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7471
- 댓글 수 4
- 추천 수 0
행동 경제학, 도모노 노리노, 지형, 2007년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를 알 것이다.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좋아했다. 키우는 원숭이 수가 많아지자 먹이를 대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원숭이들을 불러 놓고,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이 화를 내며 아침에 도토리 세 개를 먹어서는 배고파 못산다고 항의했다. 저공이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는 고사다. 이 이야기는 속임수에 속은 어리석은 원숭이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상황을 놓고 우리가 이들 원숭이와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 보자.
일을 잘한 당신에게 사장이 100만원의 보너스로 주기로 했다. 그리고 사장이 지금 받을 것인지 1년 후에 받을 것인지를 물었다고 하자.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 보나마나 지금 받겠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100 만원의 가치가 1년 후 100 만원의 가치 보다 크기 때문이다. 얼마나 클까 ?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이자율이 5 % 라 가정하면 (경제학자들은 가정 없이는 말하지 않는다) 지금의 100만원은 1년 후 105만원과 같다. 따라서 지금의 100 만원이 1년 후 100 만원 보다 5만원만큼 더 가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의 100만원을 선택하게 된다고 가정한다. 옳은 이야기다. 여기 까지는 나도 동의한다. 원숭이들도 아침에 일단 많이 먹어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안 모양이다.
이제 또 물어 보자. 당신의 6년간 급여 총액은 정해져 있고 두 가지 봉급 체계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 봉급체계는 처음에는 임금이 낮은 편이지만 점점 상승하는 패턴을 취한다. 두 번째는 처음에는 봉급이 높지만 점점 더 하락하는 패턴을 갖는다. 당신은 어떤 패턴을 선택할까 ? 아마 점점 월급이 오르는 상승패턴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일까 ? 아니다. 합리적 관점에서는 초봉이 높고 그 후 조금씩 하강하는 패턴이 당연히 유리하다. 입사 초기에 받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기도 좋고, 도중에 퇴직하더라도 그 시점까지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하강 패턴을 선택한 사람은 12 %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비합리적인 선택이 선호되는 것일까 ?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손실회피성향이다. 즉 지금의 높은 임금이 준거가 되면 다음 번 임금이 감소하는 만큼을 손실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이 패턴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심리적 판단이다.
소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추천에 의해 당첨된 사람에게 무료 저녁식사 초대권을 준다고 하자. 상품은 두 종류다. 하나는 ‘한 달 후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두 달 후 주말 동네 라면집에서 식사할 수 있는 티켓’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순서가 바뀌어 ‘한 달 후 동네 라면 집에서 식사하고, 두 달 후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에서 무료 식사를 하도록 되어 있는 티켓이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티켓을 고를까 ? 후자를 골랐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에 의하면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70%에 달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 ‘기분 좋은 기다림’이라는 심리적 요인이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소비 패턴이나 임금 체계 모두에서 사람들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기 보다는 ‘점점 좋아진다’는 심리적 안심과 희망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익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뿐 아니라 아직 발생하지 않는 이익을 기대할 때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의 선택과 관련하여 합리적 판단에 기초한 주류 경제학에 이의를 제기하고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경제적 판단에 접목시켜 이해하려는 노력들은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내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본능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고 생각을 해왔다. 주류 경제학 역시 아담 스미스 이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 경제 할동을 해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다니엘 커너먼은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이 반드시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 준 합리적 경제 이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심리학적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는 지를 보여주고, 그 결과로 어떤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는 지를 연구하였다. 2002년 커너먼은 행동 경제학 연구의 공을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도모노 노리오라는 일본인 학자가 쓴 커너먼의 행동 경제학에 대한 입문서인데, 비전문인이 읽기 쉽도록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종종 도표와 그래프들이 등장하지만 주눅들 것 없다. 머리 아프면 건너 띄고 읽어도 별 무리 없다. 이 책의 장점은 읽은 다음에 우리가 일상에서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비합리성에 대한 그럴 듯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데 있다. 내가 왜 그랬을까 ? 혹은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 이런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질문에서부터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 ? 라는 사회적 질문에 이르기 까지 그럴 듯한 가정과 대답들을 얻어 낼 수 있다.
경제가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고 가정한 주류 경제학으로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던 현상들을 해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감정과 직관에 의거한 가설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이 책의 부제로 ’경제를 움직이는 인간 심리의 모든 것‘이라는 과장된 문귀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계산에서 감정으로‘ 옮겨가는 우리 시대의 수요 변화에 잘 부응한 책으로 읽힐 수 있다. 쉽게 쓰긴 했지만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대목들이 암초처럼 머리를 들고 나오는 경우가 꽤 있다. 지적 탐험을 즐기는 마음으로 여러 수수께끼들을 풀어 가고 이 속에 예시된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질문해 가며 읽으면 좋은 책이다.
IP *.128.229.88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를 알 것이다.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좋아했다. 키우는 원숭이 수가 많아지자 먹이를 대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원숭이들을 불러 놓고,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이 화를 내며 아침에 도토리 세 개를 먹어서는 배고파 못산다고 항의했다. 저공이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는 고사다. 이 이야기는 속임수에 속은 어리석은 원숭이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상황을 놓고 우리가 이들 원숭이와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 보자.
일을 잘한 당신에게 사장이 100만원의 보너스로 주기로 했다. 그리고 사장이 지금 받을 것인지 1년 후에 받을 것인지를 물었다고 하자.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 보나마나 지금 받겠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100 만원의 가치가 1년 후 100 만원의 가치 보다 크기 때문이다. 얼마나 클까 ?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이자율이 5 % 라 가정하면 (경제학자들은 가정 없이는 말하지 않는다) 지금의 100만원은 1년 후 105만원과 같다. 따라서 지금의 100 만원이 1년 후 100 만원 보다 5만원만큼 더 가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의 100만원을 선택하게 된다고 가정한다. 옳은 이야기다. 여기 까지는 나도 동의한다. 원숭이들도 아침에 일단 많이 먹어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안 모양이다.
이제 또 물어 보자. 당신의 6년간 급여 총액은 정해져 있고 두 가지 봉급 체계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 봉급체계는 처음에는 임금이 낮은 편이지만 점점 상승하는 패턴을 취한다. 두 번째는 처음에는 봉급이 높지만 점점 더 하락하는 패턴을 갖는다. 당신은 어떤 패턴을 선택할까 ? 아마 점점 월급이 오르는 상승패턴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일까 ? 아니다. 합리적 관점에서는 초봉이 높고 그 후 조금씩 하강하는 패턴이 당연히 유리하다. 입사 초기에 받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기도 좋고, 도중에 퇴직하더라도 그 시점까지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하강 패턴을 선택한 사람은 12 %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비합리적인 선택이 선호되는 것일까 ?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손실회피성향이다. 즉 지금의 높은 임금이 준거가 되면 다음 번 임금이 감소하는 만큼을 손실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이 패턴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심리적 판단이다.
소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추천에 의해 당첨된 사람에게 무료 저녁식사 초대권을 준다고 하자. 상품은 두 종류다. 하나는 ‘한 달 후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두 달 후 주말 동네 라면집에서 식사할 수 있는 티켓’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순서가 바뀌어 ‘한 달 후 동네 라면 집에서 식사하고, 두 달 후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에서 무료 식사를 하도록 되어 있는 티켓이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티켓을 고를까 ? 후자를 골랐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에 의하면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70%에 달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 ‘기분 좋은 기다림’이라는 심리적 요인이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소비 패턴이나 임금 체계 모두에서 사람들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기 보다는 ‘점점 좋아진다’는 심리적 안심과 희망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익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뿐 아니라 아직 발생하지 않는 이익을 기대할 때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의 선택과 관련하여 합리적 판단에 기초한 주류 경제학에 이의를 제기하고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경제적 판단에 접목시켜 이해하려는 노력들은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내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본능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고 생각을 해왔다. 주류 경제학 역시 아담 스미스 이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 경제 할동을 해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다니엘 커너먼은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이 반드시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 준 합리적 경제 이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심리학적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는 지를 보여주고, 그 결과로 어떤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는 지를 연구하였다. 2002년 커너먼은 행동 경제학 연구의 공을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도모노 노리오라는 일본인 학자가 쓴 커너먼의 행동 경제학에 대한 입문서인데, 비전문인이 읽기 쉽도록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종종 도표와 그래프들이 등장하지만 주눅들 것 없다. 머리 아프면 건너 띄고 읽어도 별 무리 없다. 이 책의 장점은 읽은 다음에 우리가 일상에서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비합리성에 대한 그럴 듯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데 있다. 내가 왜 그랬을까 ? 혹은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 이런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질문에서부터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 ? 라는 사회적 질문에 이르기 까지 그럴 듯한 가정과 대답들을 얻어 낼 수 있다.
경제가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고 가정한 주류 경제학으로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던 현상들을 해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감정과 직관에 의거한 가설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이 책의 부제로 ’경제를 움직이는 인간 심리의 모든 것‘이라는 과장된 문귀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계산에서 감정으로‘ 옮겨가는 우리 시대의 수요 변화에 잘 부응한 책으로 읽힐 수 있다. 쉽게 쓰긴 했지만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대목들이 암초처럼 머리를 들고 나오는 경우가 꽤 있다. 지적 탐험을 즐기는 마음으로 여러 수수께끼들을 풀어 가고 이 속에 예시된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질문해 가며 읽으면 좋은 책이다.
댓글
4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23 | 굿바이, 게으름 [10] | 구본형 | 2007.02.12 | 9831 |
322 | 꽃은 하루 밤 사이에 피고 버드나무는 하루 밤 사이에 푸르러 진다. [2] | 구본형 | 2007.03.12 | 6891 |
321 | 컬처 코드- 미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가볍지만 설득력 있는 재미있는 재담 [3] | 구본형 | 2007.03.12 | 6724 |
320 | 왜 직장인들은 자신의 일에 고도의 열정을 투입하기 어려울까 ? [3] | 구본형 | 2007.03.12 | 7921 |
319 | 집중하는 즐거움 [9] | 구본형 | 2007.03.12 | 8333 |
318 |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오병곤 지음 [3] | 구본형 | 2007.03.15 | 6579 |
317 | 사람 사이에 긍정적 관계를 만들어 내는 몇 가지 방법 [2] | 구본형 | 2007.04.12 | 7299 |
» | 행동 경제학 [4] | 구본형 | 2007.04.12 | 7471 |
315 | 상사의 분노에 대응하는 법 [8] | 구본형 | 2007.04.12 | 10325 |
314 | 미침에 대하여 [4] | 구본형 | 2007.05.16 | 7134 |
313 | 상사의 말 중에서 절대로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되는 것들 [4] | 구본형 | 2007.05.16 | 8738 |
312 | 천천히 그러나 탁월하게 [4] | 구본형 | 2007.05.16 | 7489 |
311 | 다름, 그 위대한 위안에 대하여 [14] | 구본형 | 2007.05.16 | 8208 |
310 | 두번째 스무살 [4] | 구본형 | 2007.05.19 | 7233 |
309 |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2] | 구본형 | 2007.06.20 | 6674 |
308 | 한번 틀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하는 법 [8] | 구본형 | 2007.06.20 | 14848 |
307 | 화술, 내 입과 귀는 다른 사람과 달라요 [5] | 구본형 | 2007.06.20 | 7124 |
306 | 경영여건이 불확실할수록 강점을 강화하고 혁신에 치중하라 [3] | 구본형 | 2007.07.21 | 6943 |
305 | 네가 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세워라 [2] | 구본형 | 2007.07.21 | 7271 |
304 | 돈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지 마라 [3] | 구본형 | 2007.07.21 | 72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