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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6일 01시 54분 등록

<북리뷰 5-3주차>

 

2013.09.15.

: 서 은 경

 

 

 

(No. 18)

 

버트런드 러셀  [러셀 자서전-] 사회평론 (2011)

 

                                                      

 

 

 

                                                                              자서전상.jpg 

 

                                                                             @ 2003310일 초판

   

 

 

                                                                                                         

경험하고 부딪히며 깨뜨리려 한 자!

 그런 자만이

낡은 관습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 하나 챙겨 쥘 수 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 처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다보면

내 가슴도 그대의 가슴도

또 나와 그대 주변의 누군가도

너덜너덜한 상처 훈장을 몇 개 씩 달게 된다.

 

 

상처가 두려우니?

그럼 그냥 살면 된다.

 

부끄럼 없이 살아서살고 싶니?

그럼, 민낯 그대로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을지니,

선택의 문제!

 

필요한 것은

용기

또는 포기 뿐.....

 

* * *

 

 

 

 

 

 

 

 

1. 작가 소개

 

 

 

 

러셀흑백.jpg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

 

 

 

 

*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다.

1872년에서 1970년까지, 19세기와 20세기를 걸치며 거의 백 년을 살았으니 부딪히고 깨뜨리고 경험하며인간사를 탐구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다.

 

 

 

인류의 고통에 대한 끝없는 연민을 느꼈던 러셀.

 

문제점을 그저 느끼기에만 거치지 않고 전 세계 이곳저곳 다니며 세상 부조리를 알리고 훈수 두고 의견 맞는 사람을 모아 팀을 갖추어, 자기 이익만 챙기는 무리들과 맞짱 뜨는 실천파 지식인이다. 그의 행동의 원천은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그의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는 사회변혁운동가이다. 러셀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수성은 때론 자유주의자로, 때론 무정부주의자로, 때론 사회주의자로, 그리고 평화주의자로 사유와 회의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변화시켜 나간다.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 발발하자 징병반대’, ‘원자 수소폭탄사용 금지운동에 나선다. 1962년에는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쿠바 위기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문제에도 적극 개입한다.

 

197022, 98세의 나이로 그가 죽는다.

그러나 그 다음날 카이로에서는, ‘중동의 위기에 대한 그의 성명이 세상에 낭독된다. 사회변혁과 평화,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죽는 날까지 현역이었다.

 

사회운동러셀.jpg

                                                             @ 핵무기 반대 시위에 나선 89세의 러셀(왼쪽)과 그의 아내 @

 

 

 

어린 시절부터 지식에 대한 탐구욕이 높았던 러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철학, 수학,과학, 윤리학, 사회학, 교육학, 역사학, 정치학, 논쟁술 등 40 여 권 이상의 책을 내고 다수의 논문을 쉬지 않고 출간한다. 그리고 1950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매일 같이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글을 3,000 단어 이상 썼다고 한다. 그의 성실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비상한 기억력과 독립심, 경제적으로 안정된 귀족집안 출신인 덕분에 누렸던 교육적 혜택은 그가 지적인 탐구에 보다 더 몰두 할 수 있도록 돕지 않았을까?

 

 

 

                                                                                            유년기 러셀.jpg

                                                                                              @ 러셀의 어린 시절 @

 

 

 

 

그 누구보다 사랑에 대한 갈망이 짙었던 러셀.

 

23, 49, 51, 65.

네 숫자는 러셀이 결혼한 나이다.

여러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며 뜨겁게 낭만적 사랑을 즐겼고, 4번 결혼하고 3번 이혼한 러셀.때론 도덕을 뛰어넘고 때론 넘어설 수 없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 사랑, 결혼에 대한 기존의 틀을 깨고자 자신을 던진다.

 

자신의 체험을 고스란히 담아서 책, <Marriage and Morals>를 쓴다. 그는 남녀 모두에게 억압적이지 않는 성, 사랑, 결혼의 방정식을 찾고자 노력한다. 호색가, 위선자, 편협한 사람이라는 세상의 질타와 비난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그는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

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러셀의 세상 변혁에 대한 갈망과 용기, 그리고 행동하는 실천력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하루를 살아도 민낯을 드러내며자신에게 진실하고 당당하게 살았던 러셀!

 

그의 주변에는 늘 상처와 공격이 따라 다니지만, 세상이 보다 온정적인 곳이 되기를 열렬히 소망하고 노력했기에 그는 분명, ‘다수의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는진정성이 살아있는 지성인이 아닐까.

 

 

 

 

 

<러셀 연표>

 

1872 518, WalesTrelleck 귀족 집안에 출생. 조부, 자유당 수상 역임

 

18753세에 부모를 여의고 조부 댁에서 자람 (18-23)

 

1890~

1895 Cambridge대학의 Trinity College에서 수학과 철학 전공

 

1911 Royal Society 회원

 

1940 New York 주립 대학 초청 교수의 부임 좌절

 

1950노벨문학상 수상

 

1951 Oder of Merit 수상

 

1959핵무장 반대 운동

 

1955Einstein-Russell Manifest 발기

 

1965Labour Party의 당원

 

1966 Vietnam Tribunat 창설

 

1970 22, WalesPenrhydendraeth에서 사망 

 

 

 

 

<러셀 저서>

 

 

1912 철학이란 무엇인가(권오석 역, 2008) / 철학의 문제들(박영태 역, 2000)

1916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이순희 역, 2010)

1919년 수리철학의 기초

 

1922년 러셀 북경에 가다(이순희 역, 2009)

1925년 상대성 이론의 참뜻(김영대 역, 1997)

1925년 나는 믿는다

1926년 러셀의 자녀교육론

1927년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이재황 역, 1996)

1928년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김경숙 역, 2008)

1929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김영철 역, 1997) / 결혼과 성(상동, 2004)

1930 러셀의 행복론(황문수 역, 2001) / 행복의 정복 (이순희 역, 2005)

 

1935년 게으름에 대한 찬양(송은경 역, 1997)

1935년 종교와 과학(김이선 역, 2011)

1938년 권력 (안정효 역, 2003)

1940년 의미와 진리의 탐구(임병수 역, 1990)

 

1945년 러셀 서양철학사(서상복 역)

1948년 인간과 그 밖의 것들(송은경 역, 2005)

1949년 권위와 개인(이종익 역, 1997)

1950년 반속적 에세이

 

1959년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 (곽강제역, 2008)

1959년 서양의 지혜(이명숙 역, 1990)

 

1961년 사실과 허구의 교차로(고정식 역, 1993)

1961년 인류에게 내일은 있는가(고정식 역, 1991)

1951~

1969년 러셀 자서전(송은경 역, 2003)

               러셀의 철학노트(최혁순 역, 1990)

 

                                                             *** 푸른색은 내가 관심 가는 책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러셀 자서전 ()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1

1872~1914

 

나는 석양이 대지를 불게 물들이고

구름을 금빛으로 바꾸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람 소리에 귀 기울였고 번갯불에 좋아 날뛰기도 했다.

유년기를 거치면서 외로움도 커져갔고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행여 만나려나

기대하다 절망하는 일도 많아졌다.

완전히 실의에 빠진 나를 구해 준 것은

자연과 책과(좀 더 나중에는) 수학이었다.

 

 

프롤로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13]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 유년기

 

[16]

어머니는 정력적이고 생기 넘치며 재치 있고 사려 깊고 독창적이고 담대하셨다.

아버지는 철학적이고 학문을 좋아하셨으며 속되지 않고 침울한 기질에 고지식한 분이셨다.

 

[19]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형과 나의 후견인으로 스폴딩과 코브던샌더슨을 지명하신.....그 두 사람 모두 무신론자........

 

[20]

그러나 당신 아들의 서류를 정리하시던 조부모님이 내 어머니와 관련된 사건들을 발견......빅토리아조 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그분들에겐 극도로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형과 내가 대법관청에서 보호를 반고 있던 중, 앞서 말한 18762월에 코브던샌더슨이 나를 조부모님께 넘겨주었던 것이다.

 

[23]

펨브로크 로지에는 약 25제곱 킬로미터나 되는 정원이 있었으나 대부분 방치되어 황폐해져 있었다. 이 정원은 내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내 인생에서 아주 크나큰 역할을 했다.

 

.....온갖 비밀 장소들도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정원이었고, 나도 그것과 더불어 과거에서 살았다.

 

[24]

어린 시절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일거리 없이 아이 마음대로 보내는 시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불과 여섯 살이었다.

 

[25]

할아버지보다 스물 세 살이나 어린 할머니는 내 유년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이었고, 정치적 종교적으로는 자유주의자였지만(일흔의 나이에 유니테리언파가 되셨다), 도덕적 문제에는 매사에 극단적일 만큼 엄격하셨다.

 

할아버지는......수상이 되셨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랑에 빠진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못 가 보셨음이 분명했다.

 

할머니는 헌신적인 아내..... 늘 현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26]

사유와 관계된 것은 할머니의 교육에서 완전히 생략되어 있었고, 할머니의 정신적 삶에서 빠져 있었다.

 

그분의 도덕성은 빅토리아 시대의 청교도 그 차체....

 

[27]

착한 사람은 언제나 선한 동기에서 행동한다고 생각하셨고, 나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악인이라도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고 보셨다.

 

할머니께 결혼이란 것은 혼란스러운 제도였다.

 

[28]

열네 살 이후 나는 할머니의 지적 한계를 견디기 힘들게 되었고....할머니의 크나큰 애정과 각별한 보살핌이 그분을 사랑하게끔 만들었고, 유년기에 필요한 안정감을 제공해 주었다.

 

내 인생관의 형성에서 그분이 지닌 중요성을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깨닫곤 했다.

--->나의 경우, 엄격하면서도 보증수표처럼 성실하고 규칙적인 습관을 가진 어른. 정서적 터치(공감)이 큰 편이 아니라 자신의 틀 안에서는 감당 안되는 이상주의자 모험주의 아이들을 완전히 이해는 못하지만 그들의 규칙적 습관을 길러주는 어른. 안정감있는 ESTJ. 가끔은 그들의 보증수표적 습관이 부럽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니...

 

그분의 두려움 없는 태도, 공공 정신, 인습에 대한 경멸, 다수의 의견에 대한 무관심이 내게는 늘 좋게 보였으며,

 

[29] (주목구절)

그 중에는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지어다란 구절도 있었다. 할머니가 이 구절을 강조하신 덕분에 훗날 나는 소수에 속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 러셀에게 많은 관섭을 하고 할머니 방식대로 육아를 고집하여서 러셀의 기질상 힘들어 가기도 했지만, 이 부분에서는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한 할머니다.

 

나의 할머니는 오직 자식과 손주만 아시는 그런 분이었다. 온전하게 당신의 가족을 챙기는 할머니... 단 한번도 자식에 대해 손주에 대해 나쁜 소리 하지 않고 무조건 칭찬을 하고 긍정적으로 웃어주는 대단한 나의 편. 다른 사람에게는 인색하였지만. 그 인색함에 가끔은 할머니의 태도가 싫었다. 하지만 당신 가족에게는 화 한번 내지 않는 모습, 감정적 대응하지 않는 모습은 정말이지 당신의 자아를 내려놓았기에 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아내이자 엄마인 나는?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ㅋㅋㅋ

 

[30]

내가 접촉한 어른들은 아이들의 강렬한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놀라우리만큼 부족했다.

---> 사랑해쭈잖아.... 아이를 사랑해쭈잖아....

ㅋㅋ 어른들은 권력자다. 아이들은 어른, 특히 자신의 생존과 밥그릇을 쥐고 있는 어른 앞에서 끝없이 작은 존재이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 듣는 아이는 사랑받고 밥을 먹고.... 모든 인간, 모든 아이는 본디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 받을 권리가 있고 그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그런 존재이지만, 늘 어른들은 사랑, , 아이의 생존권 담보로 아이들을 좌지우지 한다.

 

아이들은 양육자와 형성된 권력관계의 기술을 평생 타인들과 관계 맺을 때 사용한다. 자신이 그러함을 자각하는 순간, 다른 기술로 갈아타기도 하고....

 

어른들아,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쭈잖아~“

 

네 살 되던 해 리치먼드에서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사진사가 날 가만히 앉혀두지 못해.....스펀지 케이크를 주겠노라고 약속.....그때까지 나는 스펀지 케이크를 하나 밖에 먹어보지 못했고......나는 생쥐처럼 잠잠하게 있었고......사진사는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나는 약속된 스펀지 케이크를 받지 못했다.

---> 이 마음 아니까..... 어른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 일관성 없는 그들의 태도... 그러나 나중에는 서서히 이해하게 되면서 아이도 대충 눈치 봐가면서 감을 때리고 어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흘려듣기도 하는 융통성을 발휘하게 된다.

 

라이언(LION) 언제 오지? 라이언이 오기로 되어 있어요?.....

 

깨진 환상에 나는 넋이 나가버렸는데 그때 느낀 깊은 절망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

---> 30이 되든 40이 되든 70이 되든 내 속의 어린 아이는 늘 온 몸의 느낌으로 살고 있다.

 

[33]

읽기는 내 능력 밖이었다. 아주머니가 가르쳐 준 것 중에 내가 제대로 읽어낸 단어는 딱 하나였는데, 바로 ‘or'이었다. 다섯 살이 되기 직전에 나를 유치원에 넘겨준 것을 보면 아주머니도 기운이 빠져버렸던 모양이다.

---> 이해 간다. 이해 가...^^

 

결국 나는 유치원에 가서야 읽기라는 어려운 기술을 배우는 데 성공했다.

 

[36]

네기 설탕보다도 좋아했던 소금덩어리를 상자에서 훔쳐내오기도 했다.

 

[37]

자 이제 숫자 배우기만 남았어요.” 그런데 숫자는 독일어나 영어나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한편 마음이 놓였다.

 

[39]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과일이 나쁘다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나는 오렌지를 먹을 수가 없었다.

 

(최초의 거짓말)

내가 최초로 거짓말을 하게 된 것도 그와 유사한 자기 보존 본능 때문이었다.

딸기를 하나라도 먹으면 안 된다고..... “너 딸기를 먹고 있었구나.“...... ”안 먹었어요.“..... ”혀를 내밀어 봐!“ 수치심이 확 밀려오면서 나 자신이 정말로 사악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유별나게 죄책감에 쉽게 빠지곤 했다.

좋아하는 찬송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세상에 지쳐, 내 죄에 눌려라고 대답했다.

---> 불쌍한 아기 러셀, 버티. 늙은이들 어른들 사이에 둘러싸여 함께 놀 아이도 별로 없이 그들 방식에 조련 당하는.... 하지만 늘 자신을 놓지 않았기에 저항하며 자신을 지켜갔다. 그게 그의 기질이었고 그 기질은 어른시절의 그런 환경에 의해 더 강해진 게 아닐까 싶다. 감수성 예민한 그였기에 상처도 컸다. 나 역시 그 놈의 감수성 땜에 상처 많았던 기억이....

[40]

(할머니가 들려주는 회개한 탕아 이야기)

당신 자녀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병적인 상향이 바로 자신의 책임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신 채.

---> 그렇지만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를 극복해가는...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자기성찰지능이 뛰어난 이들은 자신을 극복하며 보다 높은, 성숙의 경지에 이른다.

 

내 어린 시절 추억 중에 가장 생생한 것들은 대부분 굴욕감과 관련되어 있다.

 

[44]

유년기를 거치면서 외로움도 커져갔고,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행여 만나려나 기대하다가 절망하는 일도 많아졌다. ......나를 구해 준 것은 자연과 책(좀더 나중에는) 수학이었다.

 

[45]

그럼에도, 유년기 초반 시절에는 행복했다. 정작 외로움을 참기 힘들게 된 것은 사춘기가 닥치면서였다.

 

여섯 살 때 한 번, 이러한 느낌(부모 사망, 불행 느낌)을 할머니께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이 내게는 아주 행운이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빅토리아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할머니의 견해를 받쳐줄 근거가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물론 알지 못했다.

 

[46]

유치원........정통 프뢰벨식 교육을 했으며, 당시 기준으로 보면 놀라울 만큼 신식이었다.

 

그때 배운 것들을 나는 지금도 거의 다 상세하게 기억하지만, 노란색과 파란색 물감을 섞으면 초록색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일이 가장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47]

가정교사가 호통을 치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구구단을 외우려고 애를 썼지만 눈물 때문에 계속 막혀버리곤 했다.

 

[47]

외할머니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에게나 신랄하게 퍼붓는 혀를 가졌기 때문이다.

 

[48]

외할머니는 18세기 인물의 전형으로서 합리주의적이지만 상상력이 부족하고, 계몽에 열심이었으며, 선량한 체 점잔 빼는 빅토리아 시대를 경멸하셨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 누구도 에 맞서 무어라고 할 수 없지만 나는 늘 말하지, 7계명(간음하지 말지니라)을 어기는 것이 제6계명(살인하지 말지니라)을 어기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7계명을 어기자면 어쨌거나 상대방의 동의란 게 필요하니까 말이야.”

---> 외할머니, 참 독특하시다. 민낯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사는 친할머니와 반대되는...

 

[52]

나의 수줍음과 감수성과 형이상학적 성향은 러셀 가문에서 물려받은 것이고, 정력과 건강과 이성적인 정신은 스탠리 가문에서 반은 것이다. 대체적으로 보자면 후자가 전자보다 나은 유산인 것 같다.

----> 나의 경우 아버지 영주 양반과 어머니 부산 동래상인.

영주양반은 체면과 이상추구, 차분한, 소심 걱정많은.

부산상인은 현실적 합리적, 건강함. 온정적인, 감정적인.

 

[53]

소년기 내내 나는 스케이트 타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내가 생일 케이크를 자르는 순간, 첫 조각을 제대로 빼내지 못해 무척 부끄러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나 내 머리에 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날 햇빛에 대한 인상이다.

 

열한 살이 되지 형을 선생 삼아 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인생의 큰 사건 중에 하나였고, 마치 첫사랑처럼 현혹적이었다.

---> 아이마다 뛰어난 재능이 다르고, 러셀은 수학적 지능, 언어지능, 성찰지능이 높은 듯 보임.

[54]

내개 약간 지적인 소질이 있난 보다 하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스켰다.

 

그때 내가 느꼈던 수학의 전제들에 대한 의혹이 계속 이어져, 훗날 내 작업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기초 대수학은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는데 가르치는 방식이 나빠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달달 외워서 깨우쳐야 했다. ‘두 수의 합의 제곱은 각 수의 제곱에 두 수의 곱의 2배수를 더한 것과 같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나로선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대로 외우지 못할 때에는 가정교사가 집어던진 책에 머리를 얻어맞곤 했는데, 그러한 방식은 내 지력을 전혀 자극하지 못했다.

----> 수학지능 놓았던 천하의 대 수학자도 머리 얻어맞고 수학 공부를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다... 역쉬 어린시절의 경험이 평생의 삶의 방향을 이끌고 가는 견인차다. 자신의 재능있는 지능이 자신을 구원할 지니!

 

 

[55]

나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싫어했다....... 수학 다음으로는 역사를 좋아했다.

 

내게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지적으로 중요한 일을 성취해 내리라 결심했고, 청년기를 통틀어 내 야망에 방해가 되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 영웅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강렬한 소망과 결심, 목적성 그리고 실천. 공자가 말한 입지(立志)’..

 

 

 

2.청년기

 

[58]

이런바 잠복기에 도달하면서 아주 뚜렷한 변화가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속어를 쓰고, 감정이 없는 척하고, 전반적으로 남자다워보이는 척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집안 어른들도 무시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금지된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속이는 습관이 생겨났고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그 습관을 고집했다. 무슨 일을 하든 혼자 알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제2의 천성이 되어벼렸으며,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은폐 충동을 아직까지 한번도 완벽하게 정복해 보지 못했다.

 

어리석은 금지 사항들 속에서 내 길을 찾아야 했던 시절로 인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 타고난 자신의 기질은 집안의 양육방식과 대응하며 더욱 강화되고... 자신의 재능은 자신의 마음을 세상을 헤쳐가는 등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59]

청년기는 대단히 외롭고 불행한 시기였다.

 

성이란 것이 현실로 처음 다가온 것은 열두 살 때, 유치원 친구의 하나인 어니스트 로건을 통해서였다.

 

[60]

열다섯 살이 되자 나는 욕정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참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계속했는데(자위행위), 어느 날 사랑에 빠지면서 갑자기 안 하게 되었다.

 

나는 하녀를 하나 꾀어 땅굴 집에 데리고 들어가, 키스도 하고 포옹도 해 보았다. 한번은 그녀에게 나와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럴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대답하기에 곧이곧대로 믿었다. 게다가 그녀는 놀라움을 나타내면서, 나를 착한 소년인 줄 알았노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진전되지 않았다.

---> 러셀은 이 사건을 담담히 얘기하지만, 하녀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성추행이고 강제적인 범죄행위가 아니었을까?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러셀이 말했는데, 그게 아니면 그녀가 사실은 하룻밤 지내기를 원했는데 일부러 튕기기 위해서 반대로 말했다는 뜻인가? 아마도 그녀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아무런 일이 진전되지 않았어도 이미 이것은 행위다. 범죄행위... 오 마이 갓! 여자와 남자의 인식은 이렇게 다르다니.!

 

[61]

성과 육체에 이처럼 몰두함과 동시에 엄청나게 강렬한 이상주의적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성에 원천을 둔 감정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62]

시와 더불어 내 관심을 크게 끈 것은 종교와 철학이었다.

 

[66]

(16살 때 올드 사우스케이트의 육군 예비학교 시절,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예전엔 남모르게 성에 몰두했지만 이처럼 무지막지한 형태(매춘 등등)를 접하게 되니 충격이 매우 컸다. 나는 대단히 청교도적인 관점으로 변하게 되었고, 깇은 사랑이 없는 섹스는 짐승과도 같다고 단정했다.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우 우울하게 지냈다. 들판을 가로질러 뉴사우스게이트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이 있었는데 혼자 거기에 가서 일몰을 바라보며 자살을 생각하곤 했다.

 

[72]

형과의 대화를 통해 밀교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정도 이해한 바로는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75]

(그리스어 연습장 메모 중)

나는 영생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어른들께 할 용기가 없다.

[77]

바로 영생이 문제다. 내가 사색을 통해 가장 실망하고 번민해 온 것이 바로 이 문제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진화론에 따라 인간을 동물과 비교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인간을 하느님과 비교하는 방법이다.

 

 

3. 케임브리지 시절

 

[94]

아주 훌륭한 포트 와인(포르투갈 원산)이긴 한데 왜 이걸 클라레(프랑스 보르도산의 적포도주)잔에 담아주었을까?

---> 김정일이 박스째 수입해 먹었다는 그 유명한 보르도 와인... 포트 와인이랑 어떻게 다를까? 몽테스키외의 고향, 보르도... 언제 좋은 사람들이랑 와인 한잔 하고 싶다.

 

드레이퍼의 <유럽의 지적 발달>을 가지고 있구나. 나도 아주 좋은 책이라 생각하는데.“ ”그 책을 아는 사람을 만나긴 네가 처음이야!“....우리는 평생 친구가 되어 있었다.....신학과 형이상학에서도 의견이 일체했다. 다만 정치 쪽에서는 의견이 달랐다.

--->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나? 함께 술술 대화가 되어서 친구가 된 친구. 각각의 파트 별로는 대화 통하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 남아있는 몇 가지 의문들을 깊이 있게 함께 나누며 대화가 술술 풀어진 친구는 없다. 나의 몇 가지 의문들. 책 속의 작가들과 대화해야 되겠지? 관계에 있어서 통할 것이란 것은 환상이다. 어떤 부분은 어떤 친구랑 맞고 또 어떤 부분은 어떤 친구랑 맞고..... 그와 어떤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같고자 하는 바람은 헛된 기대를 낳고 기대는 섭섭함으로 다가와 스스로 실망한다. 어리석은 기대. 하지만, 슬프다. 슬픔도 어리석은 감정. 하지만 슬픈 것이 사실이다. 어쩌겠냐? 그것이 관계이고 인간의 모습인 것을.

 

[98]

친구-크롬프턴(변호사)

그는 재치와 열정, 지혜, 냉소, 정다움, 고결함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그밖에도 강렬하고 변함없는 정까지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훗날 분해되어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흔들림 없는 닻이 되어 주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매우 충실한 편이었다. 선을 위해서든 악을 위해서든 다수를 따라가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

 

[100]

크롬프턴을 훌륭하면서도 유쾌한 사람으로 느끼게끔 하는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강렬한 사랑과 증오, 뛰어난 유머 감각, 바윗돌같은 정직이었다.

 

[101]

그는 싫어하는 것도 많고 혐오의 강도도 남들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늘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 김어준 스타일... 러셀은 크롬프턴에 대해서 몇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친구는 시니컬하며 유머감각 있으며 정직하고 정의로우며 비판정신 높은 나쁜 남자 스타일. 그럼 러셀은?

 

[102]

크롬프턴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적인 사람이었다. 자기 사무실 서기나 집의 하인들에게 말하는 투나, 자기에게 일을 맡긴 인도귀족 같은 중요한 사람에게 말하는 어조가 똑같았다.

 

[103]

그는(크롬프턴) 기질적으로 무정부주의에 끌렸다. 제도니 조직이니 획일이니 하는 것을 워낙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의 견해는 다소 흔들리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편견이 분방하게 뻗어나가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이성적인 것보다는 반역자들을 더 찬미하는 편이었다. 계산적이다 싶은 것은 무엇이든 끔찍하게 싫어했다.

 

[104]

그는 법률 문제에 있어 한 치도 굽힘 없는 정도를 걸었으며 그 위에 실력과 인내심까지 갖추고 있었다. 천성으로 보자면 누구보다 조급한 사람이어야 마땅한 그가 그 같은 인내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상대편의 신임까지도 살 정도였으며, 교묘한 책략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결과들을 이루어 냈다. 법률 상담 도중 누군가가 다소 정도에서 벗어난 길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 때 돌 같이 굳어졌던 그의 얼굴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근본이 진지한 사람임에도 그는 거의 늘 쾌활했다..... 그가 느닷없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때도 만찬회 도중이었다.

---> 친구에 대한 설명. 묘사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친구의 느낌이 살아있다. 러셀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친구로 보인다. 비록 일찍 죽었지만. 세상을 향하여 같은 방향을 보며 생각이 통하는 동지. 개인적인 변화 개인적인 혁명을 넘어서 세상과 사회와 교류하는 시선을 가진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대학시절 함께 시대를 고민했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어느 집단에 있어야 하나. 늘 갈증을 느끼는 지점이다.

[107]

수줍음을 타던 나는 케임브리지에 진학한 순간부터 놀랄 만큼 사교적으로 변했다. 집에서 사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장애로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 속에서 영향을 받다 보니 점잔 빼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상대가 혐오하거나 조롱하리라 걱정할 필요 없이 자유로이 내 생각을 말하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그야말로 황홀한 지경이었다.

---> 그래서 노는 물이 중요하다. 자신의 물을 찾아가야 한다. 자신의 물에서 충분히 충전하고 충분히 사랑받고 충분히 힘을 얻어서 세상을 향해 자기 색깔 옷을 입고 당당히 걸어나올 수 있어야 한다. 천재들의 성공 요인 중 하나, 자신의 물을 잘 찾아가서 윈윈하기. 나의 딸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느 물로 들어갈 것인가.. 노는 물에서 나와서 혼자 스스로 사교육하고 있는 심정이다. 세상을 향한 나의 물. . . 강남 나이트도 홍대 클럽도 서울대 AMP도 아닌... 나의 몇 가지 고민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집단!!! 그 집단을 아직 못 찾았으면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작가라도. 책이라도.... 딸에게는 꼭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잘 터 주고 싶다.

 

[125]

내가 거기에서 배운 사고방식 중 정말로 귀중한 것이 하나 있다면 지적 정직 뿐이다. 이 덕목은 내 친구들 뿐 아니라 교수들 사이에도 확실하게 존재했다. 가르치는 학생이 잘못을 지적한다고 해서 화를 내는 교수는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26]

나는 20년에 걸쳐 이런 식으로 예를 들어왔네. 하지만 자네 말이 옳아.”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나는 케임브리지에서도 지적 정직이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내가 어디서 살고 있든 고향이라 할 만한 곳은 케임브리지뿐이라고 느꼈다.

---> 나의 지적 고향은 어디인가. 대학시절 철학써클에서 칸트, 헤겔을 읽으며 남자동기, 선후배와 토론했지만 늘 갈증을 느끼는 지점이 있었다. 지적 대화가 통할 것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늘 갈증을 느끼는 지점이 있다. 가부장적 사회. 여자.... 가부장제 속의 가족. 내가 풀어야 할 숙제.

 

 

 

4. 약혼

 

[128]

(피어솔 스미스라는 미국인 가족 중)

그러나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끈 사람은 바로 브린 모에 다닌다는 딸이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어떤 젊은 여자보다 개방적이었다. 대학을 다니고 있고, 단신으로 대서양을 건너왔다.

 

그녀는 다정했으며 내가 수줍어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129]

...흑인 영가를 부르곤 했는데 영국에는 알려지지 않는 노래들이었다. 괴테가 그러했듯 나도 미국을 낭만적인 자유의 땅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나를 구속해 온 우리 집안의 많은 편견들이 그들 가족에게는 전혀 없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고상한 취미로부터 해방되어 있다는 게 좋았다.

---> 인간 여자와 남자의 결합. 서로의 결핍됨에 끌리기도 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끝나지 않는 가족제도라는 틀.

 

시드니 웨브(영국이 사회주의 경제학자)를 처음 만난 것도 그 집에서였으며 당시 그는 아직 미혼이었다. (시드니+비어트리스 웨브=>부부)

 

결혼하고 처음 10년 동안 웨브 부인은 이따금 이렇게 말했다. “시드니가 늘 말하듯, 결혼이란 감정의 휴지통이에요.”

 

[130]

웨브 부인의 관심사는 남편보다 폭넓었다. 그녀는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떠나 개개인들에게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132]

나는 아주 중요한 문제들에서 웨브 부인과 의견이 달랐지만 그녀를 좋아했고 또 존경했다. 내가 무엇보다도 존경한 것은 그녀의 뛰어난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그녀의 고결함이었다. 그녀는 공적인 목적을 위해 살았다.

 

[137]

(엘리스, 그녀)

비록 펨브로크 로지 같은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나는 꾸임 없는 호의라는 덕목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이 덕목을 완벽하게 실천하면서도 점잔빼는 태도나 편견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기 때문에, 내가 성년이 될 때까지 미혼으로 있어줄 것인지 궁금했다.

 

[140]

사랑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육체적 관계에 대한 욕구조차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밤, 우아하지 못한 사랑을 나누는 관능적인 꿈을 꾸고는 내가 사랑의 신성함이 더렵혀졌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차츰 본능에 맡기게 되었다.

---> 러셀은 여성해방을 주창했다는데 4번의 결혼 3번의 이혼을 했다는데.... 그가 진정한 여성해방론자였을까? 그의 성, 사랑, 결혼 방정식을 따라가 보자...

[145]

나에게 펨브로크 로지는 미치광이 영혼들이 떠도는 가족묘와도 같다. 최근 앤더슨 박사한테 들은 얘기(아버지 간질 등등 유전적 문제, 앨리스 집안에 정신이상자 있다 등등)를 생각하면 특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는 다행히도 모든 것이 밝고 건강하며 더구나 나의 앨리스가 있다 펨브로크 로지와 그것이 내게 물려준 그 소름끼치는 유산을 잊고 있을 때는 불길한 생각 대신 서로의 사랑에서 오는 그 순수한 기쁨만을 생각할 수 있다.

----> 러셀, 탈출하고 싶은 마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그 속에서 자신의 재능에게 위로받으며 잘 컸지만, 그에게 사랑은 곧 결혼이고 곧 탈출구인 듯 하다.

 

 

 

5. 첫 결혼

 

[234]

당시의 나는 편협한 섬나라 근성의 브리튼족답게 우월감으로 미국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학계의 미국인들, 특히 수학자들과 만나본 결과, 거의 모든 학문에 있어서 영국보다 독일이 앞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알 가치가 있는 것은 케임브리지가 다 안다는 믿음이 여행 과정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서서히 무너졌다.

---> 그래서 경험, 여행이 중요하다.

 

[236]

1898년이 되자 앨리스와 나는 해마다 일정 기간을 케임브리지에서 보내기로 하고 1902년까지 그대로 지켰다. 그 무렵 나는 맥태거트와 스타우드에 이끌려 뛰어들었던 독일 관념주의라는 욕조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내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당시 내가 대단하게 보았던 무어였다.

 

감각의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다가, 식탁이나 의자 따위가 현실로 존재함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역시 논리적 측면이다. 관계들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면 즐거웠고, 모든 명제는 주어-술어의 형태를 취한다는 믿음이 형이상학에 미칠 그 엄청난 영향을 밝혀보고 싶었다. 내가 라이프니츠를 읽게 된 것은 우연히 그에 관한 강의를 맡게 되면서였다.

 

 

 

6. 수학원리

 

[256]

페아노(이탈리아의 수학자)를 만난 것을 생각하면 국제 철학 대회는 나의 지적 인생에 한 전기가 된 학술 대회라고 할 수 있다.

 

대회에서 토론이 이러지는 가운데 나는 그가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정확하다는 것, 자신이 시작한 논제에서는 꼭 이기고 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표시법이 내가 오랫동안 찾아왔던 유의 논리 분석에 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258] 주목 구절

집에 돌아와 보니 화이트헤드 부인이 평소보다 더 격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 때문에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듯 보였는데 바로 그때, 인간의 영혼은 모두 고독하다는 느낌이 느닷없이 나를 사로 잡았다. 결혼한 후에 나는 정서상으로는 조용하고 피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왔고, 좀 더 깊은 문제들을 모두 잊은 채 가벼운 지식으로 만족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발 밑에서 땅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5분의 시간에 나를 스친 생각은 이러했다. ‘인간 영혼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 종교적 스승들이 설파한 것과 같은 지고의 강렬한 사랑 외에는 어떤 것도 그 외로움을 간파할 수 없다, 동기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은 모두 해로우며 잘해 본들 무용하다, 따라서 전쟁은 잘못된 것이고 사립학교 교육은 옳지 않으며 폭력의 사용에 반대해야 한다. 인간 관게에 있어서는 각 개인이 가진 외로움의 응어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 호소해야 한다.’

 

[259]

5분이 흐른 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 신비주의적 깨달음 같은 것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이 다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망상이었지만 그럼에도 현실에서 모든 친구들과 수많은 지인들과의 관계가 전보다 훨씬 더 친밀해져 있었다.

 

그 동안 제국주의자였던 나는 그 5분 사이에 친보어파로, 평화론자로 변해 버렸다. 오랜 세월 정확성과 분석에만 매달려왔던 내가, 미에 대한 신비한 감정, 아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 인간의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철학을 찾아내고자 하는 부처님 못지 않게 깊은 열망으로 충만해 있음을 발견했다. 야릇한 흥분감이 날 사로잡았는데, 거기에는 강렬한 아픔도 담겨 있었지만 승리감도 약간 배어 있었다.

 

내가 고통을 지배하고 내 생각대로 주물러 지혜로 가는 통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승리감이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신비한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곧 그것이 대부분 사라지면서 분석하는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내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의 일부가 늘 나와 함께 하면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나의 태도를 형성시키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고, 사소한 불행에 신경 쓰지 않게 하고, 나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정서적인 부분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 죽음과 고통을 순간을 보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깨달음의 범위가 확장되는 경험. 이 순간이 러셀에게는 중요한 계기이다.

[261]

어느 날 오후 자전거를 타러 나갔는데, 전원 도로를 따라 달리다 갑자기 내가 앨리스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의 나는 친한 관계에서는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의혹에 대해 최대한 마음을 열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던 것이다.)

 

[262]

그녀와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구도 사라졌으므로, 내 감정을 숨기려 해본들 그것만으로도 넘기 힘든 장벽이 될 터였다. 이 같은 위기의 순간에 아버지의 까다로운 성격이 내게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하여 나는 앨리스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금방 털어놓지는 않아도 뭔가 빗나가고 있음을 그녀가 감지했음은 물론이다.

 

결국에는 내 사랑이 죽어버렸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격을 비난함으로써 내 태도를 그녀와 나 자신에게 정당화시켰다.

 

(그리고....러셀은 미주알 고주알 앨리스의 단점을 말하고 있다........ 허거덕~@.@!~)

 

[263]

앨리스에 대한 내 감정이 변하게 된 데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의 일면 중에 내가 싫어하는 특성들이 그녀에게도 어느 정도 있음을 간파한 것도 한 이유가 되었다.

 

[264]

장모는 가족들에게 남자는 짐승이고 바보이며 여자는 성인이어서 섹스를 싫어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자기 어머니를 지지하는 앨리스를 견디기 힘들었다.

 

[267]

우리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재미있거나 상냥한 사람들이어서 우리 둘 다 서서히 대외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삶은 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앨리스와 한 집에 사는 동안에는 그녀가 이따금 잠옷 차림으로 내려와 함께 자자고 간청하기도 했다. 나는 가끔 응해 주었으나 결과는 완전 불만족이었다. 이런 식의 생각이 9년이나 지속되었다. 그 세월 동안 그녀는 내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고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주는 일이 결코 없었다.

 

그녀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1년에 두 번 정도 성관계를 시도했지만, 그녀에게서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쓸데없는 짓이 되곤 했다. 그렇게 질질 끈 세월을 돌이켜보면, 그녀와 한 집에서 사는 것을 진작에 끝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내가 남아주길 그녀가 원했고 내가 떠나면 자살해 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나로서도 달리 여자를 찾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 러셀, 시작부터가 자신의 환상 속에 자신이 원하는 상에 맞춰 그녀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하면서 반해서 결혼을 해놓고 또 성적 욕구로서 한 여자에게서 욕구가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에 이혼하고 싶으면 그냥 이혼하면 되지 굳이 그녀의 단점을 캐어 내고 자서전에 줄줄이 써 놓았다. 이래서 이혼할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인가? 비겁하다 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서로의 장점도 단점도 좋든 싫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섹스=낭만적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낭만적 사랑의 유효기간은 짧다. 그냥 결혼을 하지 말고 동거하거나 연애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서로에게 상처주며 결혼하고 이혼하고 결혼하고 이혼 하는지 참.......

 

섹스가 끝나면 결혼이 끝나는가? 섹스가 끝나면 사랑이 끝나는가? 사랑도 결혼도 섹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서로에게 있다. 낭만적 사랑을 원한다면 그냥 자유롭게 연애하고 동거를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굳이 결혼을 4번이나 할 필요가.... 러셀에게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녀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칭 여성해방론자라고 말하면서 보다 평등하고 여성해방론적으로 결혼한다는 남자들은 다 사기다. ? 이미 사회적 틀이 가부장 사회기 때문에. 체제 속의 개인이 어찌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해방은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이 도래했을 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러셀은 여성해방론자라고 볼 수 없을까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책을 좀 더 읽어보자. 그리고 그의 결혼과 도덕, 결혼과 성이라는 책을 주문해 놓았으니, 논리적인 러셀의 생각을 들어봐야 겠다.

 

아무튼... 자서전에 주절 주절 그녀의 단점과 그녀의 집안의 문제를 나열해놓은 그의 방식은 참으로 안타깝다.

.

[342]

<앨리스의 편지>

 

사랑하는 버티

....그대가 바라는 대로 늘 표면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어떤 감정들을 정말로 표출을 갈망한다는 것, 잘 아리라 생각해요.

나는 다만 내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대가 존재하여 얼마나 기쁜지를 말해 주고 싶어요. 내가 그대의 삶을 함께 하고 그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것은 아무도 모를 크나큰 기쁨이었어요. 그 기억만으로 감사하며, 변함없이 그대 옆에서 그의 발전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 드려요........

 

파넘, 틸퍼드, 아이비 로지

1904517

 

---> 앨리스가 러셀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7. 다시 케임브리지로

 

[361]

스콧 부인 집 문간에서 마차에서 내리다가 돌로 포장된 바닥에 넘어져 성기를 다쳤던 것이다. 사고 이후 나는 매일 두 차례씩 뜨거운 욕조 물에 들어가 앉아 해면으로 조심조심 고추를 문질러야

했다. 그때까지 늘 성기를 무시하도록 교육받아온 탓에 나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362]

오톨라인은 다소 생경하면서도 아주 절묘한 취향의 소유자여서, 집이 대단히 아름다웠다. 앨리스의 경우에는 퀘이커 교도의 금욕주의와 자기 오빠의 탐미주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면이 있었다. 즉 응접실에 있을 때나 강연에 나갈 때의 옷차림 같은 좀 더 공적인 활동을 할 때는 최고로 예술적인 기준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혼자만 있을 때는 본능적으로 퀘이커 교도의 검소함이 발휘되어, 예를 들자면 항상 플란넬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곤 했다.

 

나는 늘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면서도 스스로 그런 것들을 챙기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오톨라인의 집안 분위기는 내가 결혼 후 오랫동안 굶주려 왔던 것을 채워주었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신결 거슬리는 외부 세계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된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363]

머뭇머뭇 접근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거부 반응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오톨라인이 관계를 허락할 여자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나 밤이 점점 깊어가면서, 그녀와 관계를 갖고픈 욕망이 점점 더 끈덕지게 솟구쳤다. 결국 욕망이 승리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내가 그녀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과 그녀도 내 감정에 호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앨리스말고 다른 여자와 완전한 관계를 가져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록 그날 밤에는 외부적이고 우발적인 요인들로 인해 오톨라인과 만족한 관계를 맺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조속한 시간에 연인이 되기로 합의했다.

 

나는 감정이 극도에 달한 상태였으므로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되든 개의치 않았다. 나는 앨리스를 떠나고 싶었고, 오톨라인을 필립에게서 떠나게 말들고 싶었다. 필립이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었다. 그가 우리 두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나는 기꺼이 하룻밤의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자제력으로 버텨온 9년의 세월이 마침내 종말을 고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자제력과 결별했다.

---> 끓어오르는 불꽃. 늘 끓어올랐다 꺼졌다 끓어올랐다 꺼졌다.... 순간 순간 진실이고 순간의 진실에 충실한 삶.

 

[364]

......나는 앨리스에게 언제든 원할 때 이혼해 줄 수는 있으나 오톨라인의 이름을 들먹이지는 말라고 했다. .....마침내 나는 음성을 낮추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는 절대로 못할 거야. 당신이 만약 그 목적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는 날엔 내가 내 목숨을 끊어 당신을 앞지르고 말 테니까.”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고 그녀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녀의 분노는 견디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그녀가 몇 시간에 결쳐 악을 쓰며 분을 풀고 난 후, 나는 당시 우등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던 그녀의 질녀 카린 코스텔로에게 로크의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타고 나와버렸는데, 그것으로 내 첫 결혼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후 계속 앨리스를 보지 못하다가 1950년이 되어서야 다정한 친구 사이로 다시 만났다.

(앨리스는 1951121일에 사망했다.)

 

[365]

내게 암으로 우려되는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물론 오톨라인에게는 애기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자체가 나의 달콤한 즐거움에 강도를 더했고, 파멸의 문턱에서 어렵사리 빼내온 행복이라 생각하니 감정이 더욱 고조되었다.

 

치과의사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내가 보인 첫 반응은, 행복이 눈앞에 있는 듯한 순간에 때맞춰 날 데려가려는 신에게 축하를 보낸 것이다.

 

아마도 내 마음 깊은 밑바닥에는 교묘하게 고통 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 신에 대한 믿음이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 가학적이다...ㅋㅋ 결핍에서 오는 것일까?

 

 

 

 

2

1914~1944

 

항상 회의하는 지성이 내게 의심의 말을 속삭였고

(그것이 입을 다물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도),

타인들의 손쉬운 열정에서 나를 떼어내어

황량한 고독으로 옮겨놓았다.

......황무지의 바다와 별과 밤바람,

내게는 이런 것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에 인간의 애정은

근본적으로, 신을 찾으려는 헛된 소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8. 1차 세계대전

 

[407]

1910년부터 1914년까지는 전환의 시기였다. 1910년 이전까지의 내 인생과 1914년 이후의 내 인생이 마치 메피스토펠레스(중세 7대 악마 중의 하나)를 만나기 전과 후의 파우스트 인생처럼 뚜렷하게 나누어졌다.

 

나는 일종의 원기 회복 과정을 겪었는데, 그 과정은 오톨라인 모렐에 의해 시작되었고 전쟁에 의해 계속되었다.

 

실제로 나는 전쟁을 계기로 나의 편견들을 털어내고 수많은 근본 문제들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전쟁은 내게 새로운 종류의 활동도 가져다 주었는데, 지난날 내가 수리 논리학으로 복귀하려 할 때마다 날 괴롭혔던 피로감을 그 활동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이 불가사의한 힘을 얻기 전의 파우스트이며, 파우스트를 위해 메피스토펠레스가 제1차 세계대전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408]

나는 영국이 반드시 중립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여러 교수와 연구원들에게 서명을 받아 그 같은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고, <맨체스터 가디언>지에 그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특히 트라팔가 광장 근처에 오래 머물면서 환호하는 군중들을 주시하고 길 가는 사람들의 감정에 촉각을 세웠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나는 일반 대중들이 전쟁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평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국민은 싫어하는데 독재적이고 권모술수에 강한 정부가 억지로 전쟁을 강요한다고 쉽게 생각해 왔다.

---> 파괴적이고 악한 인간의 속성 중의 하나가 광적이고 집단적으로 끓어올랐기 때문일까?

 

[409]

전쟁이 발발하고 처음 며칠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화이트헤드를 비롯한 나의 절친한 친구들도 사나운 호전주의자로 변해 버렸다. 유럽의 전쟁에 끼어들지 말자는 취지의 글을 다년간 써온 해먼드 같은 사람들도 벨기에가 참전하자 휩쓸리고 말았다.

 

[410]

나는 평화주의 정치인들 대부분이 전쟁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보다도 자신들 중에 누가 반전 운동을 주도하느냐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411]

그 암담한 전망도 끔찍했지만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국민의 거의 90퍼센트가 대학살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시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만해도 나는 정신 분석을 전혀 알지 못했으나 혼자서 인간의 열정을 연구하다 보니 정신 분석적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 도달했다.

 

그 전까지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전쟁을 겪으면서 그것이 보기 드문 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돈보다 파괴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성인은 으레 진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나, 인기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는 지성인은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 극우 수골의 입김이 강한 요즘, 치우치기 보다는 좌우의 균형이 잡혀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이다. 어떤 의견이든 수용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건강한 사회다. 그런데 요즘은 메카시즘적 사냥이 난무하고 계속 한쪽으로만 치우치려 한다. 지성인이라면 이 문제를 지적하고 어떤 의견이든 건강하게 수용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슴이 답답하다.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문제 의식을 느끼는 개인 한 명 한 명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사회 속 인간이 정치를 떠나 사회를 떠나 오직 자기만의 안위와 자기 세계 속에서만 살 수 있겠는가? .

 

나는 살육장으로 끌려나가게 될 젊은이들에게 절망적인 연민을 느꼈고, 유럽의 모든 정치인들에게 격분을 느꼈다. 몇 주 동안은 애스퀴스나 그레이와 마주치면 살인도 서슴지 않을 것 같은 감정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감정들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비극의 그 엄청난 규모와, 정치인들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대중의 힘을 실감하면서 그러한 감정들을 삼켰다.

 

그 와중에서 나는 한편 애국심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다.

 

[412]

문명의 애호가로서, 야만주의로의 복귀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415]

1915<사회 재건의 원칙들> 집필했다.

 

사실 탈고할 때까지도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골격과 처방이 담긴 책이지만, 첫머리와 말미만 빼고 다 썼을 때야 비로소 그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에서 나는, 의식적인 목적보다 충동이 인간의 삶을 빚어내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정치 철학을 제시했다.

 

나는 충동을 소유욕의 충동과 창조적인 충동으로 이분하고, 창조적인 충동 위에 세워지는 것을 최선의 삶이라고 보았다. 소유욕의 충동이 구체화된 예로는 국가, 전쟁, 빈곤을 들었고, 창조적인 충동이 구현된 예로는 교육, 결혼, 종교를 꼽았다. 나는 창조성의 해방이 개혁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 의식적 목적보다 우연성, 충동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대전 이후 그 시대의 사조. 창조성의 해방이 개혁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에서 그는 교육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창조성의 해방. 맞는 말이다.

 

[418]

D.H.로렌스(데이비드 로렌스: 1885~1930, 영국의 소설가, 시인-‘채털리 부인의 사랑저자)

-처음에 우정을 나눴으나 전쟁과 행동에 대한 입장이 틀림을 알고 결별.

 

나는 그(로렌스)에게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당신의 정치 철학을 책으로 담아내려 하느냐? --아니다, 우리의 부패한 사회에서 글로 쓰인 말이란 항상 거짓말이니까.

 

그럼 하이드 파크(런던의 한 공원으로, 자유로운 공개 연설의 장으로 유명함)에 나가 빈 궤짝 위에 올라서서 진리를 선포하려 하느냐?--그것도 아니다, 그건 너무 위험한 짓이다(그에게선 이따금 기묘한 신중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인가?

이 대목에 이르면 그는 화제를 돌려버리곤 했다.

 

나는 그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진정한 소망은 없고, 다만 세상이 얼마나 나쁜지를 웅변조로 독백하는 깃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 변화를 위해서는 행동실천이 필요하다. 말만 많고 불만만 많은 사람들은 딱 질색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행동하라! 그런 면에서 나는 가면을 쓰지 않고 자신의 민낯 그대로 드러내는 러셀이 좋다. 솔직하고 비겁하지 않으니까.

 

[420]

그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온정적인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얘기만 나오면 분통을 터뜨렸고, 내가 전쟁으로 인해 야기될 고통 때문에 전쟁에 반대한다고 하자 날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 인간에게는 남을 증오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본능도 있지만, 남에 대한 온정적인 감정을 갖는 따뜻한 본능도 있고 그 본능이 늘 인류를 구원해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평화주의를 지지한다.

 

[421]

그는 그녀의 날개 밑에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 마르크스처럼 그에게도 독일 귀족과 결혼했다는 속물 같은 자부심이 있어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자기 아내를 근사하게 포장해 놓았다. 그의 사상은 순수 리얼리즘을 가장한 자기 기만의 덩어리였다. 묘사력은 뛰어났으나 그의 생각은 금방 잊어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었다.

 

[422]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 세계는 광기에 이끌렸다. 그 중에서도 나치즘이 가장 강력한 표현이었다. 로렌스는 이 같은 광기 숭배의 적절한 해설가였다.

 

[425]

콜레트는 배우이자 극작가인 마일스 멜리슨의 아내였다.

 

그녀는 앨런의 친구였다. 엘런을 통해 그녀가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 일하고 자유로운 견해를 가졌으며 열성적인 평화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젊고 아름다웠다는 것은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다. 그녀는 두 변 연달아 주역을 맡으면서 빠른 속도로 성공을 거둔 배우.....‘징병 반대 연대사무실에서 봉투에 주소 쓰는 일을.....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자 나는 당연히 그녀와 좀더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그 사이 나와 오톨라인의 관계는 차츰 소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오톨라인) 나에게 상당히 무심하다는 것을 느꼈다. 울적함을 달래보려고 다른 여자를 찾아보기도 했으나 성과가 없던 중에 마침 콜레트를 만난 것이다.

----> 러셀은 늘 여자에게 접근한다. 여자라는 밥을 먹고 사는 사람 같다. 피카소 같이... 이 여자가 정을 안 주면 바로 다른 곳에 정을 찾아 나서는..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는 처음 만난 그때, 사상적으로 통하고 아름답거나 느낌이 통하면 바로 사랑에 빠진다. 그랬다가 조금이라도 무심하거나 자신에 관심 안 보이면 이 여자 저 여자 취하러 다니는 허기진 아이 같다. 결핍... 원초적 결핍인가? 책 전반에 걸쳐 어떤 사람을 소개 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성적 사고 또는 욕구, 섹스 관련 이야기를 건들이고 간다. 많은 남자들이 러셀스럽겠지만 러셀스럽지 않는 부류의 남자들도 있으니... 남자는 성숙과 미성숙의 두 부류로 나눠지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와 아들?

 

[426]

우리는 자정이 되도록 대화를 나누었고, 그 사이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람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으나 그 몇 시간 사이에 아주 진지하고 아주 중요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때로 행복하고 때로 고통스러운 관계였으나, 전쟁에 얽힌 중대한 공적 감정에 비해 결코 하찮거나 무가치하지 않았다.

---> 남녀는 몸과 몸으로 느끼고 또 서로를 어루만지며 교류하는 것. 정말 위안되는 기쁨이다. 낭만적 사랑은 말이다. 낭만적 사랑을 넘어서는 경지가 또 있으니... 그것은서로의 관계를 위해헌신하는 것. 내 생각은 그렇다. 섹스가 두 남녀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서 일체감을 이따금 보여줄 수 있지만, 예수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 같은 또다른 천국은 서로 관계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신뢰를 쌓을 때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낭만적 사랑도 소중하지만 더 높고 깊은 경지의 사랑, 그것은 존재에 안정감을 준다.

 

그 순간 콜레트의 사랑은 내게 피난처가 되었다. 잔인한 현실로부터 달아났다기보다는 인간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피해 달아난 것이다.

---> 극한의 전쟁상황... 서로 어루만지고 위로함은 생존본능이다. 얼마나 처절했을까... 암울하고...

 

[427]

거의 모든 군인들이 술에 취해 있었으며, 절반은 술 취한 창녀들을 끼고 있고 나머지는 아내나 연인과 함께였는데, 모두가 절망과 무분별과 광기에 빠져 있었다. 전쟁의 가혹함과 공포가 압도해 왔고, 나는 콜레트에게 매달렸다. 증오의 세상에서 그녀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장 평범한 것부터 가장 심오한 것까지 사랑이란 단어의 모든 의미가 다 담긴 사랑이었다.

---> 전쟁의 광기...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서로 위로받고 견뎌내야 했던 상황.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사랑이라도 해야 살아있음을 느꼈겠지?

 

[428]

콜레트는 나이도 훨씬 어렸고, 사회적 지위도 미미했으며, 하찮은 일에도 쉽게 감격하곤했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녀와 가벼운 애정 행각을 벌이는 정도로 생각했다.

-->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하면 될텐데.... 불타는 애정행각이 식으면 늘 그녀들을 평가하고 재단하여 헤어질 이유를 찾아서 관계를 끝내는 방식......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아. 러셀, 당신의 까르마인지도. 그리고 이렇게 대목 대목마다 코멘트를 달고 있는 나는 나의 까르마. 촘촘히 코멘트 하는 나를 보면 러셀이 좀 불편하겠지. 그 스스로가 여성해방론자임을 주창하기에 나는 그의 생각과 행동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오톨라인에 대한 감정을 극복하기로 정리한 상태였다. 내 감정에 호응하여 날 충분히 즐겁게 해줄 의사가 이제 그녀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 상태의 감정이나 상태는 별로 관심 없고 자신의 감정에 호응하고 충분히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가에만 관심이 있는 러셀. 어쩌면 소통하는 관계를 맺을 줄 모르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

 

[444]

감옥에 있으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면 바로 콜레트와 관게된 이어었다. 내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정확히 1년 후에 그녀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물론 그녀는 나와 변함없이 관계를 유지하고자 바랐지만 나는 심한 질투에 사로잡혔다.

 

12) 내 감정이 비단 질투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나는 우리가 매우 깊고 진지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관계들에서는 두 사람의 협력 관계가 깨어진 느낌을 종종 갖게 되는데, 성소가 더렵혀진 듯한 이런 느낌을 그 당시 몇 년 동안에 매우 자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느끼면서 갖게 된 감정이었다.

---> 당연시 깨어지지... 관계는 계기 계기마다 변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진정한 협력 관계를 원한다면 관계를 위한 헌신이 필요한 게 아닐까?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취할 수가 있을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기도 하는 것이니.... 사랑에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법. 여러 관계에 모두 다 관계를 위해 헌신하여 진정한 협력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깨지고 던지고 불사르는 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인간의 감정을 깨달아간다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 점에 러셀에게 한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445]

우리는 격하게 다투곤 했고 결국 둘 사이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감옥에 있는 내내 질투심으로 고통 받았고 무력감에 사로잡혀 미칠 지경이었다. 질투를 혐오스러운 감정으로 생각했던 나는 질투심에 빠진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질투를 견디다 못해 결국 그녀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지격에 이르렀고, 그 결과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크게 식어버린 것은 당연했다.

 

[446]

열광하는 군중들이 느끼는 그 일체감대규모의 사람들과 더불어 느껴보고 싶은 것이 내 평생의 바람이었다. 종종 그 갈망이 지나친 나머지 나 자신을 자기 기만으로 몰아갈 정도였다. 그동안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평화론자를 거쳤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 왔으나. 사실 진정한 의미의 어떤 주의자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나 역시 그런 일체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 일체감은 천국의 느낌과도 같고 섹스의 몰아 속 일체감과도 같다. 하지만 그 일체감은 때로는 마약처럼 악 영향을 주기도 하는 헛된 것이 되기도 하는 위험성이 있다. 군중과의 일체감은 잠시 잠시 가능하나 결국 늘 자기 성찰과 전체에 대한 성찰과 사유가 필요하다.

 

항상 회의하는 지성이 내게 의심의 말을 속삭였고(그것이 입을 다물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도), 타인들의 손쉬운 열정에서 나를 떼어내어 활량한 고독으로 옮겨 놓았다.

퀘이커 교도들에게는 역사 속의 많은 전쟁들이 정당화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국가의 횡포를 두려워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들은 나를 곁눈질로 보았으며 내 도움을 계속 받아들이면서도 나를 자신들의 일원으로 느끼지 않았다.

---> 이 느낌 아니까.... 그들이 나를 일원으로 느끼지 않은 것일수도 있지만 나 자신이 그들의 일원이 되지 못하는 기질과 사고방식 때문일 수도... 이 부분이 진보주의자들의 문제일까? 보수는 이익으로 뭉치고 진보는 이념으로 뭉치고. 그러나 진보는 이념 때문에 뿔뿔히 박살나고...... 보수는 이익 앞에서는 절대 의리를 지키고...?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기쁨을 느끼든 저변에 깔린 고독의 아픔을 느꼈다. 사랑의 순간에는 그 고통에서 거의 벗어났으나, 돌이켜보면 그 순간의 탈출 역시도 어느 정도 착각에 좌우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게는 지성의 주장이 절대적이었지만 내가 사귄 어떤 여자도 그것을 나만큼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았으므로, 지성이 개입될 때마다 내가 사랑에서 추구했던 공감이 무위로 돌아가곤 했다.

---> 나 역시 남자를 사귈 때마다 발생했던 문제.... 진정으로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랑을 못한 게지.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고 나랑 똑같고 싶은 것은 아주 매력적이지만 헛된 욕망이고 욕심이다.. 결코 똑같을 수는 없다. 서로의 일체감은 잠시 잠시 느낄 수 있으나 그 느낌을 지속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타인을 바꿀 수는 없다.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447]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 의지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인 듯 보였으나, 지적인 사랑을 바치고 싶어도 내게는 스피노자의 다소 추상적인 신마저 없었다. 나는 유령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내 깊은 내면의 자아가 유령처럼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인생에서 만나는 명랑함과 애정과 기쁨의 단층들 저 밑으로 깊이 깊이 매장해 버렸다.

 

그러나 내 감정 중에 심각한 것은 대부분 고독 속에 남겨졌고, 인간사에서는 어떤 동지도 찾아낼 수 없었다. 황무지의 바다와 별과 밤바람, 내겐 이런 것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에 인간의 애정은 근본적으로, 신을 찾으려는 헛된 소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진 전쟁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나는 학구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류의 책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청교도주의는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깊이 확신하게 되었다. 죽음의 쇼를 보면서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개 깊은 불행에 빠져 있어 파괴적인 발작에서 배출구를 찾으려 했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본능적인 기쁨의 확산을 통해서만 좋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450]

전쟁이 끝나자 내가 해온 모든 일이 나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완전히 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했고, 1분도 전쟁을 단축시키지 못했다.

---> 눈물난다. 가슴이 아린다... 쓰라림....

[478]

(엘리엇 아내에 대해)

그녀는 칼날 위에서 살다가 범죄자 아니면 성인으로 인생을 끝낼 스타일인데, 아직까지는 범죄자가 될이 지 성인이 될지 판단이 안 서오. 그녀는 두 가지 다 될 수 있는 완벽한 역량을 가졌소.

 

[515]

<멜리슨(콜레트)에게 보낸 편지

우리의 생각과 감정 중에 일부는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나머지는 별들처럼 영원한 세계의 일부라오. 별들은 사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고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보이는 것-정신 혹은 본질 같은 것-이 있소.

 

그것은 각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우주 역사의 일부라오.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바로 그런 것이오. 내 생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당신이 이해해야 할 것이오. 물론 나 자신도 그런 삶을 잘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바로 평화로 가는 반찍이는 열쇠라오.

[517]

창은 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고 언젠가 내가 말했지만, 자신의 창을 통해 세상의 기쁨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고통과 잔인함과 추함까지 보게 되는데, 두 측면 모두 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천국에 대해 말하려는 사람은 먼저 지옥을 들여다보아야 말할 자격이 있다 할 것이오.

 

 

 

9. 러시아

 

[563]

전쟁이 터지자 애국심이 매우 강했던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하여 장교가 되었다.

 

휴전이 성립되고 며칠 후에 이탈리아군의 포로 신세가 되었으나 다행히 원고는 잘 간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참호 속에서 책을 한 권 쓴 모양인데 내게 원고를 검토해 주었으면 했다.

 

그는 논리학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포탄이 터져도 알지 못하는, 그 정도는 사소한 일에 불과한 그런 사람이었다.

---> 경악!!!

 

(비트겐슈타인 아버지는 갑부)

비트겐슈타인은 재산의 대부분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철학자에게는 돈이 성가신 존재라고 결론 내린 그가 재산을 한 푼도 남김없이 형제 자매들에게 주어버렸다. 그 결과, 빈에서 헤이그까지 오는 여비조차 조달할 수 없게 되었는데, 내 도움을 받기에 그는 너무나 자존심이 강했다.

 

[564]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자였으나 한 때 애국자이자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인들을 매우 높게 평가했으며 전선에서 그들과 사귀기도 했다.

 

복음에 관한 톨스토이의 책이었다. 그는 당연히 책을 샀고,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한동안 종교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 정도가 매우 심하여, 나를 아주 사악한 사람으로 보면서 사귀기를 꺼리기도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트라텐바흐라는 오스트리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565]

그 무렵 그는 배도 많이 곯고 상담한 궁핍을 겪었을 것이다.

물론 루시퍼Lucifer(성서에 나오는 하늘에서 떨어진 거만한 대천사) 의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어서 자기 입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말이다.

 

위대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나는 그가 말벌을 무서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ㅋㅋ 러셀은 참으로 재미있는 사람. 비트겐쉬타인 못지 않게.... ^^

 

.....러시아에 가볼 생각이었는데......노동당 대표단이 러시아로 갈 계획이었는데, 나의 동행을 원했다.

 

[576]

나로 말하자면 러시아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끔찍해지는 악목과도 같았다.

 

[568]

잔인함, 빈곤, 의심, 박해-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였다.

 

페트로그라드 수학 학회 회원들 역시 초라한 몰골이었다.

 

...공식이 지극히 정확했으니 아마 논문 내용도 훌륭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걸인이라 해도 페트로그라드의 수학자들처럼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 걸인은 본 적이 없다.

 

[581]

러시아에서 받은 충격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얼마 후 러시아에서 돌아온 친구들 편에 도라의 편지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러시아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호감의 정도가 내가 러시아를 싫어하는 것 못지 않았다. 우리가 과연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영국에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편지들 중에..........중국 강연 협회에서 1년간 강연을 맡아달라는 초청장이었다.

 

[582]

그녀는 내가 부르조아적이고 노쇠하고 감상적이어서 볼셰비키를 반대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볼세비키를 향한 그녀의 사랑을 당혹감과 두려움 속에 지켜 보았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만난 남자들의태도가 어느 모로 보나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전쟁 중에 내가 콜레트에게서 찾으려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유의 위안이었다.

--->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네.... 그녀의 볼세비키에 대한 생각과 관심이. 궁금하다.

 

[601]

<오톨라인 모렐에게 보낸 편지>

볼세비즘은 한마디로 전제적 관료주의에 가깝소. 정탐 체계가 차르 시대보다 더 정교하고 공포스러워졌을 뿐 아니라 미국화된 유태인들로 이루어진 고위층도 오만하고 냉혹하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의 자유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소. 나는 마치 납 뚜껑처럼 내리누리는 그 사회의 무게에 질식될 듯한 압박감을 느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러시아에서는 그러한 정부 형태가 옳다고 생각되오.

 

그곳은 가장 천한 농민의 수준으로 떨어진 예술가들의 나라이며, 볼셰비키는 그들을 산업화시키고 최대한 양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소.

......그게 바로 현대 러시아의 실상이오. 나는 약속의 땅을 찾겠다는 희망으로 간 것이었소.

 

 

 

10. 중국

 

[606]

상하이에서는 끝없이 사람 만나는 데 시간을 썼다.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유럽인, 미국인, 일본인, 한국인들까지. 우리를 만나러 온 가지 각생의 사람들은 대체로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예를 들어, 폭탄 투척 사건으로 추방된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사교적 관계란 있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기독교인과 폭탄 투척자가 동의어로 통하는 실정이었다.)

---> 폭탄 투척자? 누구? 연도상으로 윤봉길은 아닌데.... ?? 윤이 기독교인도 아니니...

 

[611]

중국은 수세기에 걸친 잠에서 깨어나 현대의 세계를 깨달아가고 있었으며, 당시의 개혁가들은 통치 책무에 따르기 마련인 지저분하고 타협적인 작태에 아직 물들어 있지 않았다. 영국인들은 중국의 개혁가들을 향해 코웃음을 치면서 중국은 언제나 중국으로 머물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내게 설익은 젊은이들의 공허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큰 소리쳤으나 .그로부터 몇 년이 채 못 되어 그 설익은 젊은이들이 중국을 장악하고 영국인들에게서 가장 소중한 특권들을 상당수 박탈해 버렸다.

 

[612]

아시아에서는 지성인이 존경받기 때문에 영국에서와는 달리 개화된 급진주의자들도 정세에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영국인은 간과한다.

 

[613]

중국인들은 내 취미에 딱 맞는 유머 감각을 갖고 있었다. 공산주의가 그것마저 말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 나라에 있을 때 그들은 자기네 고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622]

(일본에서)

이민족의 틈바구니에서 가족들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려는 욕구야말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거칠고 강한 감정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  *   *

 

 

 

 

 

 

 

 

3. 책 소개와 평가 

 

(1) 목차와 전체적인 뼈대

 

러셀 자서전 ()

 

* 1*

 

프롤로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1장 유년기

2장 청년기

3장 케임브리지 시절

4장 약혼

5장 첫 결혼

6수학 원리

7장 다시 케임브리지로

 

 

* 2*

 

8장 제1차 세계대전

9장 러시아

10장 중국

 

 

 

러셀 자서전 ()

 

11장 두 번째 결혼

12장 텔레그래프 하우스 시절

13장 미국 : 1938-1944

 

 

* 3*

 

3부 머리말

14장 영국으로 돌아오다

15장 국내외 활동

16장 트라팔가 광장

17장 재단

 

저자 후기/내가 믿는 것들

편집 후기/열정과 명쾌함이 갖추어진 한 펀의 서사시

역자 후기/러셀-휴머니즘으로 세상을 깨우치다

 

시기별 주요 사건

찾아보기

 

 

 

 

 

 

(2) 감동적인 절 또는 장

 

 *

책 껍질을 열고...

프롤로그 뚜껑을 열기도 전에

러셀, 처음부터 세게 나온다.

 

 

[3P]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에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이익보다 자신의 사상에 목숨 거는 진보 좌파의 거친 호흡이 느껴진다.

진실과 미쵸, 미쵸~!” 20대에는? 그럴 수 있다. 30대에는? 당근 그래야지 상남자다. 그러나 40, 50대에는? ....삶이 고단하다. 60, 70대에는? 어쩌면 젊음의 거침보다 노장사상의 미덕을 지닌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로 돌아섬이 미덕일 지도 모른다. 80, 90대는? 여느 일반남자는 이미 거의(?) 세상을 뜨고 없다.

 

90 여 평생을 살았던 러셀, 그는 진실을 향해 미친 열정과 거친 호흡을 세상에 내 뿜으며 자신의 사상을 실천했다. 전투적 행동파 러셀, 나는 3쪽쯤 펼쳤을 때 이미 이 남자, 러셀의 기세를 제압 당했다.

 

 

 

**

<프롤로그>도 만만치 않다.

자신의 인생을 지배한 3가지 열정, 누를 길 없을 정도로 강렬했던 그것들에 대해 깔끔하면서도 명확하게 정리해서 밝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둘러서 말하지 않고 훅훅 찌르고 들어오는 문체의 명쾌함이 좋다. 그가 살아있는 감동적 대목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13P]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1장과 2장의 유년기, 청년기>는 자신이 겪었던 사건, 감정, 그리고 해석을 읽는 이의 가슴이 아리도록 세세하게 담고 있다. 그의 탐구욕과 성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탐구욕수학적 재능은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버티게 해 주었던 힘이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정서적 손길을 못 받고 자랄지라도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재능 발현을 하면서 스스로의 힘(역량)으로 커간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러셀은 어른들을 향해 마음을 닫고 극심한 외로움과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모험을 멈추지 않은 부분이 인상적이다.

 

 

****

<8장 제1차 세계대전>은 러셀의 비롯한 그 당시 지식인들의 심리와 대중의 집단 광기를 엿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인간에게는 파괴의 본능과 보존의 본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전쟁 반대, 징병 반대 운동 소식과 함께 전하는 그의 생생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특히 그와 친분 있었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작가, 데이비드 로렌스에 대한 비판은 그 당시의 암울한 심경과 비겁한 자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411]

그 암담한 전망도 끔찍했지만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국민의 거의 90퍼센트가 대학살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시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전까지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전쟁을 겪으면서 그것이 보기 드문 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돈보다 파괴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418]

D.H.로렌스(데이비드 로렌스: 1885~1930, 영국의 소설가, 시인-‘채털리 부인의 사랑저자)

 

나는 그(로렌스)에게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당신의 정치 철학을 책으로 담아내려 하느냐? --아니다, 우리의 부패한 사회에서 글로 쓰인 말이란 항상 거짓말이니까.

 

그럼 하이드 파크(런던의 한 공원으로, 자유로운 공개 연설의 장으로 유명함)에 나가 빈 궤짝 위에 올라서서 진리를 선포하려 하느냐?--그것도 아니다, 그건 너무 위험한 짓이다(그에게선 이따금 기묘한 신중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인가?

이 대목에 이르면 그는 화제를 돌려버리곤 했다.

 

나는 그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진정한 소망은 없고, 다만 세상이 얼마나 나쁜지를 웅변조로 독백하는 깃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421]

그는 그녀의 날개 밑에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 마르크스처럼 그에게도 독일 귀족과 결혼했다는 속물 같은 자부심이 있어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자기 아내를 근사하게 포장해 놓았다. 그의 사상은 순수 리얼리즘을 가장한 자기 기만의 덩어리였다. 묘사력은 뛰어났으나 그의 생각은 금방 잊어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었다.

  

 

 

이 외에도 전체에 걸쳐 나오는 그의 연애담과 연인들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읽으면서 러셀이 거시적으로는 평화주의자이고 휴머니스트이지만, 여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기중심적이며 정서적 교류에 서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이 여인에 대한 집착, 성에 대한 집착을 낳지 않았을까? 물론 상체기 내는 관계 속에서 성과 사랑, 결혼에 대한 통찰과 각성을 얻어냈지만....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연대기적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각 장의 제목을 첫 결혼’ ‘수학원리’ ‘다시 케임브리지로’ ‘1차 세계대전과 같이 큰 사건 중심으로 뽑았다. 그래서인지 세계대전에 전쟁이야기부터 여자와의 갈등 이야기까지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담겨있다.

 

연대기적 구성을 갖추면서 나의 연인들’ ‘평화운동’ ‘수학에 대한 탐구욕’ ‘나의 지인들등으로 굵직한 소재들은 하나씩 묶어서 전해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편지도 주제에 따라 보낸 사람에 따라 크게 나누고 책의 맨 뒤에 첨부했으면 보다 일목요연할 것이다.

러셀의 자서전 ()을 보고 나니 ()권 역시 무척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결혼과 도덕>, <행복의 정복>을 얼른 주문했다. 나는 그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담론에 관심이 많다. 남녀 모두에게 억압적인 가부장제를 벗어나 개방결혼이 가능한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담론을 살펴보고 성과 사랑, 결혼의 방정식을 진지하게 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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