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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그리고 다시 중심으로, 2005년 1월을 위하여
동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 그러니까 꿀벌이나 잠자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되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처럼 세상이 조각조각 분할되어 보일까 ? 개구리는 세상을 제대로 볼까 ? 깊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2차원의 평면 위에서 물체가 왔다갔다 하는 것만 보이게 되지는 않을까 ? 개는 색깔을 구별할 수 없다하니 아마 모든 게 흑백 명암의 농도에 따라 수묵화처럼 인식될까 ? 소나 말은 어떻게 세상을 볼까 ? 생각이 여기 까지 오게되면 재미있어진다.
소나 말은 우리나 개처럼 두 눈이 정면을 향해 나란히 달려있지 않다. 양옆을 보기에 적합하게 얼굴의 양옆에 달려있다. 따라서 정면의 물체를 보는 데 익숙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물체의 움직임을 살피고 쉽게 대응하도록 구조화 되어있다. 오래 동안 살아오면서 주변에 민감해야하는 생존의 조건 때문에 초식동물들의 눈은 아마 그렇게 옆으로 가서 달리게 되었나 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홀로 1인 기업을 경영하면서 지낸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직장을 다닐 때 보다 조금 더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걸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앞만 보고 달리는 대신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멋있는 풍광들이 삶의 주변에 즐비하게 널려 있는 지를 감상하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어찌보면 인간의 시선에서 소나 말의 시선으로 옮겨가면서 앞보다는 옆, 미래보다는 오늘의 다양한 주변 경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최근 쓴 3권의 책들 역시 ‘오늘과 나’라는 미시적 공간과 개인사를 주제로 한 것이다. 오늘을 충분히 즐기는 현재적 삶 없이는 인생이 얕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이 오늘로서 완성되지 않고는 레디 메이드된 반복적 일상을 가지고 미래로 미래로 흘러가는 피상성을 떨쳐 내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오늘이 던지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주변적 풍광 그리고 한 시점에서의 심층적 내면 관찰에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새해가 되면 나는 조금 더 주변적 풍광에 머무르고 싶다. 사회나 조직의 주변에서 생겨나는 주변적 사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이 약간의 모험을 ‘탈중심화’라고 부르려고 한다. 개인을 포함하여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 가장 중요한 전통적인 신념과 지식은 중앙에 쌓아두고 보호하려한다. 그리고 가장 바깥 쪽에는 이 조직이나 사회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고와 발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경계에 울타리가 쳐져있다. 그 위험한 사상과 신념은 그 울타리의 밖에 물러나 있어야하며 그곳을 넘어오는 순간 가차없이 징벌된다. 그 울타리의 안쪽 주변부에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정식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거부되지도 않고 완전히 배제되지도 않는 사상과 신념 그리고 지식의 체계들이 존재한다. 그곳은 바로 그 사회와 조직의 서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역설적으로 한 사회나 조직의 위대한 미래는 이 주변부에서 성숙하고 무르익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면서 완전히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 창조적 영역이 바로 이 주변부다. 중심부의 전통적 가치와 신념의 체계가 가지는 최고의 약점은 혁신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지식 사회에서는 늘 새로운 것들과 함께 지내야하는 불안을 감수해야한다. 유목민들처럼 어딘가에 안주할 수 없는 나그네의 지적 모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주변부의 사상과 지식이 중심에 있는 사상들과 교류할 수 있을 때 사회와 조직은 기존의 지식에 갇히는 보수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변부의 새로운 지식이나 발상이 갖는 역동성이 혁신에 취약한 중심부를 자극하고 일깨우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기존의 사상과 지식보다는 새로 태동하고 있는 주변적 모색과 실험에 주목하려한다. 소나 말이 가지는 넓은 주변 시야를 동경한다는 뜻이다.
주변적 생각들은 그러나 늘 주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중심에 위치한 기존의 사회적 규범과 지적 체계가 새로운 현상들을 해석할 수 없이 진부화 될 때, 이것을 대신해 줄 새로운 패러다임은 늘 이 주변적 공간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주변적 인물과 주변적 사고는 이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의 탄생과 함께 중심으로 진입하게 된다. 예를 들면 대학을 중퇴한 인물이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고, 해커였던 인물이 유능한 경영자가 되고, 특허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지적 지진아가 20세기 최고의 과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무대의 중심으로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입했다. 그리고 선진국들을 추종하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제 추종에는 기회가 없다. 지금부터 한국은 스스로의 지식을 새롭게 창출해 냄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야한다. 이제 벤치마킹이라는 말은 무덤으로 보내야한다. 베낀 지식으로는 리더십을 잡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새로운 지적 시도들을 끌어 모으고, 실험과 모색을 통해 몇 가지 강점 분야에서 한국적 기준과 룰이 세계적 표준으로 자리잡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지구적 경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새해에는 거푸집에 넣고 찍어내는 국화빵이 되지 말자. 새해에는 내 인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자. 내가 사회의 중심에 있지 못하는 주변적 인물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오히려 자유롭게 사고하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꿈꾸는 사회적 서자임을 자랑하자.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자. 내가 다르기 때문에 유일한 사회적 자산이듯, 그 사람도 나와 다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는 유일함임을 인정하자. 새해에는 말도 되고 소도 되어보자. 물론 닭띠니까 닭도 되어보자. 지금 가졌던 시선 말고 또 다른 시선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세상을 바라보자. 마음껏 우리의 주변을 즐기며 새로운 나를 실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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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 그러니까 꿀벌이나 잠자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되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처럼 세상이 조각조각 분할되어 보일까 ? 개구리는 세상을 제대로 볼까 ? 깊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2차원의 평면 위에서 물체가 왔다갔다 하는 것만 보이게 되지는 않을까 ? 개는 색깔을 구별할 수 없다하니 아마 모든 게 흑백 명암의 농도에 따라 수묵화처럼 인식될까 ? 소나 말은 어떻게 세상을 볼까 ? 생각이 여기 까지 오게되면 재미있어진다.
소나 말은 우리나 개처럼 두 눈이 정면을 향해 나란히 달려있지 않다. 양옆을 보기에 적합하게 얼굴의 양옆에 달려있다. 따라서 정면의 물체를 보는 데 익숙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물체의 움직임을 살피고 쉽게 대응하도록 구조화 되어있다. 오래 동안 살아오면서 주변에 민감해야하는 생존의 조건 때문에 초식동물들의 눈은 아마 그렇게 옆으로 가서 달리게 되었나 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홀로 1인 기업을 경영하면서 지낸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직장을 다닐 때 보다 조금 더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걸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앞만 보고 달리는 대신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멋있는 풍광들이 삶의 주변에 즐비하게 널려 있는 지를 감상하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어찌보면 인간의 시선에서 소나 말의 시선으로 옮겨가면서 앞보다는 옆, 미래보다는 오늘의 다양한 주변 경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최근 쓴 3권의 책들 역시 ‘오늘과 나’라는 미시적 공간과 개인사를 주제로 한 것이다. 오늘을 충분히 즐기는 현재적 삶 없이는 인생이 얕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이 오늘로서 완성되지 않고는 레디 메이드된 반복적 일상을 가지고 미래로 미래로 흘러가는 피상성을 떨쳐 내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오늘이 던지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주변적 풍광 그리고 한 시점에서의 심층적 내면 관찰에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새해가 되면 나는 조금 더 주변적 풍광에 머무르고 싶다. 사회나 조직의 주변에서 생겨나는 주변적 사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이 약간의 모험을 ‘탈중심화’라고 부르려고 한다. 개인을 포함하여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 가장 중요한 전통적인 신념과 지식은 중앙에 쌓아두고 보호하려한다. 그리고 가장 바깥 쪽에는 이 조직이나 사회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고와 발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경계에 울타리가 쳐져있다. 그 위험한 사상과 신념은 그 울타리의 밖에 물러나 있어야하며 그곳을 넘어오는 순간 가차없이 징벌된다. 그 울타리의 안쪽 주변부에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정식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거부되지도 않고 완전히 배제되지도 않는 사상과 신념 그리고 지식의 체계들이 존재한다. 그곳은 바로 그 사회와 조직의 서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역설적으로 한 사회나 조직의 위대한 미래는 이 주변부에서 성숙하고 무르익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면서 완전히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 창조적 영역이 바로 이 주변부다. 중심부의 전통적 가치와 신념의 체계가 가지는 최고의 약점은 혁신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지식 사회에서는 늘 새로운 것들과 함께 지내야하는 불안을 감수해야한다. 유목민들처럼 어딘가에 안주할 수 없는 나그네의 지적 모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주변부의 사상과 지식이 중심에 있는 사상들과 교류할 수 있을 때 사회와 조직은 기존의 지식에 갇히는 보수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변부의 새로운 지식이나 발상이 갖는 역동성이 혁신에 취약한 중심부를 자극하고 일깨우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기존의 사상과 지식보다는 새로 태동하고 있는 주변적 모색과 실험에 주목하려한다. 소나 말이 가지는 넓은 주변 시야를 동경한다는 뜻이다.
주변적 생각들은 그러나 늘 주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중심에 위치한 기존의 사회적 규범과 지적 체계가 새로운 현상들을 해석할 수 없이 진부화 될 때, 이것을 대신해 줄 새로운 패러다임은 늘 이 주변적 공간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주변적 인물과 주변적 사고는 이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의 탄생과 함께 중심으로 진입하게 된다. 예를 들면 대학을 중퇴한 인물이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고, 해커였던 인물이 유능한 경영자가 되고, 특허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지적 지진아가 20세기 최고의 과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무대의 중심으로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입했다. 그리고 선진국들을 추종하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제 추종에는 기회가 없다. 지금부터 한국은 스스로의 지식을 새롭게 창출해 냄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야한다. 이제 벤치마킹이라는 말은 무덤으로 보내야한다. 베낀 지식으로는 리더십을 잡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새로운 지적 시도들을 끌어 모으고, 실험과 모색을 통해 몇 가지 강점 분야에서 한국적 기준과 룰이 세계적 표준으로 자리잡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지구적 경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새해에는 거푸집에 넣고 찍어내는 국화빵이 되지 말자. 새해에는 내 인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자. 내가 사회의 중심에 있지 못하는 주변적 인물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오히려 자유롭게 사고하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꿈꾸는 사회적 서자임을 자랑하자.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자. 내가 다르기 때문에 유일한 사회적 자산이듯, 그 사람도 나와 다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는 유일함임을 인정하자. 새해에는 말도 되고 소도 되어보자. 물론 닭띠니까 닭도 되어보자. 지금 가졌던 시선 말고 또 다른 시선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세상을 바라보자. 마음껏 우리의 주변을 즐기며 새로운 나를 실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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