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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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에 가면 지금도 오래된 물건들을 길거리에 늘어놓고 파는 벼룩시장이 있습니다.
재활용한 옷도 팔고, 장난감과 시계도 있고, 도자기나 불상같은 골동품도 있습니다.
한복판에서는 이천원짜리 팥빙수를 줄을 서서 사먹습니다.
벼룩시장 중 가장 장사가 잘되는 곳입니다.
시장을 둘러보다가 헌책방을 발견합니다.
도대체 책을 어떻게 찾는 건지 무작정 가로로 쌓여 있습니다.
맨 아래에 꽂혀 있는 책은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책이 무너져 많은 책을 내가 다시 정리해야 할지 모르니까요.(그게 사장님의 전략일지도 모릅니다.)
오래 보다 보니 책 무더기들도 다 분야별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혼돈 속의 질서.
세 권의 책을 고릅니다.
예술분야 무더기에서 고른 '건축 사진'
스테디셀러 무더기에서 발견한 밤마다 아이에게 읽어줄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시집 무더기에서 내 영혼을 위해 도종환의 '부드러운 직선'을 찾았습니다.
책을 발견하는 기쁨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것은 시집 안에서 발견한 네잎 클로버 때문입니다.
시집은 1998년 8월에 나왔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네잎 클로버는 16년 전에 누군가 꽂아 놓은 것이겠지요.
네잎 클로버가 꽂힌 페이지에는 <꿈꾸지 않았던 길>이란 시가 있습니다.
전혀 꿈꾸지 않았던 길 걸어온 지
어느새 이리 오래 되었구나
...(생략)
시인 도종환은 전교조 해직교사로 지내다 민예총 충북지부장으로,
한국작가회의 등 문화단체에서 문화운동가로 활동하다
지금은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합니다.
어쩌면 시인으로서 노래하며 지내는 것을 꿈꾸었을 그가
전혀 꿈꾸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토로한 문장이겠지요.
회한과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네잎클로버를 만나고
꿈꾸지 않았던 일 속에 묻혀 있고
엉겹결에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고
설마 했던 사고와 죽음을 만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리네 삶일 것입니다.
혹시 꿈꾸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면
그 길을 가만히 되돌아보는 여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또한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누군가 우연히 남겨둔 네잎 클로버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