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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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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6일 05시 49분 등록

 

이삿짐을 옮기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이 모든 물건들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동을 하는데 모든 문들을 통과하게 되고 옮길 수 있게 만들어 졌을까? 문의 폭은 누가 결정했을까? 이러한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은 하게 된다. 문의 폭은 숫자로 표현될 수 있다. 집집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대략 기준이 되는 크기가 있다.

 

엔지니어에게 숫자는 이와 같이 생활에 필요한 그 무엇이다. 어떤 숫자는 생명과도 연결되고 어떤 숫자는 생활의 만족도와 연결된다. 때론 삶의 질을 좌우하기도 하고 때론 삶을 위협하기도 한다. 엔지니어는 과학과 다르다. 과학은 이론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숫자를 대변하는 변수들의 관계를 규명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학은 이 과학을 활용해서 생활에 필요한 숫자를 정하고 이 숫자를 현실로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공학은 현실적인 숫자를 갖고 있어야 하고 이를 결정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엔지니어들이 왜 그렇게 숫자에 집착하느냐고? 그 값이 조금 차이 나면 어떠냐고? 뭐 대충하면 되지 않느냐고? 돈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늘 이 숫자를 함부로 다루려고 한다. 숫자가 정밀해지고 제대로 결정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언가의 량을 결정하거나 두께를 결정하기도 하고 속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의 현실적인 값의 어울림을 통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이 다루는 숫자는 세상이 갖고 있는 재화들을 대변한다. 이 재화들은 유한하고 만드는데 돈이 드는 것들이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늘 이 숫자를 제대로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너무 적게 사용하면 제품이나 건물이 부실해질 것이고 너무 과하게 사용하면 재료를 낭비하여 효용대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지니어는 이 숫자를 잘 다루어야 한다.

 

엔지니어가 이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사회 안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한강의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눈으로 부실한 체육관이 무너지고, 배가 침몰하는 것은 엔지니어가 정해준 수치를 무시하고 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는 세상에 아무런 거짓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과학으로 규명된 지식으로 세상에 필요한 숫자를 결정한다. 숫자는 그 지식이 사용되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늘 사람이 그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필요한 숫자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엄격하게 그 숫자가 집행되어야 한다.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 위상은 예전과 달리 떨어지고 있다. 갈수록 돈에 집착하고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해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엔지니어들은 소신을 갖고 숫자를 만들어내어도 그 숫자는 다른 어떤 이유로 변경될 소지가 너무나 많다. 이는 엔지니어에 대한 권위 상실로 인해 더더욱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의사가 숫자를 잘 못쓰면 한 사람의 몸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이는 약물의 선정과 투여량을 결정하는 것, 때로는 절제부위를 결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주의를 요하는 일이다. 하지만 엔지니어가 결정한 숫자를 제대로 못 지키면 여러 사람이 다치거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엔지니어의 숫자는 그 파급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늘 주의를 요하는 일이며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적인 인식 부족으로 인해 이 숫자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늘 문제를 만들어 왔다.

 

21세기 우리 사회는 더 많은 기술을 받아들여 보다 풍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는 보다 편리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상품의 개발로 인류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려는 노력에 의해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 사용되는 많은 공학적 숫자들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갖고 결정될 것이다. 이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이고 그리고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이 둘간의 조화로운 결정을 통해 우리 삶은 보다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엔지니어들의 숫자를 믿고 그 숫자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사업적인 이익과 단기적인 효과를 위해 엔지니어들의 숫자를 바꾸려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보아왔다. 우리가 엔지니어들이 권고한 숫자를 무시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을 말이다.

 

반면에 엔지니어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숫자를 되돌아 봐야 한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숫자를 속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더 이상 엔지니어가 아닌 사기꾼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 그 결과는 자명하게 드러나게 마련이고, 결국 파멸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엔지니어들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자신의 숫자를 지키길 바란다고 말이다. 그 숫자가 결국 당신과 가족 그리고 그 숫자가 적용된 상품을 사용하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생을 지켜줄 수 있기 소중한 기도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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