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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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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일 07시 45분 등록

 

"효정씨 그리고 보아씨 엔지니어 생활이 어떻습니까?

직장 3년째이고 회사생활도 익숙해진 것 같은데요.

담당 업무도 생겼고 제가 보기엔 사원이지만 일 처리는 선임수준인데 말이죠."

 

효정씨가 약간 뜸을 드리다가 꿈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교 때 1년간 미대를 준비했는데 부모님 반대로 전산 쪽으로 대학을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보아씨는 딱히 웃기만 하고 말이 없다. 이들도 지금 엔지니어로서 회사를 다니지만 그들의 또 다른 꿈이 있을 것이다.

 

나는 2002년 대학원을 마쳤다. 회사를 들어가서 3년 정도 지나 자리를 잡을 즈음 난 몹시 흔들린 적이 있었다. 나 또한 어릴 적에 미술을 좋아했고 마음 속으로 그와 관련된 꿈이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공학을 10년 넘게 공부했는데 다시 순수미술로 갈 수는 없고 사실 사람보다는 물건에 마음이 더 끌리는 나로서는 산업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다시 매료되어 버렸었다.

 

그 당시 틈만 나면 디자인 서적을 구매해서 보고 다양한 디자인 분야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었다. 디자인의 역사와 경험 디자인, 정보 디자인 쪽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몇 년간 거친 후에 회사에서 나름 중요한 과제를 추진하게 되었고 이어서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성과도 좋았고 그렇게 4~5년을 보내게 되었다. 이는 곧 디자인으로 향했던 나의 마음을 다시 회사의 일로 채우는 결과를 낳았다.

 

어느덧 1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하게 된 후에 난 다시 흔들렸다. 마음이 비어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왜 살지 하며 하는 일에서 주는 만족감보다 기회비용으로 잃어가는 시간들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다. 꿈이란 무엇일까? 삶을 살면서 왜 사람들은 꿈을 가져야 할까? 어쩌면 꿈이라고 할 것 없이 작은 소망들이 꿈은 아닌가? 그렇게 허전한 상황에서 나의 길을 찾아 떠났었다.

 

새벽 기상과 글쓰기, 108, 책보기, 명상, 여행 등 다양한 시간들을 지난 3년간 경험하였다. 특히, 지난 1년간의 변화경영연구원 10기 활동은 나에게 삶에 대한 충만감을 주었다. 직장인으로서 엔지니어 이전에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도 하게 되었다. 같이 공부한 사람들의 깊이 만큼 가지 못하였지만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하여준 시간이었다.

 

직업으로서 엔지니어는 직장인으로서의 하루를 규정 짖는데 많은 역할을 한다. 매일 부딪히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달려야 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 나가야 한다. 때로는 새로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미로에서 길을 찾듯 헤매야 할 때도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숫자로 표현되는 제품과 서비스의 모든 사양들을 정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엔지니어들의 일은 그래서 늘 팍팍하다. 그렇다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도 늘 팍팍해지기 마련이다. 점점 더 단순해져 간다.

 

엔지니어들은 세상을 보면 숫자가 느껴진다. 숫자를 보고 안심하고 때로는 숫자를 보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들도 숫자 이전의 의미를 알고 있다. 인간으로서 그 숫자가 주는 의미를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숫자를 꿈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자신가 타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싶어한다.

 

현대인의 삶은 기술을 모르면 살아가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이런 점에서 엔지니어는 더 좋은 교육적 배경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오랜 기간 지속되는 직장인으로서의 시간이 그들을 사람보다는 기계처럼 느끼게 만들어버린다. 따듯한 가슴을 갖고 있었고 가슴을 부풀게 한 꿈을 가졌던 한 사람이 매일 부딪히는 엔지니어로서의 직업적 문제 해결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직업을 통해 꿈을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 꿈이 없이 오래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매번 직장을 바꿀 수도 없다. 그러니 한 사람으로서 꿈을 갖는다는 것. 엔지니어로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꿔보는 것 이것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엔지니어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위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 나는 오늘도 이 꿈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만든 통신시스템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다 편리하게 보다 안전하게 보다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이제 나의 엔지니어 이전의 내 꿈이 되었다.

 

"효정씨 보아씨 직장생활이라고 해서 모두 시키는 일로만 볼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 미치는 의미를 찾아보면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됩니다. 현재 매일 하고 있는 일이라 때론 지루할 수 있지만 엔지니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꿈 하나 더 꿔보세요. 직업으로서 엔지니어이지만 한 사람으로서 삶을 위한 꿈 말입니다."

 

IP *.222.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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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08:39:20 *.201.146.110
글의 화자처럼 숫자의 의미를 찾는 엔지니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엔지니어들의 숙명이자 한계가 결국 숲을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요즘 쓰는 글들...^^
프로필 이미지
2015.02.02 16:50:10 *.196.54.42

글 좋네요 희동^^

" 따듯한 가슴을 갖고 있었고 가슴을 부풀게 한 꿈을 가졌던 한 사람이 매일 부딪히는 엔지니어로서의 직업적 문제 해결에만 몰두하다 보니 기계화되어 간다"는 대목은 직업 인간으로서의 슬픔으로 ㅜㅜ

부디 꿈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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