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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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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3일 22시 56분 등록

,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대신, 후회하지 마, 알았어? 3 담임 선생님은 마침내 짜증을 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말 한마디는 내 삶의 첫 갈림길에서 내 여정을 완전히 바꾸었고 그에 따라 내 삶의 방향도 달라졌다.

 

 30여 년 전, 어느 대학을 지원할 것인가를 놓고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담임은 A 대학 국문과 지원을 권했고, B 대학 사회학과를 원했다. 특별히 B 대학 사회학과를 고집한 것은 그 대학이나 사회학에 어떤 관심과 열정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일 년은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이 아버지 삼 개월 치 월급 가까이 되었으니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자식의 입장에선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며칠을 대치했다. 원서접수 마지막 날이 되어 담임은 포기한 듯 앞서 그 한 마디를 내 뱉었다. 순간, ‘이렇게 담임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고집을 피울 필요가 있나 하는 갈등이 일었다. 결국,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담임의 뜻대로 A 대학으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국어와 한문을 좋아했으니 적성에 맞을 것이고, 취직이 힘들겠지만 무슨 활로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나의 막판 뒤집기를 합리화했다. 부모님은 단지 대학에 합격 한 것만으로도 기뻐하셨다. 내 삶의 첫 번째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어쨌든 누가 뭐래도 결정은 내가 한 것 이니까 말이다. 막판에 학교와 전공이 바뀌니 내 삶의 방향도 바뀌었다. 삶의 방향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결정되고 또 그런 결정이 때로는 최선의 선택의 될 수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분한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나의 두 번째 삶의 전환은 첫 직장에서였다. 4학년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예상했던 비인기학과의 설움을 톡톡히 당해야 했다. 교직과정을 이수했으면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임용은 그리 어렵지 않던 시기였다. 왜 그때 교사가 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지 간혹 후회가 들기도 한다. 아마도 교사라는 직업이 여성들의 전유물이고 사내가 하기에는 재미없고 자기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 편견, 그리고 무지 때문이지 않았나 한다. 대기업 입사 지원서는 주로 경상계열 학과에 배정되었다. 간혹 인문계열의 영문학과 정도가 포함되곤 했다. 매일 학생회관내의 취업 게시판을 보았지만 지원자격 제한으로 낙담만 커갔다. 그렇다고 첫 직장을 중소기업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한 동안 취업 안내문을 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랜만에 취업 게시판을 보았는데 한 해운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 공고에  전공제한 없음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을 했고 이후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그 해 말 입사가 최종 확정되었다.

 

 입사 후 내 삶은 다양한 경험으로 풍부해졌다. 그것은 소위 발전적 전환이었다. 영업을 하면서 내 행동반경이 난생 처음 경기도를 벗어나 국내외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무역 및 해운 실무, 컴퓨터, 회계, 재정, 국제법규, 해운업의 수익과 비용 등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배웠다. 무엇보다도 영리가 최우선인 기업의 생리상 딱딱하고 메마른 조직문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동료간, 상하간 따스한 정이 묻어났으며 인격을 존중해 주는 문화였다. 임직원 복리 후생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온정은 잦은 야근에도 불구하고 불평하지 않고 근무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나는 직장인으로 변모해 갔다. 특히, 세 차례의 교육 프로그램은 나를 성장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항을 출항하여 미국 서부 해안 지역을 운항하는 화물선 승선 교육은 내게는 첫 미국 방문이었다. 사방이 짙은 에머랄드 빛의 바다, 바닷길을 헤쳐 나갈 때 만들어 내는 하얀 포말, 고요한 밤바다를 지나면서 바라본 수많은 별들, 항해 중에 만난 돌고래 무리 등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느 날인가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만 오천 톤을 적재할 수 있는 선박이 일체의 흔들림 없이 양탄자 위를 미끄러지듯 항진하고 있었다. 드넓은 태평양 한가운데 바다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고 잔잔한 바다였다. 성질 포악한 사람 이면에는 부드러운 일면이 있는 것처럼 바다도 그렇게 순한 속성이 있음을 알았다. 내가 탄 배는 첫 항구인 LA 항을 도착지로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순으로 기항을 했다. 각 항구에서 정박하는 동안, 도시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다.

 

일년 후에는 두 달간 뉴욕과 코네티컷에서 연수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주말이면 무작정 암트렉이나 버스를 타고 보스톤,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 동부 도시를 여행했다. 한번은 추수감사절 휴가에 연수를 받고 있는 회사 사장의 초대를 받았다. 그의 집은 코네티컷에 있었는데 미국 전 지역에 흩어져 하는 가족과 친척들이 모였다. 대 가족이었다. 거실의 TV에선 풋볼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자신의 아들과 딸, 젊은 조카들을 주축으로 풋볼팀을 만들었다. 집 앞 넓은 공터에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넘어지고 엎어져도 서로 킥킥거리며 게임을 즐겼다. 저녁이 되자 각각 만들어 온 파이를 꺼내 놓았다. 누가 만든 파이가 제일 맛있는지 결정하자고 하면서 그는 내가 시음을 해 결정해 줄 것을 부탁했다. 열 종류의 이상의 파이를 먹었다. 그 중에는 내 입에 맞는 것도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들은 파이에 맛에 따라 달라지는 내 얼굴 표정을 보고 즐거워했다.

 

한 회사에서 이 십여 년을 재직하는 동안 회사는 부침을 겪었다. 한 때는 창사 최고의 실적을 올린 적도 있었으며 깊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기도 했다. 그 부침처럼 나의 삶도 성쇠의 사이클을 그렸다. 때로는 예상치도 못한 유탄에 맞기도 했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인생처럼.  

지난 연말에 퇴직을 한지 구 개월이 지났다. 또 다른 중요한 삶의 전환점에 서있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여러 감정이 뒤엉켜 혼란스럽다. 전환 전문가 윌리암 브리지스는 이러한 혼란도 전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성장의 과정이라고 했다. 이제는 그 혼란을 벗어나 길을 정해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IP *.50.9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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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4 01:34:14 *.38.189.27

형님, 어찌 글을 쓰다 만 느낌이 드네요.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요. 윌리엄 브리지스는 저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형님도 이렇게 글을 끝맺으면 안 좋아할랍니다.ㅋ 담 이야기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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