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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00시 15분 등록

그런 날이었다. 똑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지나는. 쉽게 잠이 오지 않던 차 책자를 이리저리 살피던 중 한 남자의 사진에 시선이 꽂혔다. 험한 암벽을 오르는 구릿빛 피부와 다부진 체격의 당당한 모습. 남자들은 등산에 취미가 있건 없건 이왕 오를 바에는 높은 산에 오르고 싶어 한다. 또한 그 정상에서 자신의 기개를 멀리멀리 실어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런 외부의 산이 아닌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종목 이었다. 일명 스포츠 클라이밍. 시간이 지남에도 사진 속 그 장면이 계속 나의 마음을 은근히 잡아끈다. 무엇 때문일까. 첫사랑 경숙이도 아닌데 무엇이 나를 이다지도 유혹하는 것일까.

인터넷 검색을 하여 서울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실내 암벽 장을 찾았다. 규모 자체부터가 기를 죽게 만든다. 1층 접수대에 가서 먼저 상담을 하란다. 웃긴다. 무슨 기업체도 아니고. 그런데 어여쁜 아가씨의 생글거림에 푸념은 온데간데없어진다. 하여튼 남자란~

“어떤 종목을 하시고 싶으세요.”

“실내 암벽등반요.”

괜히 못한 말을 한양 얼굴이 빨개진다. 이 나이에 주책이 아닐까. 그런데 그 주책은 당황으로 이어진다.

“경비는 한 달에 000원 입니다.”

이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 이었나. 좀팽이 나의 머리는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아예, 그럼 다음에 들를게요.”

나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했었는데 이젠 금전부터 신경 쓰는 입장이니. 결국 그날 밤 좀 더 저렴한 곳을 찾아 헤매었다. 드디어 발견. 업무후 서둘러 그곳을 향했다. 허름한 빌딩 3층에 자리한 장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품을 하고 있는 여자 한분이 나를 반긴다.

“어서 오세요.”

둘러보았다. 일종의 간을 보는 셈. 실망감. 퀭한 풍경. 괜히 왔나. 첫 번째 곳과 자연히 비교가 된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 그곳으로 다시 갈까.

 

경기도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올 때 적잖은 고민을 했었다. 집값이 비싸다는데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제대로 구할 수 있으려나. 부동산중개소에서 소개해준 곳을 찾아갔을 때 아차 싶었다. 여기도 상술이 숨어있구나 라는걸 들어서자마자 금세 간파할 수 있었으니.

“우와 좋다.”

아내의 한마디가 가슴속 한곳을 찌른다. 그렇다. 금액 자체가 대출을 받아야만 구할 수 있는 집이기도 하였지만, 신혼부부가 살던 곳이었기에 도배며 다른 무언가를 덧붙일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좋아하는 그녀 앞에 표를 내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이곳과 계약하려면 은행에다 도대체 추가로 얼마를 대출 받아야 하는 거야.’

두 번째 집을 보러갔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현실적이며 안전 빵인 곳. 딩동. 문이 열리고 우리 부부를 반기는 건 아이들의 왁자지껄함과 낙서투성이의 방 그리고 거실에 배어 있는 퀴퀴한 냄새들 이었다. 조명도 어두웠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셈하기 시작했다. 현재 가진 돈으로 딱 좋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아니올 시오다 이었다.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사람은 견물생심의 동물이다.

 

그러했다. 그때의 그 기분 이었다. 수준이 떨어지는 격이 떨어지는. 나는 다시 계산기의 셈을 하기 시작했다.

“초보자인데 한 달 얼마인가요.”

그랬다. 첫 번째 장소보다는 확실히 저렴한 가격. 어느 곳을 택했을까. 이번에는 후자 쪽이었다. 나도 대한민국의 늠름한 소시민의 한사람으로 성장을 하였기에. 서둘러 선납을 하였다. 혹시나 내 선택의 번복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번 주 토요일 편한 복장으로 오세요.”

 

설왕설래. 괜히 신청한 게 아닐까. 아내도 그렇게 호응하는 눈치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번건 뿐만 아니더라도 그동안 시도 했다가 중도에 그만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그랬다.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었다. 힘들 것 같은데. 하지만 그래도 가야했다. 강습료를 미리 선납해 놓은 입장이기에. 그런데 나는 왜 이것을 선택한 것일까.

어릴 적 또래 아이들이 그러했듯 나는 당시 한 사내에게 말 그대로 필이 꽂혀 있었다. “아뵤오~”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내려치는 그의 발차기에 상대방은 여지없이 나가 떨어졌다. 그랬다. 그의 이름은 이소룡 이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자 그와 나는 일심동체 하나가 되었다. 온갖 개폼을 잡으며 장면을 흉내 내다 보니 욕심이 앞선다.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떼를 쓴 끝에 얻어낸 용돈으로 쌍절권과 절권도 책을 구입했다. 연습에 들어갔다. 나도 그처럼 되리라하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엉성한 포즈지만 책 사진 속 모습을 따라하였다. 그런데 어떡할까나. 그 수련은 첫날 그게 끝이었다. 나 자신 휘두른 쌍절봉으로 머리통에 야구공 크기만 한 혹이난 불상사 이후에.

 

엄연한 사십대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음에도 철이 없어서인지 내 마음은 이젠 이소룡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다.

오르고 싶다

현실 그이상의 곳으로

나의 손과 발의 온전한 원시적인 힘만으로 올라야 하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그 위에 서고 싶다.

 

집에서 사전 준비운동이랍시고 열심히 국민체조 한바탕과 몸을 풀고 목적지로 향한다. 시간이 되자 하나둘 접수한 이들이 등장. 어라, 이게 뭐람. 예상치 않는 젊은 아낙네들. 나의 눈은 즐거웠지만 머릿속은 어지럽다. 뭐야, 여자가 왜이리 많은 거야. 그 이유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클라이밍에 대한 검색을 하면서 궁금증이 풀렸다. 일반적으로 이 종목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남성이 유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암벽을 단순히 악력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으로 생각하기에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균형 감각이 필요하며 삼각형 형태의 중심축으로 이동하는 말 그대로 밸런스가 수반되는 운동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상체보다는 하체에 중심의 이동추가 가있는 여성들에게 어찌 보면 좀 더 적합한 운동일 수도 있을 터. 그리고 무엇보다 다이어트가 확실히 된다는데 플러스 요인이 자리 하였다. 여하튼 강습이 시작 되었다.

 

일반 신발과 다르긴 하지만 암벽화라는 것이 요상하다.

“너무 조이는데 다른 치수는 없나요.”

나의 투덜이 본성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암벽화는 조금 작다 싶은 게 좋아요. 엄지발가락의 힘이 중요하니까요.”

그런가. 그래도 너무 꽉 조인다. 그래도 첫날부터 밉상스럽게 보이지 않으려면 참아야지.

“자, 제가 하는 것 보셨죠. 이제부터 한사람씩 나와서 직접 실습해 보시면 됩니다.”

뭐야, 이게 다야. 부연 설명도 별로 없다. 어쨌든 일단 해보는 수밖에.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군대에서도 막무가내의 전투 수영이 최고이니.

여성들이 올라간다. 펑퍼짐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아싸~ 이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구나. 눈의 호강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나의 순서. 헛기침을 하며 호기 있게 나선다. 대개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일단 암반을 손의 아귀로 잡아 나가며 힘차게 이동을 한다. 당연히 여자들보다는 나아야지. 그리고 멋있게 착지. 뭐 이까이꺼. 그런데 코치의 칭찬 보다는 피드백이 돌아온다.

“그게 아니죠. 클라이밍은 상체의 손보다는 하체의 발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저 하는 것을 보세요.”

나의 눈은 코치를 바라본다. 그렇군. 나처럼 우격다짐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무언가 달라 보인다. 물 흐르는 듯한 군더더기 없는 동작들. 참내. 보기엔 쉬워 보이는데. 역시 세상사 만만한 게 없다.

 

예정된 두 시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턱걸이로 스트레칭을 하고 가세요. 안 쓰던 근육들을 쓰다 보니 내일은 몸 부위 여기저기가 아플 겁니다.”

그랬다. 코치의 예언은 적중하였다. 다음날 일어나니 PT 체조를 한 마냥 상체의 삭신이 장난이 아니다. 손에 주먹 쥐기도 힘드니. 시작은 했지만 얼마나 오래갈까. 호기 있게 도전한 중년, 남자의 도전 분투기가.

 

 

인생은 야구에서의 투수와 같다.

직구를 정직하게 던질 때도

변화구를 섞을 때도

유인구를 던질 때도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아 볼이 나올 수도

그러다 사람을 맞히는 폭투가 나오고

뜻하지 않은 홈런을 맞을 수도 있다.

중요한건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던지며

맡은 순간을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IP *.130.10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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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 17:58:06 *.43.131.14

집을 보고서 실내암벽등반을 간 중년 남자라...소설인가 봅니다.

끝이 창대하리라고 예상했다가 비대하리라고 하니 '이건 뭔가'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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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0 04:45:58 *.39.134.221

오르는 것에 꽂힌 사람들이 있지요. 왜 오르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내려오기 위해서...? 너무 진부한가.

깜짝 놀랬습니다. 클라이밍 인구가 늘기는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는 운동은 아니니까요.

오랜시간 담금질을 하고나면 탄탄한 몸매가 만들어지기는 하더이다.

홀로 할 수 있는 운동이고 자기와의 싸움이고 근기가 필요한 운동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주 짧은 경험으로 좋은 선택을 하신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인가 시작을 하면 쭉...계속한다. 이것이 통하지 않는 세계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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