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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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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일 22시 42분 등록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물

-문순태의 <징소리>, 1978

 

백양사 IC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났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만난 15번 국도를 스치듯이 지나자, ‘장성호 관광지’로 향하는 1번 국도가 바로 따라붙었다. 놓칠 뻔했다. 벌써 40년 가까이 된 수몰된 마을의 흔적을 더듬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상면, 문순태의 소설 <징소리>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은 더 이상 지도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1976년 장성댐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관광지는 황량한 유령의 도시처럼 다가왔다. 딱히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식당이나 편의시설들도 보이지 않았고, 고작 두어 대의 승용차가 넓은 주차장의 구색을 갖추고 있을 따름이었다. 주차장 끝에서 지난 2004년 12월에 개관한 ‘북상면 수몰문화관’을 찾아냈다. 십년이 다 된 3층 건물은 아직 외모가 번듯했지만, 외벽에 걸린 오랜 사진들은 이미 빛을 바래가고 있었다.

 

‘이곳은 “옛” 장성군 북상면입니다.’

사라진 고향, 잊혀져 가는 기억을 붙잡아 두려는 몸부림 같았다. 늦은 오후, 기울어가는 봄볕을 받은 현판은 까까머리에 금빛단추가 달린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단발머리에 무명저고리를 입은 처녀들 그리고 아이의 젖을 먹이며 반쯤 등을 돌린 새댁의 모습들을 품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잔잔한 웃음들이 번져 나왔다. 추억 속의 북상면 덕재마을 풍경도 보였다. 아마도 추석 무렵의 가을이었나 보다. 마을을 둘러싼 산자락 안으로 누런 벼들이 가득 차고, 길을 따라 심겨진 나무들 사이로 초가와 기와집 그리고 양철지붕집이 한데 어울려 있다. 애잔했다. 현판에는 지금은 거의 고인이 되었을 마을 사람들의 사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옆으로 가느다란 실개천 같은 목소리가 나란히 적혀 있다.

 

30년 동안 고향에 가지 못하고,

물결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집 내 논밭 다 버리고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희생을 치르고

고향도 이웃도 잃고

본적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장성군 북상면’ 주민들이 있습니다.

장성호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물입니다.

장성호 물길보다도 깊은

길고 긴 실향의 아픔과 그리움들을 모아

마을과 추억 속의 고향을 찾고자

이곳에 ‘장성호북상면수몰문화관’을 세웁니다.

 

문은 잠겨 있다. 찾아오는 발길들이 뜸한 탓인지, 문화관 입구는 목줄 같은 자물쇠를 걸었고, 안으로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현관 입구에 남겨진 휴대전화 번호도 신호음만 지루하게 이어질 뿐 응답이 없다. 수몰문화관 입구 옆을 지키는 소설가 문순태의 글로 새겨진 기념비에 눈도장을 찍고, 전망대로 걸음을 옮겼다.

 

방울재 허칠복이가 고향을 떠난 지 삼 년 만에 미쳐서 돌아와 징을 두들기며 댐을 막은 뒤부터 밀려드는 낚시꾼들을 쫓아댔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징을 두들기는 칠복이의 모습은 나무탈을 쓴 도깨비 같다고들 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고향을 잃은 서러움, 아내를 빼앗긴 원한 때문이라고들 했다. 아무리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고향에 여섯 살 난 딸아이를 업고 불쑥 바람처럼 나타난 그는, 물에 잠겨 버린 지 삼 년째가 되는 방울재 뒷동산 각시바위에 댕돌같이 앉아서는, 목이 터져라고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대는가 하면,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려 가며 오순도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중얼거리다가도, 불컥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찔러 보고, 창자가 등뼈에 달라붙도록 큰 소리로 웃어대고, 느닷없이 징을 두들기며 겅중겅중 도깨비춤을 추었다. 1)

 

1978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발표된 <징소리>는 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들의 애환을 다룬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 허칠복은 장성댐이 지어지면서 고향인 방울재를 떠나야 했다. 조실부모하고 외삼촌 밑에서 머슴처럼 자란 그였지만, 순덕에게 장가를 들면서 억척스럽게 버려진 하천부지 자갈논을 다시 일구었다. 그는 당산나무 아래 댕돌을 들 수 있는 마을에서 유일한 장정이었고, 아버지처럼 방울재 사람들의 혼을 울리는 징소리를 내던 징채잡이였다. 그러나 수몰만은 피해갈 수 없었다. 문서도 없던 땅은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겨우 아내 순덕이와 이제 갓 난 딸을 건사할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던 날 사람들은 굿물을 나누어 가졌는데, 칠복이 지닌 징은 그때 배당받은 것이었다.

평생 농사일만을 해온 그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칠복은 광주의 산동네 한 귀퉁이에 사글세방을 마련하고 날품팔이로 전전하거나 큰 식당 주방에서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풀칠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바쁜 농사철에 맞춰 품을 팔러 집을 비운사이 식당 주방장과 눈이 맞은 아내의 외도로 그의 가족은 쉽게 흩어지고 만다. 결국 몇 푼 안 되는 가산들을 정리해서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아내를 찾아다니던 칠복은 고향이랍시고 다시 방울재로 돌아왔다. 그러나 고향은 예전의 방울재가 아니었다. 낚시꾼들에게 매운탕을 끓여주며 생계를 유지해가는 옛 이웃들에게 칠복은 환영받지 못했다. 저수지에 넋을 놓고 앉아서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볼썽사나운 도깨비춤을 추어가며 징을 쳐대는 칠복이가 반가울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쫓기다시피 고향을 떠나야 했다.

 

1973년 7월, 장성댐 공사가 착공됐다. 소위 ‘영산강유역 종합개발사업’이라 불리던 사업의 목적은 영산강 일대의 농업용수를 얻는데 있었다. 그런데 영산강 유역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1971년부터 1981년까지 추진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과 영산강 유역을 대상으로 다목적댐 건설, 하천개수와 관개시설 및 하구언 건설 사업들이 포함되었다. 오랜 숙원이었던 가뭄과 홍수를 해결하고, 용수공급 안정화와 식량증산을 통해 보릿고개를 넘어보겠다는 계획이었다. 한반도의 작은 땅덩어리 골짜기 구석구석이 요동을 치고 여기저기서 댐건설에 박차가 가해졌다. 소양강댐, 팔당댐, 안동댐, 대청댐 그리고 충주댐 등이 모두 그 시절에 지어졌다. TV와 신문에서는 정치인들이 삽을 뜨고 기관장들이 폭죽을 터뜨리는 착공식과 동원된 사람들의 박수와 갈채로 가득 찬 준공식을 싣기에 여념이 없었다. 세상은 산골짜기를 메워 가득 채워진 저수지를 바라보며, 조국의 위대한 역사와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슴 부풀었다. 사람들은 매년 초과 달성되는 풍년 소식에 미리 배가 불렀고, 전세버스들은 전국의 댐들을 찾아 돌며 가슴 들뜬 관광객들을 실어 날랐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있었다. 굳이 댐으로 인한 수몰이 아니어도 젊은이들은 스스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가던 시절, 세상은 고향을 잃은 수몰민들의 감상 따위에 동정의 눈길을 보낼 정도로 한가해보이지 않았다. 그 바쁜 걸음의 뒤안길에서 수몰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오롯이 소설가의 몫으로 남겨졌다.

 

당시 광주에 있는 지방신문사의 기자였던 문순태는 광주은행이 주최한 어린이 저축 작문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수몰민 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수몰민이었고, 도시의 가난한 살림살이에 날품팔이를 하던 그는 저금통장을 가지고 싶다는 딸아이의 말에 울컥 징을 고물로 팔아 통장을 마련해주었다는 사연이었다.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나누어 가졌던 징이었다. 문순태는 이후 여러 차례 장성댐을 돌아보기도 하고, 상류 쪽에 남아 있는 수몰민들을 만났다. 징을 팔아 딸의 저금통장을 마련해주었던 이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징소리>의 연작소설을 쓰게 되었다. 1980년 여름에 출간된 연작소설 <징소리>에는 3편의 단편과 3편의 중편을 통해 많은 뿌리 뽑힌 수몰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야가 너무 좁았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영산강의 한 줄기 황룡강 상류, 입암산과 백암산 같은 노령의 굵직굵직한 산맥들 사이 여러 골짜기들에서 시작한 물줄기들이 장성호로 흘러들었다. 오월이라 농사 준비가 한참인지 호수는 발가벗겨진 산 허리춤 한참 아래까지 물이 빠져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며칠만 더 기다리면 불쑥 잠겼던 방울재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도 같았다. 호수 건너편 병풍산 어디쯤에서 방울재의 뒷동산이던 할미산을 더듬어 보았다. 노루목 언저리 각시바위와 그 바위에 걸터앉아 목이 터져라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징을 치며 겅중겅중 신들린 듯 도깨비춤을 추고 있을 칠복이……. 바람이 불었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징…… 징…… 징……

분명 징소리였다. 구름재 쪽인 듯싶기도 하고, 제월봉 자락을 돌아 그 너머인 것도 같다. 아니, 어쩌면 저 호수 밑바닥 아직도 살아 있을 고향, 방울재의 당산나무 즈음일지도 몰랐다. 바람이 호수 한가운데를 향해 머리를 풀어헤친 버드나무를 흔들어 깨웠고, 징소리는 호수 주변으로 몇몇 남은 집들의 낮은 지붕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그 소리는 문순태의 말처럼 ‘명주실꾸리가 감겼다 풀리고, 풀리다가 다시 감기듯’이 이어졌다. 고향을 잃은 방울재 사람들을 부르는 목소리 같기도 했고, 뿌리를 뽑히고 대처를 떠도는 북상면 사람들의 흐느낌처럼도들렸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당산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장구잽이 구만이, 전립을 쓰고 쇠를 잡은 순필이, 매운탕 집 봉구, 칠복을 쫓아내던 강촌영감도 어기적 걸음을 했다. 금줄이 감긴 팽나무를 배어 버렸던 최판도며, 감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칠성네도 보이고, 도망친 칠복의 아내 순덕이도 거기 있었다. 중굿날 밤이면 다시 모여 굿을 치자며 울먹였던 사람들... 그들은 오랜만에 칠복의 징소리에 어울러 한 덩어리로 춤을 추었다. 징소리는 동구 밖에서 각시샘을 나긋하게 돌아 물방앗간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껑충껑충 건넜다. 출렁출렁 거리던 가락은 휘모리 장단으로 한참을 내달리다가 멀리 구름재 너머 할미산 자락 어디쯤에서 흩어졌다.

 

백암산 정상으로 지친 해걸음이 길게 늘어졌다. 호수 위로는 산 그림자들도 엉금엉금 집을 찾아 기어들고 있다. 저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담양 땅이다. <징소리>의 저자 문순태의 고향이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긴 그가 ‘생오지’를 찾아들었다. 평생 고향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의 사연을 찾아 길을 나서고, 그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글로 풀어내던 그였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차안에서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장성호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노령산맥의 봉우리들 사이에서 마을을 삼킨 호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물로 채워진 장성호는 깊은 산도를 가진 어머니의 자궁을 닮았다. 이상하리만치 꼭 닮았다.

 

진정 여기가 내 고향이던가

천년을 이어온 아름다운 터전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리네

산과 하늘은 그대로인데

다정한 얼굴들 어디에 있는가

실향의 아픔 달래기 위해

오래된 그리움 건져 올리고

흩어진 마음 하나로 모아서

몸속에 잠든 고향

여기에 일으켜 세워

이제 북상은 영원하리 2)

 

 

 

   

1) 문순태, <징소리> 중에서

2) 문순태, 장성호 북상면 수몰문화관기념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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