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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0일 09시 53분 등록

평일 오후 전철을 타면 가끔 등산복 차림의 60세는 넘어 보이는 일단의 노인(?)들을 본다. 산행 후 한잔 했는지 술 냄새를 풍긴다. 서로 , 자식아’, ‘새끼야하며 웃기지도 않은 예기에 킥킥거리며 왁자지껄하게 떠든다. 다른 젊은 승객들이 미간을 찡그리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나간 학창시절 누가 누구를 좋아했다는 둥 시시콜콜한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나도 어느새 나이를 먹었는지 그들의 얘기가 친근감이 느껴진다. 어떤 부문에서는 맞아, 그랬었어하며 나도 모르게 속으로 맞장구를 친다. 30~40년의 세월이 흘러도 학창시절 동창을 만나면 직업과 신분을 떠나 당시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여과되지 않는 질박한 말투가 오고 가고 육두문자를 쓰더라도 그 소리에는 장난기와 다정함이 묻어난다. 가식 없는 편안함도 있다. 나이가 들면 행동과 말투, 그리고 감정도 어린아이처럼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나 보다.

 

영국 인류학자인 에쉴리 몬테규(Ashley Montagu 1905~1999)에 따르면 인간은 유아기의 유치한 특성을 평생토록 지니고 있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다르다고 한다. 동시에 어린이와 같은 개방적인 마음, 호기심, 독창성 등의 행동특성이 인간이 어떤 환경이든 성공적으로 적응하는데 기여해 왔다고 한다. 인간은 즐거움, 흥분, 웃음, 장난기 등과 같은 어린아이의 특성을 갖고 있어 이것을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면 젊음을 유지하고 중년이나 노년에도 삶의 대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의 눈과 얼굴엔 걱정, 불안, 그리고 슬픔이 없다. 모든 것이 경이롭고 신비로운 것들 투성이다. 큰 아들이 다섯 살 때였던가 함께 밖에서 공 놀이를 하자고 하면 신이 나서 먼저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을 신었다. 좀 미적거리기라도 하면 빨리 나오라고 성화였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녀석은 몇 시간을 해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놀면서 해맑게 웃는 모습은 티없이 맑고 순수했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커가면서 인생이란 세파에 시달리면서 내 안의   어린아이가 기운을 잃고 어둠 속에 숨어버렸다. 성년이 되고 중년이 되어도 어린아이 특성을 유지 할 순 없을 까.

 

내 나이 어느새 오십이다. 30여 년 전 같으면 할아버지가 될 나이고 인생이란 무대의 주역에서 물러나 싫던 좋던 간에 서서히 노년을 맞이했던 나이였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어두운 삶의 뒤안길에서 고독과 우울, 그리고 불청객인 병으로 남은 생을 보내야 했다. 지금은 어떤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30년 가량 긴 인생을 추가로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한테는 축복이요 선물이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고통이요 짐이다. 가장 먼저 실직 위기 또는 고통이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다. 운이 좋아 60세까지 직장을 다닌다 하더라도 20여 년을 더 살아야 한다. 연금을 수령하니 노후는 걱정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텃밭이나 가꾸고 여행이나 하고 유유자적하는 생활로 남은 20, 또는 30년을 보낼 수 있을까. 주변의 60세 사람들을 보면 너무 젊다. 혈기도 왕성하고 건강하다. 하지만 퇴직 후에 이들이 해야 할 일이 전문직종이 아닌 한, 거의 없다.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일을 배우지 않는 한, 그들의 경력과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사 줄 회사가 많지 않다. 20~30대에 직업을 찾기 위해 학습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키운 것처럼 중년 이후에도 남은 30년을 살기 위해 또 다른 성장을 해야만 하는 시기이다. 새로운 직업을 배우는 데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중년의 모험이요 도전이다. 자기 혁신 다름 아니다.

 

칼 융은 우리들 내면에 숨겨진 어린아이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라고 한다. 자신 내면에는 앞서 몬테규가 말 한 것처럼 나이, 성별, 인종에 상관없이 어린아이 특성 같은 호기심, 개방적 마음, 유머, 즐거움 뿐만 아니라 관심을 갖고 보호해주고 교육을 시켜줄 영원히 늙지 않는 어린아이가 있는 것이다.  그 어린아이가 진정한 자기 모습일 것이다.

 

아이는 내게 말한다. 퇴직하더라도 결코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삶이 힘들더라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고독과 우울에 굴복해 어둠의 세계에 들어가지 말고 그것을 뚫고 나와 당당하게 세상사람들과 어울리라고. 고개를 푹 떨어뜨리지 말고 어깨와 가슴을 활짝 펴고 밝게 웃으라고 한다. 끝으로 자신을 무지의 상태에 있게 하지 말고 내 육신의 옷을 벗는 날까지 평생 교육을 시켜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

 

잠자고 있는 그 아이를 깨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고 그 아이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오십 중년의 나이에 그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배우고 실행하는 모험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 모험은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 가족, 타인,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해 제 2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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