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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2일 11시 01분 등록

251에 걸려온 전화. 건너편 남자는 말한다. "커피 한 잔 사 줄까요?" 나의 사무실 1층 로비에서 전화를 거는 중이다. 내가 거부하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내려오세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9에서 오후3까지 나는 사무실을 지킨다. 커피가 땡길 시간이다. 치열하게 산 하루라면 달달한 마끼야또 가, 식사 후 포만감이 들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걸 아는 친구이다. 오전부터 몸살기운이 있던 차에 걸려온 전화이다. 휴대폰을 챙겨 들고 커피집으로 내려간다. 이미 주문해 놓은 커피가 식어가는 중이다. “커피 다 식는데 왜 이제 내려옵니까?” 내려 올려고 하던 차에 걸려온 전화내용으로 말문을 텄다.

 

"자금중개수수료는 통상 얼마나 받나요?"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그가 묻는다. "무슨 중개수수료?" "자금을 중개해주고 받는 수수료 말입니다."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을 거슬러 짚어본다. 오늘, 어제, 그제......그 말이구나! 감이 오기 시작한다. 나와 그 그리고 제3의 남자. 이 질문의 주인공은 제3의 남자이다. 3의 남자 그가 자금을 중개해주고 수수료를 얼마나 챙겼을까. 하는 의문에서 나온 질문이다. 오늘 고객과의 일을 말하던 중간에 친구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입으로 나온 것이다. 몇 해 전 주식투자로 자신의 전 재산을 홀라당 날려먹은 그 건에 대하여 그 일을 중개하던 직원이 그때 얼마나 많은 돈을 중개수수료로 먹었을까? 하는 마음이 일었던 모양이다. 나를 중심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의기투합이 잘 되던 끝에 대형사고가 터졌는데 그 와중에 커미션을 많이 챙겼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일었나 보다.

 

잘 나가던 계좌에서 돈을 찾아달라던 고객, 무슨 일인지 묻는 내게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경비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고객이 관리직원에게 자신이 무엇에 쓸 돈인지 일일이 알려줄 필요는 없지만 묻는 나는 감을 잡는다. 운용이 잘되는 계좌에서 돈이 나간다는 것은 꼭 필요한 곳에 쓸 일이 생겼다거나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투자처가 생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 그 진실이 밝혀진다. 이렇게 나가버린 돈은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좋은 투자처에서 결과가 좋아도,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도, 경비로 사용을 했어도 어떤 이유로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경비로 쓴다던 돈은 다른 곳에 투자를 했었고 그 결과가 좋지 않아서 문의 차 걸려온 전화였다. 투자를 할 때는 물어보지 않고 결과가 좋지 않아지면 상황을 물어보니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같이 D그룹사태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이다. D그룹의 자회사 중 한곳의 채권에 투자를 하고 그것이 잘 못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들의 용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고객이 이런저런 내용을 물어보러 전화를 건 것이다.

 

적정한 수준의 중개수수료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노동의 댓가이다. 돈을 필요로 하는 자와 돈에 여유가 있는 자를 연결시켜주는 일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중개행위는 수수료가 얼마이든 상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결과가 좋으면 아무도 커미션을 얼마 받았는지 따지지 않는다.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잃은 돈에 대한 생각이 날 수 있다. 돈의 액수에 따라 결과도 치명적일 수 있다.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말하지만 심정적으로는 타인을 탓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사람의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도 하니까. 그 동안 내가 본 친구는 남 탓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오늘의 이 질문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투자의 실패도 마음이 아픈데 그 와중에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걸 지켜보는 나는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글쎄, 중개수수료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네. 설마 고객 돈을 중개하면서 커미션을 받았을라구.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친구가 커미션을 위해서 투자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정말 그랬다. 나는 한번도 내가 함께했던 직원이 투자자산으로의 매력말고 다른 목적을 위해서 고객을 끌어 들였다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직원에게 투자했던 고객들이 오늘 친구의 말 같은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이 의심하는 것과 친구가 의심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업이 조금 다르긴 해도 영업을 하는 사람이 영업직원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렇구나. 너도 그 직원을 그렇게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구나.’ 나는 묻는다. “내가 물어봐 줄까? 내가 물어보면 아마 거짓말은 못 할텐데.” 아니라고 답한다. 이미 마음에서 의심이 일었으니 물어보는 행위는 의미가 없다.

 

동양고전 [순자(荀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증자가 아들 증원에게 하는 말이다. 물고기와 자라. 큰 자라. 악어는 깊은 못도 얕다고 생각하고 그 속에 다시 굴을 판다. 매와 솔개는 높은 산도 낮다고 생각하고 그 위에 다시 둥지를 만든다. 그런데 그것들이 잡히는 것은 반드시 먹은 미끼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진실로 이익 때문에 의로움을 해치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면 치욕스런 일이 닥칠 수가 없는 것이다.” 먹은 미끼 때문에 목숨을 잃는 물고기나 매와 같이 작은 이익 때문에 의로움을 해치는 사람들이 있다. 소탐대실. 많은 사람들이 소탐대실 때문에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그는 작은 이익 때문에 고객의 신뢰를 져버리는 우를 범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속담에 “흘러간 탄환은 움푹한 구덩이에서 멈춰지고, 근거 없는 말은 지혜 있는 사람에 의해 멈춰진다.”고 했다. 이 투자의 실패는 나에게서 멈추는 것이 맞다. 나로 인하여 시작된 모든 인연의 고리는 나에게서 멈추는 것이 옳은 일이다. 친구에게 말한다. “커미션을 많이 챙겨서 그라도 상황이 좀 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나의 선택에 대한 믿음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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