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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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끼 수료증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기획하지 않았다. 다만 남쪽으로 가기로 했을 뿐이다. 청주에서 서른 다섯 살 짜리 사내를 만났다. 그게 졸업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전주를 거쳐 천담구담을 지나는 동안 길남파가 조직되었다. 나는 형님이 되었다. 그리고 광주로 가서 자유를 즐겼다. 원 시상에 남사스럽더만. 그 날 새벽에 인건이는 돈벌러 되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에 장흥 보림사 벽화를 보며 삶을 반성했다. 잘 살아야겠구나. 특히 묙이 충격을 받은 듯 했다. 혀를 쟁기질 당하다니. 외계인도 조금 놀란 듯 했다. 톱으로 켜지는게 제가 아닐까 하는 것 같더라.
관산 정남진에서 빗소리 파도소리 요란한데 저들에게 어찌 그 시간이 그리 주어졌을까. 노래하고 울고불고 육갑을 하더라. 날이 어두어져 회진으로 들어갔다. 깎궁이가 가기 싫어하며 떠나고 좌샘이 그 밤에 합류해서 명예유끼가 되었다. 뜨거운 방바닥에 누워 서로 돌림소설짓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역시 변경연 연구원들이다. 놀러 와서도 문장을 갈고 닦더라. 나는 웃으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허당이 걸레질을 하는데, 그 폼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가 진정한 이슬베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묘당도 충무사를 거쳐 백련사까지 갔다. 완도에 이르러 청산도에 들었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전복과 못된 음식 돼지고기김치찜을 만들어 먹었다.
이른 아침이 되어 구불되는 언덕 소롯길을 넘으니, 세상에, 그 아름다움이라니. 그 바다. 숨이 멎었다. 은주는 끼고 있던 배추를 내려 놓았다. 아직 바람이 매서운 푸른 바다를 지나 신지도 명사십리에 이르니 또 얘들이 이상해졌다. 특히 우결의 하얀얼굴과 허당이 단단히 제 몫을 해 주었다. 묙이 분해서 애마부인 포즈를 취했다. 평소에 차분한 막내는 제 가방 어디 놓아두었는지도 모르고 가로 뛰고 세로 뛰었다. 깔판으로 쓰려했던 외계인은 재치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선운사 장어집에서 밥 잘 먹고 헤어지려는데, 작별 앞에- 며칠있다 또 만날 얘들이- 또 울고불고 야단을 떠니 좌샘이 보다 못해 밥값을 냈다. 비쌌을텐데. 발길가는 대로 떠난 여행은 완벽했다. 인생도 그러하련만 지레 겁을 내는구나. 그렇게 나흘을 지나고, 서울에 와서 그들 하나하나에게 수료증을 써 보낸다.
"나는 재미있고 너는 행복하게 " - 슬로 사내 우성이
이태리 남자라고들 놀린다. 5분 뒤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가 청산도 사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천천히 느릿느릿 뒷짐지고 노래 부르며 청산도 고갯길을 오르는 뒷모습이 너다. 구름이 전들 갈 길을 알겠느냐? 바람이 가면 바람과 같이 푸른 보리밭 고갯길 어루만지며 가면 되지. 너는 따뜻하고 결이 고운 남자다. 네 목소리는 게으르고 평화롭다. 네 책은 바로 그 노래 같을 것이다. 그리되어야 네 책이 된다.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하라 - 피가 다른 묙이
너는 피가 달라, 피가. 말이 많으면 그 속에 어록도 많은가 보다. "나를 복리로 굴리면 세상을 기쁘게 할 수 있다", "사회적 고아인 줄 알았으나 이제 아니다"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 "피가 문제야, 피가." 그래, 너는 주화입마에 빠지기 쉬운 피를 가지고 있지. 그건 아마 '창조적 퇴보'일꺼야. 유난히 지난 일 년간 내 머리 속에 들어와 있는 네 사진이 많구나. 엘리베이터 앞에 꽃을 들고 서 있는 네 표정, 산토리니 고개 길에 앉아 있던 너, 팽귄걸음, 유난히 삶이 빨간 너구나. 아마 네 책은 화산 같을 것이다. 천 장을 쓰고 백 장을 가려내 터진 그리움으로 날리는 벚꽃잎을 만들어 내도록 해라.
나는 강으로 간다 - 눈까리 진철이
산과 산 사이, 산과 바다 사이를 강이 흐른다. 강은 육지를 버리지 않는다. 죽어서 겨우 헤어질 뿐이다. 강은 작고 삶은 크다. 외계인의 언어가 지구인에게 통하려면, 땅의 지평을 알아야한다. 산문이 가락을 타고, 시는 보편적 삶을 버리지 않도록 해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커피를 갈아 따뜻하게 마시게 했으니 고맙구나. 무주에서 많이 읽고 많이 쓰도록 해라.
ps 근데 씨방새야 눈 크게 뜨지마라. 보림사 사천왕상 같다. 뒷통수치면 톡 빠질라.
마을의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소녀 - 하얀 얼굴 선형이
너는 얼굴이 하얗다. 눈썹은 얼마나 짙은지. 내가 너에게 가드레일이라 부른 것은 범생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너는 5월의 수업을 기억하느냐 ? 네가 사마천의 치욕과 원효의 파계 그리고 김구의 복수를 가슴에 잘 품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성의 특징이다. 바다를 보아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있으나 여전히 푸르고 아름답지 않느냐 ? 보통의 인물이었으나 사건과 더불어 성장하면 잘 산 것이다. 삶을 담으면 좋은 책이다. 네 책은 조근조근할 것이다. 그러나 너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는가 알게 되었다" - 깍꿍이 상현이
그래, 한벽당 내려오는 길에는 안전장치가 없지. 그러나 거기서 넘어져 다친 사람은 없었단다. 넘어지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알만큼 바위투성이니까. 어찌 너만 그곳에서 넘어졌느냐? 그리고 어찌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네 다리 하나로 버티고 일어설 수 있었느냐 ? 아마도 꿀벅지 때문일 것이다. 힘도 쎄고 쎅스 어필한다. 염려마라. 네가 빠져 헹가래는 치지 못했다. 묙이 메트가 되어 주는데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애들이 날 들어 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너는 너를 실험하고 있다. 그리고 네 실험은 너의 혁명이 될 것이다.
'복창 터지는 아이, 그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 야구방망이 연주
얜, 막내가 언니같아. 알만하니 떠나는구나. 야구방망이와 곽타타 이야기를 좋아하는 너는 부드러운 개입을 잘 익히도록 해라. 여러 가지를 배우고 배운 것을 얼른 써 보는 것이 너의 큰 장점이다. 전복은 잘 떠지더냐 ? 전복을 떼어낼 때는 잘 돌려야한다. 우격다짐으로 해서도 안되고 손을 베어서도 안된다. 숟가락을 집어넣어 탁 걸리는 그곳에서 약간 힘을 주어 돌려야한다. 아마 아이들의 인생에 개입하는 법칙도 비슷할 것이다. 네 책이 그 부드러운 작동원리를 말해 주면 좋겠구나.
ps 웬만하면 네비게이터는 유리창에 부착해 두고, 돌 때는 좁게 천천히 돌도록 해라. '휙' 하지 마라. 네 결혼식에 꼭 가도록 하마.
목표를 따르는 자유 - 웃으면 예쁜 갱수기
갱수가, 천천히 말하거라. 너무 빨리 가려하지 마라. 몸을 뒤에 두고 마음만 달려가면 늘 서두르게 된다. 그러나 어쩌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생긴대로 살게 살게 마련이니 그렇게 살아야 잘 산 것이다. 다만 몸과 마음이 늘 앞서서니 뒤서거니 함께 다닐 수 있도록 조율하거라. 그것이 건강의 첫째다. 많이 웃도록 해라. 뒤에 있는 웃음이 네 얼굴의 앞으로 나서게 해라. 성취가 웃음이 되게 하지 말고, 웃음이 성취로 가는 동료이게 해라. 네가 만든 인식시스템은 사랑이게 해라. 그러면 세상이 좋아지지 않겠느냐 ?
나를 구할 사람은 나 뿐이다. 시간이 없다 - 다촛점 인건이
너의 길을 꾸준히 가는 것도 좋으나, 주어진 일을 사랑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것을 사랑하는 것, 그게 아마 진짜 사랑일 것이다. 수업 중에 네가 발표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씻기를 멈추면 죽음을 향하는 첫걸음이다. 신체의 불결은 영혼의 불결이다. 자존감의 상실이 곧 죽음이므로. 부러진 면도날로 수염을 깍는 자는 죽지 않는다. 먼저 죽은 자는 결국 죽는다' 너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도 좀 자두어야한다, 인건아.
느그들 연락 끄느면 죽을 줄 알어 - 길남파 은주
어려울 때 마다 너에게는 너를 도와주는 사람이 항상 있었다. 신기하지 않았느냐 ? 어찌 그런 일이 항상 일어났겠느냐 ? 그것은 너에게 너를 돕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만이 항상 원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것이다. 네가 그 작은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네가 웨버를 맡은 후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었다. 네게 맡기면 염려할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들 너를 돕지 않겠느냐 ? 눈물이 너를 키우고, 어려움이 너를 자유롭게 했을 것이다. 책 또한 너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개시끼 이야기는 의리의 책 아니냐. 너의 삑살이 우리의 즐거움이구나
사무실 책상에서, 연구원 1년차 수료증을 받았다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졌다.
청산도에서 불어 온 남도의 바람 탓일게다.
그리움의 눈물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머리속에서, 1년간의 영상이 빠르게 돌아간다.
여행을 통해 허당, 꼬막, 이태리 남자까지,,
재미있는 나를 많이 만났다.
빛나는 수료증을 주신 행님께 예를 갖추어야겠다.
음지 : 아그들아! 길남파 형님 오셨다. 인사드리자.
음지 : 형님!
유끼 : (다 같이 허리 90도) 싸랑합니다~
길남파의 자칭 [넘버 3]
허당이 일어나 소리쳤다. "모두들 잔에, 술을 따르자."
유끼 : (잔에 술을 가득 채운다)
허당 : 정좌...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또한 안주와 함께,..
...중략..
허당 : 수료증과 더불어 졸업장도 받게 하시고...
형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유끼 : (합창) 뽕가오리이다...
사부님!
너무 감사합니다. 조언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공헌해야 할 지, 지난 1년 만큼 생각을 많이 한 적도 없었는 것 같습니다.
유끼들 모두가 제 역할들을 잘 하니, 저의 어설픈 공헌이 오히려 불편함과 방해가 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예전에 잘 되었던 공헌들이 잘 되지도 않았고, 많이 주저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심적으로 많이 위축되기도 해서 제가 생각해도 어색하고 쌩뚱맞은 행동이 나오기도 했군요.ㅋㅋ
묵언으로 수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수업 외의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자연스럽게 행동하던 것들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럽고 편한 자리가 되어야 하는 곳에서도 뭔지 모르게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역시 넉살이 부족한 제 성격상 유끼들에게 편한 관계가 되지 못한 듯해요. 그래서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더 배우고 익혀야 할 분야입니다.
늘 사부님께서는 저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챙겨주셨기에 그나마 약간의 공헌을 한 것 같습니다.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운 1년이었습니다.
앞으로 1년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시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연구원 모든 분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한편으로 많이 어설픈 제가 건방지게 여러 정황들을 헤아리지 못한 채 글을 올린 적도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좀 더 사려깊지 못했습니다. 단, 전혀 악의는 없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기회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변경연 연구원분 모두 화이팅하세요.
너는 천천히 걷는 사람이다. 책도 천천히 보고, 책 속에 있는 좋은 글들은 외우도록해라.
우리가 지난 일년 동안 보았던 책 중에서 네가 좋아하는 귀절들을 골라 베껴서
별도의 작은 책으로 만들고 매일 외우고 다시 씹고, 배운 것을 너에게 적용하도록 해라.
100번을 외우면 자연히 그 뜻을 알게 된다. 오랜동안 선인들이 즐겨했던 배움의 방법이었다.
아마도 너에게 적합할 것이다.
은주에게 요가를 물어 잘 배우고, 매일 지금처럼 기쁨으로 하루를 보내거라.
조용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와 준 네게 감사하며
항상 쓰이고자 했던 마음을 나도 배워서 따라 하도록 애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