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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10시 26분 등록

나의 인생 <시와 진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최은희 옮김

동서문학사

 

1. 지은이에 대하여

괴테 (1949-1832)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 겸 자연연구가.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저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 《파우스트》 등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출생.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고,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아버지는 법률가이며 제실고문관으로서 엄격한 성격이었으며, 시장의 딸인 어머니는 명랑하고 상냥하여 아들의 좋은 이해자였다. 7년전쟁(17561763) 때에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평화롭고 부유했던 괴테의 집도 프랑스 민정장관의 숙사가 되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계획 역시 중단되었으나, 괴테는 자유롭게 프랑스의 문화에 접할 기회를 얻었으며, 15세 때 그레트헨과의 첫사랑을 경험하였다
.
 
1765
년에 라이프치히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다가, 1768년 각혈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였다. 그 무렵에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머니의 친구인 크레텐베르크의 감화로 경건파의 신앙에 접근하였다. 그녀는 후일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의 모델이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머무르면서 J.G.헤르더를 알게 되어 종래의 로코코 취미의 문학관은 철저히 분쇄당하고,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감정의 순수성에 시의 본질을 구하려는 노력이 《들장미》의 가작을 낳게 하였다
.
 
이 무렵 근처 마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목가적인 사랑을 하였고 약혼까지 하였으나, 결국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하였다. 그 후 회한과 마음의 부담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겪은 내적 체험이 훗날 그의 시의 주제가 되었다. 1771년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서 변호사업을 개업하였고, 1772년에는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 때 샬로테 부프와의 비련을 겪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을 썼는데, 이 작품으로 일약 문단에서 이름을 떨쳤고, 독일적 개성해방의 문학운동인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
 
1775
년에 바이마르 공국의 젊은 대공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을 쌓는 한편, 지질학 ·광물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1784,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던 간악골을 발견하여(죽기 1년 전에 학회에서 인정되었음)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무렵 괴테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 12년에 걸친 연애를 하여, 부인으로부터 인간적 및 예술적 완성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남으로써 부인과의 애정관계는 끝을 맺었다
.
 
이탈리아에서는 수업하는 화가로서의 생활을 보내면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 《에흐몬트 Egmont(1787) 등을 써서 슈타인 부인에게 바쳤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에의 지향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
 
1788
년에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조화업을 하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하면서(정식 결혼은 l806),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 무렵에 그는 시인과 궁정인의 갈등을 그린 희곡 《타소 Torquato Tasso(1789), 관능의 기쁨을 노래한 《로마 애가》(1790)를 발표하였다. 과학논문 《식물변태론》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1791년에는 궁정극장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 때부터 고전주의 연극활동이 시작되었다
.
 
한편, 1789년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다. 1794년부터 그는 J.C.F.von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 Horen》에 협력하여 굳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 Faust》의 재착수,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 시절 Wilhelm Meisters Lehrjahre(1796)의 완성,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1797)의 발표 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
 
1797
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에 공동작의 단시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를 경작하여, 1797년은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세계문학의 제창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
 
만년의 문학작품으로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1829)와 《파우스트》의 완성이 최고봉을 이룬다. 전자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는 한 인간의 생애가 전인류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드라마이다. 《파우스트》는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걸작의 하나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였던 괴테는 만년에도 세 차례의 연애를 체험하였다
.
 
그 하나는 미나 헤르츨리프와의 사랑으로서, 이 소녀를 모델로 하여 소설 《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1809)을 썼다. 또 하나는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 Westöstlicher Divan(19)이 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마리엔바더로 피서여행을 갔다가 74세의 노령으로 19세의 처녀 우를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랑은 거절되었으나, 그 연모의 정이 시집 《마리엔바더의 비가》(1823)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만년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1829)과 자서전인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1833) 등이 있다
.
 
또한 그의 광학 연구의 결정인 《색채론 Zur Farbenlehre》이 1810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뉴턴의 이론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들어 있어 순학문적인 견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탁월한 관찰과 견해가 많이 보이고 있다. 괴테는 문학작품이나 자연연구에 있어서, 신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 세계관을 전개하였으며, 그의 종교관은 범신론적 경향이 뚜렷하지만, 복음서의 윤리에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2. 가슴을 무찔러 오는 글귀 (첨부 참조)

 

3. 내가 저자라면

 

저자에 대하여

 

괴테 자서전, 어렵게 읽었다.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책과 당대 지식인이  등장하는 괴테의 자서전을 읽으며 끝임없이 나를 뒤따라 온 감정, '재미가 없다' '공감이 가지를 않는다' 또한 잘 모르겠다. 그가 흡수한 당대의 독일 문학, 나아가 유럽 문화를 잘 모르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도 괴테는 자서전의 제목에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는 축을 설명해 놓았다. "시와 진실" 나의 언어로 풀어 쓴다면 1. 괴테는 진심으로 시를 사랑했다. 2. 모든 것에서 진실을 보려 했다.  이 두 가지 키워드로 다시 괴테 자서전을 떠 올려본다. 괴테라는 한 사나이의 인생이 살포시 떠오른다.

 

시는 논리를 넘어선다. 우주의 주파수가 어느 순간 시인의 영혼이라는 안테나에 잡힐 때, 시인은 주파수를 마치 진동측정기처럼 적어내려갈 뿐이다. 진실로 투명하게 자신을 드려다볼 때 가능한 작업이 시를 쓰는 시인의 삶이리라.

 

괴테는 유복했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좋은 스승으로부터 다채로운 최고급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늘 풍복하게 받으며 살았다. 정치 법 건축 종교 문학 역사 라틴어 등등의 교육은 괴테의 유년기부터 비옥한 토양이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괴테 자신은 진심으로 시를 사랑하고 자신의 영혼이 뿜어내는 목소리에 정직했다. 연인 앞에서 정직하면 사랑이 커져갔고,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노래소리에 정직하면 시가 창조되었다.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괴테보다는 좀더 쉽게 쓰겠다. 또한 내가 연수원 커리큘럼을 짠다면 괴테자서전 보다는 파우스트 라는 괴테 최고의 작품을 먼저 읽도록 하겠다.

 

2013-09-09

坡州 雲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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