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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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에 제법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나의 고물트럭은 산방과 마을 사이 오르막 길에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있습니다. 차마저 오갈 수 없으니 이제 완벽하게 오두막에 갇혔습니다. 세상과 단절되자 제대로 겨울을 맞은 느낌입니다. 일년에 한두 번 이렇게 갇히는 시간이면 나와 마주하기에 더 없이 좋습니다. 그래서 갇힌 것을 즐거워하며 고요히 한 해를 넘기려 합니다.
장작불을 지펴놓고 눈 덮인 숲을 잠시 거닐었습니다. 숲의 모든 생명들도 한 해를 넘기는 고요에 젖어있습니다. 층층나무 군락에 잠시 머뭅니다. 간벌의 혜택으로 더 넓은 하늘을 얻은 십 년생 층층나무는 참 좋아 보입니다. 바로 옆 비슷한 나이의 산뽕나무는 타고 오르는 칡덩굴에 힘겨운 한 해를 보낸 것이 역력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숲의 나무 모두는 그 삶이 어떻든 한 켜 더 쌓은 나이테 속에 자신들의 모색과 성장 혹은 위축의 흔적을 고스란히 새겨놓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한 해가 그러했듯 숲 속 나무 모두의 한 해도 요동의 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나무에게는 눈부신 성장의 시간이었을 것이고, 다른 어떤 나무에게는 상처의 시간이 길게 자리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 우리들 중 누군가는 올 한 해가 좋았을 테고, 다른 누군가는 아픈 시간이 길었을지 모릅니다. 기축년 이 한 해. 그대 삶은 어떠셨는지요?
살다보면 눈부신 아름다움이 깃들어 살아있음이 온전히 축복인 때가 있습니다. 반면 갇히는 시간도 있고, 치이는 시간도 있는 것이 삶입니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 삶이 된다는 것을 삶의 절반을 넘기고 나니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갇혀도 갇히지 않는 법을 터득해 갈 수 있고, 치여도 치이지 않는 지혜를 깨우쳐 가게 됩니다.
혹여 올 한 해 그대 삶에도 폭설에 갇힌 시간과도 같은 때가 있었다면 이제 해를 넘기며 그 시간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지나온 시간인 “역사는 우리가 겪은 모든 불행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태양은 그 역사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생명에게 해넘이가 있고, 새로운 해맞이가 있는 이유가 거기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해 동안 통증이 컸던 나무라 할지라도, 이 숲에 살고 있는 모든 나무들은 태양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는 어느 순간 겪지 않은 새로운 날들을 노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길바닥에 갇힌 나의 고물트럭도 눈이 녹으면 다시 나를 태우고 이곳을 오르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날은 그렇게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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