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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1일 10시 19분 등록

 

아이가 맹장을 떼냈다.


충수돌기라 이름한 길쭉하고 오동통한 붉은 살덩이는 불과 30분 전만 해도 아이의 뱃속에서 염증을 일으킬지언정 그 애의 일부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오래 전에 나의 살과 피를 내주어 세상에 나오게 하였다. 그 녀석은 온전한 나의 산물이다, 이었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마취에서 깨어나려는 아이의 움직임은 처절하다. 뭔가가 괴로운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괴로운 신음을 내뱉으며 팔 다리를 훠이훠이 내젓는다. 아이가 이리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나는 당혹스럽다. 이제는 덩치가 너무 커져서 나의 품 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주어야 할 텐데 뭘 해야 할 지는 알 수가 없다. 몇 분 후 간신히 눈을 뜬 녀석은 이불을 잘 덮어주었는데도 오한이 나는 지 춥다고 난리법석이다. 당직의사가 커다란 마대자루 같은 이불을 가져오더니 아이에게 덮고 그 안에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호스를 집어 넣는다. 이불은 금새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찼다. 이제야 진정하고 조금 편안해진 아이를 병실로 옮겼다.

 

3인실이라 이름한 병실은 널찍한 공간에 침대 세 개와 탁자가 두 개, 의자가 딸린 공간이다. 생각보다 넓고 쾌적하다. 코딱지만한 1인실보다는 여기가 낫겠네. 가져온 짐짝을 풀어내며 생각했다. 다른 병실과 달리 유난히 넓은 공간과 쇠로 된 양쪽 개방형 문을 보니 아무래도 당직실으로 쓰이던 공간을 병실로 개조한 게 아닌가 싶다. 가운데 위치한 침대가 아이의 몫. 간호사 세 명이 동원되어 나무토막처럼 꼼짝달싹 못 하는 아이를 밑에 깔린 침대 시트의 귀퉁이을 붙잡아 옮긴다. 이제 나만큼이나 무거운 아이. 몇 달 전만해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업어서 식탁 의자에 갖다 앉혀주던 서비스를 이제는 도저히 못 해먹겠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란다. 변함이 예정되어 있어서 반가운 것은 그 정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기에서 소년으로, 다시 청년으로 성장해갈 내 새끼. 얼마 전만해도 엄마가 자신을 내 새끼라 부르는 것은 이제 초등학생이 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 소년이라 불러달라 주문하던 아이는 이제 어영부영 십대에 들어섰다. 나의 마지막 아이. 막내는 아이지만, 더 이상 아이 취급을 받기는 원하지 않는다.

 

아이는 어려서 몸이 약했다. 여름이면 꼭 한 번은 장염으로 응급실 신세를 지고 입원을 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가 기저귀만 차고 링겔을 꽂은 채 나에게 기어오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대체 어디에 저장해뒀더라? 아마도 오래 전에 교체한 핸드폰의 본체 안에 갇힌 채 폐기되었을 것이다. 그 조그만 아기가 한 번씩 먹은 양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토해낼 때마다 가슴이 북북 무딘 칼로 찢기는 듯 아팠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때 미친 듯이 바쁜 직장과 다섯살, 한살 난 두 아들 녀석의 육아와, 몸과 마음에 찾아온 병을 꾸역꾸역 혼자 버텨내고 있었다.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서른 중반은 노새의 시기다. 버티고 버텨서 이 혹독한 사막을 건너기만 하자. 노새처럼 그냥 견뎌서, 버텨서. 그냥 쓰러지지 않고 어떻게든 걸어서든 기어서든 가면 되는 거다. 회사에서는 퇴근 시간까지 어떻게든 일을 마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고 퇴근하면 바로 아이의 병실로 달려가 이모님과 바톤 터치를 했다. 유치원에 맡겨둔 큰 애를 데리러 이모님이 나가시면 나는 눈망울이 커다란 내 아기와 드디어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강아지를 닮은 착하고 예쁜 눈. 평소의 나는 집에 있어도 두 아이와 남편과 이모님 사이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여야 했다. 아이에게 이렇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는 했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짧은 입원 기간,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 애와 나 둘만의 시간이 너무 특별했다. 아이의 조막만한 손등에 링겔을 꽂지 못해 몇 번씩 발등과 팔목을 찔러야 하는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토하고 설사를 해대던 순간이 지나가 안정을 찾자 병실은 아이와 나만의 아늑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이제 십 년이 지나 열한 살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 애는 나의 마지막 아이다. 다그치고 통제하고 쓸고 닦고 먹이는 온갖 일로 바쁜 집에서와 달리, 병실에서 아이의 엄마가 할 일은 한 가지뿐이다. 아이의 옆에 있어준다. 그리고 영혼 없는 대답 대신 아이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여 불편함이 없도록 살피는 엄마를 아이는 정말로 오랜만에 누려보는 것이다. 수술을 한 첫 날,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고 지쳐서 잠든 아이 옆에 나도 쪼그려 누웠다. 이 놈의 보조침대는 침대가 아니라 그냥 나무 깔판이구만. 부드러운 침대 매트리스에 익숙한 몸이 불평을 해대지만 이제 덩치가 나만한 아이 옆에 함께 눕기에는 병원 침대가 너무 좁다. 그래도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듣다보니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조금 살아난 아이는 방귀가 안 나와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먹고 싶은 음식을 나열한다. 옆 자리의 두 아줌마 환자들은 넉살 좋고 솔직한 아이의 수다에 엄마보다 더 맛깔 나게 맞장구를 쳐준다. , 이 위대한 성, 아줌마여! 그들은 불과 만난 지 한 시간만에 알아서 연대를 형성하더니 내가 잠시 집에 다녀올 수 있도록 아이를 봐주며 부탁하지도 않은 양치질까지 시켜 완벽한 피니쉬로 아이를 침대에 도로 눕혀두었다. 그리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며 오가는 온갖 정보들. 이제 입원한지 2주가 넘은 오른쪽 환자와 어제 수술한 왼쪽 환자는 병원 사정과 보험에 관해 필요하거나 또는 필요치 않은 정보까지도 몽땅 내게 전수해 주었다. 이사온 지 2년이 넘었어도 아이의 맹장수술을 받으려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할 지 조차 몰랐던 나는 이 병원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그들의 증언으로 확인 받는다. 나도 그들과 같은 아줌마인 것이 몹시 흐뭇해지는 순간!

 

하루가 참 짧게, 병원의 시간은 갔다. 온전히 몸에 집중하는 병원에서의 시간. 몸의 회복 말고 달리 무엇에 집중하랴. 아이의 입원기간이 나에게도 휴식인 이유에 대해 뭐라 말할 지 모르겠다. 여하튼 아이는 순조롭게 방귀를 뀌었고, 병원 밥이 맛있다며 다음 끼니를 기다리는 지경이다. 나는 그 와중에도 남편에다 옆의 두 아줌마 환자들을 믿고 늦었지만 변경연 수업에도 다녀왔다. 퇴원을 하는 오늘, 묘하게 아이도 나도 아쉬운 맘이 드는 것은 왜인가? 떠들썩한 환자들의 수다가 그리워질 것이다. 가만 있어도 나오는 병원 밥도 좋았. 포괄수가제라며 80만원 가정산을 하는 수납계에서 잠깐 멈칫 하였으나 뭐, 그까짓 거, 큰 일 나기 전에 말끔히 치료하였으니 된 거 아닌가.

 

집에 돌아온 아이는 왠지 시무룩하다. 다시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일상에 돌아올 생각에 답답해진 것일까. 나는 나대로 왠지 맥이 빠진다. 긴장이 풀린 탓도 있을 것이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집안 일에, 과제에, 이래 저래 정신을 빼앗기는 엄마를 일찌감치 눈치챘다. 엄마, 영혼없는 대답 좀 하지마. 아이의 불평이 귀에 쟁쟁 울린다. 영혼 없는 대답,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멀티태스킹의 증상. 그 많은 우선순위 중 늘 함께 있어 아쉬움이 없는 가족들은 나의 형식적인 1순위였을 뿐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그걸 귀신처럼 눈치채고 나를 다그치는 것이다. 영혼 없는 대답 좀 하지마. , 그러는 네 녀석은 게임만 시작하면 아예 대답도 안 하면서 말이쥐.


이제 북리뷰를 올려야 하는데, 아이가 목이 아프다며 난리다. 어제부터 조금 아프다는 걸, 수술 때문에 먹는 약과 겹치니 진료 따로 볼 필요 없다는 말만 믿고 두었더니 목이 많이 부어 오른 모양이다. 이제 북리뷰를 올릴 차례인데, . 여튼 집에 있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 늘 소소한 무언가가 불쑥 불쑥 일어나는 이 다채로운 일상. 가자, 병원으로. 올 때는 네 녀석이 좋아하는 사리원 면옥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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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05:36:15 *.255.24.171

맹장으로 교감했군. 그렇게 서로에게 집중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가봐. 우리는.

종하는 아팠지만 좋았겠다.

전쟁과 평화의 병원 생활을 치루고도

새벽 1시에 겁도 없이 짠하고 비닐우산을 흔들며 들어온 종종....완전 대박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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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10:06:15 *.92.211.151

나에게 집중해줘~  어쩌다 아이들이 이렇게 신호를 보내면 나는 어미의 본능으로 적극 반응해줘야 하는거지? 내심 좋아하면서도 어려워. 잠시는 되는데 유지가 안 돼. 그래서 이런 깜짝 이벤트가 필요한건가? 흠... 여튼 포항에서 자유를 느끼고 돌아와 한결 힘이 났어. 참치랑 희동과 바닷가에서 걸은 기억이 참 좋았네... 자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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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23:19:54 *.222.10.47

정말 놀라운 야반도주를 한 샘인데. 종하에게 약간 미안했지만 종종이 오기 전과 후가 달랐다고 말할 수 밖에 없네. 그것 또한 당신의 힘. 모두가 모일 수 있게 늦지 않게 도착해줘서 정말 고마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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