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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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지 않고 강을 이룰 수 있는 폭포가 있더냐?”
10년 전쯤, 북한산 산행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렵다는 나의 고백에 스승님이 주신 짧은 대답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살아야 하는 삶이 아니라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어서 이미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한 때였습니다. 숲으로 들어갈 결심을 확고히 하고 조금씩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결심만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낡은 삶을 죽이지 않으면 새로운 삶이 열리지 않는 것이 변화의 법칙입니다. 이것을 어렴풋 믿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경험상 두려움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금 누리는 정말 작은데 제법 커 보이는 안온함의 상실. 다른 하나는 내 하늘을 열 수 있을까, 혹은 내 꽃은 피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함. 그래요. 지금의 삶이라는 것이 비록 생기 없이 지루하거나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피로가 일상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따져보면 안온함이 있지요. 또한 백척간두에 서서 낭떠러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들려오는 소리도 무시할 수 없지요. ‘이 안온함 속에 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인생 별 것 없다고…’ 자기 하늘 열어본 적 없고, 자기 꽃 피워본 적 없는 대중들의 수군거림!
나 역시 그 두려움 안고 간두(竿頭)에 서서 흔들리던 때 스승님은 그렇게 한 마디 툭, 은유를 던지셨습니다. 물론 내가 스승님의 그 말씀만을 붙들고 숲으로 향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때 이미 숲에서 다른 스승을 만나 그로부터 삶의 진실 하나를 배워둔 때였습니다. 숲에서 만난 나의 또 다른 스승은 도토리 한 알이었습니다. 어미 나무로부터 툭하고 떨어진 도토리가 인연된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제 삶을 키워가는 과정을 나는 일 년 동안 매주 같은 요일에 찾아가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오묘하고 신기했습니다. 도토리묵의 재료로나 알고 있던 그 전분 덩어리 알갱이에서 연약한 싹이 나오고 땅을 향해 뻗어나가더니 마침내 땅을 파고드는 모습, 연두색 가느다란 줄기 하나를 뽑아 올리고 그 끝 양쪽으로 앙증맞은 잎 두 장을 토해내는 모습, 그 한 뼘도 되지 않는 크기에 이미 십 수 미터의 모양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저 씨앗 하나에 이미 모든 가능성이 담겨 있는 것이구나! 시절 인연으로 찾아든 벌레에 그 여린 잎 일부를 뜯어 먹히면서도 도토리는 참나무로, 숲의 한 공간을 구성하는 멋진 참나무로 자라 오르고 있었습니다.
어제 《우파니샤드》를 읽다가 내 두려움을 지우고 나를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게 한 그 통찰이 이미 고대 인도에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대 인도의 아루나 성자는 보리수나무의 씨앗을 통해 나무나 우리가 모든 가능성을 품은 어떤 존재임을 증명합니다.
“저 보리수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 와 보거라.” / “여기 따 왔습니다.”
“그것을 쪼개라.” / “예 쪼겠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 “씨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쪼개 보아라.” / “쪼겠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총명한 아들아, 네가 볼 수 없는 이 미세한 것, 그 미세함으로 이루어진 이 큰 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아라.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있음을 믿어라. 그 아주 미세한 존재, 그것을 세상 모든 것들은 아뜨만으로 삼고 있다. 그 존재가 곧 진리다.”
도토리는 그 아뜨만의 힘을 따라 참나무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성북구 어느 동네 숲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숲의 스승 도토리 한 알로부터 내게도 그것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확신을 따라 스승님의 말씀처럼 백척간두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숲에 떨어진 빗방울은 방울을 버려 실개천이 되고, 실개천은 개천을 떠나 강이 되고, 강은 강의 이름을 버려 바다가 됩니다. 도토리 역시 제 전분 덩어리를 죽여 참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자주 생각합니다. 거듭 버리고 거듭 죽어야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죽여야 할까?
새해 시작되고 벌써 일주일 지났습니다. 버리고 죽이려 했던 녀석들 있다면 그들은 잘 썩어가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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