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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4일 07시 06분 등록

 

길 위에서 받는 수업

 

 

 

시의 제목은 이타카다. 10년을 끈 트로이전쟁 작전 참모 오디세우스의 10년 걸린 귀향길 방랑과 모험을 요약해놓았다. 고향 이타카에서 아내와 떠나올 때 젖먹이였던 아들이 기다린 지 20년이다. 남편과 아내는 중매로 결혼해서 첫 아들이 아장아장 첫걸음 뗄 때 헤어졌다. 전쟁 때문에 생사를 알 수 없는 이산가족을 그리워한 아픔을 한국 사람은 안다. 이제 시를 읽어 보자.   

 

 

 

이타카 (콘스탄틴 카바피)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라곤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할지니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서지 않으면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페니키아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거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 마라

비록 네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이타카는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호메로스의 장편서사시 오디세이아는 모험과 영웅 여정의 상징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의 모험을 패러디하거나 자기 작품의 모티프로 삼았다. 이타카는 오디세우스의 목적지, 북극성이었다. 오디세우스의 이타카처럼 남편을 찾아 길을 떠난 여자들도 남편이 사라진 먼 곳으로 인해 아름다운 여정이 시작되고, 그 길 위에서 풍요로와지고 현자가 될까?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영웅 여정인 것처럼 잃어버린 남편을 찾아 길을 떠나기로 작정한 여자들의 길 역시 영웅 여정일까? 오디세우스가 남자라는 사실과 그녀들이 여자라는 게 여정에 차이점을 줄까?

 

먼저 영웅이 무엇이지 나름나름 알아두는 게 필요하겠다. 나에게 영웅은 전쟁 영화 주인공 람보와 수류탄을 안고 산화한 백마고지 소대장, 체조나 마라톤같이 신체의 극한에 도전하는 종목 올림픽 3관왕, 나라를 세운 건국 시조가 떠오르는 단어다.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그의 두껍고 무거운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웅을 어떤 의미에서든 자기를 복종시킨 사람(29쪽)으로 보았다.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이고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컬는다. 그런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과 영감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명과 사상에서 비롯된다. (33쪽) 캠벨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영웅 여정을 살펴본다. 하나는 개인적, 사회적이든 이전에 없었던 것을 가지고 오는, 그러니까 한계를 넓힌 영웅에 대해서다. 다른 하나는 우주의 생성과 발달을 다룬다. 후자야 말로 예수님과 부처님과 마호멧과 조로아스터 등 세계종교사 책의 창시자들을 문화권에 따라 다른 얼굴과 이름을 가지고 묘사된 영웅으로 동격 취급한다. 이 부분 때문에 번역자 이윤기씨는 얌마, 예수님이 어떻게 영웅이냐?” 욕을 푸지게 들어먹었다.

 

캠벨이 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를 와작와작 읽어댄 후 정리한 영웅 여정을 살펴보자. 입문, 하강, 귀환의 3단계다. 평범한 사람은 어느 날 영웅으로서의 부름을 받는다. 그곳은 어두운 숲, 큰 나무 아래, 샘가일 때가 많다. 소명을 받아들이면 모험이 시작되고 거부하면 황무지에 그대로 남는다. 변화의 때에 이른 무의식은 끊임없이 전령관을 보낸다. 부름을 받아 모험의 첫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길은 출발한다. 입문 과정에 초자연적인 조력자의 도움이 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강단계에서 그()는 고래의 배로 상징되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어두움은 시련의 시간이면서 자기발견의 과정이다. 그 동안 그는 여신과 만나고 아버지와 화해하며 신격화하고 홍익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획득한다. 다음 단계는 귀환이다. 이 때 귀환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그가 획득한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혜택이 되지 못한다. 탈출 과정은 불가사의하다. 어떤 경우는 외부로부터의 구조가 온다. 다른 이는 내적으로 쫒기는 과정을 거친다. 귀환의 관문을 통과하면 영웅은 두 세계의 스승이 되고 삶의 자유를 얻는다.

 

여성 영웅 여정에 대해 다룬 책들이 있다. 진 시노다 볼린의 책을 본다. 여성영웅의 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여자들은 보통 관계를 위해 여정을 시작한다.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정의하는 여성에게 관계는 자아정체감의 일부다. 또 희생자가 아니라 주인공의 삶을 선택하려고 길을 나선다. 그녀는 죽음과 상실의 구간을 지난다. 위협의 시기를 지난다. 진퇴양란의 어려움에 처한다. 전진할 수 없고 아무런 모색도 가능하지 않을 때는 선험적 기능에 의지해 더 큰 자아에서 대답이 올 때까지 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성실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깨어있어야 한다. 여성이므로 임신으로 인한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녀를 생명을 실어오는 어머니로 활용하려는 모성에 대해 언제 어머니가 될 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게 필요하다. 이 부분을 진 지노다 볼린은 곰의 위력에 저항하기로 표현한다. 곰은 매우 모성애가 매우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 뱀의 힘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 오랫동안 여신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푸대접을 받는 뱀을 통해 여성적인 힘을 자각하라는 의미다.

 

읽고 있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잃어버린 남편을 되찾기 위해 모험의 길에 오른 여자들, 프시케와구렁덩덩 새선비의 셋째딸과 달의 동쪽 해의 서쪽으로 간 막내딸은 모두 관계를 위해 여정을 출발했다. 콩쥐의 여정도 그 끝에 닿아있다. 원님 잔치에 가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받은 과제의 공통점이 있나 살펴보려 한다. 비슷한 과제들이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반복해서 나온다면 그녀가 어떤 자질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으리라.  

 

프시케는 시어머니인 아프로디테로부터 곡식 분류하기, 황금양털 얻어오기, 천상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폭포에서 크리스탈 병에 물 담아오기, 지옥에 가서 화장수 리필해오기 과제를 받았다. 구렁덩덩 새선비의 막내딸은 빨래하는 할머니의 빨래를 대신해주고, 밭 가는 농부의 밭갈이를 대신해주고 옹달샘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듣는다. 그녀는 남편이 결혼하려는 여자와 시합을 해서 승리한다. 종목은 수십 리 빙판길에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물 길어 오기, 새들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새를 날려 보내지 않고 꺾어오기, 호랑이 눈썹 빼오기 등이었다. 해의 서쪽 달의 동쪽의 셋째딸은 그녀가 가야할 장소를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들은 바람에게 묻는다. 할머니들은 황금빗, 황금 물레, 황금사과를 준다. 이 물건들을 남편이 억류되어 있는 성 안에 들어갈 비용으로 쓴다. 그녀가 산 건 그와 이야기를 나눌 하룻밤이다. 그러나 남편은 마법의 액을 마시고 잠들어버려서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우연히 막내딸의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왕자에게 언질을 주어 3일째에야 듣는다. 마지막 과제는 왕자의 얼룩이 진 셔츠를 누가 빨래를 잘 해서 표백해 내는 지였다. 막내딸이 승리했다. 새어머니로부터 콩쥐는 밭 갈고, 물 긷고 방아를 찧는 과제를 받았다. 도구는 하나같이 신통잖았다.

 

비슷한 점이 눈에 뜬다. 첫째는 밭갈이에 해당하는 작업이 있다. 둘째 곡식 분류나 방아 찧기, 셋째는 빨래하기나 물 긷기에 대한 과제가 있다. 넷째는 옹달샘이든 지하로든 하강의 과제가 있다. 다섯번째는 용기를 시험하는 과제가 있다. 호랑이 눈썹을 뽑아오거나 뿔에 받치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는 황금양털을 얻어와야 한다. 고혜경은 밭을 갈며 자신의 지평을 넓히고 물을 통해 깊이를 추구하고 죽음의 세계를 포함하여 내면을 탐색한다고 읽는다. 방아찧기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경쾌함을 의미한다. 참새는 아프로디테의 새다.   

 

진시노다 볼린은 곡식 분류는 우선순위 분간, 황금양털은 여성성과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권력 획득하기, 폭포에서 물 퍼 오기는 전체적이고 순환적인 시각 확보, 지옥에 다녀오면서 탄원하는 이들 3명 무시하기는 거절하기로 보았다.

 

공통 과제들이 현대를 살고 있는 여성에게 주는 힌트, 삶의 지혜는 무엇일까 살펴보려 한다. 많은여성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이 사랑하고, 결혼이든 어떤 형태로든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삶을 꾸려간다.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게 되겠다. 아마도 이런 책들은 종교학, 여성학, 신화학을 전공한 이들의 것이리라. 내가 여성학자, 종교학자, 신화학 전공자가 아니라는게 부끄럽다. 하지만 나는 질문과 궁금함을 가지고 있는 보통사람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결혼의 지혜를 얻고자 읽고 싶은 사람이다. 내 수준만큼 읽고 답을 얻어가면 되리라. 그게 나의 길이리라. 나도 그 길 위에서 뭔가 공부하게 되겠지. 무얼 만날 지 아직 모른다.

IP *.153.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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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4:29:33 *.51.145.193

내일을 겁내지 않는 누님의 당당함은

오디세우스와 닮았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3.11.05 16:52:34 *.43.131.14

재용^^ 힘을 주는 댓글 고마워요. 저는 글로 쓸 때만 용감해보이는 듯 해요.

 

언젠가 재용이 했던 말,

 '글을 볼때랑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 많이 달랐다'는 말이 잊혀지지 않아요.

 

재용^^ 우리 팔팔이가 모두 첫 책을 써내고

수업료를 찾아들고 재용과 네팔로 진짜로 히말라야 트레킹 갈 수 있기를 저는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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