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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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을 깊이 생각하고,
만나지 않아도 계속 여운이 남는 사람..
그런, 사람은 참..
서로 알아온 시간의 길고 짧음이나,
대면의 방식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더욱이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지 여부와도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이나 글귀, 작은 소중한 그림들을 모아 두고 꺼내보던
제 주황색 보물지갑 안에,
가장 많이 있던 구본형 선생님의 글들..
저는 언젠가처럼 앞으로도 그 글들을 꺼내보며
힘내고, 위로받고, 큰 그림을 그려가며
선생님의 곁을 계속 느낄 수 있겠지요.
오늘 한 번이지만,
저도 선생님께 꺼내어 들려드리고 싶은 시 한편이 있습니다.
사랑했지만 이별했던 연인에게
반대로 새로 시작하는 연인에게
모두 들려주고 싶었던 마음 속의 그 시를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시로 오늘, 들려드립니다.
[1]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 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갈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2]
<속리산에서>
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P.S 속리산이라는 단어에 구본형 선생님만 대입해도 딱떨어지는 듯한
이 시도 참 좋아 보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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