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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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더라. 밥벌이 핑계로 아프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긴장이 풀렸던 게다. 감기가 제대로 왔다. 휴일은 달랑 3일. 정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여행이고 뭐고 그딴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집에서, 나 혼자, 내 맘대로 먹고 자고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웬걸. 맘 불편하단 이유로 3일 내내 뺑뺑이 돌았다. 재채기 콧물 기침 두통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달고 다녔다. 그래도 몇 달 만에 만나는 일가친척들은 반가워했다. 죽을 맛이었다.
밥벌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밥보다 잠이다. 그런데 잠은 제대로 못 자고 밥만 줄기차게 먹어댔다. 덕분에 뽈록뽈록 엠보싱 뱃살에 뒷모습은 완전 미세스 다웃파이어다. 버티느라 먹은 약기운에 눈꺼풀은 내려앉고 몽롱한 정신에 일은 자꾸만 늘어난다. 명절 연휴를 끝내고 출근하니 회원용 정보지에 눈꺼풀이 번쩍하는 내용이 있었다. 나라별 중산층 기준이라고 프랑스, 영국, 미국, 한국을 네 칸에 나눠서 나열해 놓은 것이었다. 그만 눈을 감고만 싶었다.
프랑스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나만의 레시피가 있어야 하고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영국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지닐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미국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4.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
한국
1. 대도시에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3. 2,000 CC급 중형차 소유
4. 예금 잔액 1억 원 이상 보유
5. 1년에 1회 이상 외국여행 다닐 수 있는 정도
우리의 중산층은 결국 돈이다. 돈 말고는, 없다. 씁쓸한 진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겐 지금 돈보다 잠이다. 중산층? 개나 줘버리자.
아, 오늘은 연인끼리 선물이나 편지 등을 교환하는 발렌타인 데이란다.
집구석에 굴러다니는 초콜릿이나 까먹어야겠다. 엠보싱 뱃살? 개나 줘버리자.
그나저나 글은 대체 언제 쓰나. 글은 고사하고 책은 대체 언제 읽나. 꿈? 미츄어버리겠따!
지금의 큰아이 때, 고2를 지나 고3을 앞둔 그날, 발렌타인 데이였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을, 그때였다.
해피 발렌타인 카드와 제과점에서 고른 예쁜 포장의 초콜릿을 누런 종이에 싸고 또 싸서 소포로 부쳤었다.
매일매일 편지를 보내던 선배 오빠에게.
소포는 정확히 날짜에 맞춰 도착했다. 우리 집으로.
생전 첨 보낸 사랑의 고백은 설렘인지 떨림인지 모를 정신 나감으로 주소를 바꿔썼던 것이었다.
수신, 발신을 구분하지 못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울아빠는 ㅇㅇㅇ가 누구냐며 다그치고.
이맘때면 생각난다. 그때의 바보 같은 내가.
물론 그 뒤론 일.부.러. 내게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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