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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7일 11시 57분 등록

내 존재의 본질

 

2014.11.17

10기 찰나 연구원

 

 

  내가 살아있고 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숨쉬는 것을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숨만 관찰하는 명상수련을 참가했다. 내 업식의 바닥을 본 시간들이었다. 마치 지옥의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들어가고 나오는 호흡을 코로 의식하기만 하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왼발이 아프다가 오른발이 아프다가 좀 나아지는 것 같으면 허리가 아파오고 어깨가 아파오고 목이 아프면서 통증이 돌아가면서 계속 괴롭혔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통증 때문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통증에 신경 쓰지 말고 호흡에만 계속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그 통증마저도 사라지게 되니 호흡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해서 집중 하려고 했지만 통증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통증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긴 했지만 반면에 그 아픈 통증마저도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삼일 째 새벽에 명상과 108배 기도를 마친 후 나오니 몸과 마음이 가볍고 상쾌했다. 명상이 이런 맛에서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깐, 사일 째 되는 날 더 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뭔가 한번 맞보았다는 ()’에서 깨어나라는 또 다른 신호였다. 뭔가 조금 알면 그것이 마치 전부인양 다른 사람에게 떠들어 다녔던 나에게 그 을 멈추라는 신호 같았다. 사일 째 다리에 다시 찾아온 통증이 너무 심해서 출산 할 때의 고통이 문득 떠올랐다. 몇 시간 동안 출산의 고통이 계속되었지만 결국에 제왕절개 수술을 했던 기억들. 그것에 비하면 약하긴 하지만 다리에 통증이 심해서 당장이라도 다리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반면에 버텨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업식을 내가 견뎌보지 못하고 또 피한다면 또 똑같은 굴레를 돌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버텨보고 싶었다. 40분의 끝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어서 나기만을 마음속에 빌었다. ‘죽비야 어서 나와라.’ 하지만 죽비소리는 나지 않고 통증은 계속 되었다. 그러다 이번 명상 시간의 끝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칠 때 전율이 느껴졌다. 내가 힘든 순간을 피하지 않고 대면해서 넘겼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감동 하고 감사했다. 과정을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법륜스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 날 법륜스님의 강연에서

명상 수련은 결국은 자기 구제의 길이다. 자신이 구제되어야 다른 사람을 구하든 구하지 않던 의미가 있지, 자기 자신도 구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의 출발은 자신으로부터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숨 쉬는 것만 지켜보는 쉬운 일도 하지 못하는 존재인데, 뭐가 잘났다고 이사람 저 사람한테 잔소리를 했던가. 하나 알고 모르고의 차이 밖에 없는 얕은 지식으로 마치 대단한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던 것이다. 이제 이렇게 했던 것을 멈추기로 했다. 내가 먼저 잔소리하고 얘기하기보다 그저 지켜보다 그들이 필요로 하면 그때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명상에서 다리의 통증만큼이나 힘든 것은 멈추는 것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뭔가 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고 멈추는 것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이라고 생각했다. 멈춰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힘들었다. 왜 이렇게 멈춰 있는 것이 힘들까 스스로에게 반문했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명상 수련 기간 동안 명상보다 새벽에 108배를 하는 것이 더 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108배가 쉬었어요.’ 뭔가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으니 몸에서 거부 반응이 더 심하게 났다. 그동안은 몸을 움직이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말을 했고, 말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멈춰봐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들이었다.

    45일 동안 말하는 것을 멈추는 묵언의 힘은 이런 것을 더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람들의 행동에서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안내자가 안내하는 대로 안하는 분들을 보면 뭔가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순간순간 들었다. 지나가다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아는 척을 하거나 반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외부로 향한 시선에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나. 그러나 보니 나를 향했어야 하는 시선들이 외부로 많이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말로서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주의를 한다고 했지만 그건 얼마나 나의 착각이었을까. 말을 멈춤으로서 보이는 것들이었다.

   음식을 많이 먹는 것에서도 멈추었다. 아침, 점심은 밥 3~4숟가락, 당근 1조각, 사과2개 저녁은 삶은 감자 1. 배가 고파서 잘할 수 있을까 오기 전에는 걱정했는데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고 명상만 하니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명상 중에는 먹고 싶은 음식들이 몇 가지씩 떠올랐다. 많이 먹으면 명상 중에 잠만 오지만 소식(小食)을 하면 정신도 더 맑아지고 명상도 잘된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가능한 죽이 될 때까지 씹는 것이다. 밥 한 숟갈로 최대 70번까지도 씹어봤다. 그동안 음식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저 한 끼를 떼 우는 것에 집중했는데 명상하는 중에는 밥 한 톨 한 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적게 먹고도 이렇게 잘 먹을 수 있는데 배불리 골고루 먹어야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아이들과 먹는 것 때문에 벌였던 실랑이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그랬을까 반성도 되었다. 이제 소식(小食)으로 가볍게 먹고 지낼 수 있는 방안도 찾아 봐야겠다.

   그동안 사용하던 스킨, 로션도 멈추었다. 예전부터 문경수련원에서 환경 때문에 삼퓨, 린스등을 못쓰게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스킨, 로션은 왜 안 될까 의아했다. 명상을 하면 후각이 민감해져서 그 향이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수련원에서 제공 되는 향기 없는 로션만 사용가능했다.

 

   그동안 익숙했던 많은 것들에서 결별을 하여 멈춰야 했다. 잠자리도 이불 개는 방식도 화장품도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다 멈추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호흡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날들이었다. 명상 속에서 끝도 없이 떠오르는 망상과 보내는 시간들도 많았다. 명상을 하면 오히려 망상이 더 생기는 모순의 시간들. 떠오르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그저 떠오르는 대로 그냥 두면 그 자체로 치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들이 지나면서 명상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맑아지는 것이다. 내 업식의 바닥을 보고 그것을 스스로 넘어봐서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이것이 진짜 내 업식의 바닥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명상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더 알게 될 것 같다. 이제 시작의 단계일 뿐이다. 힘들었지만 일단 멈춰보기를 잘 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

 

IP *.113.7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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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7 17:29:47 *.196.54.42

와우~ 결국 해 내셨군요, 찰나! 추카추카^^

 

"그동안은 몸을 움직이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말을 했고, 말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멈춰봐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들이었다. "

 

한 경지 보셨군요 ㅎㅎ

나도 이전 불교학생회 따라서 해인사 가서 수도하다가 일주일 코스에서 2박3일만에 도망친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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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7 22:28:00 *.255.24.171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과 조금을 알아도 전부를 아는 것처럼

신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나와 비슷하네. ㅋㅋㅋ


멈춤....한 번이라도 멈추어 본적이 없는것  같아.

한번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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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8 08:13:41 *.50.21.20

휴직을 알차게 보내고 계신것으로 보여 반갑고 좋아요.

저는 오늘도 찰나님 글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ㅎㅎㅎㅎ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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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8 13:01:19 *.94.41.89

요즘 버티는 것이 유행인가 봅니다. 모두 잘 버텨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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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0:30:09 *.70.51.119
의미있는 체험을 하셨군요.
깨장, 예약해주신다고 하셨었는데~ ㅋ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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