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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사실을 재현한다는 것은 확인의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또 다른 요소가 버무려져 감동이라는 결과물이 일어나면 그것은 지나온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만듭니다.
<국제시장> 영화. 사람들의 입소문 속에 극장 조조할인 티켓을 끊었습니다. 흥남부두에서의 철수 장면. 오로지 살겠다는 배를 타야한다는 일념으로 각자의 일가족이 피난길에 나섭니다. 아버지라는 인물은 아들에게 당부 합니다. 여동생을 놓치지 말라는. 아들은 명을 받들어 고사리 같은 손을 꼭 부여잡습니다. 돌아가신 저의 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북도 선천입니다. 호적을 띄어보면 그곳은 미수복지구라는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6.25 전쟁의 발발 전 한 핏줄로써 모여 살았던 곳이지만, 휴전선이 그어진 이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지역. 선친이 어떻게 북에서 서울까지 내려오게 된지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가족을 뒤로하고 형제들끼리 월남을 하였다는 것. 그들도 영화 속 장면처럼 남쪽으로의 탈출을 위해 생과 사의 귀로를 거닐었겠죠. 형과 동생이 손을 잡고 절대 놓지 않겠다는. 그것이 아니었다면 생이별로써 원치 않는 남남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꿈이 선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큰 배를 타고 세상을 마음껏 활개치고 다니는 바다 사나이의 꿈. 그런 그의 소망은 본인의 염원과는 달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야 마는 담배연기처럼. 그에게는 헤어진 아버지의 마지막 한마디가 평생의 유언이자 짐으로 남습니다. 돌봄을 받아야할 소년 입장이었지만 부친의 부재 속 장남이 그 역할을 - 가족을 지키고 부양 - 맡아야 한다는. 검정고시를 통해 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해양대학에 합격하였지만 다른 선택을 하여야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자 한다면 누군가는 그 꿈을 대신 접어야 했기에.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꺾고 맙니다. 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면 그 몫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기에. 선친도 그러했다고 합니다. 동생 대학교 입학금 및 등록금을 마련키 위해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인공은 독일에 광부로써 암연의 지옥 같은 갱도로, 여동생 결혼과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릴 가계를 지키기 위해 다시 월남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종내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그 상처와 흔적은 영화 초입부터 빨갛게 눈물을 감추고 있는 저의 심장을 향했습니다. 선친은 어머니와 삼남매를 남겨놓고 떠날 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어머니는 한 번도 언급을 하지 않으셨기에. 영화 속에서처럼 형에게 그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네가 이제 돌보아야 한다는. 그리고 천국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겠다는. 그래서인가요. 그래서 어머니 당신은 병상에서도 살려고 하기보다는, 영원한 잠의 저 너머 강으로 건너가기를 원하셨나요.
오열하는 아내. 병신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다리를 붙들고 가슴을 헤아립니다. 어느새 그 장면은 나에게로 투영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는. 그렇게 자신보다는 가족이라는 멍에를 짊어져 자지러지는 그 모습을 함께 합니다. 자신의 과오로 헤어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다시 참여하는 그. 그랬습니다. 나의 작은 아버지도 북쪽에 남아있을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헤어진 누군가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했었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혈육이라는 질긴 인연의 깊은 골을. 마지막까지 그는 기다립니다.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자신을 찾아오기를. 그리고 끝내는 서로를 연결해 주었던 끈인 잡화점을 마음에서 내려놓습니다. 이제는 돌아올 시간이 지난 지 오래기에. 이제는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숨죽여 흐느꼈습니다. 벌어진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고 어린 나이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주인공의 삶이, 어쩌면 어머니를 닮았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는 독백합니다. 자식들을 뒤로한 골방에서 흑백사진 아버지의 사진을 앞에 두고, 이만하면 당신의 당부를 잘 지켰지 않느냐고. 하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고 어깨를 들썩입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처음 맞는 일주기. 기억이 물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당신이 떠나간 일 년을 추모키 위해 당신을 만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모두가 함께하는 마음. 잘 지내셨나요. 유해를 뿌렸던 그 자리에 섰습니다. 겨울이라는 바람이 부는 날. 춥지 않으신지. 당신도 그 주인공처럼 너무나 힘이 들었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빨리 가셨겠지요. 떠나간 당신. 떠나간 곳. 그 자리에는 그 시절을 그 세상을 몰랐던 아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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