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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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알게 되면 될수록 사고 싶은 책이 없어진다. 말석이나마 글동네에서 생계를 해결하는 자로서 이러면 안되는데 싶지만 굳이 사지 않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읽어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은 책이 너무 많다. 그러던 중 엊그제 보슬비를 맞으며 동네 서점으로 산책가서 발견한 두 권의 책은 오랜만에 뭉클거리는 감흥을 불러일으켰으니...... 김병종의 <나무집예찬>과 정우열의 <올드독의 제주일기>로 문체와 분위기는 딴판이었지만 동시에 강렬한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김병종은 십 오년 전에 팔당에 토담집을 하나 구했다. 그리고 칠 팔 년이 흐른 후에 그 자리에 한옥을 올렸다. 대학시절 스승인 서세옥의 성북동 한옥을 방문했을 때, “숫제 하나의 작품”이었던 그 집에서 고요한 황홀을 느낀 뒤로 알게 모르게 품어 온 꿈을 이룬 것이다. 이제 재주 많던 미대생은 글 잘 쓰는 화가교수가 되었고, 현대의 미친 속도에서 이탈하여 “햇빛과 바람과 빗방울의 시간 쪽으로 눈과 마음”을 돌린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제 속도로 운행되던 유년시절과, 무릇 삶이 이래야 한다는 본질로의 즐거운 퇴행이었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 온 자, 이 정도는 누려도 된다는 듯 그 집에는 저자가 상상할 수 있는 호사를 모조리 모아 놓았다.
밤이면 달이 물 위에서 떠올라 중천을 밝히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것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마치 “짐승의 숨소리 같은 달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 했다.” 뒷마당에는 35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천지의 노랑빛을 다 몰아 온 듯하다. 마당에 작은 기도방을 만들어 협선재(協善齋)라 이름 붙였다. 저자가 좋아하는 로마서 8장의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구절에서 따 온 것이다. 저자의 필적으로 써서 서각했다. TV와 컴퓨터 대신 작지만 강력한 오디오를 놓고 카라얀과 임방울과 한영애를 듣는다. 그럴 때 차와 블랙커피와 레드와인이 동무해 준다.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마당까지 끌어들여 사철 졸졸졸 낙수 소리를 듣는다. 돌담에 나비도 좀 날아왔으면 싶은 생각에 철로 만든 나비에 노란색을 칠해 올려 놓았다. 어디 그 뿐이랴. 닭과 개, 원숭이 같은 십이간지를 나무로 만들어 선반에 올려 두었다.
저자는 그 곳에서 시와 에세이와 일기를 섞어 놓은 듯한 글을 쓴다. 그리고 그것들을 불쏘시개로 삼아 군불을 땐다. 그림에 일가를 이루고, 다양한 재주와 관심사가 융합되어 연륜으로 버무려진 다음에, 나무집의 은근한 기운이 더해 진 탓일까. 저자의 글에 현자의 그것 같은 깊이가 너울댄다. 거기에 사진을 그림같이 찍어 놓는 김남식의 솜씨가 더해져 자꾸만 쓰다듬고 싶은 책 한 권이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정우열도 만만치않은 호사가이다. 우선 11년간 같이 살아 온 개들과 바다수영을 하기 위해 제주로 이주했다는 것부터가 보통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정서와 심적 경제적 여유를 보여주지 않나?^^ 무심한 듯 정곡을 찌르는 문체와, 간단한 듯 많은 것을 보여주는 일러스트가 어울려 정신없이 읽히는 이 책에서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 부분이다.
“(개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래서 둘러업고 서울에 오던 중) 수하물로 싣기 위해 케이지째 개의 무게를 달고, 추가요금을 지불하고, 그걸 들고 뒤뚱거리며 멀어지는 항공사 직원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웬만한 고난은 반드시 담담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건 내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이번엔 내 차례가 된 것뿐이다. 게다가 내 손에 있을 땐 아픔이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진 순간 킬로그램당 이천원짜리 수하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 걸로 호들갑을 떨면 자신의 고통을 특수화하는 짓, 전문용어로 ‘징징거림’이 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짐짓 담담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맥락이 이렇다 보니 저절로 담담해진다는 의미다.”
오랜만에 가슴 떨리게 좋은 책이 둘 다 부러운 삶의 유형을 보여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책을 고를 때 대오각성할 수 있는 대단한 이론보다는 그렇게 따라 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선망하는 기분이 들지 않고서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테니, 한 사람에게라도 다가가 마음깊이 번져갈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사는 것이 필요하고, 보다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면 내 삶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내 놓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엄정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무엇보다 먼저 체중감량부터 해야 하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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