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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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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9일 02시 49분 등록

마흔, 남편의 이야기

 

 

부부의 일상

 

“<심청전>이 삶과 죽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식탁에서 남편과 마주 앉아 책을 보고 있다가 문득 말을 걸었다. 얼마 전 <심청전>을 다시 읽은 나는 <심청전>를 이야기한다기보다, 죽음을 불사한 영웅의 여정을 이야기한다는 걸 깨닫고 무릎을 탁 쳤다. 우리 신화 <바리대기>와 같이 읽으면 그 맛이 더 할 것 같아 신이 났다. 이야기로 풀어야 더욱 그 맛을 살릴 수 있는 우리나라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한국의 고전과 신화를 얹어 온 가족이 함께 읽으면 괜찮겠다 싶었다. 올해는 우리 집 두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옛 이야기 밥을 많이 차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맞아. <심청전>은 유교적 남성중심 가부장제의 페르소나가 허울뿐인 가면이란 걸 통쾌하게 보여주고 있지. 당신은 우리나라 옛 이야기와 한국의 고전을 한번 엮어봐. 난 한국의 신화를 융의 관점으로 한번 풀어볼게.”

 

요즘 우리 부부의 일상 대화다. 평범한 부부가 나누는 대화치고는 참 유별나다 싶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이 안 되는 우리의 대화! 우린 언제부터 이런 대화를 주고받게 된 것일까? 잠 잘 준비가 다 된 아이들은 잠자리에 누워 한창 대화 삼매경에 빠진 엄마를 부른다.

 

엄마, 우리 잘 준비 다 됐어. <돈키호테> 읽어줘.”

 

남편에게 찾아온 위기

 

철학을 사랑했던 남자와 문학을 사랑했던 여자는 대학의 기숙사에서 만나 한평생 괴테의 모든 것은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는 문장을 가슴에 품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했었다. 하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IMF 여파로 취업문은 바늘 구멍이었고, 남편은 벤처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나 또한 월화수목금금금에 야근은 기본, 밤샘도 기본이라는 IT 계통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되었다. 우리 인생에 철학과 문학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책들은 우리 곁을 떠나 멀어져만 갔다. 일에 지친 부부가 한 밤 중에 접선이라도 하게 되면,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며 그 날을 정리했다. 자정이 넘도록 그 날의 다사다난했던 사건사고들을 다 털어내야만 다음 날 다시 부활하여 또 어제와 다름 없는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다.

 

벤처 회사 재무팀 입사 3년 차가 되자 남편은 벤처 회사의 생리를 파악하게 되었다. 언제 문 닫을지 모를 소규모 벤처 회사 재무팀의 핵심 업무는 자금을 유치하는 일이었다. 투자자를 접대하는 일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그 일은 밤 문화를 즐기기가 고역인 남편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기도 했다. 술과 쾌락에 만취한 투자자들을 그들의 보금자리로 무사히 모셔다 드려야 하루의 업무가 종료되던 어느 날 새벽,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위에서부터, 소장에서부터, 대장에서부터 올라오는 구토를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다 쏟아냈다. 그러고는 그는 사직서를 썼다. 우리의 첫째 아이가 막 태어났을 무렵의 일이다.

 

그러니까 그는 백수가 된 셈이었다. 이제 막 아이를 출산한 아내가 노트북을 메고, 한 손에는 유축기를, 다른 한 손에는 아이스박스를 들고 모유수유를 해 가며 출퇴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그에게 그 어떤 일보다 힘든 일이었다. 다시는 직장을 내 발로 나오지는 않으리라. 아내와 아이를 위해 안정적인 직장에 재취업하는 것이 어느새 그의 꿈이 돼버렸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는 그 당시 업계에서 잘 나갔던 외국계 금융회사에 네 번의 심층면접을 통과하여 그토록 꿈꾸었던 안정적인 회사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는 2009년 유럽발 금융위기로 이어졌고, 본사는 아시아권 지사를 하나하나 철수하여 2011년 한국 지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2014년 한국 지사의 매각이 종료될 때까지 사측의 구조조정과 노조의 파업으로 그의 직장 생활은 성난 파도를 타고 엎치락뒤치락했다.

 

남편의 일기장

 

2008년 시작된 남편 회사의 위기는 2014년에 끝이 났다. 아니, 끝이 났다고 말할 순 없겠다. 일시 종료 상태다. 자신이 원했던 직장으로 옮기고 나서도 7년의 세월이다. 7년의 기록, 장군님의 일기장이 떠올랐다. 임진년(1592)부터 무술년(1598)까지 7년 간 전장에서 썼다는 이순신 장군님의 기록, 난중일기. 내 남편도 그 긴 세월 동안 무언가 글로 남겨놓은 것이 있지 않을까? 부상의 고통 속에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아버지로서, 장군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난중일기, 행간에 스민 침묵의 언어가 주는 감동은 내 뼈 속 깊이 사무쳐 있다. 난 남편의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모닝스타라는 아이디로 쓴 남편의 블로그 일기장. 모닝스타는 샛별이라고도 불리는 금성을 뜻한다. 먼동을 기다리는 파수꾼에게 샛별은 칠흑 같은 밤이 지나가고 머지않아 아침이 밝아 올 것이라는 희망을 의미한다. 작가 공지영은 희망을 일컬어 절망을 견뎌내는 마약이라고 표현했다.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때, 희망은 스멀스멀 활동을 시작하는 법이다. 남편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를 모닝스타라고 불렀나 보다. 한 줄 한 줄 일기를 쓰며 일상의 일들로 젖은 빨래가 돼버린 그의 정신에 샛별을 띄우려 했던 모양이었다.

 

생존의 비법, 죽음의 수용소에서

 

매일 매일 마음에 이는 폭풍과 폭우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붙잡을 것을 찾았다. 그래서 읽고 또 썼다. 읽고 또 쓰다 보면 마음이 잠시나마 가라 앉았다. 그러나 파업의 요동은 거셌다. 그 동안 의지했던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나 하나만이라도 쓸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답답함은 마치 수용소에 갇힌 듯한 느낌을 준다. 남편의 블로그에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어느 심리학자의 생존의 비법이 적혀 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전쟁이 끝날 것 같아. 이번 겨울이 가면 이 모든 일이 끝날 것 같은 꿈을 꾸었어.’ 이런 기대와 바램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때가 되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시름시름 앓아 눕는다. 그러나 이번 성탄절이 지나도 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야지. 이번 봄이 와도 수용소 문은 열리지 않을 거야. 그러니 그때를 준비해야 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 해도 기력이 쇠하지는 않는다.

불면의 밤들을 보내며, 남편은 생존을 위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적금통장 만기가 우리 삶을 통째로 변화 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냉정하고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냉정한 현실이 다시 반복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적금통장 만기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늦잠을 잤다. 눈을 뜨자마자 단숨에 역까지 달려서 기차를 타긴 했다. 회사일로 힘든가 보다. 아내도 첫 출근 첫 강의 하는 덕에 목도 아프고 콧물도 마를 날이 없단다. 큰 녀석은 학교 생활 적응하느라 힘들고 작은 녀석은 독감이다. 밥도 못 먹을 만큼 목젖이 부었단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몸 상태가 제일 낫구나.’

 

2012 3월 어느 날 남편의 기록이다. 지금은 까마득한 일이지만, 나는 남편 회사가 매각 결정을 내릴 무렵 재취업했었다. 500명이 넘는 원아를 보유한 대형 유치원의 정규 영사 강사가 되었다. 그 일은 내가 내 아이들을 직접 돌보면서 할 수 있어서 선택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큰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에, 작은 아이를 데리고 가서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난생 처음 해보는 강사라는 직업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엄마가 힘들어하니 아이들도 힘들어졌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큰 아이는 몸살이 났고 작은 아이는 독감에 걸렸다. 나도 목감기, 코감기를 달고 살다시피 했다. 결국 한 학기만 채우고 나는 두 손 들고 나왔다. 남편을 제외한 세 가족이 모두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린 두 아이를 돌보며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재취업을 한다는 건 역시나 무리였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또 한번 패배감을 맛보게 된 나에게 남편은 술 한잔을 권했다. 세상일은 흔들리는 추와 같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재취업에 성공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자마자 고난은 찾아왔다. 언제나 그랬듯 좋은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어느새 좋은 일들도 하나 둘씩 찾아왔다. 우리 가족은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살 길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마치 좌우를 번갈아 이동하는 추처럼 치우치면서도 더불어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세상일이다.


남편은 페르시아 왕의 이야기를 꺼냈다.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지시했다. 언제 어디서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용기와 지혜를 주는 글을 찾아오라는 지시였다. 신하들은 고민 끝에 임금에게 반지를 선물했다. 반지에 이런 문구를 새겨 넣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공부를 더 해볼까?

 

나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 소혹성 B612호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 혹성은 딱 한 번, 1909년에 터키 천문학자에 의해 망원경에 잡힌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그는 국제 천문학회에서 자신의 발견을 훌륭히 증명해 보였었다. 그러나 그가 입은 옷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어른들이란 모두 이런 식이다.

 

터키의 한 독재자가 국민들에게 서양식 옷을 입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강요한 것은 소혹성 B612호의 명성을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천문학자는 1920년에 매우 멋있는 옷을 입고 다시 증명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두들 그의 말을 믿었다.’ (어린왕자 중에서) 

 

사측의 구조조정을 앞두고 업계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안정적인 국내 금융권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옮겨가는 추세였다. 떠난 이들의 일들은 고스란히 남은 이들에게 넘겨졌다. 충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의 과부하를 떠 안은 채 구조조정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했다. 남편은 MBA 대학원 진학을 놓고 짧은 시간 동안 깊이 고민했다. 왜 대학원인가? 남편은 대학원 진학의 목적이 결국 명예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새로 발견한 별 B612를 발표하려는 천문학자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 또한 좋은 옷을 입어야만 인정받는다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홀로 공부하고 모르면 스승을 찾아 물어볼 수도 있다. B612는 강단 학위를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좋은 옷을 입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

 

홀로 가자. 학위에 기대지 말고 홀로 가보자. 가다가 보면 갈 길이 좀더 밝게 보일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의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었다. 센델은 과거에 돈으로 살 수 없던 것들을 현재에 돈으로 사게 된 현실, 즉 현대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센델이 말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팔 수 없는 것들’로 뒤집어 생각해 보았다. 내 노동을 팔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에서 내게 돈과 바꿀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일까?’

 

남편은 무노동무임금의 원칙을 지키는 파업 투쟁에 가담하게 되었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회사가 정체 불명의 자본의 손으로 넘어갈 위험에 대비한 노조의 노동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파업이라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는 않는다. 즉 돈과 바꿀 수 없는 노동이다. 남편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파업에 가담하면서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가치는 바로 자유정신, 나라는 인간의 주체가 바로 라는 가치였다. 회사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이며, 회사의 위기가 곧 나의 위기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그는 스스로 삶의 주체로 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또는 누군가 억만금을 준다 해도 팔 수 없는 그의 영역을 하나씩 하나씩 되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그의 삶의 강력한 주체로 거듭나게 되고,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행복이 그의 삶에 조용히 찾아올 것만 같았다.

 

전쟁 속에서 철학은 꽃핀다

 

파업 현장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전쟁 속에서 철학은 꽃핀다.’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을 정리한 강신주 교수의 말이다. 매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는 우리 삶이 철학을 원하고 있다 다시 철학 책을 펼쳐 볼 시점이다.

 

잠들어 있는 아내와 두 아이들을 본다. 절로 웃음이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가족을 통해 세상을 본다이들에게 나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나 또한 이들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전쟁은 우리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파업 현장에서 그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인문학운동을 할 것을 고민했다. 노사 간 대립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그럴 시간에 내공을 쌓자고 다짐했다. 진실을 볼 수 있는 힘과 진실되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은 인문학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자신부터 인문학 공부를 해 보기로 다짐했다. 그 다짐을 블로그에 남겼다. 

 

두 아이들에게
1.
인문고전을 쉽게 이야기해주는 글을 쓰겠다
.
2.
삶은 온몸으로 사는 것이며, 사는 이유는 바로 자유때문임을 글과 삶으로 보여주겠다
.
3.
새들이 불안함 속에서 한 끝자락 안정을 찾아내어 둥지를 지어 올리듯, 진리는 변화하는 시류 속에서도 대화하고 소통할 때 비로소 자리잡는다는 팩트를 나의 글을 통해 알려주겠다.

 

회사는 매각이 임박해 오고 파업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또한 회사에서 더 많은 역할을 요구 받는다. 그럴수록 나의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겨 주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자유는 내가 만들 것이다. 내 삶의 미래는 반드시 내가 만들어 낼 것이다.

 

인문적으로 살아간다는 것

 

파업은 끝이 났고 회사 주인도 바뀌었다. 남편은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은 여전히 오리무중, 고난의 연속이다. 하지만 파업을 체험하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은 전쟁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야 하며, 어느 순간에라도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자유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 우리는 왜 책을 펼쳤을까? 책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경험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삼십 년 이상 간극이 벌어진 부모와 자녀 간,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가장과 가족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가장이지만 직장인으로서 남편은 회사와 집을 오가며, 회사인간에서 집인간으로, 집인간에서 회사인간으로 변신을 해내야 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묘한 뒤섞임 속 혼란과 모호한 구분의 경계에서 중심이 되어 준 것이 책이다.

 

노자 강의로 유명한 최진석 교수는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성장이다.’라고 말했다. 인문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인문적으로 살아가기, 즉 자신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문학 책을 접하다 보면, 자신이 바로 보이고, 처해 있는 상황도 바로 볼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삶이 힘들 때, 막막할 때, 고전을 읽으면 더 와 닿는 이유다. 현실은 변하고 나도 변한다. 변해가는 것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우리 부부는 인문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나 좋은 풍경을 볼 때, 사랑하는 가족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 저 책 보다가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가족과 함께 읽고 싶어진다. 함께 읽다 보면 읽는 맛이 더 진해지고 또 더 깊어진다. 백 년, 오백 년, 천 년, 이천 년 전해져 온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남을 느낄 수 있다. 백 년도 살지 못할 인생이지만, 고전을 통해 우리는 수 천 년에 달하는 타임머신 여행을 할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한다면 그 맛은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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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9 11:21:37 *.255.24.171

자주 들었지만, 책을 잡기 전에 어머어마한 일들이 있었군.

이런 에너지가 책으로 승화되었고. 멋진 가족이란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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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0 15:45:05 *.196.54.42

오우~ 남편도 장편 드라마네.

철학과 문학의 만남이니 인문학으로 꽃피우는게 당연한 일.

언제봐도 책으로 소통하는 엘리스 가족은 나의 로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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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1 00:14:11 *.143.156.74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부부 정상은 아니야. ㅋㅋ

소파에 누워 tv리모콘을 돌리고 있는 평범한 남편도 함께 읽기에 끌어들일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시작할 수 있는 <온 가족 함께 읽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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