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종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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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매일 아침, 편안하게 잠든 아이의 고른 숨결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열 살, 열네 살의 에너지 넘치는 두 아들 녀석과 남편을 학교와 회사로 보내기 위한 아침은 한바탕 난리굿이다. 열두 시로 정해져 있는 점심 시간까지 견딜 수 있도록 빵이든 밥이든 든든한 한 끼를 차려내고 아이가 입고 갈 옷과 빠진 준비물이 없나 챙기다 보면 정작 같은 시각에 나가야 하는 나의 준비는 제 시간에 끝난 적이 없다. 오늘도 정신 없는 하루의 시작. 늘 생명력 넘치는 두 아이들을 건사하며 그 날의 할 일들을 어떻게든 ‘쳐내는’ 일상에서, 죽음은 너무나 먼 개념이고, 금기와도 같다. 아직, 이렇게 나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두고, 부정 탈라.
그런데 3년 전부터 부쩍 생각지 못한 부고가 늘었다. 그 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예의상 가는 조문이 아닌 나와 직접 인연이 있는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러본 적이 없었다. 이제 시작이란다. 마치 선전포고를 하듯이, 마흔을 찍던 그 해를 기점으로 생각도 못한 부고들이 날아 오기 시작했다.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은 시사주간지의 팀장님이라기엔 너무나 순박한 눈빛의 오부장님. 일 때문이라 해놓고 만나면 아이들 이야기, 사는 이야기로 늘 열을 올리다 정작 일 이야기는 나중에 전화로 주고받는 편한 사이였다. 그날은 만나자마자 몸이 영 허하니 보신을 하자며,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던 삼계탕집 앞에 줄을 섰다. 땅콩을 넣었는지 유난히 걸죽하고 고소한 국물 맛에 감탄했던 기억. 그 고소한 기억을 끝으로 불과 삼 개월 만에 대장암으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황망하게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그가 늘 걱정하고 자랑스러워 하던 대학생 딸과 군복을 입은 아들이 보였다. 아, 아버지를 꼭 닮은, 장성한 자식들이 상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며 눈물과 안도의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사실 나는 동화작가이기도 했던 그를 내 인생 후반부의 스승으로 은밀히 점 찍어 놓았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야근과 출장으로 점철된 이 생활을 접게 되면 나도 그를 따라 써보리라. 나의 참 짧은 버킷 리스트에 올라있던 미래의 스승은 얘기도 꺼내보기 전에 그렇게 가버렸다. 그리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야근과 출장의 여왕을 졸업하고 전업주부로 생면부지 부산에 입성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자의든 타의든 나는 이제 간신히 워커홀릭의 족쇄를 벗었는데… 나의 스승일 수도 있던 그 분은 가고 없었다.
그 후 1년 여간의 헤멤 끝에 찾아낸 변화경영연구원에서, 새로운 스승을 꿈꾸다 날아든 또 하나의 부고. 쭈뼛쭈뼛, 출사표를 던져놓고도 머뭇거리다 연구원도전도 실패했지만, 더 허무한 것은 그 분의 부재였다. 나는 이제 영원히 그 분의 제자가 될 기회를 잃었구나. 슬프기 전에, 나의 어리석음에 화가 났다. 날이 새털처럼 많아서,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 뵐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그 분이 만들어내실 재미나고 신나는의 일들에 동참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으리라 생각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프고 얼얼했다. 이런, 좀 더 열심히 할 걸. 조금만 더 일찍 찾을 걸.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열심이라는 게 있긴 하던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 맘의 스승 두 분의 부고. 그리고 어머니보다 더 어머니 같았던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며, 죽음으로 인한 부재를 처음 경험했다. 부재, 존재하지 않는 것. 죽음. 한 생명의 목숨이 다하는 것. 아직 나는 죽음을 나의 것으로 소화하고 그 의미를 찾을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그저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곁에 없다는 것, 부재의 의미를 간신히 느끼고 이해할 뿐이다. 그러므로 있을 때 잘하자, 지금이 아니면 못 볼 수도 있는 나의 소중한 인연들을 그냥 잊고 지내지 말자는 정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내 맘속에 자리 한 켠씩들을 차지하고 있는 이 분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았고, 그 분들은 프랭클이 말하던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으셨던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의 삶은 죽음으로 인해 ‘끝’이 나거나 ‘무(無)’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제일 쿨했던 워킹맘 할머니의 유전자는 손녀들에게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고, 구본형 선생님의 빛나던 혜안과 열정은 수많은 제자들과 독자들을 통해 재발견되고 끝없이 되살아날 것이니까.
그리고 오부장님. 장례식이 끝난 후 며칠 후, 카톡으로 익숙한 그 분의 아이디를 보았다. 어? 상태 메시지가 바뀌어 있었다. “지금, 윤현이는 별나라 여행 중입니다~” 그래, 여행가셨구나, 그 분들 다. 나도 언젠가 떠날 그 여행, 먼저 가서 좋은 자리 잡고 계신 그 분들을 만나 뵈면 슬며시 옆 자리에 가 앉으리라. See you then!
"늘 생명력 넘치는 두 아이들을 건사하며 그 날의 할 일들을 어떻게든 ‘쳐내는’ 일상에서, 죽음은 너무나 먼 개념이고, 금기와도 같다. 아직, 이렇게 나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두고, 부정 탈라."
"그저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곁에 없다는 것, 부재의 의미를 간신히 느끼고 이해할 뿐이다. 그러므로 있을 때 잘하자, "
비나이다 비나이다 강종희씨 오래살게 해주소서!
잘읽었습니다. 편안히 읽기 좋았습니다.
해운대의 달맞이 고개 지나 기장으로 가던 산책길이 생각납니다.
부산은 이제 봄날이 다된 것같은데 강에서는 고기가 뛰고 자전거로 달려 보면 신날 것같습니다.
'이런, 좀 더 열심히 할 걸. 조금만 더 일찍 찾을 걸.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열심이라는 게 있긴 하던가.'
'그들의 삶은 죽음으로 인해 ‘끝’이 나거나 ‘무(無)’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제일 쿨했던 워킹맘 할머니의 유전자는 손녀들에게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고, 구본형 선생님의 빛나던 혜안과 열정은 수많은 제자들과 독자들을 통해 재발견되고 끝없이 되살아날 것이니까.'
'나도 언젠가 떠날 그 여행, 먼저 가서 좋은 자리 잡고 계신 그 분들을 만나 뵈면 슬며시 옆 자리에 가 앉으리라. See you then!'
항상 함께 하고싶은 멋진 분들은 예상보다 좀 더 일찍 저희의 곁을 떠나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스승이 있으셨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부럽게 느껴집니다 ^^
보석같은 문구들을 발견하는 보물찾기와 같은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