도 된다는 연설문 작성의 공식은 대하소설에서도 분명히 유효하다. 그러나 몸뚱어리를 이루는 웅장한 얘기가 워낙 좋으니 용두시마면 어떻고, 종결은 소솔해도 된다는 주장은 항상 용납되는 원칙이 아니다.

 

296 나는 소설 한 작품이나 번역따위에 관한 책 한 권을 탈고하면, 바로 그 날이나 적어도 이튿날 당장, 미리 준비해 두었던 다른 계획에 착수한다.

 

그래서 나는, 둘째 마당 인물 박람회항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언제 어디에서 떠오를지 모르는 멋진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항상 호주머니와 자동차와 내가 생활하는 모든 곳에 준비해놓은 쪽지에 얼른 적어놓는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자료함에다 모든 쪽지를 정리해 놓는다.

 

301 번역에 대해서도 그런 얘기를 했었지만, 글쓰기는 개인기업이다. 기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부기학도 이해하고, 제품 관리와 배급과 수송, 반품의 관리, 그리고 함께 일할 인력을 선발하고 다루는 용병술까지 알아야 한다. 거기에다 다른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한 상품의 다양화도 필수적이다.

 

314 나는 아침 여섯 시쯤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고, 이도 닦지 않고, 신문도 보지 않고, 글스기부터 시작한다. 가장 머리와 마음이 맑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간혹, 좀 창피한 얘기지만, 깜박 잊고 오후에 세수를 하지 않은 채로 외출을 하는 지저분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315 머리가 맑지 않으면 글쓰기를 중단한다. 빈둥빈둥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고 계속해서 글을 써봤자, 피곤한 아이가 아무리 공부를 계속해도 머릿속에 들어가는 지식이 별로 없듯이, 그런 상태에서 쓴 글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써야 한다. 그래서 웬만한 날이면 이 시간에 나는 산으로 낚시를 간다.

 

318 쪽지는 좋거나 멋진 어떤 생각이 날 때마다, 길을 가다 걸음을 멈추고라도, 즉시 적어두는 습관이 좋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하면 자칫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일단 입 안에 들어간 밥을 삼켜야 다시 한 숟가락 더 퍼 넣을 자리가 생겨나듯, 머릿속에 담아둔 내용이 자꾸 뱅뱅 돌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면, 한두 가지 먼저 떠오른 생각들이 자꾸만 발에 걸려 더 이상 새로운 구상이 전진하거나 발전하지 못한다. 그것은 실제로 종이에 담지 않고 머릿속에 문장을 계속 써나가려고 하는 헛수고와 같다.

 

319 정답에 집착하는 습성이 무개성을 낳는다.

 

320 진지한 글쓰기는 이력서용 교육이나 훈련이 아니다.

틀을 벗어나는 능력이 자유로운 창조의 출발점이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은 원인과 결과의 흐름을 깨뜨리지만, 모든 소설의 모든 주인공이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틀을 깨뜨리면, 그런 틀 깨뜨리기는 새롭고도 낡은 틀을 하나 더 만들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뒤늦게 고백하지만, 첫째와 둘째 마당에서 글쓰기 과제를 낸 다음 모범답안을 제시할 때마다 참으로 못할 짓을 한다는 거북함을 느끼곤 했다.

 

323 너무나 기발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튀기 때문에,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경우이다. 잘못 튀면 떨어질 때 다리가 부러진다.

 

330 아무리 현실도피를 위한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작가는 현실과 사실의 기호를 참조해야 하고, 현실을 이해한 다음에야 초현실을 창조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세부는 모두가 저마다 사실적이면서도 여러 사실의 조합을 만들어 초현실을 창조하는 초현실주의의 부조리는 지금도 유효한 으뜸 공식이며, 그런 작업에서는 자유로운 상상에 논리의 책임이 부수된다.

 

332 처형장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자질구레한 상황들의 묘사 또한 엣지콤의 요로 통증만큼이나 사실적이다.

==> , 사실성을 얼마나 뛰어나게 살릴 수 있느냐가 능력의 한 요소이다.

 

338 독자는 킹의 속셈을 전혀 알 길이 없고, 그러면서도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종결에 이르면 분명히 어떤 충격이나 감동이 오리라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작품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기다린다.

 

349 윌리엄 포크너와 출판사 편집자의 대결에 관한 일화는 유명하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구사한 포크너의 숨이 길고 난삽한원고를 보고 편집자가 간결하고 잘 읽히는 헤밍웨이식 문장으로 고쳐보자는 제안을 했더니, 단단히 화가 난 포크너가 너 도대체 뭐냐?(What the hell are you?)”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350 20세기 최고의 미국 편집자로 알려진 퍼킨스는 찰스 스크리브너 출판사의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스캇 핏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기 사슴>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영화 <애정>의 원작자 마조리 키넌 롤링스, <지상에서 영원으로>로 유명한 제임스 존스 같은 작가를 키워낸 스승이었으며, 1978년에는 그에 대한 전기 <천재 편집자 맥스 퍼킨스>가 출판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맥스 퍼킨스 같은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하며, 그래서 편집자가 하는 일을 작가 스스로 맡아서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퍼킨스 같은 서양의 편집자는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351 편집자를 욕하지 말고, 그가 할 일을 스스로 하라 라는 글에서 단편작가 헬렌 졸드는 초보 작가가 편집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다듬기가 왜 어려운지를 고등학교 잔디밭의 멋진 고목나무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사춘기 풋사랑에 빠져 그 나무 밑에서 첫 입맞춤을 나누었기 때문에 작가 자신에게는 추억이 감미롭고, 그래서 작품에다 장황하게 그 나무를 열심히 묘사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 독자라면 그것은 그냥 한 그루의 평범한 고목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351 바로 여기에서 편집자의 객관적인 눈이 필요해진다.

 

352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비판하는 입장에 처한 작가는 우선 작품의 본질로 녹아들지 않는 개인적인 기호를 모조리 찾아내고 제거해야 한다. 남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나 혼자만의 고목나무를 멋지게 묘사한 대목이나 영감이 가득 넘치는 기발한 표현을 읽고 또 읽으면서 스스로 감탄하고 눈물짓는다면 그것은 문학적인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군더더기 대목을 제거하기 위해 잘라내기를 대담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그 작품은 깊이와 신빙성이 결여된 찬밥이나 마찬가지이다.

 

문장의 마름질에서는 잘라내기가 기본이며, 자신의 문장을 자르는 용기만이 글의 흐름을 압축하여 폭발력을 상승시킨다.

 

355 대학생이던 습작 시절에 써놓고는 하나같이 최고의 걸작이라고 스스로 믿었던 영문 소설 원고들은,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으로 날아가다 없어진 <훈련소>처럼,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여태까지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지를 못했다.

 

358 중복 표현 솎아내기

위를 올려다보았다 --> 위를 쳐다보았다.

 

367 어쨌든 나는 꼬막초가집들에 대한 박경리의 묘사에 매료되었고, 그 시각적인 비유의 표현이 참으로 생생하다고 생각했다. 그 짤막한 표현은 초가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산등성이가 얼마쯤 떨어졌는지 거리감까지도 눈에 선하게 보여준다.

지금은 시청각 시대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처럼 관념적이거나 웅변적인 서술과 묘사는 벌써부터 삭아서 호소력을 잃었다. 인상은 그림으로 각인된다.

멋지고 인상적인 묘사를 하고 싶으면, 미사여구를 찾아 헤매지 말고, 찢어진 우산과 송이버섯과 꼬막을 생각하라.

 

372 서강대학교 동창인 어느 교수는 <하얀 전쟁> 17장에서 한국 병사와 베트남 여인이 주고받는 세 마디의 프랑스어 대화 가운데 틀린 곳이 보인다며, 전화를 걸어 바로잡아줄까 하다가 등장인물들이 워낙 프랑스어가 서투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내가 일부러 틀리게 써놓은 듯싶어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라면 이런 귀띔은 그래도 참을 만하지만, 낯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공개적인 지적은 굴욕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382 평론가나 기자들은 작가에게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교훈(message)이 무엇이냐?“라고 판에 박힌 질문을 자주 한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항상 소설이란 문학 작품은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전할 교훈을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서 쓰는 글은 철학이나 논문이 되기는 할지언정 고전적인 문학은 아니기 때문이다.

 

383 언례의 집은 나루터에서 금산리로 들어서서 첫 집이요, 밤나무가 우뚝하여 찾기가 무척 쉬운 집이다. 그녀의 집은 마을과 외지의 경계선에 있다. 더구나 이대째 과부인 그녀의 집에 우뚝 솟아 있는 밤나무(밤꽃 냄새)의 상징성! 토박이와 외래인의 경계선에 있는 언례가 외래인의 통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390 혹시 핵심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줏대를 자칫 넘어서려고 하면, 재빨리 서술의 반경을 수축하여 제자리를 찾아가야 하며, 독자와 작가가 공모하여 만들어내야 하는 이런 긴장의 기법은 셰헤라자드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영국 작가 포스터는 <소설의 제양상>에서 제안했따. 포스터는 소설이란 다른 모든 요소를 촌충처럼 접합시키는 등뼈가 필요하며, “폰군과 야만인에게서 똑같은 효과를 거두는 유일한 문학적 도구인 긴장의 조성이 가장 효과적인 기법이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기대감으로부터 긴장은 생겨나고, 긴장을 늦춰주면 월척 붕어처럼 독자는 줄을 끊고 도망친다.

 

396 이렇게 문체는 등장인물이나 사회적인 배경 따위의 다른 양상들과 작품 안에서 톱니바뀌처럼 완벽하게 서로 맞물려야 제대로 생동한다.

 

400 희곡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통속성을 띤 소설, 그러니까 글쓰기 많은 책을 싫어하는 세대를 겨냥한 작품에서는 말로 하는 언어(대화체)라면 역시 기승전결의 흐름에 막힘이 없어야 좋겠다.

 

407 글쓰기에서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욕설이 곧 구어체라는 착각이다.

 

418 이 책에서도 창작 공부를 일기 쓰기로부터 시작했던 까닭은 정식으로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될 욕심은 그리 없지만 자서전 한 권이나마 스스로 써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부터라도 일기를 쓰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다연한 첫걸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 내 경우에는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 그저 글을 쓰라고 하면 개발 새발의 글이 되기가 싶다. “나에게 쓰는 편지라고 하여 정갈하게 써보도록 하자.

 

휴 프레이더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해 고등학교 교사인 아내에게 돈벌이를 떠맡기고는 2년 동안 열심히 작품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그러던 어느 날 밤, 불쌍한 아내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인생과 사랑에 관한 애달픈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소설 쓰기는 집어치우고 대신 그동안 써놓았던 일기장에서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문장들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나에게 쓰는 편지>가 백만 부 이상 팔려나가면서 그는 어쨌든 문인이 되어 여러 권의 수상록을 계속해서 펴냈다.

 

426 그러나 <어느 시인의 죽음>은 똘스또이와 스크리아빈 그리고 혁명시인 마야꼬프스끼의 얘기까지도 모두 담았고, 그래서 검약한 문체의 심오함이 더욱 돋보인다.

 

440 우화계의 독보적 존재인 아이소포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의 노예 출신으로서, 뛰어난 재치와 지혜를 주인으로부터 인정받아 자유인이 되었지만,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폭군의 미움을 받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처형을 당했다. 아테네의 팔레레우스가 아이소포스 우화를 처음 수집한 때는 기원전 300년경으로, 이 우화집은 그리스 국경을 넘어 여러 세기를 거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삽화로는 프랑스 고전파 시인 라 퐁뗀의 <우화집>에 실린 그랑빌의 목판화가 유명하다.

 

450 부도덕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이런 유쾌한 오도는 아마도 어법과 서술 방식이 독자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468 의식의 흐름 기법의 또 다른 선구자는 영국의 여성 작가 도로티 리처드슨으로서 <뾰족한 지붕>으로 시작하여 12권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연작소설 <인생행로>는 여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오가는 생각과, 감각적 인상과, 기억과, 느낌을 엮어서 줄거리를 서술한다.

 

487 위대한 작가는 독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이다. 독자나 시청자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는 작가의 야합은 창작의 차원에 이르지 못하고, 그래서 삼가야 마땅한 짓이다.

그리고 독자나 편집자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내 마음대로 글을 쓰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 위대한 작가가 아닌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고집은 위대한 작가가 된 다음에 부려도 늦지 않다.

좀 미안한 얘기이지만, 지금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직 위대한 작가가 아니다. 위대한 작가는 이런 책을 잃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한 사람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의무감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무감은 물론 야합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아니다.

 

앞에서 여러 차례 나는 글쓰기를 집짓기와 마찬가지라고 비유했었는데 그 비유는 작품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도 적용된다. 으 다 지으면 남이 들어가 살 듯이, 작품도 다 쓰고 나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작품은 완성되기 전까지만 나의 소유이고,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면 독자들의 소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동안 작가는 나중에 소유권을 넘겨 받게 될 고객으로서의 독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니까 세상이 나를 위대하다고 인정해 주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아직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가 위대한 작가로 성공한다면, 그때는 무식한 군중의 정신적인 스승 노릇을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다.

 

496 고쳐 쓰기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영감을 받아서 쓴 즉흥적인 글을 냉정한 마음을 다듬고 잘라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고쳐 쓰기를 여러 번 하면 영감의 총기는 점점 더 사라지고, 다분히 합리적이고 장식적인 면으로 흐르기가 쉽다. 생동하던 문장도 직유, 은유, 풍유 ,환유, 제유, 성유, 반어법 따위의 기술과 기교과 사후에 동원됨에 따라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감을 논리로 갈고 닦으면, 마모되어 사라지는 대신 보석이 되어 빛난다.

 

497 여러차례의 고쳐 쓰기를 거듭하느라고 적어도 3백만 단어를 썼으리라고 스스로 추산했따.

 

497 대학에서 창작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은 어떤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엄청난 양의 일을 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괄목할 만한 모든 업적은 눈앞에 닥친 큰 일을 무작정 달라붙어 해내는 헌신적인 사람들만이 성취한다.

 

498 글쓰기는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배열하여 벽돌처럼 쌓아올리는 수공업이다. 그것은 오랫동나 고생스럽게 땀을 흘려야 하는 노동이다. 번역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십중팔구는 번역을 잘 못한다. 엉터리로 하니까 번역이 쉽다고 오해할 따름이지, 문학 작품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 도대체 쉬울 까닭이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500 예를 들면 그녀는 무대를 설정하고,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다음, 작품이 5부의 1정도가 진행되기 이전에 그들 주인공들이 갈등과 만나게 해야 하며, 가능한 한 종결에서 가장 가까운 시점을 시점으로 삼도록 하라.”라고 충고한다.

 

500 이런 기술적인 요령 이외에도 그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작품의 관리에 대해서도 퍽 유익한 얘기를 한다. 작가 지망생들은 흔히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남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습성을 보인다. 하지만 글로쓰기 전에 입으로 자꾸 설명하다 보면, 마치 글로 써버린 듯한 착각에 빠져 그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작가 자신이 조금씩 잃어버리게 된다. 더구나 정성을 들여 글로 써놓지 않고 대충 말로만 설명하다 보면 작품의 진가를 누구에게도 증명해 보여주기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별로 감동하거나 감격하지 않은 사대방의 반응이 신통치 못할 때는 공연히 실망하여 좌절감까지 생겨난다.

 

502 “작가로서 활동하다 보면 언젠가 쓰고 싶은 위대한 작품을 위해 무엇인가 남겨두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 하지만 타자기 앞에 앉을 때마다 자신이 지닌 최선의 능력을 바루히하여 모든 노력과 생각을 아낌없이 소진해야 한다.”

 

503 돈과 명예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이것은 글쓰기를 하는 모든 사람이 공식적으로 첫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꼭 내려야 하는 결정이다.

 

506 그리고 나는 걸작을 썼는데 너는 왜 졸작이라고 하느냐며 따지는 일도 위대한 작가가 될 때까지는 삼가는 편이 좋겠따. 작품의 수준은 쓰기를 하는 작가가 아니라 읽기를 하는 독자가 결정한다.

 

508 그러나 <글쓰기 만보>를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독자는 글쓰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리라.

 

노력을 계속하려는 용기를 얻기 위해 신념과 독려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작품이 걸작이라고 믿되, 남에게는 그런 말을 섣불리 하지 말아야 한다. 경험이 많은 타인이라면 나만의 걸작을 보고 그것이 결코 걸작은 아니라는 진실을 알며, 그래서 도로를 만류한다.

경험을 얻고 지식과 지혜를 쌓으려면 엄청난 정보의 경험이 필요하다. 연습과 훈련은 많을수록 좋다.

남의 작품을 많이 읽는 경험도 훈련이어서, 문학과 잡문의 차이를 터득하도록 도와준다. 모든 고전은 시대를 이겨낼 만한 가치를 지닌다.

 

509 빈 수레가 요란한 까닭은 모를수록 함부로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 젊은 감성은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닌다. 젊어서 불가피하게 모를 수 밖에 없는조건을 결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당신이 겪지 않은 바를 먼저 겪은 자로서 당신의 선배일 수 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509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과거가 되어버린 젊은 시대를 멀리 떨어져서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고, 멀리 떨어져서 보는 나의 옛 모습은 서툴김나 하다. 내 나이가 마흔을 넘기고 쉰으로 가던 어느 날, 문한적 각성을 시작할 무렵, 나는 대학생이던 시절에 그토록 밤낮으로 열정을 쏟으며 써내려갔던 소설들을 차근차근 하나씩 읽어보았고, 차근차근 하나씩 찢어서 쓰레기통에 담았다. 세상이 읽어주지 않았던 그 위대한 작품들은, 부끄러워서 폐기해야만 했떤 위대한 작품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푸석푸석 늙어버린 원고는 모두 쓰레기로 분류되어, 낭비된 시간과 젊음의 유해가 되어 사라졌다.

 

511 ‘두 번째 작품이라는 표현은 미국 출판계에서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유행어이다. 첫 소설이 출판된 다음 일시적인 행복감에 도취되어, 축하해 주는 친구들과 날마다 어울려 즐겁게 술을 마시고, 그래서 이성의 마비 상태에 빠져 다음 글쓰기에 공을 안 들이고, 자삼닛으로 인해 소홀하게 써낸 두 번째 소설이 독자를 실망시켜 작가 생활을 일찍 마감하는 현상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512 단편도 분명히 예술이기는 하지만, 열 가지 작은 일보다 한 가지 큰 일을 하는 편이 현명하다.

 

513 다작은 진지한 작가의 미덕이 아니다. 작품을 많이 안 쓴다고 해서 야단을 치는 사람은 없다. 한 권의 작품을 써서 10년 동안 팔 능력을 갖춘 작가라면 1년에 한 권씩 열 권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보리스 빠르쩨르나끄의 <의사 지바고>를 읽으며, 그리고 다시 읽으며,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작가는 만은 작품을 쓸 능력이 없으면, 많이 쓰지 안흔 참을성이 지혜임을 깨달았다. 평생을 칼로 갈고 닦아 연마하여 거두어들이는 문학의 분량은 책 한 권이 전부더라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또 한 가지 삼가야 할 일이라면, 글쓰기를 집단활동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글쓰기는 동업가들을 많이 알면 손해가 나기 쉽다. 계보와 관록을 개성이나 창조적인 사고 방식보다 중요시하는 집단은 반문학적이고, 반문화적이다.

글쓰기의 승부는 언제나 혼자 하고, 혼자 해야 옳고, 비평도 스스로 해야 한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기에 자유롭고, 즐겁고, 창조적이다.

 

515 한 작품을 오래 쓰면, 거기에는 젊은 시절의 총기와 감각 그리고 싱싱한 영감이 그대로 살아남은 채로, 경험과 지혜가 나중에 곁들어 함께한다. 모든 세대는 젊었을 때 힘차게 발달하고, 나이를 먹으면 경험을 되새겨 보다 높은 차원으로 성숙시킨다. 아직 젊어 알찬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의 글쓰기에는 줏대가 보이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은 젊어서 시를 쓰고,장년에 소설을 쓰고, 늙어서 수필을 쓰라고 하는 모양이다.

 

515 젊은 시절의 명상은 명상이 아니라 잡념이었떤 모양이라고.

 

518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스스로 설정했던 목표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스스로 판단한 다음부터, 나도 역시 퇴락해 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초조하게 느껴졌고,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억지로 더 좋은 작품을 써내려고 서둘렀으며,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아래로 사다리를 내려오기만 계속했다.

 

그리고 환갑이 되었을 무렵에야 나는 깨달았다. 제한된 분야에서 같은 궤도를 따라 움직이기만 해서는 새로운 땅을 밟지 못할 터이며, 사다리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결국 내려와야지,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지붕 위에서 허공으로 기어오르려고 허우적거기며 살아갈 수야 없는 노릇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을 이제부터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어늘 날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은 이미 썼는지도 모르겠다고.

==> 피터 드러커와 완전 다른 생각이군.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테다.

 

519 여태까지의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최고의 작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걸작을 써야 한다는 오만과 자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스스로 얻게 되는 홀가분한 자유, 그것은 나이가 터득한 비겁하도고 현실적인 지혜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교과서를 분해하듯 낱낱이 뜯어볼 생각이다. 현재는 1.5독 정도 했다. 일정 이상 수준의 글을 쓰기 위한 기본을 터득하기에 좋다.

 

그러나 저자가 우려를 표명했던 바와 같이, 정답을 제시하면 새로움은 태어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현재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제약을 느낀다. 생장점이 포함된 곁가지들이 싹뚝 잘려버린 듯하다. 문장 하나를 써두고 혹시 잘못된 어법이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게 되는데 그것이 brain storming을 차단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쓰려고 했었는지 잊게 된다. 그저 교정틀에 적응해가는 과정일 뿐일까? 처음부터 토슈즈가 몸에 맞지는 않을 테니까. 발레슈즈와 발의 대결 - 자생력을 가진 발가락이 상처를 딛고 슈즈 끝을 해지게 만드는 것처럼. 나는 슈즈를 신고 발레를 출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길들여지는 것은 발이 아니라 신발이다. 신발을 죽여놓기 위해서는 일단 신고 출 수 밖에. 과감히 겸허함을 받아들이자. 그러기 위해서는 정체성부터 수용하는 편이 좋다. 나는 작가는 아니다. 나는 Writer이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세상의 모든 작업을 받아들인다. 이 문구를 책상 앞에 붙여놓자. 나는 writer이다.

 

현실은 예상했던 대로 현실답다. 감정적 동요는 불가피할지언정 어리석임의 면죄부는 되지 않는다. 우매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나는 지금 부족하다. 그러나 씨앗의 크기만을 보고 이 씨가 잔디 한포기가 될지 아름드리 청솔나무가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청솔나무가 씨로 번식하는가? 이 책을 읽은 후 생긴 병폐다.) 나는 출판사측으로부터 “솔직히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게다가 출판사측의 대답은 굉장한 완곡어법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배팅을 해볼 도리밖에. 별 수 있는가? 내가 배당받은 인생은 오로지 내 인생 하나밖에 없다. 나는 내 writing business의 일인 기업가인데(혼자 대표이사와 말단 사원을 총괄 역임하고 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한 것 아닌가? 울고 짜면서 내 상품을 믿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영혼을 팔자.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안정효는 책에서 유년기의 꿈이 만화가였다고 했다. 그는 성공한 작가이고 이름만으로도 책은 팔린다. 그의 삽화는 꽤 수준있고 의미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책의 표지만큼은 삽화를 절제하고 권위있는 디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은 세련되었을지언정 80년대생의 눈에 이 책은 전혀 핫하지 않다. 카페에서 바닐라 시럽을 뺀 두유 라떼를 끼고 맥북을 두드리면서 이런 표지의 책을 버젓이 내놓고 타이핑을 하는 건 구색에 맞지 않다. 책의 디자인에서 노작가의 순진성이 보인다. 유명 출판사의 대표가 강력추천하지만 않았더라면 심지어 사부님이 추천했다 하더라도 그리 내켜하며 보았을 것 같지 않다. 저자는 책 속에서 내내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라고 강조한다. 대단한 아이러니다.

 

그리고 만보가 뭐냐, “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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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책을 쓸 깜냥이 되나 의심됩니다. --> 라고 무책임한 글을 써서 사부님께서 저런 답변을 달아주셨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우리 부모님도 저를 그리 믿어주시진 못하실거예요. 혹시 일단 질러보시는 건가요?ㅋㅋ

 

수준 낮은 북리뷰로 함께 지식을 공유하자는 연구원 생활의 취지를 훼손하여 죄송합니다. 합당한 처벌을 받고자 하였으나 살려주시니 뻔뻔하게 살겠습니다. 그러나 9기들에게 제가 얼마나 많이 머리를 박아왔는지 알려주고 싶네요.

IP *.68.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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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12:28:56 *.128.229.156

이눔 시끼,   머리박아를 하고 싶으냐 ?

네 놈에게 딱 맞지 않느냐 ? 

네 안에 있는 천방지축을 보도록 해라.   천재를 보여주는 것이 쉽겠느냐 ?

다만 홀연 나타났다 홀연 사라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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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13:21:02 *.68.172.4

네 사부님. 생신이신데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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