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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1일 21시 44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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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과제.... 휴...(한숨) 


지금 내 머리 속에 자리 잡은 몇가지 단어 ( 또는 개념 ) 들.

도대체 뭘쓰지..... 뭘쓸까.... 주문을 외워볼까....... 

'난 초보다. 자연스러운 글이 좋다. 가르치는 글은 별로다. 남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깜냥도 성격도 못된다. 거침없이 쓰고 싶다. 글이 쓰여진 뒤 따라올 여러가지 반응들 - 내 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내 글에 대한 나의 평가, 나의 글이 글로써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등등 - 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두렵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겠다. 그저 쓰고 싶다. 
쓰고 또 쓰고,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고 싶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나누고 싶으며, 나의 인생과 남의 인생을 글로 들여다보고도 싶다. 남자에 대해서도 쓰고 싶고 여자에 대해서도 쓰고 싶고 직장인에 대해서도 쓰고 싶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도대체 왜 쓰려는거야? 글쎄... 쓰는게 좋아서???? 아마도...!!!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누구에게 쓸까.' 

번쩍! 왔다! 

 

'서문을 한번 써볼까? 그래, 나의 책의 가장 앞에 쓰여질 서문을 써보자. 그래, 그냥 그렇게. 편하게 한번 써보는거야......' 

 

***

2013년 여름 어느날,

며칠간 장마가 계속된 여름날의 새벽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퉁퉁부은 눈을 비비며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집을 나서자 어제와는 다른 시원하고 상쾌한 새벽바람이 나를 감싼다. 순간 상쾌해진 나......

버스를 타기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고 나와 같은 몇몇 사람들 사이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늦는 버스를 기다리며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긴장을 풀어주고 있는데 문득 내 눈에 익숙한 존재가 보인다. 길가에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들, 흔히들 가로수라 부르는 그것들..... 유난히 푸르르고 풍성한 녀석들이 입사귀들이 천천히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여름새벽바람의 간지럼을 피하기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의 스킨쉽에 부드럽고 유연하게 응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움직임은 아름다웠고 우아하면서도 왠지 모를 아련함이 긷들어져 있는 듯 했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뒤통수가 간지러워져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삼십대 중반,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와 우산을 든 평범한 직장인. 한 가정의 아들일 것이고, 한 가정의 가장일 것 같은 그 남자는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의 인생은 어떠하였을까.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보통의 집안에서 태어나 보통의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저 그렇게 의무교육과정을 마쳤다. 대학을 가는게 맞다고 사회가 말하였고 부모가 말하였기 때문에 대학을 갔을 뿐, 그 외의 어떤 다른 목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왔다. 군대를 갔다와서 '변화해야 살 수 있다'는 절박감의 약간의 몸부림과 반항을 하였지만, 그가 말하는 '살 수 있다'는 취업을 말하는 것이리라.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졸업과 동시에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것이 목표였다.  운이 좋았을까. 대학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 되고 별 탈없이 직장생활을 했다. 그 안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사랑를 하고 결혼을 했으며, 둘 사이에 둘을 정확히 반반 닮은 사내아이도 낳았다.

 

그러던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회사를 다닌지 8년 즈음 되었을 어느 날부턴가 수많은 질문들이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가 왜 이곳에 있어야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그가 있어야 할 곳이 진정 이 곳이고 그가 해야할 것이 진정 이 일인지......

 '수십년간 그렇게 살아왔으면서 새삼스레 무슨 질문.....'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런 다그침의 효력은 채 며칠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러지......' 그는 깨달았다. 오랜 시간 한 곳에서 그저 그렇게 정체되어 살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무언가를 해야했다.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그의 멘토였던 한 사람의 방법을 따라해보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그만의 무언가를 하기.그는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되었지만 너무 어이없는 계기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일단 지난 수십년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할 수 없었던, 하지 않았던 것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책읽기'.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는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잘 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였지만 그래도 실행해 보기로 했다. 책 속에 길이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직장인 남자가, 거기에 가정까지 있는 남자들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바늘구멍에 낙타를 집어넣는 것처럼 어렵다고 생각하는 그였기에 그는 새벽을 택했다. 새벽시간은 온전히 그 만의 시간이었으니, 그 누구의 방해를 받을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달 두달 백일 이백일 보냈고 약 1년에 가까운 시간 새벽을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1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사이사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라는 표현은 어찌보면 민망하다. 끄적인다, 마음속에 있는 말들, 단어들을 뱉어낸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때로는 집에 있는 와이프에게 하고 싶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독한 말들을 뱉어내고 싶을 때,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인을 기억하고 싶을 때, 그는 글을 썼다. 도시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은 네온사인들을 풀어놓기도 했고, 그가 좋아하는 영화를 본 뒤, 잔잔하게 남아있는 떨림과 감흥을 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깨달았다. 어떤 특정한 목적이 없어도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이 꽤나 즐거운 순간과 느낌을 선사한다는 것을, 그리고 상당히 재미있는 취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 그는 책과 글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그가 존경하던 선생님의 사설 연구소에 들어갔고,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즐기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지도 그 때 알았으며, 멋진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도 그제서야 알았다. 그리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꼭지의 글을 썼다. 때론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날 때마다  맘속에 있는 존재들을 글자라는 매체로 환원시켜 거침없이 뱉어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세 권 읽은 책들이 수십권이 되었고,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끄적였던 글들이 수백페이지가 되었다. 그 수백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글자들을 추리고 추려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냈다.  이 책은 그런 순간과 시간을을 통해 태어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에 일상을 담고자 했다. 평범한 삼십대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남자의 일상, 그 안에 존재하는 한 남자의 시각을 담았고 그를 둘러싼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때로는 분리하고 재조립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담기도 했다. '한 남자의 일상 그게 뭐 중요해?' 그는 연예인처럼 인기가 많지도 않고, 스티브 잡스나 안철수처럼 천재에 저명인사도 아니다. 그저 그런 남자의 일상이 뭐 그리 '대수'라고, 이를 책으로 쓴단 말인가.' 그렇다  그는 수십억명의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그는 책과 글을 접하고, 즐기고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일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의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인생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시간들을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들여다봐 주기를 바란다. 그들 또한 지루하고 평범하고 그저 그런 일상을 자신들만의 특별한 일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되길 바란다.

 

사람들은 자신의 옆에 보물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것이 보물인지 모른다. 그거 시커먼 돌덩이인 줄 알고 이를 차버리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주어버리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놓아두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되도록 빨리 발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찾기에 그의 책이 작은 길라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

 

서문을 써 보았다. 내 머리 속에 흐릿하게나마 그러진 서문과는 다소 동떨어진 서문이 나와버렸다. 어찌보면 서문같지도 않은 서문이 나왔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그리 중요하지않다. 나는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썼고, 순간 태어났다 순간 사라지는, 그저 그렇게 소멸해 버릴 수 있는 내 생각의 형상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또 하나의 점을 찍었다.

 

'난 어떤 모습의 서문을 쓸 수 있을까......'

 

 

아! 그나저나... 큰 일이다. 과제하러 가야하는데.... 으... 주객이 전도됐나? 아니면 미양 선배의 후배골탕먹이기에 넘어간건가?!

이 칼럼, 나는 정규칼럼으로 대체가능하다고 했는데.... 윽!

 

늦었지만, 과제하러 가야겠다. 휘리릭. = _=;  

 

 

IP *.6.13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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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01:22:13 *.169.218.58

아. 대수오빠 글이다. 좋다! ^^

근데 제 이름은 미양이 아니라 미영이예요. ^^

오빠가 어지간히 급했나봐요. ㅋㅋㅋㅋㅋ

 

그저 그런 남자의 일상이 뭐 그리 '대수'라고 에서 완전 빵터졌어요~ ㅎㅎㅎㅎㅎ

오빠, 저도 한 개인의 평범함이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제 이야기들을

그렇게 미친아이처럼(!) 당당하게 200페이지 넘게 묶어서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

닮은듯 했는데,,, 이 글을 보니 우리는 너무 많이 다른 것 같기도 해요~

앞으로 글을 읽으면서 오빠를 파헤쳐봐야겠어요! ㅎ

 

근데,,, 아니아니아니 오빠아~

분명 9기 칼럼으로 대체 할 수 있다고 따로 안 써도 된다고 했는데에~

굳이! 따로 쓰시겠다고 하셨슴서... 후배골탕먹이기는 너무 억울합니다아. ㅠㅠㅠ ㅎ

한번 해 보니까 쥭것죠? ㅋㅋㅋㅋ 안되겠죠? ㅎㅎㅎㅎㅎㅎ ^^

과제를 두고 다른 글을 쓰겠다는 결심, 그 자체가 대단합니다~

애쓰셨어용! 담주 과제물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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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08:24:58 *.244.220.254

날팸의 부지깽이가...... 미영이구나!

역시 어떤 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쪼는(!)는 사람이 있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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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08:44:40 *.50.146.190

보물찾기.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미 시작되었죠.

같이, 함께, 찾아봅시다.

할 수 있어요.

아님, 그럼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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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12:15:03 *.131.45.203

회사다니지 8년. 나도 8년에 '40대는 달리 살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는데 그 숫자를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7년,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음에도 행운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보내는 해

8년, 행운은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 메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돌고도는 것임을 알고 죽을것 같은 좌절감에 빠지는 시기?

 

땟쑤님, 8년에 희망을 주세요~ 플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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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15:16:57 *.91.142.58

대수야!

 

멋진 글 잘 읽었어.

너 답고 너를 많이 느낄 수 있는 글.

역쉬... 과제의 무게에서 벗어나 쓰고싶은 얘기 쓰니까

글이 더 편안해 보인다.

 

앞으로도 재밌는 이야기 많이 들려줘.

 

이렇게 하루 하루 채우다 보면 100일도 되고 200일도 되도

1년 즈음엔 구스피릿 첫 번째 책 나오는 거 아닐까?!

 

기대 만빵입니다~김대성 작가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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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16:13:20 *.29.125.15

내가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한다면 ,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보통은 참고 살거나, 시도도 안해보는데 , 땟수님은도전하시는군요.

이야기라는 허구에  그것을 담을 수 있다면, 참 축복 받은 인생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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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6 22:24:30 *.222.10.111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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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7 05:58:15 *.153.23.18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님의 책 <편집자란 무엇인가>에서요 서문을 써 보는 일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세 번 쓴다던가 그랬어요.

인용해놓지 못해 미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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