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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0일 09시 48분 등록
화술, 내 입과 귀는 다른 사람과 달라요 - 행복한 동행, 6월

한 여인이 내게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짧은 편지를 더 짧게 정리하면 남편의 화술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말솜씨가 없어 직장에서 매우 어려워하는 것 같다면서 말 잘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없는 지 물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남편의 문제점을 옮겨 적어 주었다면 더 구체적인 답이 가능할 텐데 그렇지 못해 답을 미루어 두었습니다.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로 마음을 전하는데도 역시 요령과 비법이 있습니다. 질문이 넓고 모호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라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빌어 말하는 법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달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을 못하지만 쉽게 마음을 얻어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이 정말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지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어당팔’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어리숙한 사람이 당수 팔단’이라는 말을 줄여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이 분은 말을 조금 더듬습니다. 달변과는 거리가 먼 분이지요. 사람들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더듬는 그의 스피드에 조마조마 하다가 느닷없은 반전에 홀딱 넘어가곤 합니다. 이 분은 말을 못하지만 유머 감각이 뛰어 납니다. 특히 비유를 매우 잘합니다. 그 비유가 매우 적절하여 사람들은 갑자기 마음을 트고 웃고 맙니다. 그에게 말솜씨는 곧 유머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화술은 곧 정성입니다. 또 어떤 누구에게는 화술이란 곧 현란한 지식이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화술은 곧 침묵이기도 합니다. 말을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특성을 살려 상대의 마음을 얻으면 그것이 화술의 정수가 되는 법입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면 몇 가지 화술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말을 못하면 듣는 법을 강화하세요. 가장 좋은 듣기는 잘 질문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매우 과묵한 사람입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 합니다. ‘귀 두개 입 하나의 법칙’을 잘 따르는 사람입니다. 말을 잘 들어 주다가 적절한 때에 한 두가지 좋은 질문을 던집니다. 좋은 질문은 상대를 신나게 합니다. 열심히 떠드는 상대가 실컷 타오를 수 있도록 불길질을 하는 것이지요. 자신은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 대화는 즐겁게 끝나게 마련입니다. 아주 경제적인 방법이지요.

질문을 잘하려면 다음과 같이 간단한 요령을 익혀두면 좋습니다. 잘 듣다 보면 어떤 의문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 의문은 다른 사람들도 들게 마련이지요. 그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 속으로 ‘그래 그래 그거 나도 궁금했어’라고 동의하게 되지요. 질문하나로 당신이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질문할 때는 간결하게 하세요. 너무 길게 물어 보지 마세요. 간결한 말에 많은 지혜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난을 하거나 부정적인 질문은 특별히 그래야할 목적이 없다면 하지 마세요. 날카로운 말처럼 상처를 남기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짧고 알기 쉽게 물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렵고 길게 물어 보면 대화의 맥이 끊어집니다.

둘째, 말할 때는 초점을 늘 맞추세요.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들의 하나는 말하고자하는 요지가 분산되거나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저것을 이야기하는 데 그 주제가 얽히고 섞여 혼란스럽고, 표현이 명료하지 못해 그 내용이 모호하면 그 다음 부터는 청중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말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먼저 말하고자하는 내용의 초점을 정하기 바랍니다. 한 번에 하나씩 이야기하고 하나씩 차례로 분명하게 전달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분명한 전달을 위해서는 사례를 드는 것이 좋습니다. 적절한 사례는 상황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만들어 줍니다.

셋째, 사람들을 잘 관찰하여 좋은 점들을 수집하세요. 배움은 늘 약간의 땀을 필요로 합니다. 주위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어떤 때 당신의 마음을 훔쳐가는 지 잘 관찰해 보세요. 그리고 ‘언제 어떤 때 어떤 톤의 말’이 적절한지 정리해 보세요. 우선 열 개만 모아 보기 바랍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도 좋고, 앞으로 이런 관심을 가지고 대화에 집중해 보아도 좋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현상을 보면 갑자기 세상이 재미있어 집니다. 세상이 시시하고 심드렁한 이유는 잘 들여다보지 않아서입니다. 공부는 그래서 재미있게 노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되고, 보이면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배움의 즐거움이지요.

이렇게 여러 구체적 사례를 통해 배우고 이중에서 ‘나도 잘해 낼 수 있는 방법’을 몇 개 골라 집중적으로 연습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나만의 요령을 터득하게 됩니다.

넷째, 대화의 소재를 풍부하게 해야 합니다. 언제나 같은 줄만 연주하는 첼로 연주자는 지루합니다. 다양하고 질 높은 대화의 소재를 원하면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관심이 가는 분야의 좋은 책들을 잘 읽어 두면 내용의 깊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좋은 사례나 문장이 나올 때 마다 밑줄을 쳐 기록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책을 읽으며 약간의 공을 들이는 것이지요. 책을 읽다 무릎을 치게하는 아이디어와 표현을 잘 모아두면 요긴하게 써먹게 됩니다. ‘이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해주면 기막히겠구나’라는 생각은 책읽기의 즐거움 배가 시켜줍니다. 그 내용을 기억하여 적절한 때에 잘 활용하는 것이야 말로 좋은 내용을 잊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 가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콘텐츠가 모자라면 대화는 지루해 집니다. 말을 잘 못하는 절반 이상의 이유는 콘텐츠의 빈곤에 있습니다. 그 콘텐츠의 대부분을 TV 프로그램으로 채우지 말고, 책을 잘 활용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화의 가장 중요한 비밀은 눈에 있습니다. 눈은 이해할 수도 있고 많은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상대의 마음으로 파고듭니다. 프랭클린은 그래서 ‘네가 말할 때는 다른 사람의 눈을 보고, 다른 사람이 네게 말할 때는 그 사람의 입을 보라’고 조언합니다. 진심을 전하고 싶으면 눈을 공략하세요.

말하는 것은 안에 쌓여 있는 것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포장술이 조금 딸려도 내용이 있으면 듣는 이가 주의를 기우려 듣게 됩니다. 평소에 적절한 정보와 지식을 머리 속에 잘 정리해 두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질에 맞도록 표현하는 약간의 훈련을 하기 바랍니다. 어눌하면 어눌한 대로, 더듬으면 더듬는 대로, 약간 촌스러우면 촌스러운 대로 자신의 특징을 살려 내용을 잘 포장하면 듣는 이에게 특별한 감흥을 줄 수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습니다. 말은 음식과 같아서 소식이 좋습니다. 그러나 말을 잘 못하면 빈약한 식탁처럼 삶의 즐거움은 반감됩니다. 서머싯 모음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만찬에서는 현명하게 먹되 너무 잘 먹지 말고, 말은 잘하되 너무 현명하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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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윤
2007.06.21 11:40:22 *.199.250.119
오늘 나는 거울로 입모양 을 봅니다. 그리고 귀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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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2007.08.16 22:19:01 *.155.44.56
직장에서 업무의 일환으로 타 기관에 강의를 해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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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2008.09.08 19:36:44 *.254.112.119
"말은 잘하되 너무 현명하게 해서는 안된다.”

저는 제가 말을 잘한다고 생각을 안 했는데 그런 것 같습니다.

말을 많이함으로써 잃은 것은 결국 사람이 되더이다.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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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6 19:08:11 *.212.217.154

진심을 담긴 말은 그 누구에게나 통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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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12:48:13 *.212.217.154

저도 말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조금은 어눌하여도

진정성 있는 내용이라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데에 충분하겠지요.


화려한 언변보다

촌스럽지만 진심있는 내용으로 말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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