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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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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4일 22시 23분 등록


12월의 오프수업은 책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었다. 과제가 게시되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제는 도망갈 곳이 없겠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것이 일찍 공지가 되고 장소 섭외도 끝난 시점이라 과제에만 올인하면 되었는데, 그 과제를 마음으로 만나기가 힘들었다. ‘그 거창한 작업을 과연 내가 할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부터 지금의 과제에 올인하자라는 다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줄다리기를 했기에 중심이 왔다갔다했다. 과제를 생각하면 머리가 무겁고, 피할 수 없었지만, 최대한 마주하는 시간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오프수업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언제나 그렇듯이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동안 교육팀이 추천해준 저자와 저서에 대해서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항상 사람과의 접점에서 있고 싶어하는 나는 인터뷰형식의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의 인터뷰 작가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했고, 그들의 저서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내가 원하는 책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책과 내가 쓰려는 글에서 차별화라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숙제는 무조건 건너야 하는 강임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 괴로웠던 만큼 과제를 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의외로 과제는 담담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수업시간. 다들 각자의 책에 심오한 고민을 한 흔적이 보였으며, 자신의 길을 잘 찾은 사람들도 있어 한편 부럽기도 했다. 내 옆에는 오늘 책이 나오는 종종이 앉았다.  종종은 연구원 역사상 현역시절에 처음으로 책을 낸 저자가 되었다. 동기들이 발표를 할 때마다 종종은 그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코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의외의 생각들이 그녀의 머리 속에서 쉴새 조잘거리는 종달새가 살고 있음이 느껴졌다. 종종의 책은 점심시간쯤 도착을 했다. 종종은 저자로서의 싸인도 해주고, 기념촬영도 하는 등 가장 분주한 점심시간을 보냈다. 동기로서 그리고 동갑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들 같은 남편을 둔 아내로서 이런 일을 해낸 그녀가 참으로 기특했고, 책이 끝나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종종은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나의 과제에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자료조사가 80%라는 조언에 얼마 전부터 시작한 웹써핑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었다.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인간이 가진 삶의 가치를 사진으로 전달하고 싶은 소망 때문에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진세계는 잘은 모르지만 짧은 글로도 진실이 묻어났고, 그 사람의 가치관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과 인생관을 빌어 나의 서문을 썼고, 그 사람은 내가 만나고 싶은 리스트에 등재가 되었다. 다름 아닌 임종진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걸 동시성의 원칙이라고 하는 걸까? 수업이 끝나고 변경연의 송년회를 하기 위하여 예전의 싸롱9’ 자리로 이동을 하고 건물에 진입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스쳤다. 순간적으로 내가 만나고 싶은 그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본 그의 얼굴은 단번에 낯익은 얼굴로 다가왔다. 수업시간에는 잠자코 계시던 창선배님과는 이미 구면이었다. 창선배님은 그분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셨고, 나는 넉살 좋게 만나고 싶다는 말과 인증샷을 찍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기막힌 찰나라는 생각이 든다.

송년회 중간에는 박승오선배와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책을 인상 깊게 본적이 있기에 독자로서, 그리고 변경연 후배로서 인사를 드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자 승오선배는 저자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길지 않았지만 아주 유익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변경연이라는 인연은 그렇게 초면이 가질 수 있는 몇 겹의 껍질을 없애버리는 특효 효능을 갖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오프수업이 있던 날 밤은 종종과 에움이 우리 집을 찾아주었다. 나는 글발과 입심 좋은 두 여인네와 함께 많은 수다를 떨었고 같이 잘 수 있는 추억까지 만들었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은 며칠의 낯을 같이하는 것 보다 더한 끈끈함을 갖게 한다는 것을 또 한번 실감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사골을 고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우려했던 오프수업과 송년회가 끝났다. 오프 수업을 하기 전에 가졌던 부담이나 물음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하루였다. 여러 저자들과 함께 한 시간이 가져다 준 축복임을 알겠다. 그래서 저자가 되어야 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오프수업을 같이한 교육팀과 동기들 그리고 항상 참관해주시는 선배님 두 분과 송년회에서 마주친 많은 선배님들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이 물씬 느껴지는 하루였다. 그리고 늦은 밤 집 앞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신 서은경선배님께 특별 감사를 드린다. 그 동안 조개입처럼 꾹 다물고 있었던 에움의 코멘트를 수업시간에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송년회 후 가졌던 시간에서 피울이 궁시렁거렸다. 내가 새로운 인물에게 보인 관심때문인듯 하다. 자신의 사진세계도 멋있다고 말한다. 나는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다. "구두로 말고 책으로 보여주시오."



<12월 오프수업과제>

  1. 나는 어떤 책을 쓰려 하는가?

이은심이 만난 사람들 나눔에 미친 사람들: 임종진, 나종민, 허그인

  • 의지의 한국인들: 백경학

  • 만나고 싶은 작가

  • 감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바라나시 철수

  • 성공한 기업가, 연예인….

  • 사회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그 외 관심 있는 분야>

재혼

아이와 친구로 지내는 법

영업의 품격

영업의 철학

죄책감

바람 피는 사람들

핵심메시지: 사람을 배우자, 사람에게 감동하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핵심키워드: 사람, 배움, 감동

  1. 나는 왜 이 책을 쓰려하는가?

첫째, 사람을 만날 때의 떨림을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다.

둘째, 그 떨림을 배움이나 감동으로 전달하고 싶다.

셋째, 그 떨림과 감동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다.

  1. 내 책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과 어떻게 차별적인가?

첫째, 내게 주어진 공감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꼭 사람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사람들을 보는 나만의 시각을 전달하고 싶다.

둘째, 사람을 보는 나만의 시각은 긍정과 배움이다. 그 안에서 감동할 때, 삶의 에너지는 항상 충만하다. 사람을 통해 에너지 충전하는 법을 배운다면 인생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셋째, 벌판형 인생을 산 경험과 통찰은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현장의 사람들을 전달 할 수 있으리라.

넷째, ‘사연전달자로서의 임무

다섯째, 그 동안 나의 인생이 녹아 있는 시선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본다는 것은 위안과 기쁨을 함께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저자소개서를 써라

그녀는 13년 동안 영업현장이라는 벌판을 뛰어다니는 인생을 살았다. 처음 그녀가 영업현장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번개 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녀에 대한 최고의 미스테리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벌판을 뛰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과 배우는 즐거움,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이제 벌판에서 사람이라는 우물을 파고 싶어한다. 그녀가 퍼 올린 깊은 우물 속의 심층수를 같이 맛보는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책의 서문

인생이라는 벌판을 거칠게 달리다보니 어느덧 40이라는 나이가 코 앞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심했다. 특별히 이루어 놓은 것도, 내세울 만한 것도 없이 40년을 덧없이 흘려보낸 허무함이 온 마음을 지배했다. 무슨 일이든 무던했던 내가 아침. 저녁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인생 무상과 허무의 바다를 허우적 거리며 꽤 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40은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맞이한 나이였다. 뒤돌아보면 한심한 인생이었지만,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달려온 길이었기에 더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배낭을 메고 떠났다. 한심스러운 40년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것에 대한 수고와 격려를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다.

그렇게 인도를 만나는데 40년이나 걸렸다. 나는 뉴델리에 새벽에 도착 했다. 아침 일찍 눈을 떴을 때, 인도에 대한 첫인상과 속살이 너무도 궁금했다. 여행 책에서 본 온갖 경고들이 떠 올랐지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기에 거리로 나갔다. 뉴델리의 대로변이 아니라 바로 뒷골목에 위치한 호텔은 시설이 좋은 측에 속하지는 않았다. 그 호텔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있는 곳은 뉴델리, 즉 한 나라의 수도였고 중심상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거리의 청결상태, 사람들의 옷차림, 건물의 모습들이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도와의 첫 만남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인도의 80%의 국민들이 사는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들이 타는 기차와 버스를 탔고, 그들이 가는 식당을 갔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장소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 나라를 만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삶에 지친 나에게 보여주었던 해맑은 눈동자와 미소였다. 그리고 그들의 맨발과 꼬질꼬질한 옷이었다. 기차역에서도 관광지에서도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나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에서 미지의 나에게 보내는 동경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깡촌에 외국인이 한 명 들어왔었다. 나는 너무도 신기하게 생긴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그의 주변에서 1시간을 맴맴 돌며 뛰어 다니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 외국인에게 보낸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그 아이들이 나이게 보낸 것은 내 생활에 대한 동경이 묻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값싼 동정심이 묻어나는 과자와 몇 푼의 돈을 주는 것뿐이었다.

인도를 갔다 와서 많이 혼란스러웠다. 떠나기 전의 허무는 없어졌지만 다른 모양의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누군지도 모를 대상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와 세상의 근원에 대해서 물음을 품게 되었다. 그 무거운 주제를 만났을 때부터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전보다 사색적으로 되었고, 그들의 가난에 대한 속죄의식이 내 생활에 조금씩 침투되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먼저 그들의 삶을 접한 임종진씨는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인간이 가진 삶의 가치를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진 작가라는 말을 거부하고 자신을 사연 전달자라는 말로 소개한다. 내가 원하는 타이틀을 갖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벌써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1 NGO를 신청해 놓은 상태이고 그만의 방법으로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알리고 있었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귀하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임을 나만의 방법으로 증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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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5 14:37:51 *.196.54.42

음~ 그랬군, 함께 잔 3 여인네 중 말빨은 단연 참치지^^

참 좋았겠다 그대들 수다의 향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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