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 조회 수 1540
- 댓글 수 4
- 추천 수 0
가을 바다를 보고 왔습니다. 아버님 생신을 기념하여 부모님 모시고 여동생 내외와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세 가족이 움직이면 어른이 여섯 명에 어린이가 세 명입니다. 그래도 아버님 생신 덕에 가을 바다로 온 가족 다함께 여행을 즐겼습니다.
무창포는 석대도까지 약 1.5km의 바다길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무창포의 바다길은 보령팔경 중 2경으로 일컬어지며 바다길이 열리는 때는 그야말로 차도가 주차장으로 변할 만큼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희가 찾은 시기는 바다길 열리는 때가 아닌지라 고즈넉한 가을 바다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 많은 해수욕장을 찾아 온 것이 아니기에 저 멀리 석대도를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수 년만에 바다를 찾았습니다. 바다를 찾아 가슴이 뚫리는 체험을 맛 본지 몇년 만인지 헤아려 보았습니다. 한 오 년 전이었나 모르겠습니다. 아내와 단 둘이 금요일 밤을 달려 속초 겨울 바다를 보았던 적에 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바다의 맛을 알았습니다. 바람 몰아치는 겨울 밤에 방조제에 부딪치는 성난 파도를 보면서 ‘이런 풍광 맛에 바다를 찾는 구나!’ 느꼈습니다. 가슴 속 참 많은 것들이 바람을 타고 파도를 타고 빠져 나가는 체험이었습니다.
수 년 전 보았던 속초의 바다는 거칠고 매서운 겨울 바다였다면, 이번 무창포 가을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서해로 지는 노을은 바다에 붉은 기운을 한껏 뿌렸습니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광이었습니다.매일 보는 태양의 장엄함을 이렇게 잊고 살았구나 탄식이 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떠오를 태양빛이었지만, ‘이 순간’만을 위해 뿌려지는 저 햇살은 내일의 빛깔과는 분명 또 다를 것입니다.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조개를 줍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무창포 해변을 걸었습니다. 무창포 해변의 파도를 보며 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파도는 이 해변을 쓸고 또 쓸어 왔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영원한 파도에 영원한 시간이 젖어 있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짦기에 그래서 더 아름답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자연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여행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원이 곧 순간이며, 순간이 곧 영원이라고 무창포의 노을과 파도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르고 또 손주를 보며 한 없이 웃고 또 웃으시는 두 분의 모습이 마치 무창포의 가을 바다와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을 바다가 좋았습니다. 바다에서 도시로 돌아오면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다음 여행을 언제라고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번에도 저희 가족은 분명 바다를 보러 갈 것입니다.
2013-10-21
파주 운정에서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332 | 그래 마음껏 바닥을 쳐보자 [6] | 녕이~ | 2014.06.02 | 1532 |
4331 | 당면한목적함수_구달칼럼#38 [8] | 구름에달가듯이 | 2014.12.29 | 1533 |
4330 | 미안하다, 분노다 | 에움길~ | 2015.01.26 | 1533 |
4329 | [10월 2주차] 내 커리어의 화두 [4] | 라비나비 | 2013.10.07 | 1534 |
4328 | #9 한발 내딛기_정수일 [12] | 정수일 | 2014.06.08 | 1534 |
4327 | 천원의 행복_찰나칼럼#33 [8] | 찰나 | 2014.12.08 | 1534 |
4326 | #43 2월 오프 후기_정수일 [2] | 정수일 | 2015.02.17 | 1534 |
4325 | 가족은 책이 고프다 [1] | 앨리스 | 2015.02.09 | 1535 |
4324 | #31. 1인 기업의 전략 (12월 오프수업) [1] | 쭌영 | 2013.12.29 | 1538 |
» | 가을 바다를 보고 왔습니다 [4] | 유형선 | 2013.10.21 | 1540 |
4322 | 어머니 - 그날 | 書元 | 2014.01.05 | 1541 |
4321 | 사람을 찾습니다 [1] | 제이와이 | 2014.01.20 | 1542 |
4320 | 욕망에 귀기울이기 [13] | 녕이~ | 2014.07.07 | 1543 |
4319 | P를 생각하며 | 제이와이 | 2014.03.03 | 1544 |
4318 | 萬或의 言靈 [8] | 종종 | 2014.11.17 | 1544 |
4317 | 전환의 시간 [2] | 유형선 | 2013.10.14 | 1545 |
4316 | 2월 오프수업 후기 [10] | 왕참치 | 2015.02.17 | 1545 |
4315 | 단상(斷想) 66 - Anchoring 2 [3] | 書元 | 2011.05.29 | 1546 |
4314 | 내 작은 행복 [8] | jeiwai | 2013.07.22 | 1546 |
4313 | [7월 4주차] 지금 나의 컴퓨터는 제대로 기능하는가? [8] | 라비나비 | 2013.07.16 | 15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