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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11월, 2003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면 나는 차를 잘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차가 돌아다니기에 거리는 너무 복잡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특별한 의식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버스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저 좋아서 하는 일’이지요.
거리에는 볼 것이 많습니다. 거리에서 보이는 것을 즐기는 것, 이것이 내가 세상을 읽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집은 광화문에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있지만, 버스 종점이 가깝습니다. 버스를 타면 거의 언제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그러면 도로 쪽 창가로 가서 턱 앉습니다. 그 때부터 세상 즐기기가 시작됩니다. 우선 길거리의 사람들 표정을 봅니다. 나는 그들을 잘 관찰할 수 있지만, 그들은 내가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까 내 두 눈은 몰래 카메라인 셈이지요.
어떤 꼬마 놈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식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며 발로 돌맹이를 차는 듯 걷습니다. 엄마가 사달라는 걸 안 사준 모양입니다. 한 두 정거장을 가는 동안 그 놈은 다른 흥미거리를 찾겠지요.
이번에는 어떤 아가씨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 제법 예쁘고 날씬합니다. 머리가 조금 길어요. 하얀 목덜미 아래로 이어지는 젖가슴을 내밀고 엉덩이를 귀엽게 흔들면서 걷습니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아름다운 기대로 들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를 위한 사랑, 혹은 사랑 자체에 물든 가을 잎처럼 그렇게 거리를 걷습니다.
저 아저씨는 기분이 좋군요. 아마 마누라 모르는 돈이 조금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참 기분이 좋거든요. 뜻밖의 횡재라는 게 세상살 만하게 해 주니까요. 그러나 그 옆에 서 있는 남자처럼 생긴 아주머니는 기분이 별로 입니다. 나오기 전에 아저씨랑 한판 했든지, 쪼들리는 살림살이가 기분을 망쳐놓았는지도 모르지요.
간혹 미세한 얼굴관찰에 눈이 피곤해지면 거리의 간판들을 유심히 보기도 합니다. 오래된 거리의 간판은 별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는 상업거리를 지날 때면 종종 간판이 바꿔 걸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점포를 뜯어내고 다시 치장을 하는 곳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업종의 회전이 빠른 곳이지요. 새로 시작한 가게들이 어떤 종류들인지 보면 요즘 무슨 일이 괜찮은 업종으로 부상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십년째 거리가 바뀌지 않을 만큼 고착적이더니 갑자기 건축붐이 일어나는 지역도 있습니다. 뭔 일이 생긴 것이지요.
가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화가 울릴 때도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통화를 하기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엔진 소리나 정거장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이 끼어 들어 잘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밀폐된 공간을 사적인 이야기로 떠벌려 놓을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버스 안이라 잠시 후에 다시 통화하지고 말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뜨악해 하는 말소리가 느껴지는 때도 있습니다 ‘버스 안이세요 ? ' 마치 그들의 머리 속에서 버스라는 개념이 사라진 듯이 이 생경한 단어가 되물어집니다.
버스는 늘 거리를 달리지만 취직하여 자가용을 하나 사서 몰고 움직이게 된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래 전에 사용된 추억 속의 교통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버스는 역마다 서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참아야하는 ’느린 세계‘ 의 불편한 교통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종종 느린 세계를 즐깁니다. 거리를 천천히 걷고, 버스를 오르내리고, 거리를 지나는 다른 사람들의 외부로 넘치는 역사의 흔적을 유추하기도 합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철학자 데리다의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잘 이해하게 됩니다.
모든 것에는 거기에 새겨진 문자들, 즉 어떤 흔적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어떤 사람, 어떤 집, 혹은 어떤 간판 속에 새겨진 외부의 흔적을 통해 그것을 포착하려는 행위는 일종의 문자학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흔적이란 언제나 과거라는 점에서 역사이기도 하고 따라서 흔적을 읽어내는 작업은 일종의 역사학이기도 합니다. 내게 버스는 빠른 시대의 느린 세상이고, 느린 세상에서 포착한 빠른 세상의 동영상이기도 합니다.
모처럼 버스를 타게 되면 한 번 즐겁게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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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면 나는 차를 잘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차가 돌아다니기에 거리는 너무 복잡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특별한 의식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버스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저 좋아서 하는 일’이지요.
거리에는 볼 것이 많습니다. 거리에서 보이는 것을 즐기는 것, 이것이 내가 세상을 읽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집은 광화문에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있지만, 버스 종점이 가깝습니다. 버스를 타면 거의 언제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그러면 도로 쪽 창가로 가서 턱 앉습니다. 그 때부터 세상 즐기기가 시작됩니다. 우선 길거리의 사람들 표정을 봅니다. 나는 그들을 잘 관찰할 수 있지만, 그들은 내가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까 내 두 눈은 몰래 카메라인 셈이지요.
어떤 꼬마 놈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식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며 발로 돌맹이를 차는 듯 걷습니다. 엄마가 사달라는 걸 안 사준 모양입니다. 한 두 정거장을 가는 동안 그 놈은 다른 흥미거리를 찾겠지요.
이번에는 어떤 아가씨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 제법 예쁘고 날씬합니다. 머리가 조금 길어요. 하얀 목덜미 아래로 이어지는 젖가슴을 내밀고 엉덩이를 귀엽게 흔들면서 걷습니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아름다운 기대로 들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를 위한 사랑, 혹은 사랑 자체에 물든 가을 잎처럼 그렇게 거리를 걷습니다.
저 아저씨는 기분이 좋군요. 아마 마누라 모르는 돈이 조금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참 기분이 좋거든요. 뜻밖의 횡재라는 게 세상살 만하게 해 주니까요. 그러나 그 옆에 서 있는 남자처럼 생긴 아주머니는 기분이 별로 입니다. 나오기 전에 아저씨랑 한판 했든지, 쪼들리는 살림살이가 기분을 망쳐놓았는지도 모르지요.
간혹 미세한 얼굴관찰에 눈이 피곤해지면 거리의 간판들을 유심히 보기도 합니다. 오래된 거리의 간판은 별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는 상업거리를 지날 때면 종종 간판이 바꿔 걸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점포를 뜯어내고 다시 치장을 하는 곳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업종의 회전이 빠른 곳이지요. 새로 시작한 가게들이 어떤 종류들인지 보면 요즘 무슨 일이 괜찮은 업종으로 부상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십년째 거리가 바뀌지 않을 만큼 고착적이더니 갑자기 건축붐이 일어나는 지역도 있습니다. 뭔 일이 생긴 것이지요.
가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화가 울릴 때도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통화를 하기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엔진 소리나 정거장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이 끼어 들어 잘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밀폐된 공간을 사적인 이야기로 떠벌려 놓을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버스 안이라 잠시 후에 다시 통화하지고 말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뜨악해 하는 말소리가 느껴지는 때도 있습니다 ‘버스 안이세요 ? ' 마치 그들의 머리 속에서 버스라는 개념이 사라진 듯이 이 생경한 단어가 되물어집니다.
버스는 늘 거리를 달리지만 취직하여 자가용을 하나 사서 몰고 움직이게 된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래 전에 사용된 추억 속의 교통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버스는 역마다 서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참아야하는 ’느린 세계‘ 의 불편한 교통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종종 느린 세계를 즐깁니다. 거리를 천천히 걷고, 버스를 오르내리고, 거리를 지나는 다른 사람들의 외부로 넘치는 역사의 흔적을 유추하기도 합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철학자 데리다의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잘 이해하게 됩니다.
모든 것에는 거기에 새겨진 문자들, 즉 어떤 흔적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어떤 사람, 어떤 집, 혹은 어떤 간판 속에 새겨진 외부의 흔적을 통해 그것을 포착하려는 행위는 일종의 문자학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흔적이란 언제나 과거라는 점에서 역사이기도 하고 따라서 흔적을 읽어내는 작업은 일종의 역사학이기도 합니다. 내게 버스는 빠른 시대의 느린 세상이고, 느린 세상에서 포착한 빠른 세상의 동영상이기도 합니다.
모처럼 버스를 타게 되면 한 번 즐겁게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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