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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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탁하다.
- 채만식의 <탁류>, 1936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舊 조선은행 군산지점 뒷마당, 오래된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소설 <탁류>의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던 사람들이었지만, 초면에도 낯설지 않았다. 오척단신 작은 체구에 염소수염을 한 정주사가 초봉과 계봉, 성격이 서로 다른 두 딸과 함께 마중을 나온 것이다. 일행 중 제일 연장자인 그가 마악 중절모를 벗어 인사를 건네 왔다. 왼편으로 다소곳이 두 손을 모은 초봉은 소문대로 미색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밝지 않은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아직 결혼 전의 처녀는 낯선 남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그녀에 비하면 새침대기 계봉에게서는 새련된 도시 처녀티가 물씬 풍겼다. 얇은 블라우스 위로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며, 야무지게 움켜진 손과 당당해 보이는 눈길이 호감을 끌었다. 더 이상 연애감정에 숙맥이던 승재를 곯려먹던 계집애가 아니었다. 초봉이 곁으로는 그녀의 첫 사랑이었던 승재가 의사가운을 입고 발걸음쯤 다가서며 자리를 권했다. 청진기를 목에 걸고 손에 차트를 든 요량이 금방까지도 진료 중이었던 듯싶다. 주판을 손에 쥔 태수는 처음부터 이 대면에 관심도 없다는 듯 아예 딴청이다. 기생오라비 같이 기름을 발라넘긴 머리에 오만한 턱을 빳빳이 세우고, 째진 눈길은 자신이 몸담았던 은행의 금고 쪽을 향해 여전히 남겨진 뭔가를 가늠해보는 눈치다. 그리고 그의 곁에 한 남자, 단번에 형보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꼽추인 외모 때문에 더욱 굽신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간교함으로 가득 채워진 눈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결코 가까이에 다가가고 싶지 않게 생긴 인물이다. 음흉한 눈으로 뭔가 허물이라도 잡으려는 듯한 그에게 언제라도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일행들과 헤어진 걸음은 째보선창으로 향했다. 잠시 길 건너 미곡취인소로 미두장 구경을 먼저 나설까 했지만, 왠지 끼웃이 밖을 내다보는 꼽추 장형보의 시선과 다시 마주칠 것 같아 발길을 부둣가 쪽으로 돌렸다. 오후부터 비소식이 있을 것이라더니, 찌뿌둥한 하늘에는 벌써부터 먹구름이 덮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일찍 어둑해진 선창가는 벌써부터 을씨년스럽다. 바다와 접한 좁은 선창 길에는 낮은 슬레이트 지붕의 가게들이 문을 걸어 잠근 채 엎드려 있고, 한때 냉동 창고로 쓰였음직한 콘크리트 2층 건물의 외벽은 세월의 흔적과 비린내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썰물의 바다는 제법 먼데까지 속살을 드러내놓고, 불 꺼진 등대 주변을 맴도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한참이나 멀어져갔다. 오가는 사람도 없다. 선창에는 낡은 고깃배들만 남아 고단한 몸을 뻘 속에 쳐 박아두고 마냥 기우뚱한 채로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오로지 한 줄기 로프가 목숨 줄이 되어 바다에서의 고단한 삶과 육지를 이어놓고 있었다. 강인지 바다인지 애매한 경계 너머는 서천 땅이다. 바로 소설 속 정주사 일가가 떠나온 고향이다. 소설 <탁류>는 미두장1)에서 면박을 당한 정주사가 이곳 째보선창을 서성이며 군산 땅으로 흘러들던 때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 보느라면, ……
여기까지가 백마강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않은 처녀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 시작하여 백제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청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 옳게 금강이다. ……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市街地)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2)
정주사의 큰 딸 초봉을 탐내는 남자들은 많았다. 약국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초봉은 따로 흠모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자신을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부모가 선택한 고태수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겨우 열흘을 넘기면서 파탄이 났다. 겉은 번듯하게 ○○은행 당좌계에서 근무하는 태수였지만, 흘러가는 대로 내맡기고 사는 막장 인생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은행돈을 빼돌려 노름에 손을 대오다가 더는 어찌 청산할 대책도 없이 궁지에 몰려있었다. 더구나 결혼을 하고도 기생집을 전전하다 못해 하숙을 들었던 한참봉의 아내와도 정을 통하는 사이였다. 결국 장형보의 흉계로 태수는 한참봉의 몽둥이에 맞아 죽고 만다. 태수를 없앤 형보는 결혼 전부터 탐내오던 초봉까지 욕보인다. 이래저래 군산 바닥을 떠나 도망치던 초봉은 이번에는 약국 주인이자, 아버지 친구이기도 한 박제호의 유혹에 넘어가 그의 첩이 된다. 그 와중에 초봉은 누구의 씨앗인지도 모를 딸 송희를 낳게 되는데, 형보는 서울바닥까지 쫓아와 제 핏줄이라며 송희를 빼앗으려 한다. 모든 불행의 근원이 형보라는 사실을 깨달은 초봉은 실랑이 끝에 그를 살해한다. 자살을 하려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동생 계봉이와 첫사랑이었던 남승재의 설득으로 초봉이 자수를 결심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가난과 탐욕, 음모와 비극, 횡령과 투기 그리고 치정이 얽힌 살인까지 얼핏 소설 <탁류>는 한 편의 막장드라마처럼 읽히기도 한다. 소설은 작가의 고향이자 당시 식민지 침탈의 대표적인 거점지였던 군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37년 10월부터 그 이듬해 5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는 대표적인 ‘사회풍자소설’로 꼽힌다. 비록 칼을 차고 말을 탄 순사의 모습이나 기모노에 하오리를 걸치고 콧수염으로 째를 낸 일본인 지주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지만, 소설은 암울했던 시절 착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한 여인의 기막힌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타락해가는 1930년대 인간들의 군상들을 그려내고 있다. 어두운 시절이었다. 대륙에서의 전쟁 조짐이 확산될수록 식민지 수탈의 뿌리는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조선총독부의 검열은 사회주의니 민족주의를 가리지 않고 식민지 작가들의 목을 쥐고 숨통을 조여 왔다. 기껏해야 연애소설이나 이별의 슬픔 따위를 노래하는 목소리만 들려오던 세상이었다. 그런 시대에 <탁류>는 <태평천하>와 단편으로 발표된 <레디 메이드 인생>이나 <치숙>은 같은 흐름으로 읽히게 되었다.
군산은 변하고 있다. 근대의 역사를 복원해서 군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쌀가마니들로 축항행사를 기념하던 탑을 쌓았던 자리 어디쯤에는 ‘근대역사박물관’이 새로 들어섰고, 일본무사의 투구처럼 빛나는 지붕 아래서 현란한 춤을 추던 나이트클럽은 옛날 조선은행 지점에서 ‘근대건축박물관’으로 단장을 다시 했다. 진즉에 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암울했던 시절의 오래 묵은 상처를 다시 건드려야 하는 고통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군산처럼 식민지 시절의 잔재가 고스란히 눈앞에 남아 있고, 현재의 삶 속에 흔적들이 깊이 베어든 곳일수록 아픔은 더 할 것이었다. 여하튼 탁류의 배경이 되었던 군산항과 미두거리 그리고 해망동과 월명공원에서 그 시절 일본인 거주자들에 밀려 시루단지 속에 콩나물처럼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개복동을 잇는 ‘탁류길’은 이 도시의 숨결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 그리고 이편으로 뚝 떨어져 정거장 뒤에 있는 <스래(京浦里)>, 이러한 몇 곳이 군산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면적으로 치면 군산부의 몇 분의 일도 못되는 것이다. …… 한 세기나 뒤떨어져 보인다. 한 세기라니, 이제 한 세기가 지난 뒤라도 이 사람들이 제법 그만큼이나 문화다운 살림을 하게 되리라 싶들 않다. 3)
정주사의 집은 개복동 콩나물 고개 너머 둔뱀이에 있었다. 서천을 떠나 올 때 선대의 유산인 선산과 집, 4천 평 논을 모두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제법 대정동 거리에 기와집 한 채를 마련했었지만 그것도 불과 몇 년, 미두장에 손을 데기 시작하면서 이곳 둔뱀이 초가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었다. 길은 비탈진 오르막이었고, 가난은 무능한 가장의 발걸음에 질기게 따라붙었다. 언덕길 초입에 빈터로 남겨진 한참봉네 쌀가게를 훌쩍 지나쳐 ‘초가집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엉겨 붙은 언덕배기’를 올랐다. 개복동과 창성동은 지금, 재개발이 한창이다. 말끔한 아파트가 굽어보는 언덕에서 해맞이 공원 쪽으로 고가다리가 놓였다. 정주사의 집을 지나 소설의 배경을 그려보던 채만식의 눈길이 머물렀던 자리쯤에서 공원을 만났다. 앞집의 지붕과 나란한 높이의 마당을 가진 집들은 위태롭게 매달려 살던 삶들을 지우지 못했다. 당시 대부분 조선인들은 산비탈에 ‘토막’이라는 움막 같은 집을 짓고 남자는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고, 여자는 일본인 집 가정부를 하거나 미선공4)으로 취직해서 겨우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 비탈진 언덕에는 빈집처럼 보이는 슬레이트 집 몇 채가 얼마 남지 않은 오후 봄볕아래서 졸고 있었다.
채만식 문학관은 하굿둑 근처 도로변에 맞닿아 있다. 말년에 그의 표정엔 웃음이 사라지고 없다. 생활의 빈궁함과 세파의 고단함에 찌든 빛이 역력하다. 해방 이후 자서전 같은 <민족의 죄인>을 써내면서 일제 강점기 말에 겪어내야 했던 글쟁이의 고독과 외로움이 잔뜩 묻어났다. 동아일보 기자시절, 곤색 상의에 회색바지를 깨끗이 챙겨 입고 모자까지 쓰고 다녔던 젊은 날 ‘불란서 백작’은 대일 협력에 대한 죄의식으로 깊어진 주름과 소원해진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나이보다 일찍 늙어버렸다. 계단에 새겨진 그의 연보를 딛고 올라선 2층 자료실은 아직 텅 비어 있었다. 그에 대한 엇갈린 평가들로 어수선한 분위기 탓도 있으려니 싶었다. 무거워진 걸음으로 문학관을 나서자, 갈대밭 위로 탁 트인 금강이 그나마 답답해진 숨통을 텄다.
물은 여전히 탁하다. 비단결 같다던 제 이름이 무색하게 물빛은 병색이 완연하다. 마치 세상풍파를 다 겪은 초로의 주막집 작부처럼 강물은 생기를 잃고 있다. 되짚어보면 세상의 밑바닥을 따라 흘러온 천리걸음이었다. 늦은 봄볕에 드러난 하안은 처진 엉덩짝처럼 펑퍼짐하고, 거무튀튀한 뻘에서는 잔뜩 비린내가 풍겼다. 차마 더럽다는 말을 뱉기조차 무색하게 다닥다닥 엉겨 붙은 찌꺼기들의 모습은 차라리 처연하다. 눈물도 메말라 버린 듯, 한줌 바람도 불지 않는다. 슬픔과 아픔 그리고 치욕과 고통이 응어리진 빛깔과 냄새는 저러할까. 다시 숨이 막혀왔다. 얼마 남지 않은 걸음을 감지한 것일까. 미적미적 강물은 차라리 떠밀려가고 있다. 썰물에 맞춰 하굿둑을 빠져 나온 강물은 소리도 없이 해가 저무는 서해바다로 향했다.
1) 미두장米豆場: 현물없이 미곡을 거래하는 장소. 미두는 미곡의 시세를 이용하여 거래를 하는 일종의 투기행위임.
2) 채만식, <탁류> 중에서
3) 같은 책
4) 미선공: 도정한 쌀 속에 등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를 골라내는 일을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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