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칸양(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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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은 아주 바쁜 날이었습니다. 모임이 2개나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중 하나는 제가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제모임 <에코라이후>의 2월 오프로써, 평소(?)처럼 오전 10시반에 시작, 저녁 7시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대학 과동기 모임이었는데,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기 한명이 무려 십 몇년 만에 귀국했다는 이유로 아주 긴급히 만들어진 번개모임이었죠. 약속시간이 오후 3시였기 때문에, 시간이 겹쳐 참석은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녁 7시 넘어 전화를 해보니, 한참 이야기 중이니 어서 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모임 장소로 가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얼마 만의 만남인걸까? 가끔 만났던 동기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학졸업 후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있으니 무려 20년만, 특히나 여자동기의 경우는 제가 2학년 마치고 군대간 이후 처음이니 26년만입니다. 어떻게들 변했을까? 예전 모습은 그대로 있을까? 모진 풍파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내 얼굴을 보면 뭐라고 할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죠.
최근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 즉 40대 초중반 이상의 연령대 사이에서 과거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간의 모임이 많아지고 있다 합니다. 예를 들어 반창회나 동창회 같은 모임들을 통해 예전의 친구들을 찾는거죠. 그래서일까요? 페북을 통한 친구요청도 많아지고,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반창회에 참석하라는 연락도 오더군요. 이런 현상들을 보며 2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이제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하는 생각과 다른 하나는 사람은 역시나 추억을 먹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 솔직히 대학 동기모임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대학생활, 특히 동기들과 함께 했던 1,2학년(군대 가기 전) 때는 여러 가지 환경여건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그러다보니 잘 어울리지 못했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죠. 만나면 반갑긴 하겠지만, 그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죠.
막상 얼굴을 대하니 반갑더군요. 분명 나이는 먹었는데, 마치 원래의 얼굴 위에 살포시 세월이란 눈이 살짝 덮혀진 듯한 모습들 같았습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과거의 젊음과 현실이 적절히 잘 어울려져 있더군요. 동기 중 한명이 제 얼굴을 보더니 대학교 때와 얼굴은 똑같은데, 머리숱도 적어지고 흰머리도 많아, 마치 내가 아닌, 아버님이 모임에 참석한 것 같다고 놀리더군요. 흑. 상처 받았습니다. 아주 잠깐, 다음번 모임부턴 절대 참석 안하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ㅠㅠ 동기들의 얼굴, 목소리, 이야기를 보고 듣다보니 과거의 시간들이 생동감있게 되살아 나는 듯 했습니다. 가끔은 그동안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살았던 과거의 추억들이 회생되기도 했고요.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모임은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약간 업되었던 기분이 다소 가라앉아 있음과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 웬지 모를 쌉쌀함이 느껴졌습니다. 이게 뭘까? 생각에 꼬리를 물다보니 오늘 참석한 2개의 모임이 대비되었습니다. 하나는 과거를 추억하고(대학동기), 다른 하나는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에코라이후)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수동성의 인연이고, 다른 하나는 능동성의 만남이라 할 수 있겠네요. 하나는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친목을 다질테지만, 다른 하나는 배움을 통한 상호간의 성장을 목적으로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친구로써의 이야기가 주가 되겠지만, 다른 하나는 3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러 이야기가 등장하겠지요.
저는 이 상반되는 두 모임에서의 관계를 ‘가로관계(Horizontal Relationship)’와 ‘세로관계(Vertical Relationship)’로 정의 해 보았습니다. 가로관계는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관계로써, 주로 과거의 경험과 추억을 나누어 먹는 사이로, 강한 친목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고, 이 세대의 힘든 삶이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서로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세로관계는 다양한 세대가 어울려, 상호간 배움을 통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이들은 과거의 추억이 없는만큼 현재에 다양한 경험을 공유해 나가야 하며, 이것이 원활치 않을 경우 모임 자체가 깨어질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한 방향을 바라보는 목적성이 강해야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로관계나 세로관계, 모두 장단점이 있으며, 어느 관계가 더 좋고 낫다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면, 최근 많아지고 있는 가로관계 뿐 아니라 세로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나 세로관계를 통해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연령대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내 사고의 범위를 좀 더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후배들에게 인생선배로써 꾸준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삶의 작은 기쁨이 될 수 있겠지요.
삶이 보다 풍부해지길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가로관계뿐 아니라 반드시 세로관계도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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