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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2일 06시 53분 등록

 

사랑이 올 때 경계경보가 울리는 여자를 위한 세 개의 사과

 

 

아틀란테는 여자라고 하기에는 남자같고 남자라고 하기엔 여자 같았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청년의 용기가 하나로 어우려져 있는 얼굴을 갖고 있었다. 현대 배우로 치자면 누구 같을까? 샬롯 갱스부르? 영화에 대한 식견이 짧은 나는 깜깜하다. 아틀란테의 이미지가 누구 같을 지 궁금하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신에게 물어보았을 때 이런 신탁을 받았다.

아틀란테여, 결혼하면 안된다. 결혼하면 너는 끝장이다.”

그녀는 신의 뜻을 두려워한 나머지 어린 시절에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신들에게 서약했다. 아틀란테에게는 초인적인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달음박질의 명수였다. 남자들과의 교제를 피하려고 오로지 사냥에만 몰두했다. 아틀란테의 사냥기술에 대해서는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르테미스가 칼뤼돈에 멧돼지를 풀었다. 멧돼지 눈은 핏발과 불길로 이글거렸고 털은 날을 갈아놓은 창끝처럼 뽀죡하게 서 있었으며 엄니는 인도산 코끼리와 비슷했다. 여신은 칼뤼돈 왕국의 왕이 자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잊어버린 걸 괘씸하게 여겨 진노했다. 멧돼지는 열매맺던 곡식과 포도덩굴 올리브 나무가 심겨진 전답을 못쓰게 했고 양떼 소떼들을 떼죽음에 이르게 했다. 왕은 각지의 그리스 영웅들에게 파발을 보내어 이 굶주린 괴물을 죽이는 사냥대회에 참여해주기를 호소했다. 내노라하는 쟁쟁한 젊은이들이 참가했다. 그들은 훗날 자기 신화 속에서 일가를 이룬 영웅들이다. 미노스왕의 미궁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테세우스,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황금양털을 얻어온 이아손, 뒷날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결혼해서 아킬레우스의 부친이 된 펠레우스, 아이아스 아버지 텔레몬….세계문학전집의 1권이 되곤 하는 그리스로마신화를 만화든, 어린이버전으로든 읽어가다 보면 필경 조우하게 될 이름들이다. 아틀란테도 이 사냥대회에 합세했다. 나는 아이아스의 이름은 어디서 들었나 모르겠다.

 

그런데 그녀를 보고 첫 눈에 반한 청년이 생긴다. 바로 칼뤼돈 왕국의 왕자님 멜리아그로스다. 사냥꾼 일행은 멧돼지가 숨은 동굴을 향해 갔다. 많은 이들이 빗맞히는 가운데 아탈란테가 쏜 화살만이 괴물에게 맞았다. 실로 용감하고 화살 쏘는 실력이 출중한 궁수임을 알 수 있다. 멜레아그로스는 아틀란테의 수훈을 인정하는 선언을 한다. 안카이오스 같은 사람은 여성에게 이런 수훈의 칭송이 돌아간 것이 못마땅했다. 자기 무용을 떠벌리고 멧돼지와 여신에게 도전했다가 멧돼지에게 치명상을 입는다. 멜레아그로스가 창을 던져 멧돼지를 죽인다. 멜레아그로스는 자기 전리품인 그 멧돼지 머리와 모피를 아틀란테에게 바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아틀란테를 질투하여 말썽을 일으킨 자들이 있었다. 멀레아그로스의 외삼촌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 선언에 반대하여 처녀가 갓 기증받은 전리품을 빼앗고 만다. 분개한 젊은 청년은 결국 싸움의 와중에 두 외삼촌을 죽이고 만다. 이 소식은 그의 어머니의 복수를 낳아 결국 그의 생명이 달린 장작을 불에서 꺼내놓는 걸로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에 개입하게 된다. 아틀란테의 잘못은 아니지만 아틀란테로 인해 일어난 비극이다.          

 

암튼 아틀란테는 매력을 가진 여자였나보다. 칼뤼돈의 그런 일에도 불구하고 구혼자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려고 성화였다. 그녀는 성가신 요구를 물리치려고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다.

누구든 나와 달리기를 겨루어 이기는 이에게 상으로 나를 맡기렵니다. 하지만 나를 이겨내지 못하면 벌로 그 목숨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조건이 붙었는데도 한 번 해보마 도전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달리기의 판정을 맡은 사람은 히포메너스라는 남자였다. 히포메너스는 여자 하나 얻겠다고 이런 무모한 모험에 나서는 작자들이 한심했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려고 윗옷을 벗은 아틀란테를 보는 순간 그도 반해버리고 말았다. 히포메너스는 도전자들이 모두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혹시 이길 만한 자가 나서면 그들을 질투하곤 했다. 처녀는 질풍처럼 달렸다. 흡사 미풍이 처녀의 발에다 날개를 달아준 것 같았다. 아름다웠다. 아틀란테는 겨루는 족족 이겼고 진 사내들을 가차없이 죽였다.

 

히포메너스가 나서기로 하였다. 아틀란테는 독백한다. ‘어느 신께서 이 젊고 잘난 청년으로 하여금 목숨을 버리게 하실까? 불쌍하구나. 용모가 아니라 청춘이 가엾구나. 차라리 저이가 겨루기를 포기해주었으면 좋겠어. 혹 기를 쓰고 달려든다 해도 나를 이길 것 같지가 않구나.’ 아틀란테의 아버지는 딸을 달리기 시합에 나가라고 채근했다.

 히포메너스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이렇게 사랑에 빠지게 만든 것도 당신이라며 도와주십사 간절히 기도했다. 아프로디테는 그 기도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섬 퀴프로스에서 황금 사과를 세 개 따다가 히포메너스에게 주었다.

 

출발 신호가 울렸다. 출발하자 마자 청년은 황금 사과 하나를 아틀란테 앞에 던졌다. 처녀는 그걸 줍느라 머뭇거리느라 뒤쳐졌다. 아틀란테는 걸음을 재촉하여 히포메너스를 따라 왔다. 사과 한 알을 더 던졌다. 처녀는 또 걸음을 멈추었으나 곧 따라잡았다. 결승점은 바로 눈 앞이었다. 히포메너스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기도하면서 마지막 사과를 던졌다. 아틀란테는 그 사과를 주울 지 말지를 망설였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그 사과를 줍지 않고는 못 배기게 했다.

 

이렇게 해서 청년은 상으로 얻은 처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둘은 저희들의 행복에 취해 아프로디테에게 인사를 차리지 않았다. 괘씸해진 아프로디테는 이들이 퀴벨레 여신의 노여움을 사게 만들었다. 퀴벨레 여신은 아틀란테는 암사자로, 히포메너스는 수사자로 만들어 자신의 수레를 끌게 했다. (신화 원문 ; 벌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 이윤기 편역, 창해, 521~525)

 

이윤기씨가 편역한 벌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에 아틀란타의 이야기를 내 취향에 맞도록 이리저리짜집기 하고 조금은 풀어서 다시 떴다. 이 책은 19세기 중반에 씌어졌다. 1796년에 태어난 토마스 벌핀치는 미국 보스톤에서 평생 은행원으로 일한 평범한 남자였다. 59세에 세계각국의 신화와 전설을 수집해서 <전설의 시대> 연작 시리즈를 써냈다. 우연히 저자 약력을 읽다가 발견한 이런 평범한 이력이 평범한 나에게 용기를 준다. 신화를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고 쉽게 읽을 권리가 있다는 선언마냥 고맙다.

 

신화 속의 아틀란테는 사랑이 다가오는 걸 겁내는 여자였다. 나는 사랑이 다가오면 경계경보가 울리는 여자를 위해 아프로디테여신이 준 세 개의 사과의 의미를 음미하고 그걸 생활에서 써먹고 싶다. 번역자 이윤기씨는 하여튼 그 놈의 사과가 문제라고 농담을 했다. 어찌 보면 트로이전쟁도 사과 때문에 일어났다. 30년간의 사과농사로 공부하고 벌어 먹고 산 과수원집 딸램이인 나는 아침부터 유쾌하게 웃었다.

 

도대체 이 세 개의 사과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내가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진 시노다 볼린의 해석을 들어보자. 나는 마치 그녀의 근본주의자처럼 그녀의 해석에 나무늘보가 유칼리 나무에 들러붙듯 딱장구 하고 있다. 그녀의 아틀란테 신화의 해석이 누구의 책을 참고했다고 했는 지 살펴봐야겠다. 아틀란테 신화의 의미를 밝혀놓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책은 내가 발리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다가 인천공항에 두고 오는 바람에 지금 내 수중에 없다. 공항에 도착해서 그 놈의 매운 거 먹으러 간다고 서두르는 바람에 화단 가에 놓고 일어서 버렸다. 아마 순두부찌개와 라면을 먹었을 거다. 신혼여행 가서 내내 읽었던 책이었다. 기억나는 대로 써보면 이렇다.

 

첫째는 세월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첫번째 황금사과를 들여다 보았을 때 아틀란테는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이 비춰진 영상을 보았다. 아마 입가 팔자주름이나 눈가 주름, 새치가 많이 생긴 걸 어느 날 갑자기 목격했든가 생리 양이 현저히 줄기 시작하는 걸 생리3일 째에 느끼는 과정이지 않을까?

 

두번째 사과는 아이를 임신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가정과 양육을 바라는 마음, 이건 다른 여자들이 조금 더 일찍, 어떤 여자들의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갖는 욕망이었다. 아틀란테도 어느 순간 자기 안에 이런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거다. 그리고 자신은 불생불멸의 여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기가 늘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35세가 지나면 임신능력은 급강하한다.

 

세번째 사과는 그동안 자기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랑에 대한 원하는 마음이 자기 에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신화를 슬쩍 보면 아틀란테도 히포메너스에게 마음이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를 짝사랑하기 때문에 변변찮은 달리기 실력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그녀와의 구혼 경연에 나온 히포메너스가 달리기시합에 나오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사랑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왔고, 실제로 그 믿음 위에서 인생 대부분을 살아온 이들은 그 에너지를 선택적으로 다른데다 투여를 했을 거다. 일정 정도 성과도 있으리라. 사랑과 사랑하는 이가 함께 있는 삶이 씨앗의 형태로 비활성인 상태에 있을 때 그 모든 에너지는 그녀의 집중력이 자신이 선택한 어떤 것에 쏟아졌을 테니 그건 당연하다. 성호르몬은 성장호르몬이기도 했다. 그래서 성조숙증이 문제가 되는 거다. 아직 제 몸을 키우는데 써야할 호르몬이 다른데 너무 일찍 쓰여지기 시작하면 아이는 자랄 수 없다.   

 

세 개의 사과는 여성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다. 그건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성숙해가는 과정일테다. 나는 궁금하다.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도 신화 속 아틀란테처럼 사랑과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던 걸까? 잡념 낳고 딴 생각 선수인 나는 신화를 일단 꿀떡꿀떡 삼킨 뒤 그걸 시간 많을 때 네 개의 위에서 다시 삭히는 암소처럼 질겅질겅 한다. 

 

아틀란테의 두려움의 기저에는 신탁이 있었다. 결혼하면 불행해질 거라는 신탁. 아틀란테가 그 신탁을 믿었기 때문에 그녀의 운명이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타로카드, 신점이든 학습무든 점치는 사람, 사주팔자 보는 이를 찾아가는 마음이다. 사랑 또는 결혼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어디서 유래할까? 이 커다란 질문은 신비와 자기탐색을 다루고 있다. 왜 나는 결혼과 사랑을 두려워할까? 아틀란테는 이것에 대한 자기 질문을 던졌던 여자일까? 분명한 건 그녀는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로서는 결혼을 해서 불행해지기 보담은 홀로 있는 편을 선택한 거다. 많은 이들이 관계보다 홀로 있음을 선택하는 이유다. 

 

20세기 사회심리학자 에릭슨이 발달과업으로서 친밀함과 생산성을 성취해야할 시기로 보았던 성인기 초기에 아틀란테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사냥에 몰두하는 거다. 아틀란테의 사냥관심사의 대유법일 수 있겠다. 그건 자신의 관심을 끄는 분야의 공부,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 변혁운동이거나 NGO에서 일하거나, 일 년에 몇 번씩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 등등 여러가지 일수 있겠다. 사랑과 결혼 따위는 일정에 넣지 않는다.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미팅이나 소개팅을 할 때, 대학 신입생이 되어 이쁜 미니 스커트를 입고 이웃 학교 남학생들과 신나게 미팅을 할 때도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다. 오래 연애한 남친에 대한 고민이나 결혼적령기의 친구들이 스물아홉을 넘기지 않으려고 할 때도, 웨딩드레스 디자인이 어깨를 드러내든 인어공주 스타일이든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결혼놀이 대신 다른 놀이를 선택했다.

 

아틀란테는 어찌 보면 선택적 집중을 했다. 그게 자신이 사랑 또는 결혼에서 도망치는걸 정당화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건지는 모른다.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여자가 된 것, 그리고 남자들과 달리기를 겨뤄서 이기는 건, 그녀가 단거리인지 중거리인지 장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남성보다 기록이 좋은 육상선수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부모는 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백방으로 수소문 해서 선 자리와 소개 자리를 만든다. 그녀는 구혼자와의 달리기시합을 제안했고, 자기에게 진 남자들에게 죽음을 주었다. 나는 아틀란테가 기량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달리기와 사냥을 매우 좋아하는 여자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남자들과 엄마아빠, 여보당신 소꿉놀이를 하는 대신 같이 황야를 달리고, 무술을 연마하고, 맹수를 사냥하는 파트너로서 만나는 걸 더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달리기 실력이 그닥그닥인 청년 히포메너스는 아틀란테의 달리기 경주의 심판을 보다가 그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프로디테 또는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화살을 든 꼬마 신 에로스의 일이라고 믿었던 그리스 사람들이 할 법한 기도다. 기도해서 답을 얻는 것을 융은 선험적인 기능에 기댄다고 보았다. 그건 커다란 자아에서 답이 오도록 기다리는 의미다. 신의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아틀란테의 달리기 합 심판을 보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히포메너스나 뜻하지 않게 구혼자들과 달리기한 후 진 이를 죽이는 자신의 잔인한 흑역사를 다 아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아틀란테를 보면 사랑은 때가 찾아오는 선물이려나? 그래서 사랑은 은총이라고 했나?

 

자자자 백일몽 그만 피우고 아틀란테처럼 나도 단 한 개의 질문에 선택적 집중을 하자. 왜 나는 사랑과 결혼이 두려웠던 걸까? 근데 나의 이 질문이, 또는 저 세 개의 사과에 대한 해석이 범용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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